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절대 내 옆에서 떨어지면 안 돼.”
“아-, 그만!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해요?”
이민정이 짜증을 담아 말한다.
“몇 번을 해도 과하지 않으니까 그러지. 지금 만나는 사람 아주 무서운 사람이야. 그러니 절대, 절대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네, 알겠습니다.”
이민정에게 다시 확인을 받은 후에야 차에서 내린다.
인호가 주위를 살핀다. 넓지 않은 주차장 정면으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산장이 보인다. 주차장 옆으로는 작게 지어진 온실이 있다.
“온실. 그거 맞아요?”
이민정의 물음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송창민이 갑자기 화를 입지 않았다면 이혜수가 저 온실 안에서 죽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죽은 이들이 전부 여자였기 때문에 죽는 이는 송창민이 아닌 이혜수였을 것이 확실하다.
그들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산장 문이 열리며 얼굴의 반을 수염이 차지하고 있는 남자가 나온다.
“어서 오세요. 오늘 예약하신 분들이시죠?”
인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린다.
“이럴 리가 없는데.”
“네?”
“아니야.”
이민정에게 작게 대답한 인호는 웃으며 남자에게 다가선다.
“사장님이세요?”
“네. 제가 이곳의 산장지기입니다. 서울에서 오신 거죠? 오는 동안 휴게소도 없어 시장하시죠?”
“네, 그러네요.”
“금방 식사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방 먼저 안내해 드릴게요.”
사장이 몸을 돌린다. 인호는 사장의 뒤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은 바비큐장 근처의 석등이었다.
석등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사장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사장이 두 사람을 안내한 방은 이혜수와 송창민이 묵었던 그 방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입니다. 해 뜰 무렵 피어오르는 안개는 그 자체가 예술이죠. 짐 풀고 잠시 쉬고 계세요. 식사 금방 준비 하겠습니다.”
사장이 밖으로 나가자 인호가 후우하며 한숨을 토해낸다.
“왜 그러세요? 이럴 리가 없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요?”
“저 사람.”
인호가 사장이 나간 문을 바라본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정말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장이 이 산장에 주박되어 있는 망령들의 원인이라면, 영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어떻게든 몸에 흔적이 남아있어야 했다. 망령들의 원한이 그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의 몸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인호가 커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아무것도 없던 커튼에 푸른 기운이 어른거린다. 이민정이 흠칫 몸을 떤다. 어느새 긴 머리를 늘어트린 여자 망령이 그곳에 서 있다.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인 채 눈을 위로 치켜뜨고 있다. 일견 쏘아보는 듯해 섬뜩한 느낌이 드는 눈빛이지만 인호는 애처롭게 망령을 바라보았다.
저 모습은 쏘아보는 것이 아니라 겁에 질려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지?”
“…….”
망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인호가 다시 한번 당황한다. 망령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계속해서 하소연하기 마련이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못하니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면 더 적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망령일진대.
그런데 커튼 앞에 선 망령은 인호의 눈치만 살필 뿐 말을 하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무섭지?”
지독한 공포가 그녀의 입을 강제로 막는 것이리라.
“내게 얘기 해. 널 도와주러 온 거야.”
망령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젖고는 스르륵 사라진다.
“하아-.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방에 있는 망령이 이렇다면 다른 망령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망령들의 입을 닫게 하는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엄청 강력한 악령이 있는 거 아닐까요?”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악령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그러면 아까 그 사장이 연기를 잘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만약 그런 거라면 극락 흥신소 간판 떼야지.”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식사가 준비됐으니 내려오라는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1층으로 내려가니 사장이 채소들로 비빔밥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다.
“전부 텃밭에서 키운 것들입니다. 달걀도 닭장의 닭이 낳은 거고요. 100% 자연산이죠.”
“하하, 딱 봐도 신선해 보이네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사장의 장담대로 채소들이 신선해 비빔밥이 참 맛있었다.
“사장님은 이곳에 혼자 사시는 건가요?”
“…… 그렇죠.”
인호는 고개를 숙이고 비빔밥을 입에 넣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장의 대답에서 아주 잠깐의 머뭇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지내시면 외롭지 않으세요? 가족은 없으시고?”
“마누라는 이혼했고 딸이 하나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식사를 마친 후 이민정과 함께 산장 주변을 돌며 산책을 했다.
역시나 석등의 망령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온실이었다.
사장이 관리를 잘한 것인지 온실 안의 화초들은 잘 자라있었다.
“이 꽃 너무 예뻐요.”
꽃향기를 맡던 이민정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예쁜 곳에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는 거잖아요. 정말 미친 사람인가 봐. 그나저나 사장이 아니라면 누굴까요?”
“나도 모르지.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온실 안 꽃들 사이로 거닐던 이민정이 의아한 듯 말한다.
“아래쪽 꽃들하고 위쪽 꽃들이 조금 달라요.”
“응? 뭐가 달라?”
“뭐랄까? 아래쪽 꽃이 조금 더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인호가 크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아래쪽 하다 위쪽 할 때 지쳤나 보네.”
“그런가?”
두 사람이 온실을 나설 때, 인호는 유 형사에게 전화를 했다.
“어, 나야. 지금 여기가 태평산장이라는 곳인데 이곳 산장지기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까? 아-, 유 형사가 생각하는 그런 일 아니야. 아무튼 알아보고 전화 줘.”
전화를 끊은 후 인호가 몸을 돌려 산장을 바라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 * *
“이야. 대박. 제주도 풀빌라 히노끼 탕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천연 온천이 말이 돼요?”
인호와 이민정이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뜨거운 온천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천연 온천이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다.
이민정이 손에 물을 담아 세수한다.
“언제 이런 곳엘 또 오겠어요. 이럴 때 제대로 즐기고 가야지. 호호, 덕분에 좋은 곳 와 보네요. 소장님 기왕 온 김에 며칠 푹 쉬었다 가죠.”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이곳에 있어야 하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기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가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본다.
“저 우물 기분 나빠요. 저기도 망령이 있다고 했죠? 안개가 없는 것을 보니 오늘은 안 나오려나 보네요. 한번 보고 싶었는데.”
“얌마. 말이 씨가 되는 거야.”
인호가 말을 하기 무섭게 주위에 안개가 피어오른다.
이민정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뜰 때였다. 안개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긴 머리카락과 옷이 온통 물에 젖어 있는 여자 망령이었다.
“인사하려고 온 거야? 어차피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 거잖아. 알아서 해결해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망령이 인호를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돌린다. 역시나 이번 망령도 말을 해주지 않으려는 것 같다. 몸을 돌린 망령이 다시 안개 속으로 걸어간다.
“하나같이 저러네요.”
“어쩔 수 없지.”
인호가 망령에게서 시선을 떼려 할 때였다. 그가 갑자기 멈칫한다.
걸음을 옮기던 망령이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린 후 다시 걸음을 옮긴다. 안개가 사라지고, 망령도 사라졌다.
“뜨거운 정종만 있으면 딱인데 말이죠?”
“정종?”
“왜 일본 만화에서 온천 가면 쟁반에 뜨거운 정종 담아서 온천물 위에 띄워 놓잖아요. 아-, 원숭이도 한 마리 있었으면 좋겠다.”
인호가 한심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 * *
“하하, 그렇게 하면 고기가 다 타요. 이리 나오세요. 제가 구워 드릴게요.”
인호가 고기를 태우자 사장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다. 인호가 숯불 앞에서 비켜서자 사장이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여기서 일하다 보니 느는 것이 이런 것밖에 없어요.”
“고기 잘 굽는 남자 엄청 매력적이에요.”
쌈장에 고기를 찍어 입에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이민정이 말한다.
“사장님은 언제부터 이 산장을 관리하신 겁니까?”
“오래 안 됐어요. 한 3년 됐지요.”
“그러시구나. 고기 엄청 맛있네요.”
“다행이네요.”
인호가 소주 한 잔을 따라 사장에게 건넨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소주 한 잔 생각 났거든요. 저도 한 잔 따라 드릴게요.”
사장이 인호와 이민정의 잔을 채워준다.
건배한 후 소주를 마신 인호가 고기를 굽는 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릴 때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거칠게 몸을 떤다.
“민정아.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바비큐장을 벗어나며 휴대폰을 꺼낸다.
“여보세요. 어, 유 형사.”
전화를 한 사람은 유 형사였다. 인호는 차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앉는다.
- 소장님. 아까 부탁하신 것 알아봤습니다. 태평산장. 거기 산장지기 이름이 강한수 맞아요?
“어, 맞아.”
점심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사장과 대화를 나눌 때 그의 이름을 알아두었다.
- 3년 전에 그 산장을 인수했네요.
3년 전부터 산장 일을 시작했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 나름 잘 나가는 레스토랑 주인이었어요.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레스토랑 정리하고 산장을 구입한 거죠. 그런데 조사해 보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더라고요.
“사정? 어떤 사정?”
- 딸이 많이 아팠대요.
인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사장은 자기 딸이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쳐도 딸이 있는 병원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 그때 우연히 강한수 씨가 방송을 탔어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3년 전쯤인가 국내 무속인들 다룬 다큐 있었잖아요. 소장님 아시는 분들도 출연했던 다큐.
“아-, 기억나네.”
계룡산 박갑수와 지리산 만신이 출연했던 다큐다. 한국의 무속인들에 대한 방송을 준비하며 그 두 사람을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때 지리산 만신이 굿을 했었잖아요. 그 굿을 한 게 강한수 씨였어요.
인호가 기억을 더듬어본다.
만신이 출연한다고 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티비를 봤었다. 그때 만신은 분명 굿을 했었다. 하지만 어떤 굿이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아픈 딸을 고치려는 아버지의 마음에 토속신앙까지 찾게 만든 것이리라.
그러나 그 방법으로도 딸을 고치지 못하고 딸은 병원에 둔 채 깊은 산속에 들어왔다?
- 그 방송 이후에 부인하고 이혼하고 레스토랑 팔고 딸하고 함께 그 산장으로 들어갔다고 하네요.
인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지금 뭐라고 했어? 딸하고 함께 산장으로 들어왔다고? 딸이 병원에 있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