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64화 (164/190)

제164화

“네게 불, 물, 바람 등의 기운을 다루는 법은 알려주지 않을 거야. 그걸 배우기에는 장소도 좀 안 좋고. 너와 썩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네게 알려줄 것은 단 한 가지.”

황동호가 손가락 하나를 편다.

“기운을 끌어내는 법이야.”

황동호가 수결을 맺는다. 그의 손 주위로 희미한 기운이 모여든다. 하지만 그 기운은 느껴지기 무섭게 소멸되어 사라진다.

“제기랄. 무저갱이라서 그래.”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자연의 기운도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원래 실력이 모자란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는 뜻이야.”

“오해하지 않습니다.”

황동호의 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인호 아니던가.

“자-, 한 번 해보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늘과 땅에 네가 기운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거야. 오른손은 위로 왼손은 아래로. 각기 손바닥이 하늘과 땅에 보이게 해.”

인호는 황동호를 따라 한다.

“그 다음은 네게 필요한 기운을 분리하는 거야. 너야 사용할 기운이 하나뿐이니 이 부분은 생략이 가능하겠다. 다음은…….”

황동호를 따라 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황동호가 피식 웃는다.

“이제 겨우 따라 하는 수준인데 뭘 바란 거냐?”

“하하, 바라긴요.”

단순히 손을 움직이는 동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따라 해보니 상당히 어렵다.

틀리기를 반복하던 인호가 답답했는지 소매 단추를 풀러 걷어 올리고는 황동호를 따라 한다.

인호를 물끄러미 보던 황동호가 의아한 듯 묻는다.

“그 문신 말이야.”

“문신 아니라니까요.”

황동호는 인호의 몸에 새겨진 문양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다.

“그냥 문신이라고 하자. 남들이 볼 때는 문신 맞거든. 아무튼 그 문신이 왜 그대로 있는 거지?”

“무슨 말이에요? 이건 안 없어져요. 물론 최근에 조금 없어지긴 했지만.”

“그런 말이 아니야. 말했잖아. 그 문신. 네 의지와 상관없이 새겨지긴 했지만 죽음의 기운을 품고 있잖아.”

“그렇죠.”

“조금 전 봤지?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나도 힘을 사용할 수 없어. 그런데 어떻게 죽음의 기운을 품은 그 문신이 멀쩡할 수 있는 거냐고.”

인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황동호가 모르는 걸 그가 알 턱이 없었다.

“평소 그 기운 사용할 때 어떻게 해?”

인호가 시범을 보여준다. 검지로 반대편 손목의 문양을 푹 찌른다. 검지가 단번에 검게 물든다. 인호는 그것을 결계를 펼치기도 하고, 작은 단검을 만들기도 한다.

“워-. 대단한데.”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황동호가 손가락을 튕긴다.

“혹시 드래곤공이라는 만화 본 적 있어?”

“그거 안 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거기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는 곳 알지?”

“당연하죠. 하루가 일 년이 되는 곳이잖아요.”

“그래. 생각해 보니까 이 무저갱이 네게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 될 수 있겠다.”

황동호가 빠르게 수결을 맺는다.

“분리, 응집, 증폭, 폭발.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딱 이 네 가지만 배워.”

* * *

무릉도원 내 분지.

‘도원’답게 커다란 복숭아 나무가 중앙에 존재한다. 그 아래 평상에 이형표가 누워있다. 복숭화꽃 내음을 맡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형표가 벌떡 일어선다. 가늘게 뜬 눈으로 멀지 않은 곳 공간을 응시한다.

콰르르르-

공간이 일그러진다. 당장이라도 세상이 무너져 내릴 듯 요란한 폭음이 연이어 울린다.

“미친…….”

이런 증상에 왜 나타나는 것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이형표의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무저갱을 힘으로 부순다고?”

말이 되지 않는다. 무저갱은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자신의 제자가 제법 술법이 쓸만하지만, 기운을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제자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 녀석인가?”

제자 때문이 아니라면 함께 들어간 인호 때문일 것이다.

인호가 옥황상제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인호의 아버지인 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20대에 요절할 이들이 더한 수명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무저갱은 아무리 옥황상제라 해도 간섭할 수 없는 공간이다. 무저갱을 생성한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아주 작은 부분도 간섭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폭발하려 한다.

쩌정-

이형표가 눈을 부릅뜬다. 공간이 찢어지며 어둠이 밀려 나온다. 무저갱의 어둠이다. 어둠은 무릉도원의 찬란한 햇살에 소멸되어 사라진다. 찢겨진 공간에서 인호와 황동호가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의 옷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 모조리 찢어져 있었다.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릴 정도의 천 조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스승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랫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한 제자의 불민함을 용서하십시오.”

“오, 오랫동안? 도대체 저 안에 얼마나 있었던 것이냐?”

“십 년까지는 센 것 같은데 이후로는 날짜 세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시, 십 년?”

이형표가 놀라서 기겁하자 황동호가 고개를 숙이고 낄낄거린다.

“한 보름 있었습니다.”

인호의 말에 이형표가 황동호를 죽일 듯 쏘아본다.

“보름이라. 그간 뭘 깨달았기에 무저갱을 부수고 나올 수 있었던 거지?”

“동호 형님께 기초적인 도술 사용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물론 본격적인 도문의 도술을 배운 건 아니고요.”

“보름 동안 도술을 배우고 무저갱을 찢었다?”

“정확합니다.”

이형표가 황동호에게 말한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인호가 말한 그대롭니다. 보름 동안 도술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다만…….”

“다만? 빨리 얘기하지 못해?”

“무슨 연유에서인지 인호의 몸에 새겨진 죽음의 기운이 무저갱에서 소멸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형표가 인호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검은 문양들을 바라본다.

“그렇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 어떻게 무저갱에서 죽음의 기운이 멀쩡히 있을 수 있지? 설마-.”

이형표가 위쪽을 쳐다본다.

명계나 선계의 누군가가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 수작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이형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인호를 바라본다.

“어떤 수법으로 무저갱을 부순 것이냐.”

“동호 형님이 가르쳐준 대로 했습니다.”

인호가 자신의 손목을 손가락으로 푹 찌른다. 검게 물든 손가락을 털자 검은 기운, 죽음의 기운이 흩어지려 한다. 인호의 한쪽 손이 빠르게 수결을 맺는다.

“분리.”

주변의 기운에 섞여들려던 죽음의 기운이 한곳에 모여든다. 인호가 다시 수결을 맺는다.

“응집.”

죽음의 기운이 작게 응집되자 인호가 ‘증폭’이라고 말한다.

고오오오-

주변의 대기가 부르르 몸을 떤다. 죽음의 기운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폭발.”

죽음의 기운이 폭발한다. 하지만 폭발을 일으키려는 순간 인호가 죽음의 기운을 흡수했기에 폭발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허, 허허.”

이형표가 허탈한 듯 웃는다.

“보름 걸렸다고? 크크, 보름 만에 무저갱을 부수고 나올 정도가 되었다고?”

인호와 황동호를 무저갱에 넣은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현실에 쫓기듯 살아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갖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무저갱을 만드는 술법은 굉장히 고차원적 술법이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런 무저갱이 파괴되었다.

수고야 들겠지만 무저갱은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인호가 지닌 죽음의 기운은 이형표도 알고 있었다. 인호의 아버지 은호 역시 죽음의 기운을 품고 있었으니.

하지만 무저갱을 파괴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두 번째 내기의 승자는 제가 맞습니까?”

“…… 그래. 네가 이겼다.”

이형표가 순순히 내기의 패배를 시인한다.

“세 번째 내기는 필요 없을 것 같군요.”

“본래라면 그런데…….”

이형표가 말끝을 흐리자 인호가 눈살을 찌푸린다.

“아닌 겁니까?”

“나는 당연히 네가 무저갱을 빠져나오지 못할 줄 알았지. 그래서 마지막 내기를 준비한 거고.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 번째 내기가 가장 중요한 내기야.”

“어떤 내긴데 그러십니까?”

이형표가 곤란하다는 듯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다 한쪽을 바라본다. 대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공간이다.

“이곳의 주인을 설득하는 일.”

* * *

“아니. 도대체 왜 돌아가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인호가 버럭 소리 지른다.

으르렁- 캬아아악-

동물원에서 보던 것보다 두 배의 덩치를 가진 호랑이와 몸길이가 이십 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화려한 색을 지닌 뱀, 녹용으로 쓰면 일 년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뿔을 지닌 사슴, 마치 인간처럼 분노의 눈빛을 보내는 원숭이.

딱 봐도 신수의 반열에 오른 존재들이 일제히 인호에게 분노의 감정을 토해낸다. 하지만 인호는 그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이 세상 자체가 전우치가 만든 세상이다. 저 신수들 역시 그 세상에 속한 존재들일 뿐이다. 현실에서 알고 지내는 미호나 최근 만났던 이무기 같은 진정 무서운 존재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호의 시선은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고정되어 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정말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의 미녀였다. 하늘하늘한 옥빛의 옷을 입고 있다.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선계로 안 돌아가려는 이유가 뭡니까?”

여자는 바로 전우치가 선계에서 데리고 나왔다는 선녀였다.

“옥황상제님과 선계의 신선님들이 선녀님이 돌아오시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지 않습니까?”

컹-

호랑이가 지면을 박차고 올라 인호의 앞에 떨어지며 위협하듯 입을 쩍 벌린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주둥이를 확 찢어 버린다.”

인호의 양손이 각기 다른 수결을 맺는다. 그의 손에 죽음의 기운이 모여든다.

“그만 하세요.”

선녀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왜 가기 싫은 건지 물었죠?”

“네.”

“당신 같으면 돌아가면 종살이할 거 뻔히 알면서 돌아가고 싶겠어요?”

“종살이요? 그게 무슨 말이죠?”

“거봐. 아무것도 모르잖아. 신선들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아세요? 사고란 사고는 다치고 다니면서 뒤치다꺼리는 매번 우리 선녀들에게 다 시켜. 가끔 명계에서 손님이라도 와 봐요.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비질을 해야 해요. 선계 안 가봤죠? 안 가봤으니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선계에 복숭아 나무가 몇 그루 있는지 알아요? 쓸면 나뭇잎 떨어지고, 또 쓸면 또 떨어지고. 눈 내릴 때 길 쓸어 봤어요?”

인호가 입을 쩍 벌린 채 어버버한다.

“그것뿐이면 말도 안 해. 우리들이 자기들 비서야 뭐야? 자기들은 손이 없냐고, 발이 없냐고. 왜 매번 우리들한테 심부름을 시키는데? 아-, 짜증 나!”

인호의 앞을 막고 있던 호랑이가 슬슬 뒷걸음질 친다.

“짜증 난다고!”

* * *

“스승님. 편안해 보이십니다.”

“그래 보여?”

“네. 인호가 두 번째 내기에서 이겼는데 아무렇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괜찮아. 저 녀석 절대 성공 못 해.”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선녀도 선계를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안 된다니까. 선녀님이 예전의 순딩순딩한 선녀님이 아니거든.”

이형표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선녀님께 한국 드라마 많이 보여 드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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