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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79화 (179/190)

제179화

박주완은 오랜 자동차 여행으로 피곤함을 느꼈는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인호는 간편한 옷차림으로 바꿔 입고 호텔을 나섰다.

호텔 근처의 노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해 어둑어둑해지는 유럽의 밤경치를 구경한다. 경제 규모는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인호의 눈에는 한국 사람들보다 이곳 사람들이 더 여유로워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루마니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이 시간이라면 커피보다는 맥주나 위스키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아드리아나.”

비어 있는 앞자리에 앉는 여자는 아드리아나였다.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카페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아리나라고 부르세요. 절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니까.”

“그런가요? 아리나를 만날 줄은 몰랐네요.”

“친구와 약속이 있었는데 펑크가 났어요.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미스터 정이 보여서요.”

“인호라고 부르세요.”

아드리아나가 인호가 바라보는 광장을 보며 말한다.

“도시의 구조가 조금 특이하죠?”

“네. 그렇네요.”

도시에 차를 타고 들어설 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건물들이 지어져 있는데 그 구조가 매우 특이했다.

“이 도시가 생긴 본래 목적은 군사 요새였어요.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도시 외곽을 두르는 성벽이 있었어요. 적들이 성벽을 뚫고 도시에 진입해도 저 건물들이 또다시 성벽이 되어 그들을 가로막는 거죠.”

“대단하네요.”

아드리아나는 과거 이곳에서 있었던 전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어찌나 설명을 잘하는지 마치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들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죠.”

아드리아나가 ‘그것들’이라고 칭하는 것은 뱀파이어이리라.

“지금은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지만 수백 년 전만 해도 그것들을 없애기 위한 전쟁이 일 년에 몇 번씩이나 벌어졌다고 해요. 특히 그것들의 성지인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죠. 그것들은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를 점거하고 저항했죠. 저기 보여요?”

아드리아나는 도시의 북쪽 지대가 높은 곳에 고풍스러운 고성을 가리킨다.

“멋진 성이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에 대한 로망이 있죠. 그 로망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저런 고풍스러운 고성이랍니다.”

“고풍스럽다? 로망이라고요? 후후, 저곳이 바로 그것들의 여왕이 잠들어 있는 곳이에요.”

인호가 놀란 눈으로 고성을 바라본다.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요? 여왕이 잠들어 있는 곳을 아는데 어째서 그대로 두는지?”

“왜 그런 겁니까?”

바티칸의 구마 사제단. 그리고 유럽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종교 비밀 결사대의 힘이라면 뱀파이어들이 아무리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들의 추종자들 때문이에요.”

“추종자요?”

“영생을 꿈꾸는 버러지들이요.”

“아-!”

아드리아나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 같다. 뱀파이어들은 불사의 존재들이다. 물론 그것들을 처치할 방법이 있지만 그런 위협이 없다면 영생을 누릴 수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돈을 가진 이들이 헌터들에게 뱀파이어 귀족들을 청부하는 이유 역시 영생의 비법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그 버러지들은 영생이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을 모르죠.”

인호가 묘한 눈빛으로 아드리아나를 바라본다.

“마치 경험해 본 사람처럼 이야기하시네요.”

“쿼터거든요.”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아드리아나를 바라본다.

“원칙적으로 그것들은 임신을 하지 못해요. 하지만 특수한 경우가 있어요. 임신을 한 상태에서 그것이 되는 거죠. 그것이 된 후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그것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되요. 물론 대부분 태어나기 전에 죽고, 태어난다 해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죽어요. 우연에 우연을 더해 살아남은 아이가 하프가 되는 거예요. 제 할머니가 그런 분이셨거든요.”

“아리나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뭐 대단한 능력은 없어요. 남들보다 조금 늦게 늙고 오래 살죠.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것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그 정도뿐이에요.”

“아리나의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숙녀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에요.”

아드리아나가 생긋 웃는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될 당시 서른 살이었어요.”

소비에트 연방, 한국에서 소련이라 부르던 초거대 연방이 붕괴된 것이 1990년대 초이다. 그때 서른이었다고 한다면 현재 나이는 최소한 한국 나이로 환갑이 훌쩍 넘었다는 뜻이다.

아무리 많게 본다 해도 이십 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드리아나를 보며 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것들은 아리나의 존재를 모릅니까?”

“할머니께서 아버지를 낳은 후 주위에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어요. 잘 아는 분들에게 아버지를 맡기신 거죠. 아버지까지만 해도 그것들의 기운을 조금 갖고 계셨는데 전 아니거든요. 그것들을 마주한다 해도 알아차리지 못해요. 전 확실히 알지만.”

아드리아나가 광장 분수대에 앉아 있는 사람 중 한 명을 가리킨다.

“저기 빨간 머플러를 한 남자 보여요?”

“네. 매력적으로 생겼네요. 여자에게 인기가 많겠어요.”

“그것이에요.”

인호의 눈이 가늘어진다.

“스테파노 신부님과 함께 오신 분이니 실력은 확실한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뭔가를 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귀족이 아니지만 지금 저걸 공격하면 이 도시는 지옥으로 변할 거예요.”

“흐음, 조언 감사합니다.”

“커피는 그만 마시고 저랑 술 한잔하러 갈래요? 근처에 괜찮은 술집이 있거든요.”

* * *

클럽 블러드.

“이름이 뭔가 으스스한데요.”

“안은 더 으스스할 걸요.”

아드리아나가 씨익 웃으며 블러드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뒤를 따라간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클럽 안을 가득 채운 담배 연기 때문이다.

단순한 담배 연기였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러는지 아는데 표정 풀어요. 마약 성분의 담배 때문이겠죠.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담배에 중독되어 있으니까요. 연기를 마신다고 마약에 중독되지는 않아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드리아나가 안쪽으로 안내한다.

“아리나. 오랜만이군.”

“헨리. 잘 지냈죠?”

거대한 덩치를 가진 흑인 바텐더가 아드리아나를 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니 주문을 하기도 전에 두 잔을 술을 내어준다.

“클럽 블러드에서 파는 술은 이것 한 가지밖에 없어요. 클럽의 이름과 같은 블러드예요.”

“설마 피로 만든 술은 아니겠죠?”

피처럼 붉은 술이다. 인호의 물음에 아드리아나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이래 봬도 향이 일품이에요. 자-, 건배.”

술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 코로 향을 맡는다. 아드리아나의 말대로 향이 매우 좋다. 조금 입에 넣고 혀에 올린 채 입천장에 대어 본다.

이철호가 꼬냑을 마실 때 이렇게 마셔보라며 알려 준 방법이다. 꼬냑의 풍미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말에 따라 해 봤는데 사실이었다.

블러드의 향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좋네요.”

“그렇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블러드에 데리고 왔지만 블러드를 맛보고 실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분위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요.”

아드리아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까딱인다. 블러드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인호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한국의 헌터 아니신가.”

한국에서 만났던 헌터들 중 채찍을 사용하던 남자.

“오랜만이네요.”

아담이었다.

아담은 한국에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카우보이모자에 민소매 티를 입고 있었다. 민소매 티 밖으로 드러난 팔뚝은 날씬한 여자의 허리만큼이나 두꺼웠다.

“어머. 두 분이 아는 사이에요?”

“아는 사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전장에서 함께 구른 사이이니 말이야.”

아담이 입에 담배를 문 채 씨익 웃는다.

“본격적으로 헌터의 길로 나선 건가?”

“개인적인 일로 온 겁니다.”

인호가 고개를 흔들며 말하자 아담이 자신의 잔을 들고 인호의 옆자리에 앉는다. 주변 손님들이 놀랍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헌터들 중 수위를 다투는 아담이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가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스테파노 신부님도 오신 건가?”

“네.”

“하긴 구마 사제단은 매년 피의 축제에 참석하지. 환상적인 곳에서 재회를 기념하며 내가 한 잔 사지. 헨리. 이 친구 블러드 한 잔 더 줘.”

헨리가 바로 블러드를 인호의 앞으로 밀어준다. 바 테이블 위에 올린 잔을 툭 밀었는데 정확히 인호의 앞에 멈춘다.

“한 대 피울 텐가?”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꽤 비싼 거라고. 저 녀석이 빨아 재끼는 싸구려와는 차원이 다르지. 물론 중독 성분도 없고.”

“괜찮습니다.”

“나야 돈 아끼고 좋지. 그런데 헌터가 될 것도 아닌데 헌터들의 전용 클럽에는 왜 온 거지?”

아담의 말에 헨리가 무심한 투로 말한다.

“이곳은 너희들의 전용 클럽이 아니다. 너희 같은 것들이 물을 흐려 놔서 일반 손님들이 오지 않는 것뿐이지.”

“헨리. 그렇게 말하면 서운해. 그리고 일반 손님들은 우리들이 아니라 헨리를 보고 겁에 질려 안 오는 거라고. 다른 사람도 아닌 최강의 헌터였던 헨리가 운영하는 클럽인데 당연히 우리들이 매출을 올려줘야지.”

헨리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쉰다. 인호가 의외라는 듯 헨리를 바라본다.

건장한 체격에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굳은살이 잔뜩 박힌 주먹을 보고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 예상했지만 은퇴한 헌터였을 줄은 몰랐다.

아드리아나가 자신을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본격적인 피의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헌터들과 안면을 익히라는 배려일 것이다.

“조심해야 할 거야. 한국에서처럼 그것들과 마구잡이로 싸울 수 없거든.”

“그렇습니까?”

“그러는 순간 바로 전면전이 되어 버리지. 백여 년 전처럼 말이야. 나야 뭐 상관없지만 무관한 사람들이 많이 다칠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들이 바로 옆을 지나가도 모르는 척해야 합니까?”

아담이 블러드를 단숨에 비운 후 잔을 헨리에게 밀어준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조져야지. 어차피 피의 축제는 그런 것이니까. 피의 축제 기간에는 자기들을 사냥하기 위해 몰려든 헌터들을 노리고 일부러 외진 곳만 골라 다니는 미친 뱀파이어들도 제법 되니까.”

“아담은 작년 피의 축제에서 귀족을 없앴어요. 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짜이긴 했지만 말이죠.”

“아리나.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귀족은 귀족이야. 그 녀석들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잖아.”

“알죠. 그래서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그렇게 돈을 많이 벌면서 우리 가게는 한 번도 찾지 않으니 서운한 것뿐이죠.”

“아리나의 가게는 너무 비싸다고.”

인호가 아드리아나를 바라본다. 그녀가 사업체를 운영하는지는 몰랐다. 인호의 반응을 본 아담이 웃으며 말한다.

“아리나는 헌터 무구를 제작해. 실력 좋은 장인들이 제법 되거든. 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비싸지. 나처럼 영세한 헌터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해.”

“아담이 영세하면 이 클럽 안에 부자 헌터는 단 한 명도 없겠네요.”

아드리아나의 말에 클럽 안을 채우고 있는 헌터들이 ‘옳소’하며 크게 외친다.

“이보게 한국 헌터.”

“말씀하세요.”

“오늘 밤에 나와 재미있는 곳에 가지 않을래?”

인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자 아담이 담배 연기를 길게 뱉어내며 말한다.

“말했잖아. 헌터를 꾀려는 뱀파이어들이 제법 된다고.”

아담이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귀족 녀석 하나를 처치할 생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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