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57화 (157/190)
  • 제157화

    눈을 감은 채 망령, 아니 악령이 남긴 기운에 집중하고 있던 인호가 눈을 뜬다. 정체를 알 수 얼룩과 거미줄, 곰팡이가 한가득하였다.

    “응?”

    인호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된다. 어떤 글귀가 적혀 있다. 이곳이 폐가가 되기 전 살던 낙서일 수도 있다. 인호가 휴대폰 카메라를 실행시킨 채 줌을 끌어당긴다.

    천정의 글을 확인한 인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하지만 이내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린다.

    “재밌네.”

    찰칵-

    인호가 사진을 찍은 후 자리에서 일어선다.

    “최종 목표는 따로 있었군.”

    * * *

    - 첫 번째 살인 현장을 찾았습니다.

    정재훈의 전화를 받은 인호가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소장님.”

    유 형사가 인호를 발견하곤 달려온다.

    “뭐 대단한 사람 왔다고 뛰어오면서까지 반기고 그래.”

    “하하, 소장님이 우리 특수 5부 에이스 아니십니까.”

    “쉰 소리 그만하지. 검사님은?”

    “함께 현장으로 오시다 검사장님 전화 받으시고 빽 하셨습니다.”

    “현장은?”

    “국과수가 아직 현장에 있습니다. 검사님께서 미리 소장님에 대해 말해 두었으니 들어가셔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인호가 피식 웃는다.

    “뭐라는 사람 있으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지 뭐.”

    “큰일 날 소릴 하세요. 빨리 들어오세요.”

    경기고 고양시 외곽의 허름한 빌 리가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난 곳이다. 이웃 주민이 뭔가 썩는 악취가 난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 온 인호가 와락 인상을 구긴다. 시체 썩는 냄새 때문이다.

    “끔찍하죠?”

    유 형사가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막는다.

    “얼마나 미친놈이면 이런 살인 수법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거죠? 이건 뭐 어렸을 때 과학책에 나오는 해부한 개구리 같잖아요.”

    유 형사의 말대로다.

    시체의 사지가 커다란 못에 박혀 있었다. 배꼽 아래부터 목 아래까지 갈라 안의 장기들을 모조리 꺼내 사체 주위에 전시해 두었다.

    “국과수 사람의 말로는 안구를 태운 거라는데 어떻게 태운 걸까요?”

    사체의 두 눈은 뻥 뚫려 있는데 정확히 안구만 탔다.

    “안구를 태운 게 아니야.”

    “그럼요?”

    “봐서는 안 될 것을 봐서 안구가 녹아내린 거지.”

    인호의 말에 옆에서 조사하던 국과수 직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듣고 있자니 조금 그렇네요. 그게 말이 됩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 하하. 누구십니까?”

    유 형사가 앞으로 나선다.

    “정 검사님께서 말씀드린 그분입니다. 하하, 소장님. 저쪽도 좀 보시죠.”

    유 형사가 인호의 팔을 잡아끌며 속삭인다.

    “말 섞어 봐야 좋은 말 안 나올 겁니다. 저 사람들이 자기 일에 자부심이 대단하거든요.”

    “뭐, 이해해. 나라도 그런 소리 들었으면 저런 반응 보였을 거야.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맹신하지. 사실 유 형사도 처음 나 만났을 때 저런 반응이었잖아.”

    “하하, 그렇죠. 하지만 지금은 소장님 말씀이라면 다 믿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말씀하신 봐서는 안 될 존재가 어떤 존재입니까?”

    “추측이긴 하지만 그 소설 쓴 놈일 거야. 정확히는 악령이지. 그것도 아주 강력한 악령.”

    “지난번처럼 악마는 아니겠죠?”

    “악마가 그렇게 옆집 이웃처럼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나도 몇 번 못 봤거든. 그리고 보면 유 형사도 복 받은 건가. 그런 일도 다 경험하고?”

    “으……. 그런 경험이라면 사양하겠습니다.”

    인호가 집 안을 살핀다. 특히 천정을 유심히 살핀다. 국과수 직원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도 있네.”

    인호가 정확히 사체 위쪽 천정의 한 부분을 응시한다.

    찰칵-

    인호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자 유 형사가 다가와 묻는다.

    “뭘 찍으신 거예요?”

    “그런 게 있어. 조금 있다 검사님하고 다 모인 자리에서 말해줄게. 일단 나가자.”

    * * *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조금요.”

    정재훈이 인호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는다.

    “역시 인호 씨네요. 뭘 알아내셨나요?”

    인호가 휴대폰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다.

    “이게 뭡니까?”

    “이건 이번에 발견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고 다음 장은 양주 현장에서 찍은 겁니다.”

    [우리들의 원대한 계획에 방해가 되는 존재를 제거해야 한다.]

    고양 현장 천정에서 찍은 사진.

    [정 가 성을 쓰는 인호.]

    양주 현장에서 찍은 사진.

    인호가 피식 웃는다.

    “아무래도 이 녀석 최종 목표가 저인 것 같습니다.”

    “웃으실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인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저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저희 집안이 원래 그렇습니다. 목숨을 위협받는 건 일상다반사죠. 그런데도 아직까지 잘 살아 있잖아요.”

    “인호 씨가 목적인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인호 씨를 노리지 않고 이런 짓을 하는 거죠?”

    “몇 가지 추측되는 것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제물입니다.”

    “제물이요?”

    “네. 배를 가르고 장기들을 꺼내 전시하듯 널어놓았죠? 그리고 목과 사지를 잘라 역망성을 꾸몄고요. 서양에서 악마를 소환하거나 악마에게 힘을 빌릴 때 하는 의식입니다. 물론 그런 행위로 악마를 소환할 수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여섯 에피소드, 여섯 명의 제물. 얼마나 대단한 녀석을 소환하려고 이런 쇼를 벌이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다른 추측은 제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요?”

    정재훈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묻는다.

    “연쇄살인마들 중에도 그런 부류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 고유의 살인 방식을 고집하는 놈들. 그들은 사람을 죽이며 당당하게 외치는 겁니다. 내가 죽였다. 라고 말이죠. 그 대상은 경찰과 검사님 같은 분들이겠죠.”

    “흐음-. 일단 사이코패스 범죄는 아니란 말이시죠?”

    “악령의 기운이 진하게 풍깁니다. 그것도 굉장한 힘을 지닌 악령이요.”

    “유 형사님한테 들었습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안구가 모조리 녹아내렸다죠? 물론 국과수 의견은 다르지만요.”

    “네. 맞습니다.”

    정재훈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세 번째 소설이 업로드되었습니다. 아참,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네요. 작가의 친구라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만나자고 쪽지를 보내도 계속 거절을 해왔는데, 살인을 막아야 하지 않겠냐며 설득했죠.”

    “잘하셨네요. 그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라고 합니까?”

    “소설 독자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후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

    “제물들과 만나 그들에 대해 파악한 후 사라진 거군요. 평상시에 알던 모습은 어땠다고 합니까?”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소설을 쓰겠다고 말한 후부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돌변했다고 합니다.”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이 악령이 될 수도 있는 겁니까? 혹시 빙의나 그런 걸까요?”

    “빙의는 아닙니다.”

    “전에 빙의되었던 연쇄살인마도 굉장히 강하지 않았나요?”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기운 달라요. 제가 느낀 기운은 ‘악’ 그 자체입니다. 제 소견은 악령이 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겁니다. 소설을 보니 악마에 대해 제법 많이 공부한 것 같더군요.”

    “거참, 악령이 되기 위해 목숨을 끊다니.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군요.”

    “제 주변에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죠.”

    “세 번째 사건은 언제 일어날까요? 아니, 벌써 일어났을까요?”

    “일어났을 겁니다. 그 글을 읽은 사람이 몇 명이죠?”

    “저희들이 읽었을 때는 세 명입니다. 아-, 이미 죽어서 글을 읽지 못한 거군요.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글이 업로드 되도 읽지 말라고 경고해야 할까요?”

    인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아도 결국 죽을 겁니다. 악령과 만나는 순간 정해진 거죠. 어디에 숨어도 소용없습니다. 악령이 자신의 기운을 묻혀 두었을 테니까요.”

    “살인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뜻인가요?”

    “하나 있기는 하죠.”

    “그게 뭡니까?”

    정재훈이 다급하게 묻는다.

    “더 이상 살인을 하기 전에 잡아 없애 버리는 거죠.”

    * * *

    세 번째 살인 사건 현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악령의 친구에게 오프라인에서 만났던 이들의 정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휴우-. 이런 것을 아직 세 번이나 더 봐야 한다는 거죠?”

    유 형사가 씹어 삼키듯 말한다.

    “그러기 전에 그 미친 악령을 잡아야지. 내가 이야기 한 건 어떻게 됐어?”

    “남은 세 사람 모두 연락했습니다. 지금쯤 정 검사님하고 함께 있을 겁니다.”

    인호가 정재훈에게 살아있는 세 사람을 한곳에 모아 두라고 했다. 악령은 자신이 제물로 점찍은 이들을 반드시 죽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찰칵-

    인호가 사진을 찍는다.

    “이번에도 있군요. 뭐라고 쓴 거야? 이제 곧 도래할 것이다? 저게 무슨 말일까요?”

    “자기 계획이 착실하게 진행 중이라는 말이겠지. 가자고.”

    인호는 유 형사와 함께 정재훈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분들입니까?”

    검사실에 세 명이 앉아 정재훈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인호가 그들에게 묻는다.

    “친구라는 분이 누굽니까?”

    안경을 쓴 20대 초반의 남자가 손을 든다. 마른 체형에 숫기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친구가 평소에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까?”

    “네. 그런 편이었죠. 예전부터 악마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책들은 빼놓지 않고 모두 보곤 했습니다.”

    “친구가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고 하셨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말수도 없고 저 말고는 친구도 없었는데 갑자기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그랬고요. 맞죠?”

    남자가 자신과 함께 온 이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남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 그때 처음 보는 거라 원래 그런 분인지 알았죠. 말도 잘하시고 매너도 좋았죠.”

    30대 여자가 말한다. 그 옆에 앉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설마 먼저 죽은 사람들처럼 죽게 되는 건가요?”

    인호가 말을 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때 악령의 친구가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이 개새끼는 친구까지 죽이려고 하는 거야?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씨발 새끼. 아니, 설마 절 정말 죽이겠어요? 그래도 하나뿐인 친구인데.”

    “제가 예상하는 대로라면 그는 부모라도 가차 없이 죽일 겁니다.”

    인호의 말에 모인 이들이 공포에 질린 듯 몸을 부르르 떤다.

    “어, 어떻게 하죠?”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지킬 겁니다. 인호 씨가 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 안 그렇습니까?”

    정재훈이 인호에게 동의를 구한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네요.”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여러분이 해 줘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악령의 친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묻는다. 인호가 세 사람과 차례로 눈을 맞춘 후 말한다.

    “딱 하나만 지키시면 됩니다. 내가 어떤 지시를 해도 무조건 따른다. 알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