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80화 (180/190)
  • 제180화

    문이 열리며 박주완이 들어온다.

    “어디 나갔다 온 거야?”

    “네. 잠도 안 오고 해서 술 한잔하고 왔습니다.”

    “낯선 땅에서 겁도 없이 말이야. 이곳이 어딘지 알면서.”

    “신부님이 그러셨잖아요. 큰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고요.”

    박주완이 인호를 바라보다 침대에 기대어 놓은 물건을 보고 의아한 듯 묻는다.

    “사중화는 왜?”

    옷장에 넣어 두었던 사중화를 꺼내 침대에 기대어 놓은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보니 Z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

    “Z요?”

    “뱀파이어 헌터들이 피우는 마약 담배를 Z라고 불러. 좀비의 Z를 딴 이름이라지. 통증도 약화시켜주고 지구력을 높여 준다고 들었다. 블러드에 다녀온 거야?”

    “네. 아리나가 소개해 줬어요.”

    “벌써 애칭을 부르는 사이가 된 건가? 블러드에 다녀와서 검을 꺼냈다? 설마 사고 치려는 건 아니겠지?”

    “제 나이가 몇인데 사고를 칩니까? 그냥 한국에서 인연이 있던 사람을 만나서 함께 어딜 가기로 한 겁니다.”

    “한국에서 인연? 누구지?”

    “아담이요.”

    “흐음-. 피의 축제 기간이니 온 세계의 헌터들이 모두 모여드니 최고를 다투는 아담이 빠졌을 리 없지. 아담이 뭐라고 했냐?”

    “정신 나간 귀족이 한 마리 있다던데요.”

    박주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인호야. 귀족은 아주 위험한 존재야.”

    “알고 있습니다.”

    “아니. 넌 몰라. 뱀파이어를 제대로 상대해 본 적 없잖아. 기껏 저그나 하급 뱀파이어만을 상대한 것이 전부잖아. 뱀파이어 귀족은 네가 아는 뱀파이어와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야. 그리고 귀족들은 절대 혼자 움직이지 않아. 자신의 클랜과 함께 움직이지.”

    뱀파이어 클랜.

    클랜의 우두머리는 대개 귀족이다. 간혹 강한 힘을 지닌 뱀파이어들이 클랜 마스터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귀족이 마스터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뱀파이어 클랜은 적게는 십수 명에서, 많게는 백 명이 넘는 인원으로 조직되어 있다. 귀족 하나, 그가 직접 피의 일족으로 만든 뱀파이어들, 그리고 저그들까지.

    아드리아나에게 들어 알게 된 정보였다.

    “헌터들이 뱀파이어를 노리는 것처럼 그것들 역시 헌터들을 노린다. 피의 축제 기간에 도시의 어둠이 깃든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지. 아담의 팀이라면 매우 강력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족이 이끄는 클랜을 압도할 수 없어. 더욱이 이곳은 뱀파이어들의 성지이기도 하고.”

    “다른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옳은 일이다. 이겁니다.”

    “어차피 네가 수를 줄여도 빈자리는 금방 채워져.”

    “오랫동안 살아 온 귀족이 죽고 초짜 귀족이 생긴다면 그만큼 전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은데요.”

    박주완이 답답하다는 듯 말한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니까. 잘못하다 네가 죽는다고. 아니, 네가 그것이 될 수도 있어.”

    “만약…… 천분의 하나, 만분의 하나 그렇게 된다면 제 머리는 신부님이 직접 부숴 주세요.”

    “미친놈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오늘은 내가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해. 우리 구마 사제단은 피의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활동할 수 있다고. 그러니 아담에게 말해서 하루 늦추라고 해.”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그건 힘들 것 같네요. 꼭 오늘 밤이어야 한다고 했거든요.”

    박주완이 신음을 토해낸다.

    “흐음. 말을 들어 처먹을 놈도 아니고.”

    인호가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잠시만 기다려.”

    박주완이 자신의 방으로 갔다 금방 돌아와 맑은 액체가 담긴 병 세 개를 건넨다.

    “뭔지 알지?”

    “성수잖아요.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인호가 사중화를 집어 든다.

    “위험하면 몸을 빼겠다고 약속해.”

    “네, 약속할게요.”

    * * *

    “여, 왔어?”

    아담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의 주변에 아무렇게나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담의 팀원들일 것이다. 그중 두 명은 한국에서도 본 적 있는 헌터들이다.

    “작전을 설명할 테니 잘 들어.”

    아담이 마약 담배, Z를 발로 비벼 끈다. 인호는 아담이 할 말에 집중한다. 인호를 바라보는 아담이 이를 드러내매 환하게 웃고는 말한다.

    “뱀파이어를 보면 박살 낸다. 작전 끝.”

    “하, 하하. 그것 참 대단한 작전이네요.”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나 본데?”

    인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아담이 인호가 들고 있는 사중화를 보며 묻는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물건인데? 어디서 산 거야? 동방의 신비로움이 깃든 검인가?”

    “바티칸 소속 병기창에서 만든 겁니다. 루피치노 신부님이 만들어 주신 거죠.”

    “헐-. 루피치노 신부님이 만드셨다고?”

    아담 뿐 아니라 그의 팀원들 모두가 놀란 듯 인호를, 아니 그의 손에 들린 사중화를 바라본다. 몇몇의 눈에는 짙은 탐욕이 깃들기도 한다.

    “부럽군. 루피치노 신부님이 만든 무기들은 하나같이 명품이지. 아, 스테파노 신부님의 십자가도 그분이 만드신 거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기대되는데. 루피치노 신부님이 만든 검을 든 한국의 헌터가 어떤 활약을 할지. 아참, 출발하기 전에 이거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가자고.”

    아담이 손가락 하나를 편다.

    “절대 지켜야 할 한 가지 원칙. 뱀파이어 귀족은 죽이지 않는다.”

    * * *

    인호는 말없이 아담의 뒤를 쫓았다. 아담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야투경과 비슷한 고글을 쓴 채로 건물들 사이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꼭 이렇게 빙빙 돌아야 하는 겁니까?”

    인호는 바로 옆에 선 헌터, 한국에서도 본 적 있는 백인 여자에게 묻는다.

    “뱀파이어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거야. 대장이 쓴 고글은 뱀파이어들이 남긴 흔적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거든.”

    “그런 것도 있습니까?”

    “더 신기한 것들도 많으니 기대하라고. 참고로 하나만 말해주면 헌터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에는 특수한 약품 처리가 되어 있어.”

    그녀는 자신의 허리에 꽂힌 단검을 꺼내 뒤로 던진다. 날카로운 단검이 어둠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단검을 받은 후 말한다.

    “뱀파이어들에게 고통을 주는 약품을 바르지.”

    “신기하네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야? 과학의 힘이라고. 뱀파이어들을 사로잡아 연구한 결과지. 녀석들의 피를 연구해 만들어낸 거야. 가격이 제법 나간다고. 필요하면 말해. 쓰다 남은 것이 조금 있으니.”

    “괜찮습니다.”

    인호가 사용하는 사중화는 뱀파이어를 비롯한 삿된 존재들에 상극인 백금을 성수에 오랜 기간 담가둔 후 제작한 검이다. 과학 기술로 만든 약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신의 힘이 깃들 것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아니면 말…….”

    여자 헌터가 말을 끊고 걸음을 멈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담이 멈춰 선 채 주먹을 말아쥐고 있다. 그를 따르던 헌터들이 숨죽여 주위를 살핀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당장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아담과 일행이 도착한 곳은 제법 넓은 공터였다. 주변은 건물들로 막혀 있어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일행이 들어 온 골목뿐이었다.

    인호는 아담의 어깨 너머로 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붉은 머리칼과 창백한 피부가 인상적인 백인이다. 싸늘하게 웃고 있는데 그의 눈에 붉은 기운이 번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귀족.”

    인호가 중얼거린다.

    뱀파이어 귀족으로 짐작되는 백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굉장하다.

    “이게 누구신가? 타락한 천사 아니신가?”

    아담이 말하며 공터로 들어선다.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인호의 옆에서 여자 헌터가 설명해 준다.

    “가브리엘 바실레. 전대 로드가 직접 귀족으로 만든 존재. 가브리엘이라는 이름 때문에 헌터들 사이에서 타락한 천사라 불려. 이백 년도 더 산 괴물이지.”

    가브리엘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권태로운 음성으로 말한다.

    “아담.”

    가브리엘은 아담의 뒤에 선 인호와 팀원들을 힐끔 바라본다.

    “그 정도 수로 나를 만나러 온 건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주제 파악 못 하는 건 여전하군. 동료들을 버린 채 꼬랑지 말고 도망치던 모습이 참 재미있었는데.”

    아담이 이를 가는 소리가 인호에게까지 들린다. 아무래도 아담은 가브리엘과 악연이 있는 듯했다.

    “나의 표식임을 알면서도 따라왔다? 길지 않은 생에 마침표를 찍고 싶은 건가? 참고로 나는 늙은 것들은 일족으로 만들지 않아.”

    “후후, 나도 네 더러운 피에 오염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가브리엘이 의자에서 일어선다.

    “너희 같은 사냥꾼들이 죽음 직전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나? 자신을 피의 일족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지. 항상 우리와 대치를 해 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불멸의 축복을 탐하는 것이지. 너희도 솔직해지는 게 어떠니?”

    “그런 버러지들은 죽어 마땅해.”

    실제로 아담은 동료라 부르던 이가 뱀파이어가 되어 앞에 나타났던 경험이 있었다.

    가브리엘이 아담의 뒤에 서 있는 인호를 보고는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짓는다.

    “특이한 인간이군. 너무나도 익숙한 향기야. 산 자에게서 어찌 죽음의 향기가 느껴질까? 불멸의 삶을 살지만 죽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내 코를 속일 순 없지. 너-!”

    가브리엘이 인호를 똑바로 바라본다.

    “넌 뭐지?”

    “나? 뭐라고 해야 할까?”

    말끝을 흐린 인호가 가브리엘을 보며 씨익 웃는다.

    “잠시 후 네 목을 벨 사람이라고 해 두지.”

    “크크크. 재미있군.”

    가브리엘이 정말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는다.

    “지금까지 너와 같은 말을 한 인간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나, 둘, 셋…… 셀 수 없이 많아. 그 인간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안 궁금해.”

    “크크. 역시 재미있어. 저 늙은이와는 달리 너라면 나의 일족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충분히 있는데. 어때? 생각 있나?”

    인호는 가브리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아담에게 묻는다.

    “저거 잡으면 돈 많이 번다고 했습니까?”

    “당연하지. 적어도 1억 달러는 받을 수 있어. 아니, 가브리엘이라면 3억 달러도 받을 수 있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생기지?”

    “그렇게요.”

    가브리엘이 고개를 흔든다. 그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안개처럼 흘러나온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주변 건물들의 옥상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을 토해내는 것을 보니 인간은 아니었다.

    가브리엘의 클랜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동시에 수십 개체가 뛰어내렸지만, 조금의 소음도 나지 않았다. 네 명의 남자가 가브리엘 뒤에 호위를 하듯 선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담의 팀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어 든다. 인호 역시 사중화를 검집에서 꺼낸다. 은은한 붉은 빛을 띠는 사중화의 검날이 흐릿한 빛에 반짝인다.

    “그리고 보니-.”

    가브리엘이 인호를 바라본다.

    “몇 년 전에 내가 거둔 아이 역시 동양인이지. 얼마 전 자기가 태어난 땅에 다녀오더니 그러더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손님이 올 거라고.”

    가브리엘이 환하게 웃는다.

    “그 손님이 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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