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81화 (181/190)
  • 제181화

    “내가 손님 자격으로 왔는지는 나도 몰랐는데.”

    “손님이 될지 한 끼 식사 거리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야.”

    가브리엘은 말을 하며 혀로 입술을 핥는다. 열린 입 사이로 날카롭게 돋아난 송곳니가 보인다.

    “네 피 맛은 아주 독특할 것 같아 기대가 돼.”

    “나도 그래. 네 목을 베었을 때 피가 솟구칠 걸 생각하니 벌써 흥분되는데? 아-, 심장이 뛰지 않으니 피가 튀지도 않으려나?”

    가브리엘의 눈빛이 차갑게 식는다.

    멈춰버린 심장.

    차갑게 식어버린 피.

    뱀파이어가 되면서 맥동하는 심장과 뜨거운 피를 잃어버린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의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해줄 뜨거운 피를 갈구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내뱉는군.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너처럼 입을 놀리다가 죽어갔지. 아-, 그 중 몇몇은 불멸의 축복을 얻기도 했어. 어때? 관심 있나?”

    “불멸? 별로 안 땡기는데. 하나만 묻지. 네게 불멸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

    대답하지 못하는 가브리엘을 보며 인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대답 못 하겠지. 축복이라고 떠들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 어쩌면 네게도 소중했던 존재가 있었겠지. 그 존재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곁을 떠났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도 불멸이 축복이라고 느꼈나?”

    “쓸데없는 소리.”

    가브리엘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자 그의 클랜원들이 일제히 살기를 토해낸다. 진득한 피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다. 아담의 팀원들이 투기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선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려 했다.

    스릉-

    인호가 사중화를 뽑는다. 은은한 붉은 빛을 흘리는 사중화의 검신이 주변의 불빛에 반짝인다. 인호가 움찔한다. 쥐고 있는 사중화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보챔’ 정도가 아닐까.

    지금 당장 앞에서 진득한 피 냄새를 풍기는 사특한 존재들의 심장에 자신을 꽂아달라는 보챔.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것은 아담이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진 채찍이 허공을 가른다.

    “캬아아아악-!”

    저그 하나가 달려들다 아담의 채찍에 목이 휘감긴 채 벽으로 내던져진다. 벽에 부딪힐 때는 이미 머리와 몸이 분리된 상태였다.

    간단하게 저그 한 마리를 처치한 아담이 다시 한번 채찍을 휘두르자 팀원들이 일제히 뱀파이어들을 향해 달려든다.

    인호 역시 사중화를 든 손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만 아담과 그의 팀원들과는 달리 걸음이 매우 느렸다. 아니, 다른 이들이 워낙 빨리 정상적인 속도가 느려 보이는 것뿐이다.

    인호의 손목을 타고 검은 기운이 사중화로 흘러든다. 죽음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사중화는 기분이 좋다는 듯 웅, 웅 거리며 몸을 떤다.

    츠릿-

    측면에서 두 마리의 저그가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앞세우고 달려든다.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속도였지만 인호의 눈에는 한없이 느리게만 보였다.

    사중화가 허공에 하나의 선을 긋는다.

    두 마리의 저그의 몸이 정확히 이등분이 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아담이 채찍으로 휘감아 집어던진 뱀파이어가 인호에게로 날아온다.

    뱀파이어는 저그와 같은 저급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목이 잘리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흉폭한 기운을 줄기줄기 토해내고 있었다.

    붉게 번들거리는 눈에 인호를 담고는 입술을 우물거린다.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뱀파이어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셀 수 없이 많은 핏방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핏방울이 인호를 덮친다.

    인호가 사중화를 들어 정면의 한점을 찌른다.

    사중화의 검극에서 피어오른 검은 죽음의 기운이 정면에 반투명한 막을 만든다. 일전에 도술을 배웠기 때문에 죽음의 기운을 형상화할 수 있는 인호였다.

    죽음의 기운으로 만든 막에 부딪힌 핏방울이 치익거리며 타오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몸 곳곳에 연기를 피어 올리고 있는 뱀파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과 옷밖으로 드러난 피부들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인간 따위가-.”

    “재미있네. 너희들도 죽음의 기운을 다루겠지? 그런데 어쩌나. 내가 다루는 것은 순수한 죽음 그 자체인데.”

    인호가 크게 한 걸음 내디딘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홍길동처럼 한걸음에 천리를 이동하는 축지법을 사용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뱀파이어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힐 정도는 됐다.

    날카로운 것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뱀파이어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진다. 인호는 떨어지는 머리를 다시 베고 그것도 모자라 뱀파이어의 심장에 사중화를 꽂아 넣는다.

    성수에 담근 백금으로 만들어진 사중화는 뱀파이어에게 상극이었다.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 뱀파이어가 결국 까만 재가 되어 무너져내렸다.

    “으아악-!”

    아담의 팀원 중 한 명인 건장한 체격의 흑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그의 몸에는 붉은 머리칼 수백 가닥이 박혀 있었다. 흑인 팀원은 순식간에 온몸의 피를 빨려 미이라처럼 변해버렸다.

    팀원의 피를 탐한 여성 뱀파이어의 목을 아담의 채찍이 휘감는다. 채찍을 당겨 자신에게 뱀파이어를 끌고 온 아담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에는 은빛의 너클이 끼워져 있었다.

    빠각-

    너클에 맞은 여성 뱀파이어의 얼굴이 그대로 함몰된다. 가격당한 부위에는 연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평범한 재질의 너클이 아닌 것이다.

    치익-

    Z를 입에 문 아담이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후우-. 에시드. 부디 편히 쉬길 바란다.”

    죽은 팀원의 명복을 빈 아담이 목덜미를 틀어쥐고 있는 여성 뱀파이어의 얼굴에 연이어 강력한 펀치를 꽂아 넣기 시작했다.

    여성 뱀파이어의 몸이 검은 재가 된 후에야 그의 주먹질이 멈췄다.

    “후우-. 몸들 사리라고. 돈도 좋지만 살아야 쓸 수 있잖아.”

    “당연하지.”

    팀원들이 크게 외친다.

    아담의 팀원들은 검이나 메이스 등의 냉병기 외에도 특수한 탄약을 쓰는 총도 사용하고 있었다. 소음기를 부착한 총이 푸슉 하는 소리를 낼 때마다 저그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뱀파이어와 저그의 수가 줄어가는 만큼 아담의 팀원들 수도 줄어들고 있다.

    팀원이 절반쯤 남았을 때 아담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채찍이 멀리 있는 벽에 달린 사다리를 휘감는다. 아담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손에 힘을 줘 당기니 그의 몸이 앞으로 쭉 뻗어간다.

    목적지는 가장 뒤쪽에서 흥미롭다는 듯 전투를 지켜보는 가브리엘이었다. 가브리엘은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담을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빠각-

    아담의 몸이 튕겨 나간다.

    가브리엘의 곁을 지키고 있던 뱀파이어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 아담을 발로 차 버린 것이다. 그대로 벽에 부딪힌 후 떨어져 내린 아담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부하들 앞세우고 뒤에 빠져 있는 버릇은 여전하군.”

    “너 따위를 상대하기 위해 고귀한 피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으니까.”

    “무서운 것은 아니고? 수백 년 동안 부하들 뒤에 숨어 있다 보니 싸우는 법을 잊어버린 거 아냐?”

    가브리엘이 웃으며 손을 뻗는다. 그의 손 주변 대기가 일그러진다.

    “컥-!”

    아담이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한다.

    “이대로 네 심장을 터트려 버릴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왜인지 알아?”

    “끄으으으윽-.”

    “어린아이가 잠자리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과 같은 이유야. 네 고통스러운 비명이 내게는 교향곡으로 들리고 네 일그러진 얼굴이 위대한 화가의 명화보다 아름답지.”

    가브리엘이 손을 슬며시 비튼다.

    아담이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다 손을 떨치자 채찍이 가브리엘을 향해 날아간다. 가브리엘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채찍을 손으로 잡았다.

    채찍을 쥔 손을 당기니 아담이 붕 날아 가브리엘에게 딸려간다.

    아담의 목을 움켜쥔 가브리엘이 그의 귀에 속삭인다.

    “네가 강해서 지금까지 도발을 지켜만 보고 있던 게 아니야.”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아담의 입매가 뒤틀린다.

    “내가 약해서 지금 네게 잡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지.”

    가브리엘이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숙이자 자신의 가슴을 파고든 단검이 보였다.

    “이 방법이 네게 다가가기 쉽기 때문일 뿐이야.”

    가브리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성수 처리된 백금 단검이야. 프랑스 소속 신부들의 축언까지 깃든 물건이지. 오로지 너 하나를 잡기 위해 준비한 거라고. 멋지지 않아?”

    일그러졌던 가브리엘의 표정이 조금씩 변한다. 화사한 미소가 가브리엘의 얼굴 가득 담긴다. 가브리엘이 혀로 입술을 훑는다.

    “여전히 미련하구나. 고작 이런 검으로 심장을 찌른다고 해서 날 없앨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건가?”

    아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 가슴에 찔러넣은 단검이 서서히 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다. 힘을 주어 밀어보지만 단검을 멈추지 못한다.

    가브리엘이 아담의 손목을 쥐고 비틀었다.

    챙강-

    백금 단검이 아래로 떨어진다.

    가브리엘이 손바닥이 위로 가게 하고는 무언갈 잡는 듯 손을 움츠린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백금 단검이 둥실 떠올라 그의 손에 잡힌다.

    “아무래도 이 단검은 내 심장보다는 네 심장을 원하는 것 같은데. 차갑게 식은 피보다는 뜨거운 피가 더 좋지 않겠어?”

    단검을 심장 앞에 두고 천천히 손에 힘을 준다.

    “크흑-.”

    아담이 신음을 토해내며 어떻게든 뒤로 물러서려 몸을 비틀어 본다. 하지만 가브리엘에게 잡힌 몸을 빼낼 수 없었다. 단검이 조금씩 가슴을 파고든다.

    그때였다.

    누군가 사나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기세가 워낙 대단해 가브리엘은 아담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뒤로 물러선다. 가브리엘이 서 있던 곳에 한 줄기 선이 그어진다.

    인호가 두 손으로 사중화를 잡은 채 아쉽다는 듯 가브리엘을 바라본다.

    “조금 늦었나?”

    가브리엘이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인간치고는-.”

    가브리엘의 몸이 흐릿해지며 이어지는 말이 다른 곳에서 들린다.

    “제법 빠르네.”

    인호가 재빨리 몸을 돌리며 사선으로 검을 베어낸다. 사중화는 가브리엘의 잔상만을 베었다.

    곧 측면에서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다. 사중화를 회수해 수직으로 세운다. 강력한 힘이 전해지며 인호의 몸이 주르륵 밀려난다.

    “인간이 맞긴 한 거야? 그 검도 대단하군. 설마 루피치노 늙은이 작품인가?”

    “잘 아네.”

    “검을 한 자루 만들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

    바티칸 내부에도 뱀파이어들의 첩자가 숨어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 이 검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잘 알고 있겠네.”

    “검이라는 것이 그래.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참 많은 것이 달라지지. 누가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좋은 명검도 부엌칼보다 못하거든.”

    가브리엘이 가슴을 움켜쥐고 지혈하고 있는 아담을 슬쩍 바라봤다.

    “그러면 나는 어때? 나는 과연 네게 영원한 안식을 줄 수 있을까?”

    인호가 가브리엘을 보며 씨익 웃는다.

    “어디 한번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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