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벅차오르는 감동.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군가 내 공간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뭐해? 또 밤새웠어?”
정영미가 질린다는 듯 훈련실로 들어왔다.
“또 왔냐?”
“응.”
정영미가 단검부터 뽑았다.
“피곤하다, 가라.”
“흥! 무서운가 봐?”
“어른 놀리는 거 아니다. 가서 애들이랑 놀아라.”
“웃기시네.”
정영미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잔뜩 화가 난 살쾡이 같았다.
“거참, 피곤하다니까.”
“난 안 피곤하거든!”
그녀가 이렇게 덤비는 것도 벌써 18일째.
애초에 대련을 받아주는 게 아니었다.
그 후로 줄곧 찾아와 대련을 신청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작정 덤벼들었다.
“어른 말 안 들으면 혼난다.”
“말 안 들었다. 어쩔래!”
달려드는 그녀를 피한 후, 순식간에 뒤로 물러섰다.
“진짜 혼난다.”
“까불지 마!”
잔뜩 화가 난 정영미가 더욱 사납게 달려들었다.
***
처음 각성한 후, 무려 35년간 그토록 노력했건만 겨우 뱅가드에 머물렀다.
검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기가 없으니 공격을 할 수 없었고 당연히 마력도 흡수할 수 없었다.
그저 실드로 방어하면서 미약한 마력만을 축적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성장이 느렸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불과 스물셋.
엘리트를 넘어선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특수 능력 그리고 천재적인 격투 능력까지.
지금 내 미래는 무척이나 밝았다.
“집합!”
집합 명령이 떨어지자 우린 오열 종대로 위치했다.
주임 교관이 연단에 오르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실전 훈련이다.”
“다들 명심해라. 현실은 냉혹하다. 너희들 중에서 삼 분의 일은 낙오될 것이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리고 절대, 낙담하지 마라. 백호 아카데미는 너희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가져라.”
“본 교관이 당부하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다. 긴장하지 마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긴장과 두려움은 너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즐겨라. 이 상황을.”
“너희 모두가 실전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명예로운 헌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건투를 빈다. 이상!”
주임 교관의 당부가 끝나자, 최태식 교관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릴 주시했다.
“보다시피 여기, 1등급 게이트가 눈앞에 있다. 애송이 새끼들 수준에 딱 맞는 게이트다. 긴말하지 않겠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이건 실전이다. 알겠나!”
“예!”
최태식 교관 다음으로 김소영 교관이 연단에 올랐다.
“교육생 여러분~ 이제 곧 실전 훈련이 시작될 거예요. 지금부터 액션캠과 위치 추적기를 장착해 주세요.”
그녀의 말대로 우린 지급 받은 액션캠과 위치 추적기를 슈트에 장착했다.
“이미 여러 가지 얘기들을 주임 교관님과 최태식 교관님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한 가지, 당부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부디 만용을 부리지 마세요. 세상에 여러분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위험하다 싶으면 비상 버튼을 누르세요. 여기 계신 교관님들과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예!”
김소영 교관이 내려가자 최태식 교관이 또다시 연단에 올랐다.
“주목!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마디만 더 하겠다. 김소영 교관의 말을 뼈에 새겨라. 너희들 목숨은 하나다. 비상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니다. 고작 1년을 유급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라.”
“흠흠… 참고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태민이를 봐라. 저 자식은 게이트만 들어가면 버튼을 눌렀던 놈이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무려 3년씩이나 말이다.”
“큭크크.”
“킥.”
“하하.”
갑작스러운 내 얘기에 동기들이 낄낄거렸다.
“웃지 마라!”
최태식 교관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지금 태민이는 어떻나? 대인전에서 정영미와 정성재를 모두 꺾었다. 아카데미 최고의 인재를 무려 둘이나 꺾었단 말이다!”
“너희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다. 그러니 악착같이 버텨라.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라. 태민이처럼만 하면 된다. 알겠나!”
“예!”
“그럼 지금부터 순서대로 입장한다. 선두 입장!”
“입장!”
드디어 게이트 입장이 시작되었다.
‘젠장, 부끄러움도 모른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동기들 앞에서 정말 너무하네. 교관이고 나발이고 확 받아버릴까.’
순간, 욱하는 감정이 치솟았지만, 오늘만큼은 참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제 곧, 3천만 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3천만 원.
본래라면 성재가 얻었을 행운이지만 녀석이 없는 지금, 그 행운을 내가 가로채기로 했다.
‘그때 분명 큰 바위 자리라고 했지.’
꽤 오래전 일을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보물 상자를 주운 곳이 내가 사냥했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살폈더라면, 보물 상자의 주인은 내가 됐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두고 굉장히 후회했었다.
***
게이트 입구를 통과하자 지구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나무가 꽤 많이 들어찬 숲이었다.
게이트가 처음인 녀석들은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화면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놀라긴.’
이런 곳은 소수에 불과했다.
보통의 게이트는 무척이나 삭막하고 암울했다.
나는 재빨리 숲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보물 상자가 숨겨진 곳도 가야 하고 네임드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이곳은 국가가 지정한 아카데미 전용 게이트로, 네임드가 살아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내가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네임드가 있는 곳으로 가려는 이유는 딱 하나다.
네임드의 심장 속에는 마정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끼릭~”
“끼릭~”
“끼릭~”
50m 전방, 우거진 숲에서 고블린 소리가 들려왔다.
어깨에 장착된 액션캠부터 오프 시켰다.
괜히 실력을 들켜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인간 냄새를 맡은 고블린 무리가 수풀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체고 1m 20cm.
난쟁이 똥자루만 한 크기.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고블린은 기본적으로 마물.
맹수보다 더 사납고 난폭했다.
게다가 무리 지어 사냥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했다.
두 발로 걷는 마물치고는 치악력도 뛰어났다.
한 번 물리면 살점이 뭉탱이로 뜯겨나갔다.
손톱 또한 예리해서 웬만한 단검 못지않았다.
고블린이 작다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 작다고 절대 무시하지 마라.
헌터가 뼈에 새겨야 할 첫 번째 항목이었다.
‘30, 20, 10m….’
인간의 냄새를 맡았는지 놈들의 움직임이 기민해졌다.
놈들의 수는 다섯….
허리춤에 장착된 단검을 뽑은 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선두에 선 고블린을 향해 단검을 날렸다.
빛살처럼 날아간 단검이 고블린의 눈을 뚫었다.
순식간에 한 놈이 무력화된 것이다.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놈들을 향해 한걸음에 도약, 허공에 붕~ 뜬 채 장창을 벌침처럼 쏘았다.
- 슉! 슉! 슉! 슉!
장창이 바람을 가르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고블린 네 마리의 목이 뻥~ 하고 뚫려버렸다.
장창에 묻은 녹색 피를 가볍게 털어버린 후, 단검을 챙겼다.
그리고 우측 팔을 뻗고 손바닥을 쫙 펼쳤다.
‘일어나라.’
고블린 그림자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더니 쭈욱~ 하고 뽑혀 나왔다.
고블린 형상을 갖춘 그림자였다.
녀석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 합쳐 다섯 마리.
‘그림자 병사라.’
피식 웃은 후, 고블린 시체에서 왼쪽 귀를 잘랐다.
이번 훈련의 임무는 고블린 왼쪽 귀 20개를 모아오는 것.
가져온 철사로 귀를 꿰어 허리춤에 매달았다.
그런 후, 각성창을 열어 변화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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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능력>
▣ 상급 격투술 : 엘리트 등급의 권강을 생성한다.
▣ 상급 무기술 : 엘리트 등급의 강기를 생성한다.
<특수 능력>
◈ 상급 실드 : 엘리트 등급의 실드를 생성한다.
◈ 그림자 준남작 :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5/625)
<권능>
★ 그림자 전송 : 반경 1km 이내, 그림자를 매개물로 전송시키거나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자신을 전송한다.
★ 그림자 은신 :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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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베테랑 등급 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제 시작이니까.’
조급한 마음을 차분히 다독였다.
그런 후, 그림자 병사를 주시했다.
‘가라.’
명령을 내리자, 그림자 병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림자 병사와 고블린이 맞붙었다.
얼핏 보기에도 그림자 병사가 고블린에 비해 턱없이 약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블린과 1:1로 붙으면 그림자 병사가 무조건 이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림자 병사는 기본적으로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고블린이 아무리 공격해도 순식간에 복원되었다.
검기나 특수 능력 같은, 마력의 힘이 아니고서는 타격조차 줄 수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그런 힘을 가진 존재는 네임드인 우라토와 보스인 고블린 족장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블린 무리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길이 뚫리고 있는 것이다.
녀석들의 뒤를 따르면서 고블린 시체가 생기면 그림자 병사를 생성시켰다.
물론, 고블린 왼쪽 귀는 이미 다 모은 후였다.
그림자 병사는 나와 심상으로 연결됐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 있어도 통제가 가능했다.
마치 게임 속 유닛을 내 맘대로 조종하는듯했다.
그림자 병사가 무려 40마리가 넘었을 때, 큰 바위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물 상자를 찾아라.’
심상으로 명령을 내리자, 그림자 병사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그리고 불과 30초도 안 돼 녹슨 상자 하나를 대령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1등급 마정석 3개가 들어 있었다.
정성재가 획득했다던 그 상자였다.
1등급 마정석의 가격은 개당 일천만 원.
마정석 3개면 무려 3천만 원이었다.
‘빙고!’
상자는 버리고 마정석 3개만 백팩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