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68화 (168/190)

제168화

극락 흥신소 사무실.

“누님.”

전영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에 있는 전영임을 보며 울먹이고 있었다.

전영임이 인호에게 마지막으로 전영석과 만나고 싶다고 부탁하여 인호가 마련한 자리였다.

“우리 영석이 얼굴이 왜 이리 상했누.”

전영임이 환하게 웃는다.

“누님. 누님. 보고 싶었어요.”

전영석이 전영임을 안으려 한다. 그녀가 이미 죽은 망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것이다. 허무하게 통과하는 손을 보며 전영석이 안타까워한다. 그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도 우리 영석이 많이 보고 싶었어. 일은 잘 해결되었다지?”

“네, 저기 저분하고 변호사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전영임이 인호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인호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영석아.”

“네, 누님.”

“너도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네? 뭘 다시 시작해요?”

“이 못난 누나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들 말이야. 참한 여자 만나서 결혼도 다시하고 기왕이면 아이도 낳아.”

“누님. 제 나이가 몇인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전영임이 고개를 흔든다.

“요즘은 쉰 넘어서도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산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고집 그만 부리고 누나 말대로 해.”

전영임은 전영석이 이혼하게 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돈을 버는 족족 자신에게 송금해 주니 올케가 불만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전영석이 싸구려 단칸방을 전전하는 것도 모두 자신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알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인호의 도움을 받아 전영석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러운 마음뿐이었다.

“보험금으로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어. 그리고 참한 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알겠지?”

“누님-.”

전영석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전영임이 진지하게 말한다.

“누나 때문에 인생의 좋은 시절 모두 지나갔잖아. 이제라도 널 위해 살아야지. 그래야 이 누나가 하늘에 가도 마음이 놓이지 않겠니? 누나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각하고 꼭 들어줘. 알겠지? 우리 영석이는 착하니까 누나 부탁 꼭 들어줄 거야.”

“네, 누님. 꼭 그럴게요.”

전영석이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래야 내 착한 동생이지.”

두 남매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순간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자신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의 존재 때문이다.

저승사자는 두 남매를 한참 동안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망자 전영임.”

“네, 사자님.”

“이제 그만 갑시다. 육을 떠난 혼이 생자와 오랫동안 접촉해 있는 것은 옳지 않아요. 자칫 생자에게 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동생 전영석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전영임이 곧바로 뒤로 물러선다. 전영석이 ‘누님’하며 따라붙었지만 전영임은 고개를 흔들며 한 발자국 더 뒤로 물러선다.

“사자님. 어서 가요.”

“그래요. 갑시다. 삼도천 뱃사공이 기다린 시간이 제법 되었어요.”

저승사자가 몸을 돌리자 전영임이 그 뒤를 따른다.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전영임이 고개를 돌려 서럽게 울고 있는 전영석을 바라본다.

“영석아. 행복하게 잘 살아.”

* * *

뚝- 뚝-

“소장님. 왜 그러세요?”

이민정은 이쑤시개를 계속 부러트리고 있는 인호에게 묻는다.

인호는 뭔가 못마땅한 것이 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짐작되는 것이 있다는 듯 이민정이 씨익 웃으며 인호의 맞은편에 앉는다.

“그 사람들 때문이죠?”

“갑자기 무슨 말이야?”

“전영석 씨 형들 말이에요. 괘씸하신 거잖아요.”

“후후, 이제 아주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 흐음, 맞아. 괘씸한 정도가 아니야. 내가 할머니 사시는 곳에 가서 통장 찾았을 때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

이민정이 고개를 흔들자 인호가 품속에서 통장을 꺼내 건네며 말을 잇는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그런 생각. 할머니는 막냇동생을 너무 사랑하셨어. 거기 글씨 보이지? 전영석 씨가 돈을 보낼 때마다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건물 총무에게 한글을 배웠다고 하더라. 삐뚤빼뚤한 글씨로 동생을 향한 마음을 적어두신 거야.”

“아-!”

“그리고 또 한 가지에 놀랐지. 세상에 이런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 있구나. 한평생 누나에게 희생을 강요한 인간들이 누나가 병이 들었는데도 빨대를 꽂을 생각만 하더라고. 아니, 어쩌면 그놈들은 할머니가 아팠던 것조차도 모를 수 있어. 할머니가 동생들 걱정할까 봐 말을 안 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더 괘씸해.”

이민정이 입술을 삐죽거린다. 통장 페이지를 넘기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녀를 보며 인호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토해낸다.

“나는 말이야 선량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그 존재 자체만으로 다른 이를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어. 나는 그런 것들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버러지지, 버러지.”

인호가 고개를 뒤로 젖힌다.

- 잘못했다고 해도 사랑하는 동생들인걸요.

전영우와 전영호에게 벌을 줘도 되겠냐고 묻는 인호에게 전영임이 한 말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자식처럼 돌본 동생들이지 않은가?

“그러면 소장님이 나서서 벌을 주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응?”

“그 사람들이요. 아니지. 버러지들이요.”

“그렇기는 하지? 실제로 그러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제가 아주 재미있는 걸 가지고 있거든요.”

이민정이 책상으로 가 작은 상자를 가져다 인호 앞에 내려놓는다. 상자에서 흘러나오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인호가 의아한 듯 묻는다.

“도력이 느껴지는데?”

“애주 할아버지가 준 거예요.”

“그 양반이?”

“네. 소장님이 그림 속에 들어가 계실 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거든요. 특히 전우치라는 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전우치라는 도사님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던데요. 특히 부자나 탐관오리들을 속여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민초들에게 나눠 주는 일이 많았다고 해요.”

이민정이 상자를 인호 앞으로 조금 밀어준다.

“이걸로 말이에요.”

인호가 상자를 들어 열어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상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작은 벌레였다. 자세히 보니 살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푸른 영력을 띠고 있는 죽은 벌레였다.

“이게 뭔데?”

“동물의 뇌에 기생하며 사는 벌레래요. 전우치 도사님은 그 벌레에 강력한 도술을 걸어 부자나 탐관오리의 몸에 심었다고 해요. 벌레가 그 사람들의 뇌에 자리 잡는 거죠. 그리고 벌레의 본 주인이었던 전우치 도사의 말대로 숙주를 조종한대요.”

“위험한데? 잘못하면 나 아주 많이 혼날걸.”

인호가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말한다. 이는 자칫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좀 어때요? 그 두 사람 부자라면서요. 재산의 절반, 아니 삼 분의 이 정도만 기부하게 하는 거예요. 좋은 일 하게 하는 거니까 벌을 주는 게 아니니 할머니에게 미안할 필요도 없고요. 재산의 삼 분의 일이 남으니 먹고 살 걱정도 없고요.”

“그러게. 듣고 보니 나쁜 일이 아니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도 아니고.”

이민정이 장난스레 윙크한다.

“당연하죠. 엄연히 이건 제가 독단적으로 벌일 일이니까요.”

씨익 웃던 이민정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해 인호에게 보여준다.

“그러면 그 일은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완전 신기해요.”

“뭔데 그래?”

이민정의 휴대폰을 보는 인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신기하긴 하네.”

- 당신의 담력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요상한 제목을 단 글이다.

내용은 조금 더 요상했다.

“귀곡산장?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간 사람들이 꽤 되나 봐요. 그 아래 보면 그 사람들 인증샷도 다 있어요.”

게시물을 아래로 내려보던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평범한 곳은 아닌 것 같네.”

* * *

차에서 내린 남녀가 정면의 건물을 응시한다.

전체가 통나무로 지어진 이 건물의 외벽은 전부 담쟁이 넝쿨로 뒤덮여 있었다.

“여기가 거기 맞아?”

“당연하지. 내가 다 검색해 보고 온 거야.”

여자의 물음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한다.

“정말 여기서 심령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야?”

“더 말하면 입만 아프지. 내가 여기 찾는다고 엄청 고생했다고.”

고스트 스팟을 찾아다니는 것을 주요 컨텐츠로 하는 미튜브 스트리머 ‘쫄미니’ 이혜수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확인한다.

“이번에는 진짜여야 해. 지난번에도 개망신당했잖아.”

“진짜 걱정 말래도. 열 명이 오면 열 명 모두 심령사진 찍었데. 나 못 믿어?”

남자친구이자 영상을 촬영해 주는 송창민의 말에 이혜수가 생긋 웃는다.

“당연히 믿지. 내가 오빨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그런데 예약은 한 거야?”

“당연하지. 가장 좋은 방으로 예약했어. 미튜버 쫄미니가 자고 갈 거라고 했더니 주인이 아주 좋아하던데. 서비스도 팍팍 주겠다고 하더라.”

사실 태평산장이라는 본래의 이름보다 ‘귀곡산장’으로 더 유명한 이곳의 주인은 미튜버 쫄미니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저 송창민이 자신의 여자친구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허세를 떤 것뿐이었다.

“어서 들어가자.”

송창민이 캐리어를 끌며 앞장선다.

“같이 가.”

두 사람이 산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사장님?”

송창민이 안쪽을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어서 와요.”

“깜짝이야.”

송창민이 황급히 몸을 돌린다. 그들이 들어 온 입구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얼굴의 절반을 수염이 뒤덮고 있는 뚱뚱한 남자였다.

“여기 사장님이세요?”

“네, 제가 산장지기에요. 전화 통화하신 분이죠? 성함이 송창-.”

“송창민이요.”

“아, 맞아요. 송창민 씨. 조금 일찍 오셨네요.”

“생각보다 도로에 차가 별로 없었네요.”

사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방을 미리 정리해둬서 다행이네요. 어제 묶고 간 친구들이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 놔서 아침부터 한참을 치웠거든요.”

“하하, 그런 사람들 많죠.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그런가요?”

사장의 모호한 말을 하고는 걸음을 뗀다.

“이리 오세요.”

좁은 통로를 지나니 넓은 응접실이 나온다. 사장은 통로 반대편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안내한다.

“우리 산장에서 가장 좋은 방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죠. 특히 해가 뜰 무렵에 창밖을 보세요. 안개로 둘러싸인 산의 신비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송창준은 사장의 말을 들으며 이혜수의 표정을 살핀다.

이곳에 온 이유는 오로지 이혜수 때문이다.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미튜버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히 많은 구독자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스트 스팟을 찾아다니는 조금 특이한 컨텐츠인데 개인 방송 초기에 몇 번 반짝한 이후 이렇다 할 컨텐츠를 제작하지 못하자 아름다운 외모의 약빨은 금방 떨어졌다.

그렇기에 오늘은 반드시 이혜수가 원하는 바를 이뤄야 한다.

“어때? 마음에 들어?”

“괜찮네. 통나무 냄새도 좋고.”

사장이 몇 가지 설명을 해준 후 밖으로 나가자 이혜수가 송창민에게 눈짓한다.

“오케이. 바로 준비할게.”

송창준이 방송 촬영 준비를 한다. 준비가 끝나고 이혜수가 창문을 등진 채 침대에 앉는다.

“자-, 시작하자. 하나, 둘, 셋.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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