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화
박갑수는 불계를 돕기 위해 잠시 만신당을 비웠다. 인호에게도 함께 가자고 했지만 애초에 쉴 목적으로 온 것이기에 따라나서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 우울해 하던 경수도 인호가 동생을 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후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지금도 또래 녀석들과 함께 공을 따라다니고 있다.
“동우는 여전히 그림을 잘 그리네.”
인호가 계단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제 열 살 남짓한 아이는 정면의 숲을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스케치북에는 숲이 아닌 요상한 그림이 한가득이었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듯 괴상한 그림이었다. 인호는 동우가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몇몇 망령들이 동우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갑수가 자리를 비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갑수가 만신당에 있을 때는 저런 망령들이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다.
“나중에 화가 되려고?”
동우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냐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그 눈빛 뭐냐?”
“삼촌. 그게 가능하겠어요?”
“지금부터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됐거든요.”
동우가 스케치북을 접고 다른 곳으로 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인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만신당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숙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진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들을 보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박갑수의 만신당이나 이혜옥의 능운정사가 있기에 저런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웃으며 지낼 수 있었다.
“삼촌. 공 좀 차 주세요.”
인호가 굴러오는 공을 뻥 차고는 아이들을 향해 달려간다.
“삼촌도 끼워주라!”
* * *
“그거 맛있어?”
조수석에 앉은 경수가 과자 하나를 인호의 입에 넣어준다.
“맛있네. 많이 먹어.”
“잘 먹겠습니다.”
경수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함께 서울로 향하는 중이었다.
경수의 아버지가 박갑수에게 이사 가는 집의 주소를 남겨 놓았다. 인연을 끊을 생각으로 말도 없이 훌쩍 이사를 가는 부모들도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경수는 동생이 왜 보고 싶은 거야?”
“동생 있는 애들이 엄청 부러웠거든요. 가끔 애들 엄마, 아빠 올 때 동생들도 오는데 그때도 부러웠고.”
“그랬구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
“네.”
만신당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대신 홈스쿨링으로 학업을 대신했다. 박갑수와 인연 있는 이들이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주고 있었다. 박갑수가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이들의 교육환경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경수는 나중에 커서 뭐 하고 싶어?”
“삼촌 하는 일 하고 싶어요.”
“응?”
인호가 의외라는 듯 경수를 힐끔 바라본다.
“형들 이야기 들어보면 나중에 사회 나가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대요. 아닌 척 연기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요.”
차라리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것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나을 수도 있다. 나이가 차 만신당을 떠나 평범한 척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호는 잘 알고 있다.
“삼촌이 어떤 일 하는지는 알고?”
“귀신 쫓아내는 일 하잖아요.”
“비슷하긴 하지만 틀려.”
인호는 아이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모두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세히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대충 어떤 일을 하는지 정도만 예시를 들어서 설명해주었다.
“많이 힘든 일이야.”
“그치만 저희는 선택지가 별로 없잖아요.”
“아니지. 네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야. 경수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 중에도 훌륭한 사람 많아. 정치인, 과학자, 심지어 종교인이 된 사람도 있어. 경수가 티비에서 보는 배우도 있고.”
“정말요?”
“그럼. 삼촌이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경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뭐가 되고 싶은지 잘 생각해봐. 지금부터 꿈을 정하고 노력해야지.”
“그러면 전 변호사가 될래요.”
“변호사? 공부 엄청나게 잘해야 하는데?”
“저 공부 잘해요.”
“하하, 그래? 왜 변호사가 되고 싶은데?”
“티비에서 봤어요. 억울한데 돈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변호사가 될래요.”
“우리 경수 착하네.”
인호가 경수의 어깨를 토닥인다. 경수가 자기의 꿈을 이룰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마음이 변하지 않길 바라본다.
* * *
아파트 단지 밖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단지 내로 들어간다.
이곳에 오기 전 인호는 경수에게 모자 하나를 사주었다. 경수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다. 모자챙이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어 새엄마가 봐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주소를 확인한 후 경수 가족들이 사는 동으로 걸어갔다. 놀이터 근처를 지날 때 경수가 인호의 손을 잡는다.
“응? 왜?”
“저기.”
경수가 손을 들어 놀이터를 가리킨다.
“엄마예요.”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놀이터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어린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한눈에 봐도 수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하아-.”
인호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그런 거였나?”
경수의 새엄마가 바라보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경수의 이복동생 경민이일 것이다.
그런데…….
“경민이도 그런 거죠?”
경수의 물음에 인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경민이의 주위에 망령들이 보인다. 동생 경민이 역시 경수처럼 태어날 때부터 귀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경수의 새엄마가 이사를 간 이유가 바로 이것이리라. 자신이 낳은 경민이를 경수처럼 멀리 떼어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촌.”
“응?”
“저 경민이한테 가 봐도 돼요?”
경수는 멀리서 경민이를 보기만 하기로 약속했다. 잠시 생각하던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경수가 경민이에게 걸어가는 사이 인호는 새엄마가 앉아 있는 벤치로 다가간다.
경수의 새엄마는 경민이에게 누군가 다가서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냥 앉아 계세요.”
“누, 누구세요?”
“저 아이 경수에요.”
새엄마가 몸을 부르르 떤다.
“당신 누구야?”
“전 계룡산 박수 어른과 친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경수도 알게 되었고요.”
“당신이 경수 데리고 온 거야?”
“네. 경수가 동생이 보고 싶다고 해서요. 그러게 경수 만나러 갈 때 동생 좀 데리고 가지 그러셨어요. 아, 어머님은 경수 만날 때 안 오셨다고 했었나요?”
새엄마가 이를 꽉 깨문다.
“경민이 때문에 그러신 거예요? 경민이도 경수처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다는 것을 남편이 알면 떼어 놓을까 봐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인호가 새엄마를 보며 피식 웃는다.
“저도 그런 사람이거든요.”
“뭐야?”
인호가 명함 한 장을 건넨다.
“극락 흥신소?”
“나름 유명한 곳이에요. 고객층도 대단해요. 현직 검사, 대기업 회장님도 저희 고객님이시거든요.”
“거짓말하지 마. 어디서 약을 팔아. 이상한 말 한다고 내가 넘어갈 것 같아? 우리 경민이 아무 데도 안 보내.”
“진짠데.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인호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기 잘 보세요.”
곧 통화가 연결된다. 그런데 그냥 통화가 아니라 영상 통화였다.
- 거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자네가 나한테 영상 통화를 걸 줄은 몰랐네.
“회장님 잘 지내셨죠?”
-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
전화를 받은 사람은 오형민 회장이다.
오형민 회장의 얼굴을 본 새엄마가 깜짝 놀란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오형민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이고 세계 기업 순위도 10권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의 총수이지 않은가.
흔히들 한국을 신성 공화국이라 부른다. 그만큼 한국 내에서 오형민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의미다.
“그냥 안부 인사드렸어요.”
- 그 거짓말을 믿으라는 겐가? 엄한 사람한테 나랑 친분 있다고 자랑하려고 그런 건 아니고?
“비슷합니다. 저하고 친한 건 맞잖습니까.”
- 하하. 친하지. 이 정도면 자네 목적은 달성한 것 같으니 다음에 식사나 같이하지.
“그렇게 하시죠.”
- 이번에는 철호도 부르자고.
인호는 오형민과 전화를 끊고는 경수의 새엄마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선입견이 무서워요. 망령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선입견. 무당은 가까이하면 안 된다는 선입견. 뭐 그런 것 있잖아요.”
인호가 경수와 경민이를 바라본다.
“저 아이들은 병에 걸린 거예요. 다만 왜 걸렸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모르는 병일 뿐인 거죠.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조금 더한 편이었죠. 집안 대대로 이런 일을 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경수의 새엄마는 인호를 무당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저 아이들도 평범한 아이들과 다를 것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잘못된 시선이 저 아이들을 더 아프게 하죠. 어머님이 경민이 아끼시는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시면 경민이가 더 힘들어할 거예요.”
“하지만 그곳에 보내면…….”
“자주 가서 보시면 되잖아요. 경민이의 병을 감추고 평범한 아이들 사이에 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에요. 어떻게든 알려지게 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경민이는 더 상처받게 될 수도 있어요. 차라리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있는 것이 좋아요. 경민이보다 나이 많은 형들이 많은 것을 알려주거든요. 그곳을 운영하는 박수 어르신도 좋은 분이시고요. 아실지 모르지만 그분 무형문화제세요. 굉장히 유명한 분이시고요.”
“나도 알아요.”
오형민과 인호가 통화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어느덧 그녀는 존대를 하고 있었다.
“어머님의 걱정, 사랑 때문에 경민이를 힘들게 하지 마세요. 아니, 그건 사랑이 아니 욕심이에요.”
인호가 경민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경수를 가리킨다.
“보세요. 경수가 나쁜 아이 같으세요?”
새엄마가 고개를 흔든다.
“오는 길에 물어봤어요. 왜 동생이 보고 싶냐고. 그랬더니 그러데요. 동생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경수가 자신의 형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경민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두 아이 모두 허공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니 주변의 망령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인호가 손가락을 튕긴다. 두 아이 주변에 있던 망령들 중 한 명이 다가온다.
“나 누군지 알지?”
“당연하지. 대한민국에 극락 흥신소 소장 모르는 망령이 몇이나 된다고.”
“다행이네. 저 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이 자리에 있던 니들이 책임지는 거다.”
“아니. 그게 말이야 방귀야? 우리가 뭘 잘못 했다고?”
“그러니까 이상한 짓 하지 말라는 말이야.”
“우린 아무 짓도 안 해. 그저 귀문이 열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지켜주려고…….”
“참도 그랬겠다. 됐고. 내 말 명심해.”
망령이 구시렁거리며 물러간다.
새엄마는 허공에 대고 말하는 인호를 보며 두려운지 몸을 움찔거린다.
“세상에는 많은 망령들이 있어요. 그중에는 지금 경민이 주변에 머무는 망령들처럼 착한 존재들도 있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존재들도 많아요. 악령이라고 부르죠. 악령들은 경민이처럼 귀문이 열린 아이들을 찾아요. 더 나쁜 짓을 하기 위해서죠. 박수 어르신께서 만신당에 아이들을 모으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에요. 나쁜 악령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거죠.”
인호의 설명을 들은 새엄마가 펑펑 울기 시작한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리라.
“잘 선택하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