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62화 (162/190)
  • 제162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면……. 설마 국보급 그림이거나 한 건 아니겠죠? 이런 걸 잘못 유통하면 이렇게 돼요. 철컹청컹.”

    인호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흔들자 이형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전우치 님은 엄청난 도력을 지니셨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유품도 남기지 않으셨지. 이름을 남긴 도사들은 자신의 도력으로 후대를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거든. 하지만 전우치 님은 그러지 않으셨다는 거야.”

    “왜 그랬을까요?”

    이형표가 그림을 바라본다.

    “저 그림 때문이다. 전우치 님은 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진 모든 도력을 쏟아부었지.”

    “그렇게 대단한 그림입니까?”

    이형표가 전설처럼 표현하는 전우치가 품은 도력이 보잘것없을 리가 없다.

    그 모든 것을 쏟아부은 그림이라면.

    “대단하지. 너무 대단한 나머지 명계와 선계에서도 이 그림을 탐내고 있으니까.”

    “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명계와 선계까지 탐을 낸답니까?”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명계와 신선들이 사는 선계의 존재들은 물욕을 초월했다. 그런 존재들이 고작 인간이 그린 그림 한 점을 탐낼 리 없다.

    못 믿겠다는 듯 말하는 인호를 보며 이형표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스승님께 이 그림과 관련된 비사를 듣기 전까지는 너처럼 생각했지. 하지만 스승님의 설명을 들은 후 이 그림이 지닌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명계에서 너를 부추겨 나와 내기를 시키려는 이유도 이 그림 때문이다.”

    인호는 이형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잘 듣거라. 이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하나의 세상이다. 전우치 님은 무릉도원도를 완성한 후 자신의 모든 도력을 쏟아부어 가상의 공간을 만들었다. 바로 이 그림 안에 말이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분이라면 가능했겠지. 물론 오늘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 일을 한 이유가 뭡니까? 설마 자기가 그린 그림 속에 들어가 불로장생이라도 할 생각이었답니까?”

    이형표가 고개를 젓는다.

    “한 여인 때문이다. 그 여인이 살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전우치 님은 등선을 포기하신 거야.”

    “어떤 분인지 아십니까?”

    “선녀.”

    “선녀요?”

    이형표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입가경이었다.

    “내가 말했었지? 전우치 님은 인계와 선계를 넘나들 정도의 도력을 지닌 이레귤러셨다. 그분은 평소처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계로 넘어갔지.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이 선녀라고요?”

    “그래. 선녀를 본 후 한눈에 반한 전우치 님은 그녀를 데리고 선계에서 도망쳤지. 무릉도원도를 그린 이유가 바로 그 선녀가 살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또한 선녀를 찾기 위한 선계의 눈을 피하기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했고.”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인호가 이형표를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명계에서 저와 애주 님 사이에 내기를 붙이려는 이유가 그림 속에 사는 선녀 때문입니까?”

    “맞아.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명계와 선계의 주장이지. 하지만 나와 저 녀석이 속한 도문은 조사의 유훈을 이어야 하기에 그렇게 둘 수 없다.”

    “설마…….”

    이형표가 빙긋 웃는다.

    “그 설마가 맞다. 나는 전우치 조사님의 맥을 잇고 있다. 참고로 이 내기는 30년에 한 번씩 진행되고 있다. 명계와 선계가 선택한 이가 우리 도문의 전승자를 찾아와 내기를 벌인다. 참고로 지난번 내기를 걸어 온 이가 바로 네 아버지 은호였다.”

    “아버지도 내기에서 졌군요.”

    내기에서 졌으니 여전히 무릉도원도가 애주의 손에 있는 것이리라.

    “아쉽게도 그렇게 되었지. 이쯤하면 설명은 그만해도 되겠지? 자-, 명계와 선계의 선택을 받은 정 씨 가문의 인호야. 내기에 응하겠느냐?”

    이형표가 웃는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첫 번째 내기다.”

    이형표가 품속에서 무언갈 꺼낸다.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린 엽전이었다. 이형표는 엽전을 높게 던졌다 받은 후 무릉도원도를 향해 던진다.

    “아-!”

    신기하게도 엽전이 그림에 닿자 파란 기운이 물결치듯 출렁인다. 엽전은 튕겨 나오지 않고 그림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하루. 하루 안에 저 엽전을 찾거라. 이것이 첫 번째 내기다.”

    “엽전만 찾으면 됩니까?”

    “쉬울 것 같지?”

    인호가 부정하지 않았다. 무릉도원도 속 세상이 얼마나 넓을지 모르지만, 한계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호와 함께 가거라.”

    “형님과 함께요?”

    “그래. 내가 떠난 후 이 그림을 지켜야 하는 이가 동호 아니냐.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지. 동호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겠다.”

    인호가 무릉도원도를 보며 묻는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이렇게!”

    이형표가 인호와 황동호의 뒷덜미를 잡아 그대로 무름도원도를 향해 내던진다. 두 사람의 몸이 붕 떠 무릉도원도를 향해 날아간다. 무릉도원도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몸집이 줄어든다.

    무릉도원도에서 파란 기운이 물결치더니 두 사람이 사라졌다.

    “와우-. 대단해요. 어떻게 한 거예요?”

    이민정의 물음에 이형표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웃으며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릴 뿐이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첫 번째 내기에서 이긴 이는 단 두 명뿐이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군.”

    * * *

    “이게 말이 됩니까?”

    인호가 물었지만 황동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넋이 나가 바라볼 뿐이다. 인호도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황동호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주변을 바라볼 뿐이다.

    “도대체 여기서 엽전을 어떻게 찾으라는 겁니까?”

    인호와 황동호가 있는 곳은 아주 높은 산의 정상이었다.

    그 주변으로 높이가 비슷한 네 개의 봉우리가 더 있었고, 그렇게 다섯 봉우리가 중앙 분지를 감싸고 있는 지형이었다.

    “무릉도원도에서 본 그림 그대로구나.”

    황동호가 감탄을 토해낸다.

    “감탄하고 있을 땝니까?”

    “뭐 어때서? 네 내기지 내 내기는 아니잖아.”

    “이 형님 너무하시네. 그나저나 이런 곳에서 그 작은 엽전 하나를 어떻게 찾지요?”

    산 하나하나의 높이가 상당히 높다. 나무들도 울창해 엽전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황동호가 분지를 살핀 후 인호의 어깨를 툭 친다.

    “무릉도원도를 떠 올려봐. 분지의 모습을 보니 저 봉우리와 이 봉우리가 그림의 정면이 되겠다.”

    황동호의 말을 듣고 무릉도원도를 떠올려 본다. 분지를 가로지르는 냇물이 흐르는 방향을 보니 그의 말대로다. 황동호가 왼쪽 봉우리를 가리킨다.

    “스승님께서 엽전을 던질 때 분명 저 봉우리 쪽이었어.”

    “하아-, 많은 위로가 됩니다.”

    엽전이 있을지도 모를 봉우리가 특정되었지만 답답한 한숨만 나올 뿐이다. 황동호가 걸음을 뗀다.

    “한숨을 쉰다고 엽전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일단 뭐라도 해보자고.”

    “그럽시다.”

    황동호와 함께 엽전이 떨어졌을 것이라 짐작되는 봉우리로 이동한다. 정상에서 본 것처럼 숲이 울창하다. 반대편 봉우리 정상에 오른다.

    “해변에서 바늘 찾기인데요.”

    “그렇지? 엽전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이 산을 모조리 살피는 데만 해도 며칠은 걸리겠다.”

    “맞죠?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걸 내기로 걸 수 있는 거예요?”

    황동호가 피식 웃는다.

    “스승님이 널 참 좋게 본 것 같다.”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딱 봐도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그럴 거면 나를 함께 보내지 않았겠지.”

    인호가 황동호를 바라본다.

    “엽전에는 스승님의 도력이 깃들어 있을 거야. 회수를 하셔야 하니까.”

    “설마 도력을 느낄 수 있는 겁니까?”

    “어쩌면?”

    황동호가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눈을 감은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수결을 맺는다. 그가 품속에서 곰방대를 꺼내 불을 붙인다. 뻐끔뻐끔 곰방대를 빨다 ‘후우’하고 길게 연기를 뱉어낸다.

    연기는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갖춘다. 작은 새의 모습으로 변한 연기를 향해 황동호가 말한다.

    “가서 찾아.”

    연기로 만든 새가 날개짓을 하며 날아간다.

    “저 새가 엽전을 찾는다고요?”

    “아니. 엽전이 아니라 도력이 깃든 물건을 찾는 거지.”

    “그게 그 말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인호가 불안한 듯 황동호에게 묻는다.

    “이거 반칙 아닙니까? 내기인데 형님 도움받았다고 무효라고 하면 억울하잖아요.”

    “내 도움받는 걸로 뭐라 하지 않겠다고 한 거 못 들었어?”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형님은 왜 날 도와주려는 겁니까? 전 지금 형님 스승님하고 내기를 벌이는 중 아닙니까?”

    황동호가 인호의 어깨를 툭치며 웃는다.

    “방금 이야기하면서 생각해봤는데, 니가 내기에서 지면 나도 평생 저 그림 지키고 살아야 할 거 아냐. 그러니 네가 이길 수 있게 돕는 거지.”

    * * *

    황동호가 인호를 이끈 곳은 숲 깊은 곳에 있는 옹달샘이었다. 황동호가 연기로 만든 새가 옹달샘 근처 나무에 앉아있었다.

    황동호가 손가락을 튕기자 새는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이 주변이란 말이죠?”

    “글쎄. 엽전일 수도 있고 도력을 품은 다른 물건일 수도 있겠지.”

    “이런 산속에 그런 것이 있겠어요?”

    “이 무릉도원을 만든 분이 누구인지 생각해봐라.”

    전우치라는 전설적인 도사가 만든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그의 도력을 품은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일이 없길 바라야겠네요. 어서 찾아보죠.”

    인호가 옹달샘 주변을 살핀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찾아도 엽전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주변 나무들에 올라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엽전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무릉도원도 속 세상은 밤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 거의 다 되어 가죠?”

    “두 시간 정도 남았으려나?”

    엽전을 찾기 위해 스무 시간도 넘게 옹달샘 주변을 들쑤시고 다녔다는 뜻이다.

    “하아-, 미치겠네. 차라리 악령들하고 드잡이질하는 것이 백 배는 낫겠어요.”

    인호가 옹달샘 근처의 바위에 앉아 한숨을 내쉰다.

    “이제 한 곳밖에 안 남았네.”

    “네?”

    황동호가 옹달샘을 보며 눈짓한다.

    “아-. 그리고 보니 옹달샘 안쪽은 안 살펴봤네요.”

    인호가 옹달샘 안을 살핀다. 물이 맑아 바닥까지 보일 것 같다.

    “뭐 좀 보이세요?”

    “아니.”

    “역시 꽝이죠?”

    “그건 아니고. 얼마나 깊은지 가늠이 되지 않는데.”

    “이런 작은 샘이 깊어 봐야 얼마나 깊겠어요?”

    “옹달샘 중에는 엄청나게 깊은 곳도 있다고. 승천을 기다리는 이무기가 살던 굴이라는 전설을 가진 그런 곳들 말이야. 이 옹달샘이 그런 곳일 수도 있잖아.”

    “들어가 봐야 할까요?”

    황동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엽전을 찾아야 할 사람은 너니까 알아서 결정해. 굳이 들어가겠다면 도움은 줄 수 있어.”

    황동호가 수결을 맺은 후 인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뗀다.

    “뭘 한 겁니까?”

    낯선 기운이 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을 거야.”

    “오오오-!”

    인호가 놀람에 감탄한다. 황동호가 어서 들어가라는 듯 고개를 까딱인다.

    “후딱 들어갔다 나올게요. 엽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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