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82화 (182/190)
  • 제182화

    전투는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양측의 피해가 너무 크다. 아담의 팀원들 중 멀쩡히 두 발로 서 있는 것은 두 명뿐이다. 가브리엘의 클랜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브리엘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두 뱀파이어를 제외하고는 거의 소멸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멀쩡한 팀원들이 부상 당한 팀원들을 치료하고 있다. 아담 역시 한쪽으로 물러선 채 대치 중인 인호와 가브리엘을 지켜보는 중이다.

    “신의 한 수였군.”

    “네?”

    아담의 중얼거림에 팀원이 반응한다.

    “저 친구 말이야. 실력이 뛰어나서 손이나 좀 보태자는 생각으로 권했는데 저렇게 강할 줄은 몰랐어. 지금 우리들이 서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도 저 친구 때문이야.”

    인호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모조리 죽었을 것이다.

    가브리엘이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들리는 정보들을 취합하여 추측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자신이 회심의 한 수를 준비했던 것처럼 가브리엘 역시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이길까요?”

    “저 친구가 이기길 기도해야지. 이길 것 같기도 하고. 보라고. 여유가 넘치잖아.”

    확실히 가브리엘과 대치 중인 인호는 여유로워 보인다. 반면 가브리엘은 왜인지 초조해 보인다.

    “왜 대답을 하지 못하지?”

    인호의 물음에 가브리엘이 인상을 찌푸린다.

    “거만하군. 나는 가브리엘 바실레다. 네놈이 대단한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 강함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일 뿐. 영생을 손에 쥔 우리 일족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금부터 보여주지. 불멸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브리엘이 갑자기 사라진다. 정확히는 그가 서 있던 곳을 중심으로 안개가 피어오른다.

    “안개화인가?”

    고위 뱀파이어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기술 안개화. 실체를 지우고 안개화하여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한다.

    안개가 스물스물 인호를 향해 밀려온다. 인호는 죽음의 기운을 품은 사중화로 안개를 베어본다. 손에 전해지는 느낌이 허공을 벤 것만 같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인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자신을 감싸는 안개를 보고만 있다.

    - 천천히 즐기도록. 피의 힘이 널 안식에 들게 하리라.

    사방에서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가브리엘의 음성.

    인호는 그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을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다. 기감을 확대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비할 뿐이다.

    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며 안개로 가득한 공간에서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인호가 사중화를 떨쳐낸다. 무언가 사중화에 부딪친 후 사라진다. 찰나라 표현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호는 자신의 목을 노리던 것이 붉게 물든 손톱이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방에서 붉은 손톱이 날아든다.

    아무런 기척도, 전조도 없이 날아드는 손톱을 하나하나 쳐낸다. 하지만 모든 손톱을 쳐낼 수는 없어 인호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갔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안개에 닿기 무섭게 사라지고 있었다.

    안개에서 전해지는 기운이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다. 그 이유가 자신이 흘린 피 때문인 것을 인지한 인호가 사중화를 든 손을 한 바퀴 빙글 돌린다. 사중화가 한 바퀴 회전하는 사이 엄청난 기운을 품는다.

    고오오오-

    대기가 울며 파르르 떤다. 사중화에 모여든 기운이 주변의 기운을 뒤흔든다. 인호는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분리.”

    사중화를 통해 흘려보낸 죽음의 기운들이 인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변을 흐르던 안개가 죽음의 기운의 흐름에 맞춰 요동친다.

    “응집.”

    죽음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인호에게 모여든다. 안개들이 흩어졌다 다시 모이길 반복한다.

    인호는 황동호에게 배운 도술의 기본을 떠올리고 있다. 인호를 중심으로 모여든 기운들이 일순간 강렬한 기운을 토해낸다.

    “증폭.”

    죽음의 기운이 주변을 잠식한다. 인호의 눈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온다. 인호는 두 손으로 사중화의 검병을 쥔 채 천천히 정면을 베어간다.

    “폭발.”

    사중화에 맺혀 있는 죽음의 기운이 주변을 소용돌이치듯 돌고 있는 죽음의 기운을 자극한다. 순식간에 영역을 확장한 죽음의 기운이 일시에 폭발을 일으킨다.

    콰르르르르-

    대기가 요동친다. 당장이라도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다. 흐르던 안개는 그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은 스위치만 누르면 폭발을 일으킬 폭약과도 같다. 그 스위치는 쥔 사람은 당연히 인호였다.

    “무저갱도 부순 힘이 고작 이런 안개 따위를 어쩌지 못할 리가 없잖아.”

    인호의 입에서 한국말이 흘러나온다. 그 사이 사중화는 정면을 완벽하게 베어냈다. 당장이라도 주변을 집어삼킬 것 같던 난폭한 기세와는 달리 요란한 폭음이나 폭발은 없었다. 그저 거대한 유리가 깨지듯 주변의 풍경이 조각나며 흩어져 버린다.

    안개 역시 그 일부였다.

    어디선가 가는 신음이 들려왔다. 그 신음소리에 반응한 인호는 몸을 살짝 돌린 후 사중화를 천천히 찔러간다.

    세상 느리게 전진하는 사중화. 그 검극이 노리는 목표 지점, 어둠 속에 몸을 숨긴 가브리엘은 경악한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느릿하게 다가오는 검을 지켜만 볼 뿐이었다.

    도주라는 단어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후다. 그의 의식은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저 자신의 심장을 노리는 검을 지켜만 볼 뿐이다.

    “크흑-.”

    아직 검이 살갗을 파고들지 않았음에도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이 전해진다. 가브리엘의 눈에 의문이 깃든다. 심장을 노리던 검이 멈춘 것이다.

    “왜지?”

    가브리엘이 의아한 듯 묻자 인호가 씨익 웃는다.

    “약속했거든.”

    “약속?”

    “그래. 널 절대 죽이지 않겠다고 말이야.”

    인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아담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한다.

    * * *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냐?”

    숙소에 돌아오니 박주완이 버럭 소리친다.

    “옷 꼴은 그게 뭐고? 상처도 많잖아.”

    “죽을 정도 상처는 아닙니다. 뱀파이어 귀족 해치우고 이 정도 상처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귀족을 해치워?”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 걸터앉는다.

    숙소까지 오며 몇 번이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죽음의 기운을 도술로 풀어내면 아주 강력하지만 그 반동 역시 상당했다. 기운을 단번에 쏟아내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남지 않는 것이다.

    박주완이 인호의 옷을 벗긴 후 성수를 꺼내 상처에 붓는다.

    “성수는 단순히 사악한 힘을 퇴치하는 성능만 있는 게 아니야. 상처에도 좋지.”

    “따갑잖아요.”

    “피부가 찢길 때는 안 아프디? 이 정도 따끔거림은 참아야지.”

    “목숨을 걸고 싸울 때야 그런 걸 느낄 틈이나 있겠습니까? 가브리엘인지 뭔지 그 녀석 상당히 강했습니다.”

    주르륵-

    “아, 따거!”

    인호가 빽 소리를 지른다.

    박주완은 너무 놀라 들고 있는 성수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이라고? 설마 내가 아는 그 가브리엘 바실레?”

    “네,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네요.”

    “그 가브리엘을 해치웠다고? 어떻게?”

    “열심히, 잘 이요. 죽이지는 않았어요. 아담과 한 약속이 그거였거든요. 대신 아담은 그 녀석을 통해 얻은 수입을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이런 미친놈! 그런 사악한 존재는 바로 없애 버려야지. 지금까지 가브리엘에게 죽은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가브리엘은 단순한 뱀파이어 귀족이 아니야. 로드에 가까운 존재지. 바티칸이 있는 이탈리아에서 당당히 활동하고 있음에도 구마 사제단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해.”

    “어이쿠. 그런 대단한 존재를 제가 치웠네요. 구마 사제단에서 감사패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박주완이 인상을 찌푸린다.

    “아담이 그를 어떻게 한다고 했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충 짐작이 되긴 하지만.”

    박주완 역시 마친가지인 듯하다.

    아담은 가브리엘을 백은으로 특수 제작한 줄로 묶은 채 끌고 갔다.

    “영생을 원하는 미친 자들이 청부했겠지. 고위 뱀파이어의 피에 영생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효과를 본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러니 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두 미친 거지. 사악한 존재는 소멸시켜야 할 뿐이야. 나와도 약속 하나만 하자.”

    박주완이 인호를 보며 강한 어조로 말한다.

    “다음부터는 그것들을 무조건 소멸시켜. 알았지?”

    * * *

    고풍스런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는 남자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다. 그의 눈에는 은은한 붉은 기운이 어려 있다.

    “로드.”

    그의 앞에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서 있다.

    “가브리엘이 당했다고?”

    “그렇습니다.”

    로드라 불린 남자가 권태로운 듯 고개를 천천히 기울인다. 뱀파이어 귀족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직접 뱀파이어로 만든 이들도 있었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가진 힘에 취해 인간들을 하찮은 벌레처럼 대했으니 말이야.”

    가브리엘은 그가 신뢰하던 수하이자 형제였다. 아주 오래전 그가 직접 뱀파이어로 만든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가 있기에 바티칸이 있는, 구마 사제단이 있는 이탈리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담이라고?”

    “네.”

    “가브리엘을 끌고 간 곳은?”

    “바티칸입니다.”

    “설마 그 미친 것들이 의뢰주라도 된다는 건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가브리엘이 사로잡힌 지금 가장 안전한 곳이 이탈리아의 바티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크크. 가장 안전한 곳이라. 재미있는 표현이군.”

    뱀파이어를 적으로 둔 이들에게 안전한 곳이란 없었다. 완벽한 밀실이라 할지라도 뱀파이어 귀족들로부터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

    인간이라면 호흡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기가 통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런 아주 작은 틈이라도 있는 이상 완벽한 밀실은 없다고 봐야 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사지의 힘줄을 잘라 성수에 담그겠지?”

    성수에 담그면 재생력이 뛰어난 뱀파이어 귀족이라도 상처를 재생할 수 없었다.

    “백은으로 만든 줄로 몸을 결박하겠지. 그리고 양식하듯 피를 조금씩 빼낼 거야.”

    뱀파이어들이 분노로 몸을 떨었다. 이들은 뱀파이어가 된 그 순간부터 포식자로서의 본성을 가진, 사냥을 당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로사.”

    “여기 있습니다. 로드.”

    검은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선다.

    “가브리엘을 구하겠다거나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로사가 대답하지 못한다. 뱀파이어 귀족들 중 가브리엘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로사였다. 로드가 그것을 알기에 그녀를 지목하여 이야기한 것이다.

    “곧 축제가 시작된다. 축제 기간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져서는 안 돼. 내 말뜻 이해하겠지?”

    “알겠습니다. 로드.”

    로드가 여전히 권태로운 음성으로 묻는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로드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소파에 몸을 묻는다.

    “올해는 깨어나시려나? 그분이 없는 빈자리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