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76화 (176/190)

제176화

“내가 이 아이를 포기할 것 같아!”

신이 뾰족하게 외친다.

중성적인 음성이 귀를 자극한다. 인호가 고개를 좌우로 비튼다. 당장이라도 저 신을 강소정의 몸에서 뽑아내 소멸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 해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혜옥을 부른 것이다.

“추한 모습 그만 보이시지요.”

“내가 떠나면 이 아이는 죽어. 그래도 좋아?”

“절 아시지 않습니까. 그 아이, 죽게 두지 않을 겁니다. 그 아이를 품으실 다른 신을 모시면 그만입니다.”

“싫어. 내 꺼야.”

이혜옥의 눈이 서늘해진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드세진다. 이내 폭풍과도 같은 기운을 줄줄 흘려낸다.

“감히!”

이혜옥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 나온다. 평소의 조근조근한 음성이 아니다. 전장을 누비는 장군의, 일국을 이끄는 제왕의 기운이 담긴 음성이다.

“내 명을 거역하느냐!”

이혜옥이 모시는 신이다.

신의 호통에 강소정의 몸을 차지한 신이 몸을 움츠린 채 바들바들 떤다.

“그 하찮은 존재라도 남기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아이의 몸에서 떠나거라.”

“하오나.”

강소정의 몸을 차지한 신의 말투가 바뀐다.

“듣기 싫다. 한 마디만 더 뱉어내면 당장 네 존재를 지울 것이다.”

순간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지려는 강소정을 인호가 달려가 안았다.

“휴우-.”

이혜옥이 가벼운 한숨을 토해낸다. 아무리 만신이라 해도 갑작스러운 접신은 부담이 되었다.

“이리 데리고 오너라.”

강소정을 안고 다가가니 이혜옥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침대에 눕히고 이 아이의 아버지를 데리고 와.”

잠시 후 인호가 사장과 방으로 들어온다.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은 하지?”

인호가 사장에게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해 준다. 사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는 침대에 누운 강소정을 보고는 금방 눈물을 뚝뚝 흘린다.

“우리 소정이가 그런 것 아니에요. 방금 그러셨잖아요. 그 악마가 한 겁니다.”

사람을 죽이게 한 것은 악신이 분명하지만, 그 주체가 강소정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인호야.”

“네, 말씀하세요.”

“어떻게 안 될까?”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그는 커튼 쪽을 바라보았다. 악신이 떠났음에도 여전히 겁에 질려있는 망령이 보였다. 이혜옥이 모시는 신이 존재를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망령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침대에 누운 강소정을 원망을 담아 바라보고 있다.

“죽은 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사장님. 소정이의 나이가 정확히 어떻게 되죠?”

“올해 열다섯 살이 됐습니다.”

“생일은요?”

“두 달 후가 생일입니다.”

인호가 한숨을 토해내며 정재훈에게 전화한다.

“검사님. 안녕하세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인호는 강소정에 관한 이야기를 정재훈에게 들려준다.

“아직 만 14세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 촉법소년에 해당되는군요.

정재훈의 설명을 들으며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는 평소에 촉법소년을 혐오했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은 어린아이들이 촉법소년을 악용해서 온갖 패악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어차피 저한테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차를 절도해 무면허 운전으로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치어 죽게 한 중학생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인호는 침대에 누운 강소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처벌은 받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 평생 멍에를 짊어지고 살겠지요.”

“어쩔 수 없지.”

이혜옥이 사장을 바라본다.

“네, 말씀하세요.”

“저 아이는 내가 데리고 가려고 하네. 딸의 목숨을 살릴 방법은 그것뿐이야.”

사장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자네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기도 하네.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혜옥이 방을 둘러보며 말한다.

“억울하게 죽었고 아직 그 억울함이 다 풀리지는 않았겠지만, 부디 극랑왕생하소서.”

말을 마친 이혜옥이 인호에게 말한다.

“한풀이 진오귀굿은 나보다 계룡산 머저리가 낫지. 네가 부탁하면 거절하지도 않을 테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언론 정도는 막아줄 수 있겠지?”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 * *

“야, 뚱보야.”

“응?”

닭꼬치를 우적우적 씹던 뚱보가 사기꾼을 바라본다.

“넌 저승사자인데 매일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거냐?”

“난 특수임무를 수행 중인 저승사자니까.”

뚱보가 말한 특수임무란 인호의 옆에 딱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저승사자들이 응당 해야 할 임무에서 빗겨나 있다.

“설마 특수임무가 매일 꾸역꾸역 처먹는거냐?”

“우씨. 그런 거 아니거든. 내 임무가 엄청 중요하거든.”

“그렇겠지. 10분 만에 닭꼬치 스무 개를 처먹는 게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해.”

뚱보가 인상을 찌푸린다.

“자꾸 그러면 저승으로 끌고 간다.”

“에라이. 이제 뻑하면 협박질이네. 그래. 말 나온 김에 끌고 가라. 이제 한풀이해서 나도 더 이상 미련 없다. 데리고 가. 데리고 가보라고.”

사기꾼이 뚱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영감이 혀를 차며 두 망령을 말린다.

“장난도 적당히 하자. 그리고 뚱보. 너도 말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우씨. 매일 나만 가지고 뭐라 그래.”

뚱보가 영감을 보며 구시렁거린다.

“영감님. 그래서 할머니는 잘 보내드렸어요?”

“그렇게 가보고 싶다던 남산타워에 데리고 가니 무지 좋아하더라. 웃으면서 갔어.”

서울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 망령이 있었다.

영감은 할머니 망령을 남산타워에 데리고 갔다. 남산과 가까운 서울역에 있으면서도 남산타워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데리고 간 것이다.

남산타워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본 할머니 망령은 더 이상 원이 없다는 듯 나타난 저승사자와 함께 저승으로 떠났다.

“너는 어떻게 됐어? 그 망령 의문은 풀어줬어?”

“당연하죠. 제가 누굽니까? 사기에 올마스터한 놈 아닙니까? 그래서 자세히 설명해줬죠. 그랬더니 단순한 사기에 속았다며 억울해하더라고요. 그래도 저승사자 따라갈 때는 웃더라고요.”

“잘했네.”

영감과 사기꾼이 동시에 남은 닭꼬치를 씹고 있는 뚱보를 바라본다. 어찌 보면 뚱보가 해야 할 일을 두 망령이 대신 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왜? 왜 그렇게 보는데?”

“아니야. 많이 먹어.”

“그래. 계속 먹어. 부족하면 더 사다 먹고.”

두 망령이 자신을 바라보는 측은한 눈빛에 뚱보가 발끈하려 할 때 문이 열리며 인호와 이민정이 들어온다.

“왔어?”

“갔던 일은 잘 해결됐고?”

“당연하잖아요. 누가 갔는데. 그나저나 넌 도대체 닭꼬치를 몇 개나 먹고 있는 거냐?”

스무 개가 넘어 보이는 빈 꼬치를 보며 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부장님께 건의해서 니 월급 반토막 내라고 하든가 해야지. 이건 무슨 먹깨비도 아니고…….”

“안 돼!”

“제발 네 일에 그렇게 치열하고 분노해라. 이 어설픈 저승사자야.”

인호가 소파에 앉자 이민정이 커피를 타서 앞에 내려놓는다.

“역시 우리 민정이가 최고야. 커피 고마워.”

“별말씀을요.”

이민정이 자기 자리에 앉으며 묻는다.

“그 아이는 괜찮겠죠?”

“만신이 케어한다잖아. 이 땅 위에서 만신만큼 그 아이를 잘 지켜 줄 사람은 없어.”

“그건 알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민정은 강소정을 전부는 아니라 해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 한때는 그녀도 이혜옥에게 거두어진 적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일이 잘 해결돼서 기분 좋아요. 오늘은 좋은 꿈 꿀 것 같아요.”

“좋은 꿈 좋지.”

인호는 언제나 악몽을 꾼다. 그래서 매일 꿈을 꾸지 않게 해 달라고 특정하지 않은 절대적인 존재에게 기도하곤 했다.

“그래. 고생했다. 이제 그만 퇴근하고 좋은 꿈 꿔라.”

* * *

- 신부님. 너무 뜨거워요. 제발 구해 주세요.

“미안. 내가 너무 미안하다.”

손을 뻗어 보지만 닿지 않는다. 펄펄 끓어오르는 지옥의 유황불에서 어떻게든 나오려 버둥거리는 소녀. 소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다.

“미안. 내가 미안해.”

- 그래. 모두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나를 구해 주지 못했어. 그래서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진 거야. 당신을 저주할 거야. 스테파노!

“미안해.”

- 저주할 거야. 스테파노! 박주완 신부!

“헉-, 헉-.”

박주완이 잠에서 깨어난다. 그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데레사.”

오래전 구마 의식에 실패해 구하지 못한 어린 소녀의 세례명이다.

“미주야. 신부님이 정말 미안해.”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작게 중얼거리고는 기도를 시작한다.

“부디 뜨거운 지옥의 불길 속에서 주님의 자녀를 구원해 주소서.”

한 시간 가까이 기도하던 박주완이 침대를 벗어난다.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었다. 세상이 가장 어두운 시간. 박주완은 창밖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존재를 떠올린다.

진짜 이름조차 듣지 못했던 악마.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쓰던 손미주의 영혼을 지옥의 불길 속에 던진 악마. 아직도 꿈속에서 구해 달라며 손을 뻗던 손미주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아-.”

오랜 세월 구마 사제로 활동하며 모든 구마 의식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했던 구마 의식 중 최악을 꼽으라 한다면 당연히 손미주의 구마 의식이었다.

보통 실패한 구마 의식이란 악마가 깃든 대상의 죽음을 의미한다. 구마 의식에서 실패해도 대상의 영혼은 구원할 수 있다. 육체적 생명만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손미주의 경우는 영혼마저도 구하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목숨을 잃고 영혼마저 악마에 의해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날 이후 가끔 그의 꿈속에 손미주가 등장하곤 했다.

그때마다 박주완은 지금처럼 많이 힘들어했다.

차가운 물로 목을 축인다. 답답한 신음을 토해내며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며 성호를 긋는다.

지금까지 꿨던 손미주의 꿈 중 유난히 선명했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절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박주완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시간이 흘러 여명이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박주완은 광혜원 운동장으로 가 잡초를 뽑고 돌을 골라낸다.

“신부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광혜원 일을 도와주는 수녀들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온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침잠이 줄어드네요.”

“아직 정정하신데요.”

수녀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안젤라 수녀가 박주완에게 묻는다.

“신부님. 곧 바티칸으로 가시죠?”

“그러게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 시간이 참 빨라요.”

구마 사제들은 일 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바티칸에서 회동한다. 한 번은 구마 사제들의 활동에 대한 보고와 이런저런 사안들을 위한 희의이고, 남은 한 번은…….

“피의 축제. 악마들의 페스티벌이 시작되겠지요.”

박주완의 음성이 너무 작아 안젤라를 비롯한 수녀들이 듣지 못했다. 박주완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큰일 났어요. 유선이가 보이지 않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