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71화 (171/190)
  • 제171화

    “형 뒤에요.”

    “으아아아악-!”

    땡초가 찢어질 듯 비명을 지르며 다시 정원으로 뛰쳐나간다.

    “쯧쯧, 하여튼 겁은 많아서.”

    혀를 차는 인호가 피식 웃으며 묻는다.

    “안 그래?”

    땡초가 서 있던 곳에 한 아이가 서 있다. 이제 열 살 정도 되었을 것 같은 아이다. 푸른 기운에 감싸인 아이는 망령이었다. 아마도 땡초가 말한 우유를 마신 망령이 저 아이인 듯싶다.

    “이 집에 사는 거야?”

    “네.”

    “다른 사람 집이잖아. 네가 있으면 이곳에 사는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 있어.”

    “알아요. 하지만 갈 곳이 없어요.”

    “가야 할 곳으로 가면 되잖아. 아저씨가 도와줄까?”

    아이가 고개를 흔든다.

    “기다려야 해요.”

    “누굴?”

    “엄마.”

    “엄마? 엄마가 어디 가셨는데?”

    “잘 몰라요.”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아이를 바라본다.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 엄마를 기다린다는 아이의 말이 순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때 문이 조금 열리며 땡초가 고개를 내민다.

    “정말 뭐가 있어?”

    “네, 있어요. 지금 대화 중이고. 이리 와봐요.”

    땡초가 주뼛대며 인호의 곁으로 다가온다. 인호가 땡초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친다. 땡초의 눈에 잠시 푸른 기운이 머물렀다 사라진다.

    “어머, 시발 깜짝이야.”

    땡초는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보고는 인호의 뒤로 몸을 숨긴다.

    “그, 그거야?”

    “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일행이 거실로 자리를 옮긴다.

    “우유 좋아하지?”

    인호의 물음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가 땡초를 바라본다.

    “왜? 뭐?”

    “우유 마시고 싶다잖아요.”

    “어?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땡초는 아이의 눈치를 보며 주방으로 가 우유 한 잔을 따라 가져온다. 아이는 땡초가 우유를 앞에 내려놓기 무섭게 단숨에 비운다.

    예상했듯이 아이는 일반적인 망령들처럼 우유의 기운만 흡수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우유를 마실 수 있었다.

    “대단하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야?”

    “뭐요?”

    “음식 먹을 수 있게 된 것 말이야. 처음부터 음식을 먹을 수 있었어?”

    “아니요. 정말 오랫동안 굶었어요. 어쩌다 먹을 것이 있어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뚱보처럼 먹을 것에 맺힌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너- 예전에 여기 있었다는 고아원에 살던 아이구나?”

    땡초의 물음에 아이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가 고아원 자리였어요?”

    “응. 십몇 년 전까지 그랬다고 하더라. 땅 주인이 고아원 사람들 다 쫓아내고 자기 집 지었다고 하데. 그러다 망해서 집을 팔았고 때마침 이 근처에 전원주택 단지를 지으려던 건설회사가 매입한 거지.”

    이제야 아이가 엄마를 기다린다는 아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얼굴은 기억나고?”

    “머리가 길어요. 입술이 빨갛고. 눈이 예뻐요.”

    아기 시절에 보았던 어머니의 얼굴을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긴 머리에 입술을 빨갛게 칠한 눈이 예쁜 여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엄마가 꼭 찾으러 온다고 했어?”

    “네. 그래서 엄마 기다려야 해요.”

    “우유 더 줄까?”

    아이가 고개를 흔든다.

    “하루에 한 잔만 마시면 돼요.”

    “들었죠. 하루에 한 잔이면 된대요.”

    “어. 알았어.”

    망령이라는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눈에 보이면 오히려 두려움이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더욱이 이제 열 살 남짓의 아이이지 않은가.

    땡초는 무섭다기보다는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이름이 뭐야?”

    “승주. 정승주.”

    “좋은 이름이네. 그런데 승주는 왜 죽은 거야?”

    죽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다.

    “아팠어요. 원장 아버지가 치료하려고 많이 노력하셨는데 수술을 받지 못했어요. 원장 아버지가 저보다 먼저 돌아가셨어요.”

    “응? 어째서?”

    “원장 아버지에게 매일 찾아와서 나가라고 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원장 아버지가 돈을 빌리러 다녔는데 밤에 차에 치여 돌아가셨어요.”

    그 뒷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승주도 죽었을 것이고 고아원의 남은 아이들은 여러 보육 시설에 분산되어 떠났을 것이다.

    “너희들을 쫓아내려 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거야?”

    “처음에는 그러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어째서?”

    망령들의 원한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원한을 품은 망령들이 달리 악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쫓아낸 아저씨 딸도 아팠거든요. 그 아저씨가 우리 쫓아낸 이유가 아픈 딸 때문이었어요. 딸을 위해 정원이 있는 집이 필요했거든요.”

    “그 딸도 죽었어?”

    “네. 저하고 잠시 같이 있다 저승사자 따라 떠났어요.”

    “그렇구나.”

    잠시였겠지만 그 아이가 곁에 있었을 때 승주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여기서 살 생각이고?”

    “엄마 기다려야 해요.”

    “흐음-.”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이름이 승주야?”

    “네. 엄마가 이름하고 생일을 적어뒀어요.”

    “좋아. 아저씨가 승주 엄마를 찾아볼게.”

    승주가 꾸벅 고개 숙인다.

    “감사합니다.”

    “대신 승주는 엄마 찾는 동안 이 집에 다른 망령들 오지 못하게 지켜줘야 한다. 그럴 수 있지?”

    “네. 지금도 주변 다른 망령들은 저 때문에 이 집에는 못 들어와요.”

    “그럴 것 같아.”

    망령들 중 유난히 강한 기운을 품은 이들이 있는데 대부분 나이가 많지 않은 망령들이다. 이유야 뻔하다. 그들의 영혼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형. 들었죠? 승주는 형한테 뭔가 하려는 게 아니에요. 하루에 우유 한잔에 최고의 경호 망령을 고용하신 거예요.”

    “하하, 그러게. 고맙다, 승주야. 혹시 다른 것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 아저씨가 다 사줄게.”

    승주가 고개를 흔든다.

    “우유만 있으면 돼요.”

    * * *

    송창민과 이혜수가 정원으로 나간다.

    “준비 다 해놨어요.”

    사장이 웃으며 두 사람에게 손짓한다.

    사장은 바비큐를 할 수 있게 숯불까지 모두 지펴 놓았다. 송창민이 미리 준비해 온 고기와 쌈 등을 테이블에 세팅한다.

    “사장님. 저것들은 뭐예요? 엄청 예쁜데요?”

    바비큐장 주변에 특이한 모양의 전구들이 빛을 내고 있다. 박쥐 모양, 호박 모양 등 이상한 것들이 잔뜩이다.

    “하하, 두 사람도 우리 산장 소문 듣고 온 거잖아요. 그래서 저런 것으로 장식 좀 해 봤어요.”

    “아-, 그러셨구나.”

    “후원에서 온천 했어요?”

    “네. 엄청 좋던데요. 피로가 싹 사라져버렸어요.”

    이혜수의 말에 사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다른 곳처럼 물 데워서 온천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천연 온천이거든요. 손님들 없을 때 가끔 나도 온천욕 즐겨요. 피부에 참 좋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 피부 탱탱해진 거 보이시죠? 화장도 엄청 잘 먹는 것 같아요.”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혹시 온천 하면서 뭐 다른 걸 보진 못했고요?”

    “또 뭐가 있었어요? 아쉽게도 못 봤는데. 아-, 안개가 많이 끼어서 그랬나 봐요.”

    “안개요? 산기슭이라 그래요. 그럼 맛있게들 먹어요. 필요한 것 있으며 말하고요.”

    사장이 산장 안으로 들어가자 송창민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굽기 시작한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카메라를 삼발이에 거치시킨 후 촬영을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대망의 바베큐 파티입니다. 아참, 바베큐 하기 전에 후원에 있는 노천 온천에서 온천욕 했거든요. 정말 좋았어요. 너무 헐벗은 상태라 차마 촬영은 할 수 없었어요. 이해해 주세요.”

    이혜수가 멘트를 날리며 송창민이 구워 준 고기를 한 점 쌈에 올린다.

    “자-, 여기 마늘, 고추 넣고 쑥갓도 좀 넣고. 우와-, 엄청 커졌네요. 구독자님들도 먹고 싶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함께 먹도록 해요. 전 배를 가득 채운 후 이 귀곡산장의 미스터리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쌈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송창민은 이혜수를 바라보다 주변을 살핀다. 이 바비큐장 역시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꼽은 심령사진 스폿이었다.

    지금 이혜수가 앉아있는 곳 뒤쪽으로 귀신이 찍혔다고 한다. 정확히는 돌로 만든 석등 옆이었다. 그 심령사진을 본 사람들은 불빛 때문에 만들어진 석등의 그림자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사진을 본 송창민은 절대 석등의 그림자일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림자라고 하기엔 사람의 모양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얼굴 부분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안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기를 잘 먹는 이혜수를 보며 잡생각을 떨쳐낸 송창민이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일단 절반 정도 배를 채웠으니 사진 한 방 찍도록 할까요? 구독자님들도 아시죠? 이 자리가 또 심령사진 맛집 장소 아니겠습니까?”

    이혜수가 쌈장을 찍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들어 얼굴 옆에 둔 채 환하게 웃는다. 송창민은 카메라로 이혜수를 찍는다. 의도적으로 뒤쪽의 석등도 함께 찍는다.

    “헛-!”

    촬영 버튼을 누르고 플래시가 터질 때 송창민이 다급한 신음을 토해낸다.

    “창민아. 왜 그래?”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플래시가 터질 때 이혜수의 뒤쪽, 정확히 석등 쪽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하얀 물체였는데 마치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송창민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본다. 하지만 사진 속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귀신 찍혔어?”

    “응? 아니. 아무것도 안 찍혔어.”

    “히잉, 그러면 안 되는데.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데. 다시 한번 찍어보자.”

    이혜수가 포즈를 잡는다. 송창민이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든다.

    렌즈로는 이혜수를 담았지만, 그의 두 눈은 석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찍는다. 하나, 둘, 셋.”

    이혜수가 환하게 웃는다. 플래시가 터졌고 송창민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보았다. 긴 머리를 가진 여자였다.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눈동자만 위로 치켜떠 송창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확인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촬영한 사진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진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송창민이 입술을 질겅거린다.

    “창민아, 왜 그래? 귀신 안 찍혀서 실망했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어, 그래. 어서 먹어.”

    고기를 굽는 송창민의 시선이 석등에 고정되어 있다. 집게를 든 반대 손에 날이 길지 않은 과도 꼭 쥔 채였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방에 올라 온 두 사람.

    “창민아. 나 씻을래.”

    “그래. 먼저 씻어.”

    “아까 온천 해서 세수만 간단하게 하면 돼. 피곤하면 먼저 자.”

    “아니, 괜찮아.”

    이혜수가 욕실로 들어가자 송창민이 침대 건너편 커튼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송창민이 창 한쪽에 놓아둔 가방으로 가 손전등을 챙겨 다시 돌아온다.

    혀로 마른 입술을 훑는다.

    “후우-.”

    손전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 본다. 오컬트 관련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들에게 부탁하여 구한 손전등이었다.

    빛을 쏘아내는 유리에 특수한 약품을 발라 둔 것으로 불빛을 비추면 잠시지만 귀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손전등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송창민은 심령사진이고 손전등이고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바비큐장에서 여자와 눈이 마주친 이후 이곳에 정말 귀신이 살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제발 돼라.”

    송창민이 손전등을 커튼으로 향하게 한 후 스위치는 켠다.

    “으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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