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78화 (178/190)

제178화

“땡잡다니요?”

박주완이 루피치노를 힐끔 보고는 말한다.

“루피치노 신부님의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 줄 알아? 구마 사제단에서도 루피치노 신부님께서 만든 것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하지만 아무나 받을 수 없지.”

“왜요? 다들 좋은 무기 사용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그건 말이야.”

“그 대답은 내가 해주지.”

루피치노가 박주완의 말을 자른다.

“무기를 사용할 사람을 내가 직접 보고 결정하는 이유는 아무리 좋은 무기라 해도 사용하는 사람이 형편없으면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어린아이에게 엑스칼리버를 맡긴다고 해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예시를 들으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루피치노가 자신이 만든 무기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완이 사용하는 거대한 십자가를 이미 보았기에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에 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주완의 십자가는 미적 감각도 대단하지만 품고 있는 기운이 상당했다. 이는 십자가를 사용하는 박주완이 대단한 사람이기에 서로 시너지가 나는 것이기도 했다.

“루피치노 신부님께서 7년 동안 만드신 검이 있어.”

“무슨 검을 7년 동안 만들어요?”

“그만큼 대단한 물건이지.”

루피치노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의 장식장을 열고 길쭉한 상자를 꺼내 돌아온다. 상자 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인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상자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지금 있는 상소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기운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기운.’

그렇다.

상자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일견 박주완이 사용하는 십자가와 유사했지만, 그 안에 묘한 기운이 숨어 있다. 인호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죽음의 기운이었다.

루피치노가 상자를 연다. 그 안에는 검은색 검집에 담긴 검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

손잡이와 검집은 생김새는 투박하다. 박주완의 십자가처럼 화려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어쩌면 이 검은 처음부터 자네와 인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인호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루피치노를 바라본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일 뿐인데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스테파노에게도 처음 하는 거야. 스테파노. 이 검을 제작할 때 사용한 주재료가 무엇인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우리 천주교는 여러 국가에서 박해받았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세계를 누비던 선교사들은 야만, 그릇된 신들과 부딪쳐 수없이 죽어 나갔지. 그중 한 곳이 바로 두 사람의 조국인 한국이야.”

인호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 시대에 천주교가 박해당해 수많은 선교사와 교인들이 순교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스릉-

루피치노가 검을 뽑는다. 서늘한 검음과 함께 시린 검신이 드러난다. 검신이 은은한 붉은 빛을 띠고 있다. 루피치노는 검신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쓰다듬는 손길 같다.

“당시 조선이라 불리던 나라에는 망나니? 라는 직업이 있었다지.”

죄인을 참수하는 일을 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의미한다.

“조선의 왕은 천주교의 교리가 국가의 근간을 흔들 만큼 위험한 것이라 판단하고 역모에 준하는 형벌로 선교사와 교인들을 탄압했었지. 수많은 이들이 사로잡혀 망나니라 불리는 이들의 칼에 목숨을 잃었어. 이 검.”

루피치노가 검신을 손가락으로 퉁긴다.

“가장 많은 선교사와 교인들의 목을 벤 망나니가 사용했던 칼. 그 칼을 주재료로 만든 거야.”

“아-!”

어째서 검에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목을 벤 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연을 품게 된 것이리라.

“그 칼에 담긴 삿된 기운을 지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봤어. 하지만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 그 칼과 백은을 1:1 비율로 합금하기도 했고. 검을 제작하는 7년 동안 수시로 성수에 담가두었지. 참고로 교황께서 축언까지 해주셨다네. 물론 그것을 아는 사람은 나와 교황뿐이지만. 여기 적힌 문구 보이지?”

손잡이와 검신의 연결 부위인 가드 바로 위에 라틴어가 적혀 있다.

“주님. 제 영혼을 악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아멘.”

박주완이 라틴어를 해석해 준다.

“세상에서 악마,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가장 쉬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루피치노의 물음에 인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동안 악령의 유혹에 빠진 많은 이들을 보았다.

물론 악령의 유혹에 잘 빠지는 유형이 있기는 했지만 딱 ‘어떤 종류의 사람이다.’라고 정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루피치노는 나직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바로 종교인들이야.”

“네?”

“성스러운 기록에 보면 악마와 마귀들은 항상 주님을 섬기는 종들을 시험하지. 그들은 시험을 하며 즐기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악마와 마귀의 유혹에 가장 크게 노출된 사람은 바로…….”

루피치노가 박주완을 바라본다.

“나와 스테파노 같은 구마 사제들이지. 우리들은 악마와 마귀의 본질과 마주하는 사람들이야. 그만큼 유혹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네. 많은 구마 사제들이 악에 물들어 소멸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인호 역시 마찬가지다. 항상 악과 대면하다 보니 악보다 더한 악이 되어야 하는 경계선에 설 때가 있었다.

악을 멸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간혹 뒤를 돌아볼 때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후회가 남을 때가 많다. 최근에야 그런 일이 없다지만 과거에는 꽤 자주 번민에 시달리곤 했다.

“그렇기에 교황께서 축언을 남기신 것이지. 부디 악과 대면하여 악에 물들지 말라는 의미야. 교황께서 직접 글을 남기시고 내가 세긴 것이지.”

“그렇군요.”

“검을 들어보겠나?”

인호가 루피치노에게 검을 받아든다. 검의 탄생 비화를 들어서인지 그립감이 묵직하다.

우우웅-

검이 운다.

루피치노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어. 스테파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그 검의 주인은 자네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구마 사제단의 아이들은 그 검을 쥐지 못해. 그 검의 기운이 오히려 주인을 삼켜버릴 테니까. 하지만 네가 검을 쥐기 무섭게 그 녀석이 칭얼대잖아.”

“그런 겁니까?”

“검을 만든 나한테도 그런 애교는 부리지 않았거든. 나는 그 검을 자네에게 줄 생각인데. 그 검의 주인이 될 생각이 있나?”

인호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바티칸 최고의 장인이 만든 검이다. 그것도 성력과 죽음의 기운이 공존하는 검이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좋아. 검의 이름을 정하도록 해.”

인호가 잠시 생각하다 중얼거린다.

“사중화死中華.”

“Flowers blooming from death.”

박주완이 곧바로 영어로 해석해 준다.

“죽음에서 핀 꽃이라. 낭만적인 이름이구만. 흐음,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이려나? 뱀파이어. 죽음을 극복하고 피에서 태어난 일족. 그들을 멸하는 죽음에서 피어난 꽃. 그럴듯하군.”

우우우웅-

자기에게 이름이 생긴 것을 아는 것인지 사중화의 검신이 묘한 떨림을 만들어낸다.

“부디 그 검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길 바라네.”

* * *

구마 사제단의 회동이 끝난 후 인호는 박주완과 함께 루마니아로 이동했다. 박주완과 함께 활동하는 구마 사제단의 사제들은 제각기 다른 루트로 루마니아로 속속 입국하고 있었다.

구마 사제단의 가장 큰 사명 중 하나가 뱀파이어들을 견제하는 것이다. 때문에 뱀파이어들의 피의 축제 기간은 구마 사제단 사제들이 가장 경계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지루하지?”

“아뇨. 신부님은 매년 하시는 일이라 그런 거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

두 사람은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모처로 이동 중이다.

“피의 축제는 항상 같은 장소, 뱀파이어들의 성지에서 열려. 뱀파이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여왕의 안식처. 그곳이지. 우리들의 목적지이기도 하고.”

“전 세계 뱀파이어 클랜의 간부들이 모여든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위험하지. 우리 구마 사제들이 본능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아는 것처럼 그들 역시 우리를 알아볼 수 있거든.”

“그런데도 가는 겁니까?”

박주완이 비장하게 말한다.

“그렇기에 가는 거지.”

박주완이 피식 웃는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진 않아. 뱀파이어들도 생각이란 걸 하니까. 굳이 우리와 전면전을 벌이고 싶진 않을 거야. 우리 구마 사제단도 만만치 않거든. 그리고 이곳에 모이는 것은 구마 사제단뿐만이 아니야. 여러 국가, 여러 종교에서도 피의 축제를 주시하지. 네가 본 적 있는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고. 알잖아. 뱀파이어 귀족이라면 목숨을 걸고 달려들 사람들이거든.”

인호가 한국에서 보았던 헌터들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뱀파이어 귀족 하나만 잡으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으니 수많은 헌터들이 몰려들 것이다.

“싸우려고 온 것은 아니고 그들 역시 싸우려 하지 않으니 큰 마찰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번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특히 신부님에게는.”

“그렇지.”

광혜원에서 윌리엄 고든에게 납치된 주유선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박주완은 폭주하고 말 것이다.

이번 루마니아행은 인호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자신의 실수로 사지에서 벗어난 윌리엄 고든을 다시 만날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호는 이번 기회에 윌리엄 고든을 세상에서 지우리라 다짐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윌리엄 고든은 뱀파이어 귀족이다. 그가 속한 클랜의 간부이며 순혈에 속하는 고위 뱀파이어.

두 사람을 태운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도시네요.”

“그렇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 도시 자체가 역사의 전시장과 같은 곳이야.”

넓은 광장을 둥글게 감싼 건물들은 하나같이 고풍스럽다. 저것들 모두 건설 장비가 아닌 사람들이 돌을 깎아 하나, 하나 쌓아 만든 것들이리라.

“1년 만에 뵙네요.”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 색깔이 인상적인 백인 여자가 다가온다.

“그러게. 매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드리아나는 점점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

“호호.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면 더 기뻤을 텐데 말이죠. 반가워요. 전 아드리아나 안드레아라고 해요.”

아드리아나가 인호에게 손을 내민다.

“정인호입니다.”

아드리아나가 근처에 있는 빨간 경차를 가리킨다.

“가실까요?”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이름만 호텔이었지 시설은 한국의 모텔만도 못한 곳이었다.

“피의 축제 기간에는 도시의 숙박 시설에 방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요. 이런 곳이라도 구할 수 있는 게 행운이죠.”

말만 듣고 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부님. 내일 뵙도록 할게요. 부디 올해도 무사히 돌아가실 주님께 기도할게요.”

“고맙군.”

아드리아나가 밖으로 나간다.

“뭐 하는 여잡니까?”

“그냥 가이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녀가 하는 일은 차차 알게 될 거야. 자-, 오늘 차를 오래 타고 와서 피곤하지? 일찍 자자고. 본격적인 축제는 내일부터 시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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