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87화 (187/190)

제187화

뱀파이어 로드가 묘한 눈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깨어나셨지.”

“그랬군.”

인호가 다시 질문한다.

“납치한 아이들은 모두 죽었나?”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죽었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뱀파이어 로드는 인호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 한 명이 누군지 알 수 있나?”

뱀파이어 로드가 빙긋 웃는다. 마치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이다.

“그래. 한국에서 온 아이가 살아남았지.”

인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는다.

“유선이가 살아있다고?”

박주완이 크게 외친다.

“그 아이의 이름인가? 그렇다. 살아남았지. 그뿐 아니라 아주 고귀한 존재가 되었지.”

박주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뱀파이어 로드가 고귀한 존재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설마…….”

“네 짐작이 맞다. 영광스럽게도 여왕님께서 그 아이의 몸을 사용하셨지. 마침내 여왕님께서 오랜 잠에서 깨어나신 거다.”

구마 사제들이 일제히 성호를 긋는다. 우려하던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인호가 문득 궁금한 듯 묻는다.

“뱀파이어 로드라고 했나?”

“그랬었지.”

“그랬었다?”

인호가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여왕을 깨우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것 같군. 가지고 있던 힘마저도.”

뱀파이어 로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옆에 서 있는 로사보다 약했다. 존재감은 로사와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지닌 힘은 그렇지 못했다.

“후회는 없다. 결국 일족의 오랜 염원을 풀 수 있었으니. 그리고 나를 대신할 로드가 있기도 하고.”

인호는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윌리엄 고든.”

“맞아. 그 아이지. 내가 직접 일족으로 만든 아이. 세상에 대한 분노가 나만큼이나 대단한 아이지. 앞으로 그 아이가 여왕님을 보필하게 될 것이다.”

뱀파이어 로드가 주변을 둘러본다. 많은 수가 소멸되어 얼마 남지 않은 일족들이 보인다.

“억울해하지 마라. 여왕님을 위한 일이니.”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우리들의 희생이 있기에 일족의 미래는 찬란하리라.”

선언하듯 말을 한 뱀파이어 로드가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도 뱀파이어 로드였던 내가 순순히 죽어줄 수는 없지 않겠나? 내게 어울리는 죽음을 선물해 주겠는가?”

“이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

주유선이 뱀파이어들의 여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박주완이 고함과 함께 거대한 십자가를 들고 뛰쳐나간다. 그를 말리려던 인호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쫓는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투는 이전처럼 팽팽하지 못하고 일방적이었다. 이미 많은 수의 뱀파이어가 소멸된 것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사명을 다했다고 여겼기 때문인지 이전만큼 필사적으로 달려들지도 않았다.

“좋군.”

뱀파이어 로드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진다.

“영원한 안식이란 이런 느낌이었나?”

뱀파이어 로드가 고개를 돌리려 한다. 하지만 잘린 목은 돌아가지 않는다. 눈동자를 돌려 내성을 응시하며 애써 미소 짓는다.

“이제야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었는데…… 부디 불멸의 길을 걸으십시오. 여왕이시여.”

뱀파이어 로드가 인호를 바라본다.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덜어주지. 저 성안에는 여왕님이 계시지 않는다. 이미 차기 로드와 다른 곳으로 떠나셨다. 그러니 여왕님을 찾겠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을 끝으로 뱀파이어 로드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져 곧 검은 재가 되어 사라진다.

“안 돼!”

마지막 뱀파이어의 머리를 십자가로 부순 박주완이 머리칼을 움켜쥐고 처절한 비명을 토해낸다.

* * *

“어머! 소장님!”

이민정은 사무실에 들어 온 인호를 보며 밝게 웃는다.

“며칠 안 됐는데 굉장히 반갑네요? 커피 드릴까요?”

“그래. 고마워.”

인호가 소파에 등을 기댄다.

“어떻게 됐어? 그 꼬마 녀석 만났어? 혼쭐을 내줬지?”

사기꾼의 물음에 인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왜 말이 없어? 설마 그 꼬마 녀석에게 당한 거냐? 어? 대답 없는 것 보니 맞네, 맞아. 우리 인호 다 죽었네. 크크. 뱀파이어가 세긴 센가 보다.”

영감이 사기꾼을 툭 친다. 인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영감의 물음에 인호가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감과 사기꾼이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박 신부님은 괜찮고?”

공항에서 헤어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박주완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유선이 그렇게 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하고 있으리라. 불가항력이었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소용없었다.

애초에 윌리엄 고든이 광혜원에 온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부터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긴 그동안 별일 없었고?”

“정 검사님께 연락이 왔었어요. 급한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연락 없으셨고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시차 때문인지 피곤하네. 나 올라가서 좀 쉴게.”

* * *

차에서 내린 인호가 걸음을 옮긴다. 넓지 않은 숲길을 걷는다. 길이 끝나는 곳의 넓은 공터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공을 차고 있다.

“인호 삼촌이다!”

“삼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나보다 선물이 더 반갑지?”

인호가 양손 가득 준비한 선물을 풀어놓으니 아이들이 함성을 내지른다. 아이들이 선물을 들고 우르르 몰려가니 박갑수가 웃으며 다가온다.

“매번 올 때마다 저런 걸 사다 주면 버릇 안 좋아진다.”

“자주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보다 바쁜 인호가 무슨 일로 내려왔을까?”

“그냥 쉬러 왔어요.”

인호는 머리가 복잡할 때면 이곳 만신당을 찾는다.

“잘 왔다. 하여튼 먹을 복이 있다니까.”

“뭐 맛있는 것 있나 보네요.”

“아랫마을에서 소를 잡았다고 고기를 가져왔지. 오늘 도축한 놈이라 육회로 먹어도 되고. 들어가자.”

박갑수와 함께 걸음을 옮기던 인호가 멈춰 선다. 공터 한쪽에 앉아있는 아이를 본 것이다.

“경수네요.”

“그냥 냅둬.”

“왜요.”

박갑수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며칠 전에 경수 부모님이 다녀갔어.”

“아.”

인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 중 평범한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이 태어날 때부터 귀문이 열려있던 아이들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만신당에 온 것이다.

“경수가 엄마, 아빠 따라간다고 했나 봐요.”

“그게 조금 그렇다.”

박갑수의 반응을 본 인호가 묻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경수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 간다고 하더라. 경수는 이곳에 두고.”

“참 그렇네요?”

“나도 그래서 답답한 거야. 경수 엄마가 새엄마인 건 알지?”

“들었던 것 같아요.”

“경수 이곳에 온 이후에 새엄마가 애를 낳았나 봐.”

상황이 대충 이해가 되었다.

“저 경수한테 잠시 가볼게요.”

“나한테도 말을 안 해.”

“그냥 잠시만요.”

인호가 쪼그리고 앉아있는 경수에게 다가가 그 옆에 앉는다.

“삼촌 왔는데 인사도 안 할 거야?”

경수가 인호를 힐끔 보고는 다시 고개 숙인다.

“경수야. 삼촌 얘기 들어볼래?”

인호가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삼촌도 어렸을 때 경수처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봤어. 친구들보다 망령들이 주위에 더 많았지. 귀신을 본다고 손가락질당하고 친구 부모님들은 삼촌하고 못 놀게 했어.”

이곳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경험한 일일 것이다.

“삼촌이 경수만큼 어릴 때는 참 힘들었거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까 오히려 산 사람보다 망령들이 더 낫더라고. 적어도 주변 망령들은 내게 손가락질도, 따돌림도 하지 않으니까.”

인호가 어린 시절 의지했던 존재는 아버지도 있었지만, 망령들도 많았다. 서울역의 왕초 할배, 영감이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오히려 아버지는 인호를 엄하게 키웠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에 인호에게 더 모질게 대했으리라.

“경수가 지금은 힘들 수 있어. 아빠하고 새엄마가 미울 수도 있고. 하지만 조금 더 크면 괜찮아질 거야.”

“보고 싶었어요.”

“응?”

경수가 작게 중얼거린다.

“동생 보고 싶었어요.”

“동생?”

“네. 경민이. 아빠가 그랬어요. 동생이 생겼다고. 이름이 경민이라고 했어요.”

“그래?”

“경민이 보고 싶었는데 안된대요. 이제 멀리 이사 가니 자주 오지도 못한대요.”

대부분 그렇지 않지만 간혹 그런 부모들이 있다. 자식을 만신당에 맡겨두고 방치하는 것이다. 망령을 보는 자신의 자식을 꺼려하는 것이다. 아마도 경수의 새엄마가 그런 부류인 것 같다.

“삼촌하고 경민이 보러 갈까?”

“정말요?”

경수가 고개를 번쩍 든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경수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대신 아는 척하진 못할 거야. 괜찮지?”

경수가 힘차게 고개 끄덕인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만큼 큰 형벌도 없을 것이다.

“그래. 동생 보러 가자.”

* * *

“요즘 자주 뵙네요. 작작 좀 오세요.”

박갑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불계가 기척도 없이 들어선다.

“이놈아. 네 집도 아닌데 유세 떨지 마라.”

“내 집이었으면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삐딱하게 변했을꼬?”

불계가 인상을 찌푸린다. 인호가 피식 웃고는 차를 불계 앞으로 밀어준다.

“아쉽게도 좋아하시는 곡차는 없습니다.”

“별걸 다 걱정한다.”

불계가 뜨거운 차를 단숨에 비우고는 허리춤에서 생수병 하나를 꺼내 잔을 채운다. 진한 술 향기가 풍긴다.

“중이 매일 술 마시고, 고기 먹어도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내가 불계지.”

박갑수가 웃으며 불계에게 묻는다.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왜? 박수도 내가 오는 것이 못마땅하신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받은 도움이 얼마인데요. 다만 오늘은 그저 다니러 오신 게 아닌 것 같아 여쭙는 겁니다.”

“하여튼 용하다니까.”

불계가 잔을 비운다.

“삿된 기운이 가득한 집이 있어 가 봤어. 아니나 다를까 못된 것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고. 집주인에게 사실을 말하니 쫓아내 달라지 뭔가. 그래서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했지.”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불계가 머리털도 없는 두피를 긁적인다.

“집에서는 쫓아냈는데 그것이 사람 몸에 들어가 버렸어.”

박갑수가 놀라 묻는다.

“누구에게 들어갔습니까?”

“그 집 아들. 알고 보니 그 집 아들이 이곳에 있는 아이들하고 비슷해.”

선천적으로 귀문이 열려있는 아이라는 뜻이다.

인호가 의아한 듯 묻는다.

“그런 집에서 아이가 살았다고요?”

“나도 그게 궁금해서 온 거야. 아이에게서 삿된 것을 쫓아낼 수는 있는데 혹시라도 다른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박갑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굿을 병행하고 싶으신 거군요.”

“오랜만에 콜라보로 진행해 보자고.”

“하, 하하. 그런 말도 아세요?”

인호의 물음에 불계가 인상을 찌푸린다.

“이래 봬도 내가 SNS도 하는 중이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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