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63화 (163/190)
  • 제163화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 거야?’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쉽게 바닥에 닿지 못했다. 족히 수십 미터는 잠수해 내려온 것 같다.

    황동호의 술법으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지만, 끝도 없이 깊게 들어가니 괜히 긴장되었다.

    한참이나 더 잠수해 들어갔을 때였다. 인호는 시커먼 무언갈 볼 수 있었다.

    ‘동굴.’

    수중동굴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동굴을 잠시 바라보다 결국 그곳으로 들어간다. 동굴은 수평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다. 인호의 눈에 푸른 기운이 일렁이고 어둠이 걷혔다.

    “푸하!”

    수중동굴의 끝에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인호가 거칠게 숨을 토해낸다. 얼굴의 물기를 닦아낸 후 주위를 살필 때였다.

    “까딱했으면 내기에서 질 뻔했다. 그치?”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손가락으로 엽전을 튕기고, 받았다를 반복하고 있는 이는 이형표였다.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어떻게 오긴 잘 왔지.”

    물 밖으로 나온 인호가 이형표를 쏘아보며 말한다.

    “이거 완전히 반칙 아닙니까?”

    “반칙? 어째서?”

    “이런 곳에 엽전을 숨겨 두면 어떻게 찾습니까?”

    “넌 찾았잖아.”

    무슨 말을 하려다 인호가 입을 꾹 닫는다.

    “아버지도 찾았습니까?”

    “은호도 찾았지. 그때는 조금 찾기 쉬운 곳에 엽전을 던졌거든.”

    “첫 번 째 내기는 제가 이긴겁니까?”

    이형표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팅-

    이형표가 튕긴 엽전이 인호에게 날아온다. 인호가 엽전을 낚아챈 후 살핀다. 사극이나 박물관에서 본 기억 속 엽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번째 내기는 뭡니까?”

    “성미가 급한 건 은호하고 똑같구나.”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죠.”

    “일단 밖으로 나가자꾸나.”

    딱-

    이형표가 손가락을 튕긴다.

    인호는 갑자기 밀려오는 어지럼증에 비틀거린다. 이내 몸의 균형을 잡은 인호가 놀란 듯 주위를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수중동굴 안이 아닌 옹달샘 밖으로 나와 있었다.

    “어떻게 한 겁니까?”

    이형표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한다.

    “무릉도원도의 지킴이가 갖는 작은 권능이라고 알고 있거라.”

    이형표가 황동호를 쏘아본다.

    “제자라는 녀석이 스승이 내기에서 지길 바라는 게냐?”

    “그러라고 함께 보내신 것 아닙니까? 저와 인호가 많이 각별한 사이이기도 하고요.”

    이형표가 씨익 웃는다.

    “각별한 사이라. 좋지. 어려운 상황에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 정말 낭만적이지 않느냐? 두 번째 내기에 대해 말해주마.”

    인호가 이형표의 말에 집중한다.

    “첫 번째 내기를 둘이 힘을 합쳐 해결했으니 두 번째도 그러길 바란다. 두 번째 내기는 내가 지정한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시간제한은 없다. 어떻게든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

    “스, 스승님? 설마…… 아니죠?”

    “왜 아니겠냐? 무저갱. 그곳에서 빠져나와 보거라.”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무저갱이 왜 무저갱입니까? 거길 무슨 수로 빠져나와요?”

    “옛날 생각 새록새록 나고 좋지 않으냐? 각별한 동료와 함께라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인호가 황동호에게 무저갱이 뭐냐고 묻는다. 그 모습을 본 이형표가 씨익 웃는다.

    “겪어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분지에 오면 작은 초가 한 채가 있을 것이다. 무저갱을 빠져나오면 그곳으로 오거라. 그때 세 번째 내기가 시작될 것이다.”

    * * *

    “여기가 어딥니까?”

    “무저갱…….”

    “그러니까 무저갱이 뭐 하는 곳이냐고요.”

    인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온통 어둠뿐인 공간이다. 하지만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황동호의 모습은 선명하게 보였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암흑의 공간.

    “시간이 멈춘 공간.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 그리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공간.”

    이름부터 무저갱이니 황동호의 설명이 이상하진 않았다. 다만 이런 공간이 어째서 필요한 것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황동호가 곧바로 인호의 의문을 풀어준다.

    “오래전 과거에는 도사들은 무저갱을 활용해서 사회에 폐악을 끼치는 악인들을 가두었다고 해. 시작과 끝이 없고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악인들은 끊임없이 걸으며 절망을 느끼지.”

    감옥으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무저갱을 술법으로 재현할 수 있는 도사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이제는 단 한 명. 스승님만이 무저갱을 만들 수 있게 되었어. 스승님께서는 무저갱을 악인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날 위해 사용했지.”

    “뭘 얼마나 크게 잘못했길래 이런 곳에 갇혀 있었던 겁니까?”

    “잘못은 개뿔-. 수련을 위해 갇혔던 것뿐이야.”

    인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황동호를 바라본다.

    “도사들은 오욕과 칠정에서 벗어나야 해.”

    오욕은 소리, 색, 맛, 냄새, 촉감의 즐거움의 욕망을 뜻하고, 칠정은 희, 노, 애, 락, 애, 오, 욕의 일곱 가지 감정을 뜻한다. 도를 닦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술, 여자 좋아하는 애주 님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아닙니까?”

    “크크, 그건 맞지. 하지만 네가 잘 모르는 것이 있어. 좋아하는 것과 초월한 것은 다르지. 스승님은 이미 오욕, 칠정에서 초탈하신 분이야. 그렇기에 네가 숨을 쉬는 것처럼 그것들이 스승님께 자연스러운 것이 된 것뿐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스승님은 무저갱을 내 수련을 위해 사용하셨어. 스승님의 제자가 된 후에 이곳에 갇혀 오랫동안 수련했어. 아무것도 없고, 시간이 멈춘 공간이기에 욕망과 감정을 끊어내기에는 최적의 공간이지.”

    “나가려면 어떻게 해요?”

    황동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스승님이 꺼내 줘야 나가는 거지.”

    “그러면 자력으로는 영영 못 나간다는 말인가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이 술법을 부수는 방법을 찾는다면 나갈 수 있겠지.”

    내기의 주제가 무저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형표가 순순히 꺼내 주지 않으리라.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토해내던 인호가 그대로 주저앉는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시간도 멈춘 곳이라면서요?”

    “그렇지.”

    “여기서 십 년을 있던 이십 년을 있던 상관 없다는 뜻이잖아요.”

    “맞지.”

    “그러면 천천히 생각해봅시다. 형님 스승님께 본때를 보여주자고요.”

    * * *

    이형표는 소파에 앉아 탁자에 올려둔 다리를 까딱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저…… 아니지. 할아버지지. 영감님. 커피 다 식었을 텐데 다시 타 드릴까요?”

    “영감님?”

    이형표가 발끈해서 이민정을 쏘아본다.

    “어딜 봐서 영감님이야?”

    “여든 넘으셨다면서요? 그럼 영감님이죠. 겉모습이 30대면 뭐해요? 속에 담긴 진짜가 영감님인데. 그런데 소장님하고 동호 아저씨는 언제 나오는 거예요?”

    “언제? 모르지.”

    이형표가 씨익 웃는다.

    “때가 되면 나오지 않을까?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좋을 테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런데 저 그림은 언제까지 저렇게 둥둥 떠 있는 거예요?”

    “때가 되면 접히지 않을까?”

    이민정은 여전히 허공에서 신비한 빛을 흘려내는 무릉도원도를 바라본다.

    수목화를 좋아하거나 안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딱 봐도 상당히 잘 그린 그림이다. 선들이 연결되어 만들어낸 산에서는 강렬한 기세가 느껴지고 분지를 이루고 있는 도원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영감님 때문에 여기 사는 망령들이 많이 불편해해요.”

    “크크, 상관없으니 들어오라고 해라. 다른 망령은 몰라도 영감이 날 불편해하면 안 되지. 안 그래, 영감?”

    벽에서 영감이 쑤욱 튀어나온다.

    “그걸 알면 빨리 좀 가라.”

    “나도 가고 싶지. 그런데 저놈들이 나오질 않잖아. 이대로 가면 두 놈 다신 못 돌아와. 그래도 가?”

    영감이 이형표 맞은 편에 앉는다.

    “은호 때는 두 번째 내기는 밖에서 하는 거 아니었나?”

    “바꿨어. 인호라는 녀석에게 너무 쉬운 내기일 것 같아서 말이야.”

    “악한 신수를 처치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은호도 두 번째 내기에서 죽을뻔했어.”

    “지 애비보다 낫더만 뭐.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두 번째 내기는 그 녀석에게도 도움이 될 거니까.”

    영감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 *

    몇 날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인호는 황동호와 함께 무저갱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하지만 도술 자체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황동호에게 기대를 걸긴 했지만 무저갱은 자신의 영역을 한참이나 벗어나는 것이라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인호야. 이참에 도술 좀 배워 볼래?”

    “그게 잠깐 배운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왜 잠깐이야? 말했잖아. 여긴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이야. 네 정신이 견딜 수 있다면 십 년, 백 년 동안 머물 수 있는 곳이지. 어때 배워 볼래?”

    “제가 가진 기운과 도술은 완전히 달라요.”

    황동호가 피식 웃는다.

    “그건 네 생각이고. 우리 도사들은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이용한다. 자연의 기운을 조금 뒤틀어 그때 발생하는 힘을 이용하는 것이지.”

    인호다 도술에 대한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도사들이 도술을 사용하기 위해 수결을 맺는 것은 자연의 기운을 인위적으로 뒤트는 것이다. 그리고 부적을 그리는 행위는 자연의 기운을 품은 문자, 혹은 기호를 희귀한 재료로 증폭시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도술은 마법과 비슷하다. 마법 역시 자연의 다섯 가지 기운을 뒤틀어 힘을 발휘하고, 마법 문자를 통해 여러 가지 신비한 물건들을 만들어낸다.

    “네가 가진 힘 역시 결국 자연의 일부야. 죽음 역시 자연의 순리 중 하나니까. 물론 그 기운을 풀어내는 방식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지.”

    “강들이 결국 바다에 모인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매번 위험을 가까이하는 너로서는 한 가지 무기라도 더 가지고 있는 편이 낫지 않겠어?”

    인호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형님 마음대로 가르쳐 줘도 되는 겁니까? 전에는 무슨 일인 전승이라면서요.”

    황동호가 속한 도문은 한 사람에게만 전해진다. 이형표가 하늘로 떠나게 되면 황동호가 제자를 받을 것이다.

    인호는 도문에 속할 수 있는 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것이다.

    “괜찮아. 내가 가르쳐 주려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이니까. 우리 도문 아니더라도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배울 수 있는 지식이란 말이지.”

    황동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혹시 알아? 네가 도술을 배운 후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인호의 귀가 쫑긋한다.

    이번 내기에서 이기게 되면 세 번째 내기는 시작도 하지 않아도 된다.

    - 언제든 포기할 마음이 들면 ‘제발 꺼내 주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두 번째 내기를 포기하면 세 번째 내기는 해보나 마나지.

    약 올리듯 말하던 이형표의 얼굴이 떠오른다.

    “배워 봅시다. 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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