8화
‘죽여라.’
고블린은 본능적으로 홉 고블린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림자 병사들에게는 그런 두려움이 없었다.
명령을 내리자, 미친 듯이 우라토에게 달려들었다.
- 키에엑-!
그림자 병사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물어뜯는지 우라토가 기겁해서 도망칠 정도였다.
하지만 우라토를 죽일 순 없었다.
네임드답게 상당히 강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장검에서 마력까지 뽑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림자 병사들이 빠르게 소멸했다.
압도적인 파워와 체력 그리고 스피드까지…. 마치 이리떼와 싸우는 호랑이 같았다.
나는 장창을 쥐고 집중했다.
기본적으로 검에 마력을 주입하면 검기가 되고, 창에 마력을 주입하면 창기가 된다.
▣ 상급 무기술 : 엘리트 등급의 강기를 생성한다.
상급 무기술은 어떤 무기든 가리지 않았다.
이른바, 올라운드형.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기에 특화된 능력이었다.
장창에 마력을 주입하자, 창기가 생성됐다.
나는 있는 힘껏 우라토를 향해 장창을 날렸다.
엘리트를 넘어선 압도적인 파워가 실리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우라토의 흉부를 그대로 뚫어버렸다.
“키엑-!”
단발마의 비명 소리.
우라토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흉부가 뻥~ 뚫린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벌떼처럼 그림자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만.’
명령을 내리자, 그림자 병사들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토록 사납던 녀석들이 마치, 강아지마냥 온순해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우라토를 향해 우측 팔을 뻗고 손바닥을 쫙 펼쳤다.
‘일어나라.’
순간, 우라토의 그림자가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우라토 그림자가 생성됐다.
우라토 그림자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정석을 가져와.’
우라토가 시체가 된 자신의 흉부를 단숨에 갈랐다.
그런 후, 심장 속에 숨겨진 마정석을 가차 없이 뽑아버렸다.
이로써 1등급 마정석만 4개.
우라토에게 1등급 마정석을 건네받은 후, 백팩에 집어넣었다.
각성창을 개방했다.
우라토의 등급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
<기본 능력>
▣ 상급 격투술 : 엘리트 등급의 권강을 생성한다.
▣ 상급 무기술 : 엘리트 등급의 강기를 생성한다.
<특수 능력>
◈ 상급 실드 : 엘리트 등급의 실드를 생성한다.
◈ 그림자 준남작 :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47/625)
<권능>
★ 그림자 전송 : 반경 1km 이내, 그림자를 매개물로 전송시키거나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자신을 전송한다.
★ 그림자 은신 :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다.
==============================
그림자 병사와 마찬가지로 녀석도 베테랑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네임드인데 베테랑이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각성창을 닫고, 그림자 병력을 모두 해제시켰다.
그런 후,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리쬐는 햇살이 무척이나 싱그러웠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압권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어떻게 지구와 연결된 건지.
마물만 없었다면 펜션이라도 짓고 싶은 맘이다.
산등성이를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풍경이 눈에 띄었다.
뭔가 모르게 이질적인 모습의 풍경.
절벽 아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곳엔 놀랍게도 고블린 마을이 있었다.
얼핏 봐도 족히 200마리가 넘는 부락이었다.
‘아….’
본능적으로 저곳이 게이트의 심장임을 직감했다.
순간, 그림자를 소환하려다가 멈칫했다.
저것들을 모두 없애면 게이트가 소멸될 것이다.
그러면 의도치 않게 국가 전용 게이트를 소멸시키는 것이 된다.
분명 문제가 될 것이다.
틀림없이 마감청에서 조사가 나올 테고, 쓸데없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사실 70년 전 처음, 게이트가 발견됐을 땐 게이트 소멸이 국룰이었다.
게이트를 소멸시키지 못하면 블랙홀로 진화한다는 게 과학자들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게이트가 블랙홀로 진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공간을 비틀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
그 후로, 국가가 지정한 일부 게이트를 제외하고, 나머지 게이트들만 소멸시키는 것이 국룰이 되었다.
물론, 국가가 지정한 일부 게이트 중에서도 게이트 브레이크나 변이 게이트는 주의해야 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면 마물과 마수들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기 때문이다.
변이 게이트도 그렇고.
그래서 마감청에서는 게이트 파장력을 항상 주의 깊게 살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려고 할 때, 일반 고블린보다 두 배는 더 큰 홉 고블린과 눈이 마주쳤다.
우라토와 같은 홉 고블린이면 고블린 족장이 틀림없었다.
놈이 날 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림자로 만들면 딱인데….’
고블린 족장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
게이트 밖으로 나와 액션캠과 위치추적기를 반납했다.
“어쭈~ 액션캠을 껐어?”
최태식 교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깜빡했습니다.”
“깜빡? 이 자식이.”
최태식 교관이 노려봤지만 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액션캠을 켜는 건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실전 훈련을 받는다는 놈이, 그걸 깜박해!”
“임무는 완수했습니다만….”
고블린 왼쪽 귀가 꿰어진 고리를 들어 보였다.
“…썩 꺼져!”
최태식 교관이 신경질적으로 고리를 낚아채 갔다.
과거로 돌아온 뒤, 튀는 행동은 가급적 삼가는 중이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그토록 바라던 헌터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헌터가 되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냥할 수 있었다.
그러니, 불필요한 구설수에 오르는 건 자제해야 했다.
안 그래도 요즘, 정영미와 정성재를 이긴 것 때문에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액션캠까지 찍는다?
내 능력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어리석은 짓이다.
분명,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주목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교관에게 쌍욕 한번 먹는 게 백번 나았다.
실전 훈련이 끝날 때까지 한쪽 구석에서 짱박혀 있었다.
정영미가 다가왔다.
“어디서 사냥했어?”
“신경 꺼라.”
“오늘은 대련 안 해?”
“응, 안 해.”
“칫~”
“….”
“…….”
“…안 가냐?”
“남이사.”
“좀 가줬으면 좋겠는데. 조금 귀찮….”
“뭐. 라. 고?”
정영미가 도끼눈을 뜨자, 심장이 털컹 내려앉았다.
그래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봉안아~”
때마침 안봉안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
“귀는 다 모았냐?”
“어, 덕분에.”
안봉안이 나와 정영미를 번갈아 보았다.
“왜?”
“아니, 그냥….”
안봉안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내 옆에 앉았다.
“싱겁기는.”
그런데 녀석이 계속해서 정영미를 곁눈질했다.
“할 말 있냐?”
“아니.”
얼굴이 벌게진 녀석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정영미 역시 자신에게 계속 곁눈질하는 안봉안이 무척이나 의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무 결과가 발표됐다.
총인원 72명.
실전 훈련 통과자 56명.
중도 탈락자 16명.
중상 2명.
경상 8명.
교관들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작년보다 성적이 더 안 좋았던 것이다.
***
“저 이제 졸업해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아카데미를 졸업한다고.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묵묵히 식사를 하셨고,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셨다.
“우리 오빠. 고생했네.”
니가 웬일이냐는 듯, 여동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졸업 후에도 걱정하지 마세요. 성적이 나빠서 좋은 길드는 못 들어가도 클랜 정도는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벌써 담당자랑 협상 중이에요.”
거짓말이다.
아카데미 졸업 후,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 같아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흠흠. 잘됐구나. 잘됐어. 어쨌든, 잘 선택하겠지만. 위험하게 사냥하는 곳보다 안전하게 사냥하는 곳이 백번 낫다.”
“그래. 돈 욕심부리지 말고. 적게 벌어도 좋으니까. 엄마는 우리 아들이 마감청 같은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어. 거기가 안정적이고 오래 다닐 수 있다는데. 그리고….”
“거참! 태민이가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1절만 해요. 1절만.”
“아니, 내가 무슨.”
“당신은 말이 너무 많아.”
“뭐라고요!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엄마, 아빠. 둘 다 스탑!”
부모님이 다투려 하자 여동생이 제지 시켰다.
머쓱해진 아버지, 그리고 눈을 흘기시는 어머니.
비록 두 분이 살짝 다투셨지만, 표정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보여 드릴게요.’
나 하나 교육시키기 위해 물려받은 집도 팔고 월세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여동생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도 포기하고 학교를 마치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나는 2년 후에야 졸업했고 취업도 하지 못했다.
가족들 볼 낯이 없어 잠수를 타야 했다.
얼마 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빌런에 의해 아버지까지 부상을 당하셨다.
어디다 하소연할 곳이 없던 은영은 날 찾아왔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 당시 여동생과의 마지막 통화가 떠올랐다.
“오빤 너무 이기적이야. 자기밖에 몰라.”
“은영아. 나도 힘들어.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최선?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데. 오빠 한 사람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얼마나 더 희생해야 하는 건데!”
“은영아.”
“이제 남들처럼 땀 흘려 일하면 되잖아. 헌터 따윈, 이제 때려치울 수 있잖아!”
“…은영아.”
“아빠가 다쳤는데 오빠한테는 비밀로 하랬어. 오빠가 신경 쓰면 안 된다고 비밀로 하랬다고.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그런데도 오빠가 걱정할까 봐 전전긍긍하셨던 분들이셔.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분들이시다고!”
“….”
“그런데 오빠는 뭐야? 아빠가, 아빠가 이렇게 됐는데… 대체 오빠는 뭐 하는 사람인데!”
“….”
“앞으로 절대, 가족들 앞에 나타나지 마!”
“은영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 연락을 못 했으니, 따지고 보면 내가 연락을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 당시 나는 실의에 빠져 있었다.
반쪽짜리의 비참함에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억울하게 부상을 당하신 아버지의 복수도 못 할 정도로 빌런을 두려워하던 시기였다.
패배자.
막연히 헌터! 헌터! 헌터!
헌터만 외치던 인간쓰레기.
…바로 나였다.
과거로 돌아온 지금, 눈물을 삼키며 다짐했다.
두 번 다시, 가족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각각 그림자 다섯 마리씩 붙였다.
세상이 워낙 험하다 보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더군다나 과거로 돌아온 직후부터 미래가 완전히 변했다.
고로, 항상 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