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허름한 막창집.
인호는 빈자리에 앉아 막창과 소주를 주문한다.
“캬아-.”
노릇하게 익은 막창을 안주로 소주 한 잔을 마시니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그렇게 소주 반병 정도를 비워갈 때쯤 가게 안으로 세 사람이 들어온다.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남자와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
그들은 비어있는 자리에 둘러앉더니 막창과 소주를 주문했다.
곧 주문한 막창이 나왔고, 그들 또한 막창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소주 두 병을 비울 때까지 세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큰형인데 말이야. 조금 양보하지 그래?”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남자가 인상을 와락 구긴다.
“큰형? 큰형 맞지. 나이가 가장 많은 형을 큰형이라고 하잖아. 그런데 큰형이라는 사람이 뭘 했다고 대접을 받으려 그래?”
“영호 말이 심하네?”
“심해? 지금까지 말을 안 했을 뿐이야. 더 심한 말도 해줄 수 있어. 다 필요 없고 똑같이 나눠.”
둘째 전영호의 말에 큰형인 전영우가 인상을 찌푸린다. 전영우는 말없이 고개 숙인 채 소주잔을 비우고 있는 막내 전영석을 힐끔 바라본다.
전영우가 턱으로 전영석을 가리키자 전영호가 볼을 긁적인다.
“이렇게 하자. 내가 큰형이고 하니까 5, 영호는 둘째니 4, 영석이는 이혼도 했고 딸린 가족도 없으니 1만 하자. 1이라고 해도 3천만 원이잖아.”
전영우의 제안에 전영호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씨익 웃는다. 세 형제가 똑같이 분배했을 때보다 많은 돈을 차지할 수 있지 않은가?
전영우가 큰형이랍시고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은 배알이 꼴리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전영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며 전영석에게 묻는다.
“영석아. 네 생각은 어때? 너도 알겠지만 형하고 나는 딸린 식구들이 있잖아. 우리 석렬이 매번 사고 치는 거 알지. 이번에도 사고 쳐서 돈 많이 필요해. 그러니 작은 아버지인 네가 이해 좀 해 줘라. 형 말대로 넌 이혼했고 딸린 식구도 없잖아.”
전영석이 자신을 바라보는 두 형을 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빈 잔에 소주를 채운 채 꿀꺽 삼킨다. 술자리가 시작된 이후 전영석은 안주를 하나도 먹지 않았다.
“형들이 알아서 정리해 줘요. 내가 돈이 있어서 뭘 하겠어요? 내 한 몸 건사할 정도는 되니까.”
“그럼 1도…….”
말을 하는 전영호의 옆구리를 전영우가 푹 찌른다. 전영석이 전영호를 힐끔 바라본다.
겸연쩍었던 전영호가 헛기침을 하며 전영석의 시선을 외면한다.
“나는 먼저 갈게요. 내일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해서요.”
전영석이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하여튼 무식한 노가다꾼 새끼. 형들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 혼자 훌쩍 일어나고 말이야.”
“이해해라. 못 배워서 그런 거야. 그나저나 보험금 수령하면 뭐 할 거냐?”
“차나 바꿀까? 지금 타는 차가 연식이 좀 있잖아. 형은 뭐 할 거야?”
“나? 지방에 땅이나 좀 살까 하고.”
“뭔 소스라도 있는 거야?”
큰형 전영우는 공무원이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정보를 얻고 투자를 해서 제법 재미를 보고 있다.
“혼자 다 해 먹지 말고 나도 좀 끼워줘.”
“기다려봐. 자-, 우리도 일어나자. 그나저나 굉장히 귀찮네. 세 명이 다 같이 가야만 보험금 수령이 된다고?”
“뭐 어때? 잠시 시간 내면 되는 거지.”
두 형제가 서로를 보며 씨익 웃고는 막창집을 떠난다.
인호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중얼거린다.
“막창집에서 막장을 보는구나.”
* * *
전영석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술을 마셨기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의자에 앉은 후 그는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누님.”
전영석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울지 마세요.”
전영석이 고개를 돌린다.
의자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차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한다.
“좋은 곳에 가실 겁니다. 그러니 울지 마세요.”
“누, 누구십니까?”
“전영임 할머니 잘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 누님을 아세요?”
“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인호가 전영석에게 고개를 돌린다.
“정말 우리 누님 좋은 곳에 가실까요?”
“당연하죠. 제가 그쪽하고 조금 친하거든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네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호통을 칠 수도 있다. 하지만 누나가 정말 좋은 곳에 가길 바라는 마음에 전영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영임 할머니가 제게 부탁을 했어요.”
“부탁이요? 우리 누님은 남한테 부탁하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요.”
“그렇죠. 항상 남을 위해서만 살았지 자기를 위해 무언갈 해본 적 없는 분이니까요.”
인호의 말에 전영석이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누님. 누님. 흐어어엉-. 누님 보고 싶어요.”
“어떤 부탁인지 궁금하죠? 전영임 할머니는 아래 두 분 동생들도 사랑했지만, 유난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 동생을 아꼈어요. 비록 두 형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지만…… 아마 그래서 더 미안해하고 애틋해 한 것 같네요.”
전영석은 말없이 울기만 한다.
조실부모한 전영임은 혼자 세 동생을 키웠다.
어렸을 때는 재봉 공장에서, 나이가 들어서는 공장에서 손에 기름때를 묻혔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동생들을 입히고, 먹히고, 가르쳤다.
큰동생과 둘째는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비록 비싼 과외는 시켜주지 못했지만, 학원도 보내고 참고서도 사주었다. 하지만 막내 전영석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과로로 인해 건강이 조금씩 안 좋아진 탓에 돈벌이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전영석은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다.
두 형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할 때 전영석은 공장에서 기름때를 묻히고 있었다.
그런 막내가 항상 전영임의 눈에 밟혔다.
“전영임 할머니가 보험 가입해둔 것은 알고 있죠?”
“네.”
“수령금액은 3억입니다. 전영석 씨 형들 평소 행실을 봤을 때 영석 씨에게 보험금 제대로 나눠 주지 않을 것 같아 할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세 사람이 함께 가야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게 제약을 걸어 두었지만 착하기만 한 전영석 씨는 형들이 하자는 대로 할 거라면서 말이죠.”
조금 전 막창집에서 형들이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말을 하고 나온 차였다.
“전영임 할머니는 보험금을 전영석 씨가 수령하길 바라셨어요. 그래서 제게 따로 부탁을 하신 거죠.”
“하지만 형들도…….”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전영우. 신성 그룹 임원으로 정년퇴임 했네요. 지금 사는 집이 시가 27억이고 이런저런 재산 다 합치면 자산이 40억이 넘어요. 둘째 전영호. 전영우보다는 못해도 자산이 30억은 훌쩍 넘고요. 그런데 전영석 씨는 뭐가 있어요?”
“…….”
“한심하다고 비꼬는 게 아니에요. 전영임 할머니가 바라신 일이라 그래요. 그러니 보험금은 전영석 씨가 수령합시다. 제가 도와줄게요.”
* * *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전영우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버럭 소리친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이야기 끝난 것 아니었어? 씨발. 아니, 욕해서 미안. 막내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오늘 보험금 수령하기로 했잖아. 당일에 와서 왜 이러는 건데?”
- 미안해요, 형.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전영석이 짧게 말한 후 전화를 끊는다.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영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잠시 후, 전영호에게 전화가 왔다.
- 형. 영석이 이 새끼 갑자기 왜 그러는데?
“그걸 내가 알아?”
- 그 새끼 집에 찾아가서 끌고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니야? 작정하고 꼬장 부리면 보험금 수령 못 하잖아.
“이미 텄을 것 같은데? 전화도 안 받잖아.”
- 어쩔 수 없네. 형 몫에서 조금 더 떼어 줘요. 사실 영석이 너무 덜 챙겨줬어.
“왜 내 몫에서 떼? 네 몫을 3으로 줄여.”
- 이 형 진짜 너무하네. 아, 몰라. 난 그래도 받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나도 영석이 찾아볼 테니까 형도 찾아봐요. 먼저 찾는 사람이 연락하기로 하고.
“으악-! 씨발.”
전영우가 분노의 욕지거리를 토해낸다.
* * *
그 시각 전영석은 인호의 소개로 누군갈 만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 이길석이라고 합니다.”
이길석이 명함을 내민다.
- 법무법인 한솔 파트너 변호사 이길석.
“아, 네. 제가 법이나 그런 것을 잘 몰라서요.”
전영석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자 이길석이 환하게 웃는다.
“제 고객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이번 의뢰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었습니다. 일단 유산의 경우 사망자가 유서로 분배를 정하지 않았을 경우 균등하게 분배됩니다.”
“아, 그런가요?”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종종 있죠. 바로 영석씨 같은 경우 말입니다. 아무튼 맡은 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영석 씨도 포기하지 말고 힘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길석이 전영석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전영석은 모르지만 이길석의 몸값은 굉장히 비쌌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인 한솔의 파트너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길석이 3억의 보험금 수령에 관한 의뢰를 받은 이유는 한 사람의 부탁 때문이다.
서울지검 특수 5부 부장 검사 정재훈.
사적으로 대학 후배이고, 사법연수원 후배 기수이기도 했다.
검사 생활을 일찍 접고 변호사로 전업한 자신과는 달리 고속 승진하고 있는 후배님의 부탁이었다.
잘나가는 현직 검사에게 마음의 빚을 만들어둘 기회는 흔치 않았다.
“영석 씨는 모두 제게 맡기시면 됩니다.”
이길석이 환하게 웃는다.
* * *
상속재산분할분쟁에 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사망한 고 전영임 할머니는 세 동생이 모두 참석해야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게 정해 두었습니다. 그 말은 세 동생에게 균등하게 분배하거나, 동생들 상호 간의 협의 후 분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영우와 전영호가 선임한 변호사가 변론을 한다.
한참 변론이 이어질 때 이길석은 판사를 살피고 있었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상대 변호사의 말에 공감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길석은 조금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최준환 판사.’
그가 아는 최준환 판사라면 결국 전영석의 손을 들어 줄 것이다.
“이제 본 변호사는 보험금의 8할을 차지하겠다는 전영석 씨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변론을 마치고 앉는 상대 변호사를 보며 이길석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앞으로 나가기 전 이길석은 전영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최근 상속에 관련해 재산분할분쟁이 참 많이 벌어집니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고인이 남긴 재산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거죠. 참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준환 판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최근 법원의 판례를 보면 부양의무 이행, 부양에 관한 기여분을 따지지 않습니까? 평소 고인이 어떻게 지내던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방치하던 사람들이 가족입네 하고 돈 달라고 덤벼드는 꼴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재판관님. 변호인은 근거 없이 상대를 헐뜯고 있습니다.”
최준환 판사가 상대 변호인에게 손을 들어 제지한 후 이길석에게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고 전영임 할머니는 평생을 동생들을 위해 살아온 분입니다. 봉재 공장에서 먼지 먹어가며, 기계 제작 공장에서 기름때를 묻혀가며. 그렇게 동생들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병이 들자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동생들은 할머니를 외면했죠.”
이길석이 전영우와 전영호를 쏘아보고는 최준환 판사에게 몸을 돌린다.
“고 전영임 할머니의 통장을 증거로 제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