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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85화 (185/190)

제185화

퍽-!

거대한 십자가에 맞은 뱀파이어의 머리 반쪽이 으스러져 버린다. 박주완은 재빨리 벽에 몸을 붙이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몰려든 뱀파이어와 저그들의 수를 반으로 줄여놓았다.

반이라고 해도 아직 제법 많이 남아있었다.

“스테파노. 벌써 지쳤나?”

박주완은 숨을 고르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인간의 한계는 명확하지. 아무리 대단한 힘을 지녔다 해도 결국 쓰러지게 되어 있거든. 지금 너처럼 말이야.”

뱀파이어의 이죽거림을 들으며 박주완은 빠르게 주변 상황을 체크한다. 지금 박주완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왜?’

그가 알던 피의 축제와 많이 다르다. 매년 뱀파이어들과 싸움을 벌이긴 했지만 오늘 같이 본격적이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싸움이 시작되고 양측의 피해가 조금 발생하면 물러선다. 서로 합의가 된 것은 아니지만 항상 그래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박주완에게 죽은 뱀파이어만 셋에 저그는 열 마리가 넘는다. 그런데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멸의 삶을 지닌 우리랑은 다르지.”

뱀파이어가 손을 들어 흔든다. 간격을 두고 있던 뱀파이어와 저그들이 박주완과의 거리를 좁힌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으르렁거리는 저그들의 악취 나는 숨결이 박주완의 코를 자극한다.

막 박주완을 공격하라 지시를 하려던 뱀파이어의 두 눈에 의문이 떠오른다.

“어째서-.”

뱀파이어의 눈이 붉게 빛난다. 포위를 좁히던 뱀파이어와 저그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그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하나둘 뒤로 물러선다.

“운이 좋군. 다음에는 반드시 네 피로 목을 축이지.”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물러난다. 박주완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뱀파이어들은 일족의 죽음에 대해 민감하다. 복수의 개념은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를 고귀한 존재라 여기고 있어 일족을 해친 하찮은 인간을 반드시 벌할 뿐이었다.

좁은 건물 틈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알렉시오가 박주완의 곁으로 다가온다.

“저것들이 왜 떠난 겁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박주완이 좁은 골목을 벗어나 큰길로 나섰다. 멀지 않은 골목에서 누군가 뛰어나온다. 그를 발견한 박주완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골목 여기저기에서 사제복을 입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한곳에 모여들었다.

모두가 구마 사제단에 속한 구마 사제들이었다. 박주완이 동료들을 살핀다. 뱀파이어들과의 싸움 전까지 보였던 몇몇 동료들, 신입 구마 사제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악과 싸우다 주님의 곁으로 갔을 것이다.

박주완을 비롯한 구마 사제들이 성호를 긋고는 먼저 간 동료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입니까?”

박주완의 물음에 구마 사제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피의 축제도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주완은 말을 하며 도시 외곽 언덕에 지어진 고성을 바라본다. 전투에서 물러선 뱀파이어들이 간 곳은 당연히 저 고성이리라.

박주완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이를 꽉 깨문다.

‘인호.’

뱀파이어들이 물러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인호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곳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바티칸에서도 무리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고요.”

구마 사제단 중 발언권이 강한 요셉 신부가 나선다.

“흐음, 저 삿된 것들이 뭔가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프란치스코 신부의 말에 박주완이 동의한다.

“물론 바티칸의 지침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장의 변수에 대처하는 것은 우리 구마 사제들의 몫이죠. 지금까지 수많은 변수가 있었고 우리들은 적절히 대처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박주완이 요셉 신부를 바라본다. 모인 이들 중 동양인은 박주완 혼자였다. 구마 사제단 내에 파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영향력이 강한 이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존재할 뿐이다.

박주완, 요셉, 프란치스코.

이 세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동양인이기 때문에 박주완을 따르는 이들의 수가 가장 적다. 다행스럽게도 프란치스코와는 평소 관계가 나쁘지 않다. 요셉만 설득하면 되는 일이었다.

“요셉 신부님도 삿된 것들이 피의 축제를 벌이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셉이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 역시 알고 있다. 은밀히 행동해야 할 뱀파이어들이 피의 축제라는 미친 행위를 벌이는 것은 무언갈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피의 축제 기간이 되면 실종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도 순결한 처녀들, 나이 어린 소녀들이 말이다. 실종은 어떻게든 뱀파이어들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또한 깨지 않는 잠에 빠진 여왕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바타킨과 구마 사제단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여왕이 깨어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스테파노 신부님. 저곳으로 간다면 우리들은…….”

모두 주님의 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요셉의 눈이 말하고 있다. 박주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두 눈에는 더욱 강한 의지가 담긴다.

“우리들은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의 거대한 계획에 쓰임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곁에 우리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 겁니다.”

모인 구마 사제들이 모두 성호를 긋고는 하늘을 바라본다.

박주완이 구마 사제들을 바라본다.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다. 박주완과 눈을 마주친 요셉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시작은 박주완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를 그은 박주완이 성호를 그은 손을 위로 든다. 다음은 프란치스코가 성호를 긋고 손을 든다. 어떤 구마 사제는 성호를 그었지만 손을 들지 않는다.

현장에서 구마 사제들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손을 드는 구마 사제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마지막은 요셉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를 그은 요셉이 박주완과 눈을 맞추고는 천천히 손을 든다.

박주완이 희미하게 웃는다. 이로써 결정되었다.

“갑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겁니다. 아멘.”

“아멘.”

* * *

“후우-, 후우-.”

사중화를 아래로 늘어트린 인호가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인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으로 물든 로사가 보인다. 주변에는 전투 불능이 되어 쓰러져 있는 뱀파이어 귀족 둘이 있다. 그리고 둘은 이미 소멸하여 재가 되어버렸다.

뱀파이어 귀족 여덟을 상대로 인호는 넷을 소멸시키거나 전투 불능으로 만든 것이다.

로사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 중 강한 이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구마 사제들과 그와 유사한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 단체들. 그리고 헌터들까지.

하지만 그들의 한계는 명확하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의 한계라 해야 할 것이다. 뱀파이어의 적들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구마 사제단 전체가 몰려온다고 해도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널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군.”

확실히 인호는 인간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한 번의 죽음으로 불멸의 길을 걷는 뱀파이어들은 당연히 죽음과 친숙했다. 어쩌면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죽음 자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인호는 그런 뱀파이어들보다 짙은 죽음의 향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상식을 뛰어넘는 힘 역시 설명하기 힘들었다.

아시아 쪽에서 활동하는 클랜들이 간혹 ‘도술’이라는 미지의 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긴 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해 여러 가지 놀라운 능력을 보이는 이들 있다고. 하지만 보고에 의하면 신기한 힘이긴 하지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인호가 사용하는 힘은 ‘도술’이라는 그 힘과 유사해 보였다.

로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곧 그녀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걸린다.

“네 운도 여기까지인 것 같네.”

“왜? 원군이라도 요청한 거야?”

“내가 요청한 건 아니지만……. 뭐, 결과적으로 그런 셈이야.”

모여드는 일족의 수가 상당하다. 일족 전체에게 사념을 보내 수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로드께서 너라는 존재를 인지하신 것 같군. 영광으로 생각하도록.”

“영광? 불쾌가 아니라?”

인호가 자세를 바로 한다. 가슴을 쭉 펴고 사중화를 쥔 손에 힘을 준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무덤이 될지 모르는 곳을 눈에 담는다. 성벽을 넘어 뱀파이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저그들은 성벽을 넘기 무섭게 인호를 향해 강한 적의를 드러낸다.

“많기도 하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네. 그만큼 날 인정한다는 뜻일 테니.”

“죽음을 앞둔 인간치고는 제법 태연한데?”

“죽음은 나의 친구니까.”

죽음의 기운을 다루기도 하지만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 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헛된 바람이었던 것 같다.

로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진다. 그녀가 고개를 홱 돌린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성문이었다.

그때였다.

쾅- 쾅- 쾅-

누군가 성문을 두드린다. 아니, 저 정도면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문을 파괴하려는 것 같다. 성문 아래쪽에 달린 작은 문이 떨어져 나가며 일단의 무리가 들어선다. 그들의 선두에 선 이를 확인한 인호가 한숨을 내쉰다.

“아우-. 여긴 왜 오셨데.”

박주완이었다.

그의 뒤에는 구마 사제단의 사제들이 따르고 있다. 그 수가 서른이 넘는다. 박주완의 말로는 피의 축제에 참여하는 구마 사제들은 모두 사제단 내에서 실력이 뛰어난 정예들이라고 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인호를 발견한 박주완이 인상을 와락 구긴다.

“내가 몸 사리라고 했냐, 안 했냐?”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있기에 알아듣는 이는 없었다.

“그러는 신부님이야말로 여기 왜 온 겁니까? 위험하면 바로 도망치라고 말씀하신 분이 신부님 아닙니까? 빨리 도망치세요.”

“미친놈.”

“하여튼 신부라는 사람이 욕을 입에 달고 산다니까.”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박주완을 선두로 구마 사제단이 인호의 곁으로 이동한다. 뱀파이어들은 그들을 막지 않는다.

“와우-. 이쪽도 원군이 왔는데?”

“죽고 싶다니 죽여줄 수밖에. 스테파노. 오랜만이군. 요셉이랑 프란치스코도 있네?”

로사가 인사하듯 손을 흔든다.

“원래 알던 사이에요?”

“로사. 뱀파이어 귀족들 중에서도 아주 유명하지. 네가 그때 해치운 가브리엘만큼이나 말이야.”

인호가 내성을 보며 말한다.

“신부님.”

“말해.”

“저곳에 유선이가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인호가 고개를 좌우로 비튼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인호가 이를 꽉 깨문 채 말한다.

“그리고 그놈도 있을 겁니다.”

박주완이 고개를 끄덕인다.

“윌리엄 고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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