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61화 (161/190)
  • 제161화

    “어디까지 듣고 온 게냐?”

    이형표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인호를 바라본다.

    “사무실에 가면 이상한 사람 한 명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말만 듣고 온 겁니다.”

    “이상한 사람? 그 미친년이 누구더러 이상한 사람이래?”

    “악령들도 부장님을 미친년이라고 하던데 대체 왜 그렇게 부르는 겁니까?”

    “크크, 명계의 미친년. 아주 유명하지. 상제께서 이승을 혼란에 빠트리는 악령들을 벌하기 위해 특별한 조직을 만드셨어. 그 미친년도 그 조직의 일원이었지. 이례적으로 빠른 승진을 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지. 알지 않느냐. 검사도 특수부에 들어가면 고속 승진하는 것.”

    예를 들면 정재훈이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일 하나만큼은 정말 잘했지. 상제의 골치를 썩이는 악령들도 그녀가 나서면 꽁지를 말고 도망쳤다니까. 다만 악령들을 처리하는 과정이 문제였어. 내 일이 아니라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지만 아주 대단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악령들 사이에 ‘저승의 미친년’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손속이 너무 잔인해 저승의 판관들도 우려를 표했지만, 상제의 신임을 받고 있기에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하지 못했지. 이제 궁금증이 풀렸느냐?”

    “네, 뭐……. 감사합니다.”

    이민정이 커피를 가져와 내려놓는다.

    “참해. 아주 참해.”

    “아, 거참 적당히 하십쇼. 다시 말씀드립니까? 손녀뻘도 훌쩍 넘지 않습니까.”

    “누가 뭐라더냐? 참한 아가씨에게 참하다고 하는 것이 죄라도 되는 거냐? 설마 그 미친년이 나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떠들기라도 한 것이냐?”

    “술만큼이나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이형표가 씨익 웃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 혹시 살아 있는 인간이 신선들이 노니는 선계로 가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느냐?”

    “수양을 해 도력을 쌓아 등선하는 것 아닙니까?”

    미호를 비롯한 신수들이 깊은 산속에서 머물며 세상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등선하지 않아도 그 맛을 아주 약간이라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설마 술과 여자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것은 아니겠죠?”

    “왜 아니겠느냐? 술을 마시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나른해진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부류는 아직 술에 진심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야.”

    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형표를 바라본다. 인호의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이형표가 말을 잇는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양이요, 여자는 음이니. 양과 음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쾌락 중 최고가 양과 음이 만났을 때 얻을 수 있느니라.”

    이형표는 마치 도법을 설파하는 도사 마냥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인호가 황동호를 바라보며 눈짓한다.

    ‘원래 저럽니까?’

    황동호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인석아. 제자라고 한 놈 있는데 스승의 편을 들지 않고 한숨이나 푹푹 쉬고 있어? 넌 스승이 창피하냐?”

    “모르셨습니까?”

    이형표가 씨익 웃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중국까지 가서 도문을 박살 내고 오는 네 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항의를 받는지 알기나 해? 네 눈에는 내가 매일 한량처럼 노는 것 같지? 중국 도문을 박살 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나오나 싶지? 네가 강해서 그랬다? 헛소리하지 마라. 중국 도가들이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그들 전부가 힘을 합치면 천둥벌거숭이인 네놈 하나 어찌하지 못할까? 다 이 대단한 스승 때문인 것이다.”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반응이 그래?”

    황동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이게 다 스승님께 배운 것 아닙니까?”

    “뭘 배웠다는 거야?”

    “귀찮은 일을 미룰 사람이 있으면 망설이지 마라. 그래서 스승님께 미룬 것뿐입니다.”

    “허, 허허. 내가 제자를 키운 것이 아니라 살모사 새끼를 키웠구나. 그렇게 착하던 우리 동호가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을꼬.”

    주거니 받거니 만담을 나누는 사제지간을 보며 인호는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정 씨 가문의 인호야.”

    “네, 말씀하십시오.”

    이형표가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며 말하자 인호가 자세를 바로 한다.

    “미친년에게 들은 것을 정확하게 말해 보거라.”

    “세 가지 내기를 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중 두 번을 이겨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분들께 받은 것이 많아 웬만하면 부탁을 들어 드리고 싶긴 합니다만…….”

    “정확한 속사정은 듣지 못했다는 뜻이구나.”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형표가 황동호를 힐끔 바라본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동호에게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니 어디 가서 입 밖에 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호가 검지로 입술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상제, 저승 판관, 저승사자, 신선, 선녀 같은 존재들은 동화 속에 등장하는 그런 존재들이겠지. 그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 존재들이 멀지 않은 곳에 실존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인호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저승사자들과 힘을 합쳐 악령들을 소멸시키지 않았던가.

    “아주 오래전, 인간의 기억이 닿지 못하는 시대에는 인간들이 사는 곳, 신선들이 노니는 곳, 상제가 다스리는 곳의 경계가 거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더구나. 신선들이 이승에 와 노닐다 가기도 하고 우연히 살아 있는 인간이 신선경에 들어 한 세월 다 보내고 돌아오기도 했다지.”

    이형표가 한 말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지방마다 전례되어 내려오기도 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는 일화나 전승지가 있다.

    “세상이 변하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신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지며 각 계를 구분하던 경계가 더욱 깊고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각 계는 서로에 개입하고 있지. 저승과 이승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인호는 이 양반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인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이레귤러라는 말을 아느냐?”

    “네, 알고 있습니다.”

    “시대마다 그런 이레귤러들이 존재했다. 인간의 몸으로 선경에 들 수 있고, 저승을 구경하기도 하는 존재들. 아주 오래전 도문에 속한 전우치라는 분이 계셨다.”

    “알고 있습니다.”

    그 괴짜 도사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워낙 유명해서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그분이 그런 이레귤러셨다. 선경과 저승, 이승을 오가며 인생을 즐겁게 사셨던 분이지.”

    “혹시 현 시대의 이레귤러가 애주 도사님 되십니까?”

    이형표가 씨익 웃는다.

    “왜 아니겠느냐? 저승이 되었던 선경이 되었던 내 눈치를 많이 봤지.”

    얼마나 많은 사고를 쳤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형표가 품속에 손을 넣는다.

    “우와!”

    이민정이 놀라 짧은 외침을 토해낸다.

    굉장히 긴 물건을 꺼내는데 절대 품속에 들어갈 크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황동호가 인호를 툭 친다.

    “무량낭無量囊이라는 거야.”

    “무량낭이요?”

    이름 그대로를 해석한다면 헤아릴 수 없는 크기를 지닌 주머니라는 뜻일 것이다.

    “술법으로 만드는 것이야. 실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고 해. 스승님께 배우지 못한 몇 가지 중 하나지.”

    “예끼 이놈아. 네놈이 배우지 못한 것이 어디 무량낭 뿐이더냐? 네놈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내 지식의 십분지 일도 얻지 못할 것이다.”

    “네, 네. 그러시겠지요.”

    이형표가 인호를 보더니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는 듯 말한다.

    “인호야.”

    “말씀하십시오.”

    “내기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지요.”

    “내기라 함은 응당 무언갈 걸어야 재미있지 않겠느냐?”

    “그것도 그렇지요.”

    “좋아. 이번 내기에서 이기면 내가 동호에게 무량낭의 술법을 전수해 주마.”

    인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이형표를 바라본다.

    “어째서 내기는 저랑 하시는데 그런 걸 거십니까?”

    “둘 사이가 제법 가까운 것으로 아는데?”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말을 하던 인호가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결국 입을 닫고 만다.

    “네, 그렇게 하시죠. 저는 뭘 걸어야 합니까?”

    이형표가 이민정을 힐끔 쳐다본다.

    “안 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듣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이냐?”

    “무슨 말을 할지 뻔하지 않습니까.”

    “아니거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 아니거든. 그저 저 아가씨와 근사한 식사나 하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퍽이나요?”

    이형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이민정이 소파에 앉으며 말한다.

    “그럴게요.”

    “응? 민정아. 안 그래도 돼.”

    “아니에요. 돈 많으신 것 같은데 비싸고 맛있는 것 사주시겠죠. 안 그래요?”

    이형표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 보거라. 내가 무엇이든 사줄 테니.”

    이형표가 이민정과 대화를 나눌 때 인호가 황동호에게 묻는다.

    “원래 저러십니까?”

    “지금은 많이 유해지셨지. 예전에는 말도 못 했다. 그래도 도문에서는 굉장히 존경받는 분이야. 한국 도문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스승님이 각 도문에 술법을 전해 주셨기 때문이지. 중국 본류들도 스승님의 눈치를 볼 정도라면 말 다한 거 아니겠냐.”

    이형표가 대단한 것은 굳이 실력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저승에서 골칫거리라고 하는 것만 봐도 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증거이다.

    “인호야. 이번 내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형님 스승님과 하는 내기인데요?”

    “그래도 무조건 이겨.”

    “무량낭인지 하는 것 때문입니까?”

    황동호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무량낭은 정말 대단한 술법이야.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사들 중 무량낭 술법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스승님뿐이지.”

    “그래도 제자인데 언젠가 알려주지 않을까요?”

    “다 늙어서 꼬부랑 할아버지 되었을 때? 저 영감탱이 엄청나게 꼬장꼬장하거든. 가르쳐줄 때를 기다리면 하세월이야.”

    딱-

    “악-!”

    황동호가 머리를 감싸며 짧은 비명을 토해낸다. 이형표가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모를 곰방대로 황동호의 뒷통수를 시원하게 갈긴 것이다.

    “감히 상제와 동급인 스승님에게 뭐라고? 영감탱이? 꼬장꼬장? 네놈이 정녕 단매에 죽고 싶은 것이냐?”

    “하, 하하. 들으셨습니까?”

    “천리 밖에 개미 기어 다니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나이니라.”

    “네, 네. 그러시겠죠. 스승님 대단하신 거 모르는 사람도 있더랍니까?”

    “어째 비꼬는 것 같다만?”

    “기분 탓이십니다.”

    황동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이형표가 인호에게 시선을 옮긴다.

    “자-, 이제 내기에 대해 말을 해야 할 차례구나.”

    인호가 이형표의 말에 귀 기울인다.

    이형표는 조금 전 무량낭에서 꺼낸 긴 물건을 허공에 던진다.

    펄럭- 촤르륵-

    족자였다.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 정도 되는 족자.

    허공에서 족자가 풀려 펼쳐진다. 인호가 감탄을 토해낸다.

    족자 안에는 고풍스러운 그림이 담겨 있었다.

    신선경을 그린 것인지 아름다운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

    그곳에서 노니는 신수로 짐작되는 여러 동물들과 신령한 기운을 품은 초목들.

    “방금 말했던 전우치님이 생전에 그리신 무릉도원도라는 것이다.”

    “신비로운 힘이 느껴집니다.”

    “당연하지.”

    이형표가 무릉도원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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