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74화 (174/190)
  • 제174화

    인호는 운전석에 앉아 고기를 굽고 있는 사장을 바라보았다.

    좀전의 통화에서 유 형사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산장지기 강한수 씨는 잘 나가는 레스토랑의 주인이었다.

    3년 전 만신이 굿을 했던 다큐가 있었는데, 그때 아픈 딸과 함께 출연을 했다.

    방송에 출연한 후 아내와 이혼을 했다.

    이후 갑작스레 레스토랑을 정리하고 3년 전에 이 산장을 샀다.

    그리고 곧바로 딸을 데리고 여기로 들어왔다.

    일단 한 가지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이곳에 와서 사장을 만났을 때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당황했다. 인호가 본 사장은 이혜수의 말대로 친절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가 만약 망령이 된 여자들을 죽인 살인마였다면 그에게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살인마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있는 망령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인호가 알아챌 수 있었을 테니. 그렇다면.

    “딸인가?”

    사장이 아니라면 여자들을 죽인 존재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사장은 정말 몰랐을까?”

    자기 딸이 산장에서 사람을 죽였는데 그것을 모를 수가 있을까?

    단순히 죽이기만 해서는 망령이 되어서도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 정도로 잔인하게 죽였을 것이 분명했다.

    “후우-.”

    한숨을 토해낸 인호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 바쁜 우리 인호가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을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구수한 음성은 지리산 만신 이혜옥의 목소리였다.

    “통화 괜찮으세요?”

    - 저녁 먹고 쉴 시간 아니더냐. 그래.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니? 이 시간에 전화한 걸 보니 안부 전화는 아니겠고. 문제라도 생긴 거니?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몇 년 전에 다큐멘터리 촬영한 것 기억하시죠?”

    - 내가 나이가 들었어도 몇 년 전 일을 깜빡깜빡할 정도는 아니다. 이놈아.

    “그때 굿을 하셨던 것도요?”

    - 그래. 했지.

    “어떤 굿이었습니까?”

    이혜옥이 출연했던 다큐멘터리를 보았지만 어떤 굿을 했는지까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 눌림굿을 했지.

    “눌림굿이요? 신병 걸린 사람들에게 하는 그 굿이요?”

    - 그래. 그 아이 아버지가 직접 부탁했었어. 물론 나는 반대했지만.

    이혜옥이 반대한 이유는 뻔하다.

    눌림굿은 돈이 많이 든다. 이 굿은 한 번 할 때 드는 돈은 그렇게까지 비싸진 않았다. 다만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신병을 앓을 때마다 눌림굿을 받아야 하는데 재력이 대단한 집이 아니라면 결국 그 돈을 감당하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혜옥은 눌림굿을 받으려는 사람에게 그냥 운명에 순응하라고 조언한다. 그 말은 신내림을 받으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거부했고요?”

    - 그래. 딸이 무당으로 사는 게 보기 싫었던 게지. 알잖니. 사람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보는지.

    사람들은 무속인이라고 하면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그들 중에 무속인이 되고 싶어 된 이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신의 선택을 받아 불가항력으로 무속인이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도 눌림굿을 받았나요?”

    - 아니. 그때 한 번뿐이었어. 나도 그 아이가 눈에 밟혀 아는 아이들을 통해 수소문해 보았어. 내게 굿을 받은 후 두 번을 더 받았는데 그 이후로는 굿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구나.

    “그렇군요. 그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 흐음.

    이혜옥이 신음을 토해낸다. 기억을 더듬는 것인지 잠시 말이 없더니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입을 연다.

    - 인호 너도 잘 알겠지만 신병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네. 잘 알죠.”

    신병.

    말 그대로 ‘신’이 연관된 병이다.

    - 그 아이는 유난히 심했지. 눌림굿을 할 때도 매우 힘들었어. 어떤 분께서 점찍은 것인지 몰라도 말이야.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인호도 대충은 알고 있다.

    - 신의 분노를 받게 되지. 고통 속에서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그렇군요. 혹시 신내림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는 경우도 있을까요?”

    -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본 적은 없다.

    “마지막 질문인데 신내림굿을 받지 않고도 신내림을 받을 수 있습니까?”

    -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은 하지.

    이혜옥과 통화를 마친 후 고개를 뒤로 젖힌다.

    “아버지가 아닌 딸이다. 아버지는 잘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는…….”

    고기를 굽는 사장이 보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잖아.”

    * * *

    별다른 일 없이 밤이 지나갔다.

    “어제 고기를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아직도 배가 꽉 찬 것 같아요. 사장님 고기 굽는 실력이 엄청나요. 어떻게 고기를 하나도 안 태우고 그렇게 맛있게 구울 수 있죠?”

    이민정이 침대 위에서 배를 두드리고 있다.

    “널 누가 데려갈지 참 궁금하다. 이런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놔야 하는데.”

    “몰카 나빠요. 소장님 나빠요. 그리고 전 결혼할 생각이 1도 없어요.”

    “그래. 듣던 중 다행인 말이네.”

    “이씨. 어제 누구한테 전화 온 거예요?”

    “유 형사.”

    “아-! 뭐래요? 여기 사장님 나쁜 사람이라고 해요?”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그냥 아버지야.”

    “그게 무슨 말이래요?”

    “딸을 엄청 사랑하는 아버지.”

    “산장 일 하면서 딸 보러 병원에 자주 가나 보네요.”

    “아니. 병원에는 안 가더라고.”

    이민정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그 딸이 병원에 없거든.”

    “서, 설마-.”

    이민정의 눈동자가 떨린다.

    “벌써 죽은 거예요? 사장님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민정이 도끼눈을 하고 쏘아본다.

    “사랑하는 딸이 죽는 문제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가끔 정떨어지는 말을 해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은 정말 실망이에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이민정이 평소와 달리 날카롭게 말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굳이 변명하기보다 사실을 설명해준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민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딸이 살아 있다고요? 그리고 그 딸아 사람들을 죽였다고요?”

    “지금으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어. 이곳 사장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몰랐을 가능성이 크고.”

    “딸은 어디 있는데요?”

    “이 산장 어딘가에 있겠지.”

    “1층하고 2층은 모두 둘러봤잖아요. 산장 주변에는 온실하고 창고 빼고는 다른 건물도 없고요.”

    이민정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안 본 곳이 한 군데 있지.”

    “그게 어딘데요?”

    인호는 어젯밤을 떠올린다. 온천욕을 할 때 안개가 피어오르고 망령이 안개를 뚫고 나타났었다. 하지만 곧 망령은 안개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우물 망령이 갈 때 잠시 멈칫했던 것 기억해?”

    “네.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볼 줄 알았는데 반쯤 돌리다 그냥 갔잖아요.”

    “그래. 반쯤 돌렸지. 그때 망령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

    “산장?”

    이민정이 놀란 듯 외친다.

    “다시 한번 기억해봐. 망령은 산장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정면이 아닌 아래쪽을 향해 있었지.”

    “지하실?”

    이민정이 말을 하며 벌떡 일어선다. 그녀가 커튼 쪽을 바라본다. 어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이후 나타나지 않던 망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망령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동자만 들어 인호와 이민정을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그녀의 눈에는 깊은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이민정은 자신과 눈을 마주하던 악령의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하실?”

    망령이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망령은 곧 사라졌다.

    이민정은 멍하니 망령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고 있자 인호가 그녀의 어깨를 툭 친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가자.”

    * * *

    “사장 없는 것 확실하지?”

    “맞다니까요. 소장님 자고 있을 때 산책이나 하려고 나갔을 때 이것저것 살 것 있다고 마트에 간다고 차 타고 갔어요. 9시 넘어서 오니까 배고파도 기다리라고 했고요.”

    이민정이 주위를 살피며 말한다.

    “그런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같은 것은 안 보이는데요.”

    “계속 찾아봐.”

    1층 곳곳을 찾아봤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보이지 않는다. 응접실과 주방 등을 모두 살폈지만 찾지 못했다. 이민정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쉰다.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 아닐까요? 아무리 찾아도 없잖아요.”

    “한 군데 남았지.”

    “다 찾아 봤…… 아, 그러네요.”

    이민정이 천천히 몸을 돌린다. 좁은 통로의 끝에 문 하나가 보인다.

    “사장님 방.”

    인호가 걸음을 떼자 이민정이 그의 손을 잡는다. 인호가 돌아보니 이민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 이래도 돼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맞지. 그런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잖아. 딱 들어가서 지하실로 가는 입구가 있는지만 확인하자.”

    “확인만 하는 거예요?”

    “그래.”

    인호가 사장의 방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돌려본다. 의외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엄청 수수하네요.”

    좁지는 않지만, 침대 하나와 장롱, 탁자, 의자가 전부였다. 바닥에는 둥근 러그가 깔려있다. 방 어디에도 지하로 통하는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이민정이 방을 거닐며 살피다 고개를 흔든다.

    “없어요.”

    “그래. 없는 것 같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윽-, 누구야?”

    이민정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아이씨, 이놈의 070. 시도 때도 없이 전화 와서 미치겠네. 차단을 해도 다른 번호로 또 오고, 또 오고. 짜증 나.”

    통화 거부를 누른 이민정이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넣는다. 아니, 넣으려 했다.

    휴대폰이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고 아래로 떨어진다.

    텅-

    떨어진 휴대폰을 주우려 상체를 숙이던 이민정이 고개를 갸웃한다. 고개를 드니 인호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가 생각한 것이 맞을까요?”

    “아마도?”

    인호가 냉큼 러그를 걷어낸다.

    “이야. 이런 곳에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요.”

    러그 아래 가로, 세로 1미터 정도의 금이 보인다. 한쪽에는 당길 수 있게 끈도 달려 있다. 이민정도 무의식적으로 끈으로 손을 뻗는다.

    그때였다.

    끼이익-

    바깥쪽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인호가 이민정의 어깨를 툭 치고는 러그를 다시 깔고 밖으로 나간다. 두 사람이 거실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리며 양손에 큰 장바구니를 든 사장이 들어온다.

    “일어나셨어요? 배고프시죠? 금방 식사 준비해 드릴게요.”

    “네? 네. 감사합니다.”

    사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이민정의 반응이 이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사장님. 배가 엄청 고프네요. 아침에는 뭐 해주실 거예요?”

    인호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사장이 빙긋 웃는다.

    “대단한 건 아니고요. 제가 예전에 레스토랑 할 때 자주 하던 음식이 있습니다. 오래 안 걸리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장이 주방으로 가려 할 때였다.

    “사장님.”

    인호가 사장을 부른다.

    “네?”

    “음식 1인분만 더 준비해 주시죠.”

    사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사장님 따님분도 아직 식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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