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65화 (165/190)
  • 제165화

    인호가 멍한 눈으로 선녀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선계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대체 선계에서 어떤 일을 겪었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보다 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선녀라고 하기에는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

    “선녀님 맞으시죠?”

    “왜요? 선녀 아닌 것 같아요?”

    하마터면 ‘네’라고 대답할 뻔했다.

    “그러니까 선녀님 말씀은 신선분들의 잔심부름도 하기 싫고, 잔소리도 듣기 싫어서 선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시단 거잖아요.”

    “맞아요.”

    “여기 혼자 있으시면 외롭지 않으세요? 이곳에 혼자 계신지가 천 년이 넘었다고 들었는데요.”

    “괜찮아요. 그리고 혼자가 아니기도 하고요.”

    선녀는 자신의 발치에서 배를 드러내고 재롱을 피우는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다. 몇 마리의 신수들이 선녀 주위를 맴돌고 있다.

    “가끔이긴 하지만 전 도사의 후예들이 들어와 말벗이 되어 주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애주가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기도 했어요.”

    “이것저것이요?”

    “그런 게 있어요. 아무튼 전 선계로 안 돌아갈 거예요. 그리 아세요.”

    “일단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안 오셔도 되는데요.”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저도 입장이 있어서요. 좋은 쪽으로 해결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듣자 하니 선녀님께서 이곳에 계신 것 자체가 여러 계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것이라더군요.”

    선녀가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듯 인호의 시선을 외면한다.

    “쉬고 계십시오.”

    * * *

    인호가 이형표를 쏘아본다.

    “다 알고 계셨지요? 그리고 선녀님에게 이것저것 보여주셨다고요? 설마 드라마 같은 것 보여주신 겁니까?”

    이형표가 뜨끔한 표정을 짓는다.

    딱 봐도 이형표에게 놀아난 것이 분명했다.

    “혹시 명계와 선계에서도 알고 있습니까?”

    “알았다면 이렇게 지켜만 보지 않았을 테지. 물론 안다 해도 그들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명계나 선계는 인간계에 관여할 수 없다. 인호가 특별한 존재이기에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뿐이다.

    “제 입장이 곤란해진 건 아시죠?”

    “곤란하기는. 어차피 너 이전의 모든 이들이 내기에서 졌다. 내기에서 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내기에서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정작 선녀님은 설득하지 못했잖아. 당사자가 가기 싫다는데 어떻게 하라고? 그리고 덕분에 너도 좋은 걸 얻지 않았느냐.”

    자신의 몸에 새겨진 죽음의 기운을 도술에 응용해 사용할 수 있는 법을 익힌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래서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못하시겠다?”

    이형표가 딴청을 피운다.

    “전 이대로 부장님께 보고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내기에서 이겼으나 누군가가 수작을 부려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누가 수작을 부렸다 그래?”

    “선녀님께 이상한 사상을 주입하지 않았습니까?”

    “아니거든. 그저 바뀐 세상이 궁금하다고 하셔서 이것저것 보여드린 것뿐이거든.”

    “그게 그거거든요. 아무튼 전 보고 드릴 겁니다. 나머진 부장님과 알아서 해결하세요.”

    “그 미친…… 아니, 부장님 만나고 싶은 마음 없거든?”

    딱-

    이형표가 손가락을 튕기자 무릉도원도가 둘둘 말린다.

    “난 가련다. 어디로 갈지 모르니 찾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선 이형표가 황동호에게 말한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몇 가지 가르쳐줄 테니 그리 알고 있거라.”

    “네, 스승님.”

    이형표가 사무실을 나서려 할 때였다.

    또각- 또각- 또각-

    일정하게 들리는 하이힐 굽 부딪치는 소리에 이형표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주위를 살피다 창문으로 다가간다.

    “미안하지만 이리 나간다.”

    “위험합니다.”

    “저 미친년 만나는 게 더 위험하거든.”

    창문을 열고 이형표가 뛰어내리려 할 때였다.

    “거기서 뛰어내리면 그대로 명부로 끌고 갈 줄 알아요.”

    “흐익-!”

    이형표가 깜짝 놀라 천천히 몸을 돌린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허리에 손을 얹고 있는 부장을 바라본다.

    “오셨소. 그간 격조했습니다.”

    “그랬죠. 내가 나타날 것 같으면 매번 도망 다녔으니까요.”

    “하, 하하. 누가 도망 다녔다고 그럽니까? 그저 일이 바빠서 그런 것뿐이지.”

    부장이 이형표에게 손을 내민다. 이형표가 어색하게 웃으며 부장의 손을 잡으려 한다.

    “우리 사이에 악수는 무슨…….”

    부장이 이형표의 손을 탁 치고는 짧게 말한다.

    “무릉도원도.”

    “아니 되오. 그것은 사문의 보물이오. 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우리 도문이 반드시 지켜야 할 물건이오.”

    “두 번 말 안 해요. 이번에는 상제께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계세요. 그리고 내기에서 졌잖아요. 약속은 지켜야죠.”

    “내기에서 진 것은 사실이지만 선녀님이 가기 싫다고…….”

    “적당히 하죠?”

    부장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이형표가 딴청을 피운다.

    “이승에 있어선 안 될 존재라는 것 잘 알잖아요. 그간 머문 것으로 충분할 테니 이만 가야 할 곳으로 보내 드리죠.”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 않소.”

    “지금이야 제가 왔지만, 다음에는 누가 찾아올지 몰라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끄응.”

    이형표가 앓는 소리를 내고는 무릉도원도를 꺼낸다.

    “선계에 돌려줄 생각이시오?”

    “그래야죠.”

    “부디 선녀님께 해가 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오.”

    “제게 부탁해 봐야 소용없어요.”

    부장이 이형표의 손에서 무릉도원도를 낚아챈다.

    “에잉. 다시는 볼 일 없었으면 좋겠소.”

    이형표가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드디어 회수했네요. 인호 씨 수고 많았어요.”

    “하지만 선녀님이 선계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던데요.”

    “그건 선계에서 알아서 할 문제죠. 그동안 ‘내기’에서 이기지 못해 조치를 취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다행히 인호 씨가 내기에서 이겼네요. 상제께서 기뻐하실 거예요. 저는 바빠서 이만 돌아갈게요. 다음에 봐요.”

    부장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진다.

    황동호가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떠나자 사기꾼과 영감, 뚱보가 차례로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겁들은 많아서.”

    “난 빼라.”

    “네, 영감님 빼고요.”

    사기꾼이 인상을 찌푸린다.

    “부장님도 그렇지만 그 애주인지 고주망태인지 하는 도사는 정말 최악이야. 가슴속에 구렁이 몇 마리는 품고 있는 것 같거든.”

    인호가 망령들을 보며 생긋 웃으며 말한다.

    “지금까지 오래 쉬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해야죠? 나가서 일들 하세요.”

    * * *

    인호에게 일을 하라며 떠밀려 밖으로 나간 영감이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한 시간 정도가 흐른 후였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것인지 얼굴이 주름으로 가득한 할머니 망령이 영감과 함께 왔다. 입고 있는 옷만 봐도 살아생전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다 저승에 가지 않고 이승을 떠돌고 계세요?”

    “여기 영감님이 절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할머니는 말을 하면서도 인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온 듯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말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인호가 환하게 웃는다.

    “할머니. 어떤 일인지 몰라도 제가 도와 드릴게요. 그러니 제게 다 말씀해 보세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다름이 아니라…….”

    * * *

    “아-, 벌써 다른 사람이 입주했다고요?”

    “네. 이 근처 고시텔이 인기가 많아요. 빈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니까요.”

    공인중개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호가 한숨을 푹 내쉰다.

    “말씀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온 인호가 길 건너 고시텔을 바라본다. 영감과 함께 사무실에 온 할머니가 최근까지 살았던 곳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고시텔 안으로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창문이 열리며 총무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인호를 힐끔 바라본다.

    “무슨 일로 오셨죠?”

    “513호 때문에 왔는데요.”

    “513호요?”

    총무가 고개를 갸웃하다 ‘아’하고 신음을 토해낸다.

    “거기 새로운 사람 입주했는데요. 혹시 할머니 동생분이세요?”

    “네? 아, 그렇죠.”

    “할머니가 동생들 이야기를 자주 해 줬어요. 딱 보니 막내 동생이네요. 위 두 형들하고 나이 차이가 조금 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총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인호를 쏘아본다.

    “동생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할머니를 한 번도 안 찾아와요?”

    “그게- 미안합니다.”

    “나한테 왜 미안해요? 사과받아야 할 분은 할머닌데 이제 사과도 못 받으시겠네요.”

    인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처음 알고 신고한 사람이 고시텔의 총무라고 했다. 평소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도움도 많이 주었다고 한다.

    “정말 미안한데요. 새로운 입주자에게 양해 좀 구할 수 있을까요? 할…… 아니, 누님 방을 조금 보고 싶어서요.”

    “잠시만 기다려 봐요. 조금 전에 들어갔거든요.”

    총무가 인터폰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시간을 오래 드리지는 못하겠다고 하시네요.”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다.

    딩동-

    문이 열리며 20대 초반의 여자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연락하신 분?”

    “네.”

    “들어오세요.”

    활짝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가자 여자가 밖으로 나가며 말한다.

    “사정이 딱한 건 알겠는데 시간은 오래 못 드려요. 10분 정도면 될까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사랑하는 분을 떠나보내는 일이잖아요.”

    총무가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 한 것 같다.

    문이 닫히고 인호가 고시텔 안을 살핀다. 너무나도 좁은 곳이다. 이곳에서 외롭게 죽어갔을 할머니를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하다.

    “휴우-.”

    한숨을 토해낸 인호가 침대에 앉는다. 붙박이 책상이 바로 옆에 있다. 서랍을 천천히 열어 빼낸다. 서랍을 빼낸 곳 안쪽으로 손을 넣어 위쪽을 더듬거린다.

    찌익-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던 봉투를 떼어낸다. 봉투 안에는 열 개가 넘는 통장과 몇 가지 서류 등이 담겨 있다. 통장 중 하나를 열어본다.

    “하, 하하.”

    인호가 웃는다. 유쾌해서 웃는 웃음이 아니다. 인호의 눈 주변이 빨갛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뱉기를 반복한다. 감정을 추스른 후 봉투를 정장 속주머니에 넣고 서랍을 다시 끼우고 밖으로 나간다.

    “벌써 가시게요?”

    인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운 내세요.”

    인호의 눈이 빨간 것을 본 여자가 힘내라는 듯 주먹을 쥐고 말한다.

    “감사합니다.”

    인호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걸음을 뗀다. 몇 걸음 옮기다 인호가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기운 낼 겁니다.”

    다시 걸음을 떼는 인호.

    짐승이기에 하지 못하는 일이 있고, 인간이기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그런 인간들이 짐승도 하지 않을 짓을 벌이곤 한다.

    “그래야 짐승만도 못한 놈들 혼을 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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