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 대신 입이 좀 무거워야 하는데 괜찮겠나?
윤동화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와우-! 입이 쩍 벌어지네요.”
윤동화가 자신의 개인 박물관이라고 데리고 온 곳.
인호가 아무리 고미술품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눈앞에 놓인 것들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불상, 사람 키보다 높은 석탑, 그리고 한쪽 벽면을 그대로 떼어다 놓은 것 같은 벽화까지.
대단하다는 말도 부족했다. 이 정도면 국립박물관보다 더 수준이 높다. 인호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윤동화가 어깨를 으쓱한다.
“이곳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어때? 근사하지 않아?”
“그렇네요. 왜 비밀을 지키라고 했는지도 이해가 되고요.”
지금 본 것을 언론에 떠들면 윤동화의 컬렉션들은 국고로 환수될 게 분명했다. 한국이 아무리 친재벌적인 정책을 펴는 나라라 해도 국민들의 시선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 물건은 어디 있습니까?”
“혹시 몰라 안전한 곳에 두었지.”
박물관 가장 안쪽 한눈에 보아도 견고해 보이는 금속 재질 문이 보인다. 문에는 보트의 방향타처럼 생긴 둥글고 여러 손잡이가 삐죽삐죽 솟아있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윤동화가 손으로 문을 터치하니 한쪽이 밀려 올라가며 디지털 패널이 나타났다. 인호가 보지 못하게 여러 개의 숫자를 누른 후 둥근 손잡이를 빙글 돌린다.
금속 재질 문에서 들릴법한 둔탁한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문 안쪽의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그 안에도 여러 고미술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다 보관이 어려워 보였다.
윤동화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간다. 구석에 놓인 진열대 위에 사진에서 보았던 용잠 등이 올려져 있다. 인호는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영적인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 기운은 장신구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리를 피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윤동화가 잠시 인호를 바라보다 주변을 잠시 살핀다. 실내에는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사각이라고는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윤동화가 물러난다. 혼자 남게 된 인호가 장신구 가까이 다가간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푸른빛이 일렁이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오래전에나 입었을 법한 전통 의상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인호를 경계하고 있다. 딱딱한 표정, 싸늘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만 볼 뿐이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
“어렸을 때부터 죽은 이들의 영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재주를 이용해 죽은 이들의 한을 풀어주거나 나쁜 영혼들을 혼내주는 일을 하고 있죠.”
“나는-.”
여자 망령이 말을 하려다 입을 닫는다.
“뭔가를 강요할 생각 없습니다.”
망령이지 악령이 아니다. 지금까지 장신구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갔다면 망령이 아닌 악령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뜻은 사람들의 죽음이 망령이 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월이에요.”
“소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작은 달이라는 뜻입니까?”
“미소 짓는 달이라는 뜻이에요.”
“아-!”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사람들이 죽은 것은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어요.”
소월의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알고 계십니까?”
“마님의 저주 때문이에요.”
“마님이요?”
소월이 작은 한숨을 토해낸다.
“나는 서방님의 첩이었어요.”
소월은 백제의 유명한 장군의 첩이었다고 한다. 장군은 소월을 너무 사랑해 본처는 거의 찾지 않고 소월하고만 지냈다고 한다. 본처가 분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본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화병으로 죽었다. 본처의 화병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이 바로 용잠을 비롯한 장신구들이었다고 한다.
용잠과 장신구들은 본래 본처의 것이었다. 하지만 장군은 그녀 몰래 그것들을 소월에게 선물했다.
“내가 용잠을 한 것을 본 마님이 불같이 화를 냈어요. 그리고 쓰러지셨죠. 시름시름 앓다 돌아가셨어요. 눈을 감기 전 마님이 말씀하셨죠.”
- 죽어서도 저주할 것이다. 그것을 가진 자들은 가장 소중한 이를 잃게 될 것이다.
“후우-. 서방님께서는 신라와의 전쟁에 나가 눈먼 화살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마님의 저주가 떠올라 이것들을 버리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지요.”
사랑하는 정인이 준 선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 주인이 바뀌었고. 그때마다 이것들을 차지한 이들에게 경고를 하려 했죠. 하지만 그들은 나라는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어떤 사연인지 이해가 되었다.
“저주는 제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편안히 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묻는다.
“혹시 꼭 이루고 싶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소월이 고개를 흔든다.
인호가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자 검은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앞으로 나선다.
“망자 소월.”
“네. 여기 있어요.”
“기나긴 세월- 그간 마음고생 많았을 텐데 이제라도 편히 쉽시다.”
저승사자의 뒤를 쫓던 소월이 고개를 돌려 인호를 바라본다.
“저것들의 이번 주인은 아주 나쁜 사람인가요?”
“네? 무슨 말씀이죠?”
“사람을 죽였어요.”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소월을 바라본다.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가장 비밀을 잘 지키는 것은 죽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누굴 죽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소월이 천천히 입을 뗀다.
“저것들의 이전 주인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소월이 저승사자를 따라 사라진다. 인호가 장신구들의 전 주인에 대해 떠올려본다.
- 윤동화 회장이 장신구를 차지하기 전 주인은 박세형이라는 사람입니다. 고미술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도굴꾼으로, 지금은 고미술품 브로커로 말이죠.
“박세형.”
인호가 작게 중얼거릴 때였다.
- 끝난 거야?
스피커를 통해 윤동화의 음성이 들린다.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이 열리며 윤동화가 안으로 들어온다.
“어떻게 됐지?”
“아주 강력한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어떤 저주지?”
“차지한 이의 소중한 이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저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계속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 또 죽게 될까?”
윤동화가 조급하게 묻는다.
“그럴 겁니다. 그만큼 강력한 저주죠.”
“저주를 풀 방법이 있나?”
“제가 아주 용한 도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 도사라면 저주를 풀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지금 어디 있지?”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잘 모릅니다. 워낙 바람 같은 분이라서요.”
거짓말이 아니다. 황동호는 스승인 이형표와 함께 떠났다. 아직 가르치지 않았던 도술을 전수하기 위해서였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인호는 황동호에게 연락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연락을 하도록 해.”
“저주를 푸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꽤 큰 돈이 들어갈 겁니다.”
“돈? 얼마나?”
재벌 앞에서 돈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최소 30억. 그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윤동화가 눈살을 찌푸린다.
“30억?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용되는 재료도 재료지만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칫 그 저주가 해주를 하는 이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거든요. 목숨을 걸고 하는 일입니다.”
인호가 윤동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묻는다.
“어떻게 할까요? 도사가 어디 있는지 수소문해 볼까요?”
* * *
“그 말이 사실입니까? 정말 박세형이 죽었습니까?”
“장신구와 함께 지내 온 망령이 떠나기 전에 한 말이니 사실일 겁니다. 윤동화 회장과 박세형 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망령에게 들은 바로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비밀이라.”
정재훈이 짐작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유명했던 도굴꾼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보급, 보물급 고미술품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을 수집하는 사람 사이라면 지켜야 할 비밀이 없는 게 더 이상하겠죠.”
정재훈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박세형에 대해 조사를 지시한 후 전화를 끊는다.
“후우-. 인호 씨가 알아낸 정보가 맞다면 윤 회장은 스스로 검찰의 문을 두드린 거네요.”
“자기 무덤 자기가 판 거죠.”
정재훈이 피식 웃는다.
“그런데 진짜 저주가 걸린 겁니까?”
“네.”
“토룡 거사께서 해주하시는 겁니까?”
정재훈이 황동호를 토룡 거사라고 부르니 인호가 피식 웃는다.
“그럴 겁니다. 윤동화 회장 같은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것들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으니 미리 조치해야죠.”
“박세형의 죽음은 곧 밝혀질 겁니다. 윤동화 회장이 죽였다는 증거를 찾기가 힘들 것 같긴 한데 제가 어떻게든 법의 심판을 받도록 만들겠습니다.”
* * *
인호가 옥상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늦지 않은 시간이기에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다. 인호가 속주머니에서 종이학을 꺼낸다.
- 급한 일이 있는데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써라.
황동호가 주고 간 것이다.
종이학에는 주술이 걸려 있어 황동호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급한 일입니다. 전화 주세요.”
인호가 종이학을 입 가까이 가져와 속삭인다. 신기하게도 종이학에서 희미한 빛이 나기 시작한다.
“어쭈.”
종이로 만들어진 날개가 움직인다. 어색하던 날개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고 곧 종이학이 날아오른다. 인호의 손바닥 위에서 떠오른 종이학이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돌더니 어디론가 날아간다.
“저렇게 날아가서 언제 가려나?”
황동호가 부산에 있기라도 한다면 며칠은 지나야 도착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었다.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떤다. 황동호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형님?”
- 어, 그래. 급한 일이 있다고?
“도대체 휴대폰은 왜 꺼놓는 겁니까?”
- 스승님 때문이지 뭐. 그런데 무슨 급한 일인데? 사람 목숨 걸린 일 아니면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될까?
이형표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 목숨 걸린 일입니다.”
- 그래? 어디로 가면 되는데? 사무실?
“네. 사무실로 오시면 돼요.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에요.”
- 그러면 다행이고. 바로 출발할게.
“얼마나 걸리실 것 같아요?”
황동호가 대답한다.
- 한 5분?
* * *
“도대체 어디 있었길래 이렇게 빨리 온 거예요?”
“근처에 있었어.”
“난 또 무슨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있는 줄 았았네.”
“도사들이 깊은 산속에서 도 닦는 것 다 옛말이야. 계룡산이니 뭔 산이니 명산에 자리 잡고 용한 도사입네 하는 것들 다 사짜라니까. 그리고 우리 스승님 네온사인 반짝이는 곳 벗어나서 못 사셔.”
이형표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 무슨 일인데?”
인호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흐음-.”
설명을 들은 황동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네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네.”
“그래요?”
“저주라는 것이 그래. 물론 쉽게 해주 할 수 있는 저주도 있지. 하지만 저주를 건 사람의 원념이 강하거나, 저주를 건 시기가 오래전이라면 해주하기 쉽지 않아. 그런데 이 일 꼭 해야 하는 거냐?”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황동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그 사람…… 사람도 죽였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