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89화 (189/190)
  • 제189화

    “영감님.”

    “응?”

    영감이 이민정을 바라본다.

    머리에 고깔을 쓰고 한 손에는 폭죽을 든 이민정이 묻는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당연하지. 전에 우리가 인호 생일 파티해줬던 거 기억하지?”

    “교복 사주고 학교 가고 그랬을 때요?”

    “그렇지. 그때 인호 엄청 좋아했잖아.”

    “그게 좋아한 거예요?”

    “인호가 원래 표현이 서툴러. 갑자기 망령이 등장해서 마지막에 조금 이상해지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어. 그리고 인호 옷장에 아직도 그 교복 그대로 있어.”

    이민정이 ‘아, 그래요’하며 탁자 위에 케이크를 바라본다.

    루마니아에 다녀온 이후 인호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돌아온 후 곧바로 계룡산 만신당에 간 것만 봐도 그의 감정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민정과 망령들이 인호를 위해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한 이유였다. 이 파티를 제안한 것은 영감이었다.

    “인호는 단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사기꾼이 케이크를 보며 말한다. 영감이 한심하다는 듯 사기꾼을 보며 혀를 찬다.

    “니가 인호를 얼마나 봤다고 그러냐? 인호 단거 엄청 좋아해. 먹을 기회가 잘 없어서 그런 거지.”

    “그게 말이에요, 방귀에요? 인호가 돈이 없어요? 단거 먹을 기회가 없기는 왜 없어요?”

    “인호는 어렸을 때부터 군것질을 거의 못 했어. 인호 아버지가 매일 몸에 좋다는 한약이나 그런 것 먹였거든. 또래 아이들이 사탕이나 과자 먹는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곤 했어. 아버지 몰래 용돈을 모아서 군것질하기도 했고.”

    이민정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곳에 온 이후 영감을 통해 인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가끔 듣곤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은 인호가 겪은 일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호 왜 안 오지?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뚱보가 케이크와 그 밖의 먹거리를 보며 군침을 삼킨다.

    “야, 이 돼지야. 인호 먹으라고 준비한 거거든. 인호 와도 절대 먼저 음식에 손대지 마. 알겠어?”

    “나도 알거든.”

    사기꾼의 타박에 뚱보가 버럭 소리친다.

    그때 문이 열리고 인호가 안으로 들어온다. 인호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이민정과 뚱보를 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날이야?”

    “서프라이즈!”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큰소리로 외친다.

    펑- 펑-

    이민정과 뚱보가 폭죽을 터트린다. 꽃가루가 인호의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인호가 잠시 멍하니 있다 묻는다.

    “서프라이즈? 갑자기?”

    “그냥요. 소장님 요즘 힘들어하시는 것 같길래 다 같이 깜짝 파티를 준비해봤어요. 이리 오세요.”

    이민정이 인호의 팔을 잡아끈다. 소파에 앉으니 뚱보가 초에 불을 붙인다.

    “케이크네.”

    “맛있겠죠?”

    “그래 보이네.”

    “어서 촛불 끄세요.”

    인호는 일단 장단에 맞춰 주기로 마음먹고 ‘후’하며 촛불을 끈다.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루마니아에서 돌아온 후 자신이 평소와 달라 보였을 것이다.

    “케이크 드셔 보세요. 빵집에서 제일 맛있는 걸로 사 온 거예요.”

    이민정이 접시에 케이크를 한 조각 담아 인호에게 준다. 인호가 포크로 케이크를 떠 입에 넣는다. 달달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인호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간다. 그 모습을 본 이민정이 환하게 웃는다.

    “맛있죠?”

    “그러네. 너도 먹어. 영감님도 좀 드시고요.”

    작은 파티가 시작되었다.

    케이크도 먹고, 음식들을 먹으며 소주도 한 잔 마신다.

    “저, 인호야.”

    사기꾼이 은근한 투로 인호를 부른다.

    “응?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 표정이야? 또 사고 쳤냐?”

    “사고는 무슨. 내가 매일 사고만 치고 다니냐. 그냥 괜찮냐고.”

    인호가 사기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연히 괜찮지.”

    “크크, 그래야지. 정인호가 이런 일로 꿍해 있을 남자가 아니지.”

    “힘든 건 내가 아니라 박 신부님이지.”

    영감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영감은 인호의 표정이 좋지 못한 것을 보며 말한다.

    “너무 마음 쓰지 마라. 네가 아니었다고 해도 어차피 벌어졌을 일이야.”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그때 그 아이를 그곳에서 구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한국에서 뱀파이어들과 싸울 때 윌리엄 고든을 지하실에서 꺼내주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윌리엄 고든이 굳이 한국까지 와서 주유선을 납치해 간 이유가 단순히 피의 축제 준비 때문이었을까? 아마 인호를 불러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리라.

    “크으.”

    인호가 소주를 마신 후 잔을 내려놓는다. 이민정이 빈 잔을 채워준다.

    “나 루마니아에 있을 때 정 검사님한테 연락 왔었다고 했지?”

    * * *

    “소장님. 어서 오세요.”

    정재훈이 웃으며 인호를 반겨준다.

    “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끝나니까.”

    정재훈이 검토하던 서류를 정리한 후 인호의 맞은편에 앉는다.

    “여전히 바쁘시네요.”

    “그러게요. 제가 좀 한가해져야 하는데요.”

    “공무원이 그러시면 안 되죠.”

    인호의 말에 정재훈이 어깨를 으쓱한다.

    “제가 한가하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나라에 범죄가 줄어들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말이 그렇게 되나요? 저 해외에 있는 동안 연락주셨다고요?”

    “네. 조금 이상한 일이 있어서요.”

    “이상한 일이요?”

    정재훈이 자신의 책상에서 파일을 들고 돌아온다. 파일을 펼쳐 인호의 앞으로 밀어준다.

    “뭔지 아시겠어요?”

    “제가 고미술품 쪽은 문외한이라.”

    파일 속 오래돼 보이는 장신구를 찍은 사진이 있었다. 금으로 주조된 용의 형상을 한 비녀, 용잠과 한눈에 보기에도 대단한 신분의 사람이 착용했을 것 같은 화려한 목걸이였다.

    “고미술 전문가분께 자문을 구하니 통일신라 이전의 백제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백제가 멸망한 것이 660년이니 백제말에 제작되었다 해도 1500년 가까이 된 것이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를 비롯한 삼국 중 가장 문화가 발전한 국가였다.

    “또 다른 전문가분의 말로는 정상적인 루트로 발굴된 것이 아니라 도굴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했고요.”

    당연한 이야기다.

    백제 시대의 유물이 정상적인 루트로 발굴되었다면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에 있어야 정상이었다.

    “이것들이 최근 경매장에 올라왔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밀스러운 경매장이었습니다. 이것을 차지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정재훈이 파일을 넘긴다. 한 노인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제법 낯이 익은 얼굴이다.

    “세계 그룹 회장님 아닙니까?”

    “네, 맞아요. 세계 그룹 윤동화 회장입니다. 윤동화 회장이 사재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비밀입니다.”

    시크릿 뮤지엄.

    재벌이라 불리는 이들 중 다수가 비밀스러운 사재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모르긴 몰라도 신성 그룹의 오형민 회장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윤동화 회장의 골동품, 예술품 사랑은 유별난 것으로 유명합니다. 영국의 경매장에서 신윤복의 그림을 엄청난 가격에 구매한 것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죠.”

    정재훈이 손가락으로 소파 팔걸이를 톡톡 두드린다.

    “윤동화 회장의 며느리가 죽었습니다.”

    “네?”

    고미술품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사람이 죽었다는 말로 화제가 전환되자 인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사인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국과수에서도 사인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정재훈이 다른 사진을 보여준다. 50대 여자의 사진이다.

    “이민경. 세계 그룹 부회장이자 후계자인 윤형목의 아내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세계 그룹이 운영하는 월드 뮤지엄의 관장이었지요. 그리고 비밀스러운 윤동화 회장의 박물관을 관리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사인을 밝혀낼 수 없다. 불가해한 존재의 개입이 의심되는 겁니까?”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초자연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국과수에서 사인을 밝히지 못한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전혀 없는 일도 아닙니다. 사람의 몸은 그만큼 신비한 거라고 국과수 소장님이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은.”

    “사실 이번 일은 윤동화 회장이 직접 검찰에 연락한 겁니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겁니까?”

    “윤동화 회장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이 장신구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것은 40여 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주인이 세 번 바뀌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주인이 바뀔 때마다 항상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사인을 밝힐 수 없는 죽음?”

    정재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윤동화 회장이 장신구를 차지하기 전 주인은 박세형이라는 사람입니다. 고미술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도굴꾼으로, 지금은 고미술품 브로커로 말이죠. 몇 년 전 박세형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사인은 역시나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 이전의 주인은 무려 20년 넘게 장신구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죽고, 딸이 죽었죠.”

    인호가 볼을 긁적인다.

    우연히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신구를 소유한 이의 가족들이 우연히 죽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사인을 규명할 수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중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저주’들이 있다.

    이집트 파라오의 저주가 있고,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피의 다아이몬드 ‘블루 호프’의 저주도 있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인호는 그것들 중 몇몇은 헛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호 본인이 아는 저주 붙은 물건들도 꽤 됐다.

    “윤동화 회장이 유명한 무당에게 의뢰를 했다고 합니다. 무당은 장신구를 보기 무섭게 벌벌 떨며 도망쳤다는군요.”

    정재훈이 미안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몰라도 제게 부탁하더군요. 인호 씨를 소개시켜 달라고요.”

    * * *

    앞에 앉은 노인은 여든이 다 되어 가는 나이답지 않게 체격이 건장하고 머리도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있었다. 이 노인이 바로 세계 그룹의 윤동화 회장이었다.

    “웬일로 오 회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네.”

    윤동화가 인호를 바라보며 입을 뗀다.

    “자네에게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하시더군.”

    그의 눈에 짙은 호기심이 깃든다.

    “고작 재계 서열 17위 세계 그룹의 주인이 감히 신성의 주인이 한 말을 어길 수는 없겠지.”

    인호가 별 반응을 하지 않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실력이 좋다지?”

    인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오형민이 윤동화에게 전화한 것은 인호가 사주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루트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인지 인호에게 전화가 왔다.

    - 윤동화 그 녀석은 독사 같은 놈이야. 이득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팔아먹을 장사치이기도 하고.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는 녀석이지.

    “이야기는 들었겠지?”

    “대충은요.”

    윤동화가 묘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자신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몇이나 되던가. 오형민 회장의 경고를 떠올리고는 담담하게 말한다.

    “방법이 있을까?”

    “일단 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흐음-.”

    윤동화가 가는 신음을 토해낸다. 두통이 오는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보여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 대신 입이 좀 무거워야 하는데 괜찮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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