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77화 (177/190)
  • 제177화

    인호는 광혜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지나다 마주치는 수녀들이 인사를 건네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전화를 받을 당시 박주완의 음성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수녀들의 표정까지 보니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이 분명했다.

    “어서 와.”

    “분위기가 영 아니네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흐음-. 일단 봐야 할 게 있으니까 이쪽으로.”

    박주완의 뒤를 따라간다. 그가 인호를 이끈 곳은 광혜원 2층이었다. 인호가 의아한 듯 박주완에게 묻는다.

    “이곳은 여자아이들 방이 있는 곳이잖아요.”

    광혜원 2층은 여자아이들이 사용하는 방이 있는 곳이다. 광혜원에 자주 왔기에 알고 있었다. 박주완은 대답을 하지 않고 가장 안쪽 방으로 인호를 안내한다. 방에 들어서는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코를 자극하는 냄새 때문이다.

    “피 냄새.”

    박주완이 답답한 신음을 토해내며 한쪽으로 비켜선다. 그제야 인호는 방 안을 볼 수 있었다. 여자아이들이 사용하는 방답게 핑크색 벽지에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한 방이다. 그런 방 한쪽 벽에 끔찍한 것이 있었다.

    Enjoy! Blood Festival

    피로 적힌 글귀였다.

    “피의 축제를 즐겨라? 저게 무슨 의미죠?”

    글귀 아래에는 이상한 형상이 그려져 있다.

    “뱀파이어의 표식이야. 글귀는 그대로 해석하면 돼.”

    인호가 벽으로 다가간다. 단순히 피로 쓴 글귀가 아니다. 글귀 자체에 흉측한 기운이 느껴진다. 손으로 글귀를 만지니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하다.

    “일단 나가자.”

    방을 나온 박주완은 인호와 함께 운동장으로 향한다. 운동장을 거닐며 박주완이 입을 뗀다.

    “바티칸의 구마 사제들은 일 년에 두 번 회동한다. 한 번은 일 년 동안 한 일에 대한 업무 보고와 향후 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회의. 그리고 한 번은 피의 축제 기간이야.”

    “피의 축제요?”

    “그래. 뱀파이어들이 벌이는 축제야. 피의 축제 기간에 전 세계의 뱀파이어들이 그들의 성지로 모여든다.”

    “그곳이 어딘데요?”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박주완의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 바티칸 구마 사제들의 주적은 악마들과 뱀파이어들이야. 악마가 불특정 소수에게 나타나는 질병이라면 뱀파이어는 어두운 곳에 숨어 점점 세를 넓혀가는 전염병이라 할 수 있지.”

    “피의 축제라는 것이 정확히 뭡니까?”

    “본래는 여왕을 깨우는 의식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뱀파이어 클랜의 간부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고 피로 목을 축이는 축제가 되어버렸고.”

    “여왕을 깨운다고요?”

    “뱀파이어들의 여왕. 즉, 뱀파이어 퀸은 영원한 잠에 빠져 있어. 여러 가지 설이 있지. 강한 성력을 지닌 구마 사제에게 잠의 봉인에 빠졌다는 설도 있고,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설도 있어. 확실한 것은 그녀가 잠에 빠져 있고 깨어나지 못한다는 거야. 뱀파이어들은 그녀를 깨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어. 백여 년 전 열 살이 되지 않은 천 명의 여자아이의 피를 그녀의 몸에 뿌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대략 30년 전부터 피의 축제 기간에 실종 사건이 벌어지고 있어.”

    “그들이 납치하는 겁니까?”

    “증거는 없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어. 그것과 별개로 그동안 한국은 뱀파이어들의 위협에서 비켜나 있었는데…….”

    “뱀파이어 클랜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

    인호가 불길한 예감에 박주완에게 묻는다.

    “광혜원 아이가 납치된 겁니까?”

    “흐음. 맞아. 주유선. 유선이라는 아이야. 올해 여덟 살 된. 조금 전 보았던 방을 사용하던 아이지. 벽에 피로 써진 글귀와 사라진 유선이. 미친 뱀파이어가 유선이를 피의 축제에 끌고 간 거야.”

    “어떤 뱀파이어인지 짐작은 되십니까?”

    박주완이 인호를 광혜원의 원장실로 데리고 간다. 원장실 책상 위 컴퓨터 옆에 모니터 한 대가 더 있다. 입구와 몇몇 곳에 설치된 CCTV 화면이 보인다. 박주완이 컴퓨터에 앉아 잠시 조작하자 CCTV 화면이 바뀐다.

    “오늘 새벽에 녹화된 영상이야.”

    광혜원 입구에 설치된 가로등만이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광원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인다. 키가 크지 않은 것을 보니 어른은 아닌 것 같다. 실루엣의 주인이 가로등에 가까이 다가온다.

    인호가 흠칫 몸을 떤다.

    “저 아이-.”

    “그래. 그 아이지. 윌리엄 고든. 한국 이름 강호민.”

    인호가 이를 꽉 깨문다.

    밀실 사건의 주인공이자 영국의 새로운 뱀파이어 귀족인 윌리엄 고든이었다.

    박주완을 비롯한 구마 사제들과 뱀파이어 헌터들에게서 의도치 않게 자신의 손으로 구해 준 녀석이기도 하다.

    -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윌리엄 고든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뱀파이어 귀족들은 피의 축제에 참석할 때 나이가 많지 않은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가. 과거처럼 그 아이들의 피를 여왕에게 뿌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피의 계승을 받으려는 것인지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

    “피의 계승이요?”

    “뱀파이어들은 귀족들의 수가 항상 일정하지. 하나가 소멸되면 다른 하나가 다시 탄생해. 하지만 단 한 존재만 그 법칙에서 벗어나.”

    “뱀파이어 퀸.”

    “그래. 그녀는 모든 뱀파이어들의 시작이야. 그렇기에 그녀가 소멸하면 다른 뱀파이어가 여왕이 될 수 없어. 대체불가의 존재란 뜻이지. 뱀파이어 퀸의 존재는 그들 일족에게 절대적이야. 그렇기에 매년 피의 축제를 벌여 그녀를 깨우려 하지. 피의 계승은 여왕을 온전히 물려받을 수 있는 의식이야. 말 그대로 여왕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는 건데. 뱀파이어 귀족들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존재를 찾아 피의 축제에 데리고 가는 거야.”

    “하아-. 모두 제 잘못이에요.”

    인호의 말에 박주완이 고개를 흔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고.”

    위험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한 것.

    그 어린아이가 새롭게 뱀파이어 귀족이 된 아이란 것을 몰랐던 것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때 윌리엄 고든을 살려 보냈기에 주유선이라는 아이가 납치된 것이다.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라고 했습니까?”

    “그래. 나도 곧 출국할 거야. 바티칸에서 구마 사제들의 회동이 있거든. 나와 함께 움직이자고 널 부른 거야.”

    “제가 바티칸에 가면 뭘 합니까? 바로 루마니아로 가겠습니다.”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아무래도 뱀파이어들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조직은 바티칸이니까.”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합니다. 죄송하지만 뱀파이어들의 성지라는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안 돼.”

    박주완이 단호하게 말한다.

    “너 혼자 가게 할 수 없어. 그래서 동행하자고 하는 거고. 전 세계의 뱀파이어가 모두 모여든다. 너 혼자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황동호에게 도술을 배운 후 인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야.”

    “아이가 잡혀갔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축제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아이도 살아있을 테니까. 아무리 너라고 해도 위험하다니까. 저번에 내가 부탁 들어줬잖아. 이번에는 내 말 듣자.”

    하지만 박주완은 완고했다. 그는 인호 혼자 뱀파이어의 성지에 가게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인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후……. 알겠어요. 바티칸부터 가죠.”

    * * *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시국.

    인호는 호텔에 머물고 있다. 박주완은 구마 사제들의 회동에 인호도 참석하길 권유했지만 따라가지 않았다.

    몇몇 구마 사제들과 안면이 있기는 하지만 전혀 관련 없는 조직의 회동에 참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혼자 심심했지?”

    “아니요. 괜찮았습니다. 창밖 풍경도 멋지고요.”

    “로마는 살아있는 역사 전시관이지.”

    “구마 사제단 본부가 교황청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박주완이 쓰게 웃는다.

    “구마 사제단은 원칙적으로 바티칸에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니까.”

    구마 사제단은 비밀 결사 조직이다. 그 이유를 인호는 알고 있다. 구마 사제들 중 많은 이들이 악마의 기운에 오염되어 영혼마저 소멸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바티칸 측에 불명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회동은 잘 끝나셨습니까?”

    “끝은 무슨. 회동은 3일 동안 계속된다. 오늘은 일 년간의 업무 보고만 있었을 뿐이야. 아직 식사 전이지? 일단 밥 먼저 먹자. 그다음에 가볼 곳도 있고.”

    “어딜 가는데요?”

    “가보면 알아.”

    박주완이 인호의 어깨를 툭 치며 씨익 웃는다.

    * * *

    “이곳은-.”

    땅- 땅- 땅-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구마 사제단에 속한 병기 제조창이지. 내 십자가도 이곳에서 만든 거야.”

    “그래요?”

    박주완 인호를 대장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제법 넓은 작업 공간에 스무 명이 넘는 장인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박주완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큰 덩치의 노인이 연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루피치노 신부님.”

    박주완이 망치질을 하는 노인을 향해 성호를 긋고 인사를 건넨다.

    “스테파노 왔나.”

    노인이 망치질을 멈추고 환하게 웃는다. 루피치노라 불린 노인이 박주완의 뒤에 선 인호를 발견하고 묻는다.

    “네가 말했던 아이가 저 아이인가?”

    “네, 신부님. 라틴어를 알아듣지 못하니 영어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여부가 있겠나.”

    루피치노가 인호에게 손을 내민다.

    “루피치노라고 하네.”

    “정인호입니다.”

    “스테파노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네. 한국에서 최고라지? 스테파니고 한국에서 악마를 퇴치할 때도 도움을 주었고. 마르가스는 대악마인데 말이야. 모든 구마 사제들을 대신해 감사를 표하네.”

    “아닙니다. 모두 박, 아니 스테파노 신부님께서 하신 겁니다.”

    “듣던 대로 겸손하군. 안으로 들어가지.”

    루피치노의 뒤를 쫓으며 박주완이 한국어로 간단하게 부연 설명을 해줬다.

    “구마 사제단에서 전설로 통하는 신부님이지. 나도 신입 시절에 루피치노 신부님께 많이 배웠어.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구마 사제들이 저분의 제자라 할 수 있고.”

    “대단하신 분이네요.”

    “암, 그렇고말고. 은퇴하신 후에도 편안한 노후를 팽개치고 이 뜨거운 곳에서 후배 구마 사제들을 위해 병기를 제작하고 계시지. 실력이 뛰어나셔서 저분 손을 거치면 대단한 무기들이 탄생하지. 참고로 내 십자가를 마무리해주신 분도 루피치노 신부님이시다.”

    루피치노는 두 사람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좋은 차를 대접하고 싶지만 이런 것밖에 없군.”

    “향이 좋은데요.”

    인호는 차를 마시며 방 안을 둘러본다. 미니멀리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은 단출한 방이었다.

    잠깐 티타임을 가진 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주로 퇴마행에 대한 이야기였고, 루피치노가 질문을 하면 인호가 대답을 해주었다.

    박주완은 중간중간 설명을 덧붙이며 어울리지 않게 인호를 띄워주기까지 했다.

    “스테파노. 네 말대로 대단한 아이구나.”

    “그렇지요?”

    “그래. 저 아이라면 그 검을 선물해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

    “정말입니까?”

    박주완이 깜짝 놀라 묻는다.

    “어차피 쓰려고 만든 것이지 않나. 전시만 해둘 거라면 만들지 않았겠지. 사제단 내에서 사용할 아이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말이야.”

    인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영문을 몰라한다. 박주완이 인호의 어깨를 툭 치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너, 인마. 완전 땡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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