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56화 (156/190)
  • 제156화

    “음료 준비해 드릴까요?”

    “네, 오렌지 주스 주세요.”

    “전 물 한 잔 주세요.”

    인호가 의자에 몸을 기댄다.

    “피곤해 보이세요.”

    “아니야. 괜찮아.”

    괜찮다고 말을 하지만 인호의 몸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몸에 새겨진 검은 문양의 힘을 사용하면 그에 따른 반동이 굉장히 심했다.

    “그 꼬마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민정은 인호와 함께 주술사의 천막에서 나오던 소년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음성으로 말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야.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내놓아야 하지.”

    인호와 필름 속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소년은 시력을 잃었다. 하늘 부족의 역대 주술사들이 그러했듯 소년도 백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절망하지 않았다. 소년의 말을 빌리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라며 오히려 기뻐했다.

    주술사 역시 소년의 각성을 기꺼워했다.

    “필름은 왜 다시 가져온 거예요? 그냥 태워 버리는 게 낫지 않아요? 망령 붙은 필름이잖아요.”

    “망령들은 이미 떠났어.”

    거대한 독수리가 제니와 데니 우드를 삼킨 후 유유히 사라졌다. 누군가는 좋은 곳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너무 하셨어요. 어떻게 관광할 시간을 이틀밖에 안 줄 수가 있어요?”

    “이틀이면 많이 줬지. 그래도 미국 올 때 사려고 했던 것들은 몇 개 빼고 다 샀잖아.”

    “여행의 목적이 어디 쇼핑뿐인가요?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단 말이에요.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싶었고.”

    인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이민정을 바라본다.

    “우리가 있던 곳은 서쪽 끝이고 자유의 여신상 있는 뉴욕은 동쪽 끝이거든? 비행기 타고도 한참 가야 하는 곳이야.”

    “같은 미국이잖아요.”

    “미국 땅이 얼마나 넓은 줄 알아? 그리고 앞으로 이럴 거면 해외 출장 갈 때 따라오지 마.”

    이민정이 삐죽 입술을 내민다.

    “흥이다, 뭐.”

    * * *

    “이야, 우리 민정이 미국물 먹고 오더니 얼굴에 아주 광이 좔좔 흐르는데?”

    “됐거든요?”

    사기꾼이 이민정의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농담을 건다.

    “그래서 선물은?”

    “망령이 무슨 선물 타령이에요?”

    “갑자기 굉장히 섭섭해지네. 그렇게 안 봤는데 너 너무 각박한 거 아니냐?”

    “아니. 도대체 망령한테 무슨 선물을 사 와요?”

    그때 인호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인호야.”

    “왜 그렇게 웃으면서 사람을 불러?”

    “선물은?”

    “아-, 가지고 온다는 걸 깜빡했네. 방에 있어. 나중에 가져다줄게.”

    사기꾼이 이민정을 보며 말한다.

    “봤냐?”

    “아니, 소장님. 망령들한테 무슨 선물을 사다 줘요?”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이민정을 바라본다.

    “너도 다른 사람한테 선물 받으면 기분 좋지?”

    “당연하죠.”

    “망령들도 그래. 육이 없을 뿐이지 우리랑 다를 게 뭐가 있어? 칭찬 들으면 어깨 으쓱하고 선물 받으면 기분 좋아지는 건 사람이나 망령이나 다 똑같아. 왜 조상 제사 잘 모시는 후손들이 잘 산다고 하겠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조상들도 뭐라도 받는 게 있어야 복을 주든 말든 할 것 아냐.”

    “그게 말이 돼요?”

    “왜 말이 안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더더욱 그러면 안 되지. 넌 망령을 볼 수 있잖아.”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이민정이 입을 닫는다. 그리고 잠시 후 사기꾼과 영감에게 고개 숙인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어요.”

    오래전, 귀신 보는 아이라 주위에 손가락질받을 때 인호를 만났다. 그때 사기꾼과 영감, 뚱보가 그녀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나이가 들어 극락 흥신소에 출근하게 되었을 때도 망령들이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한 것 같아요. 다음부터 주의할게요.”

    “넌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러냐? 네 말이 맞아. 망령한테 선물이 다 무슨 소용이람.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만 해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데.”

    영감의 말에 이민정이 어색하게 웃는다.

    “감사합니다.”

    “민정아. 커피 부탁해. 그리고 우리 없는 사이에 연락 온 것 없었나?”

    “일단 사무실 전화는 온 게 없어요. 그리고 연락을 해도 제가 아니라 소장님께 하겠죠.”

    “듣고 보니 그러네.”

    인호는 이민정이 타 준 커피를 마시며 뉴스 기사를 검색한다.

    “소장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네요.”

    이민정이 모니터를 보며 말한다.

    “제가 가입한 괴담 카페 중 한 곳에 올라 온 글인데요. 자기 친구가 이상하데요.”

    “어떻게?”

    “친구가 취미로 글을 쓴대요. 귀신, 악령 이런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런 이야기를 쓰는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데요. 친구가 쓴 소설 내용처럼 사람이 죽기 시작했데요.”

    인호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민정을 바라본다.

    “자세히 말해봐.”

    “친구가 쓴 소설 내용이 악령이 산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내용이래요. 그런데 저희 미국에 있을 때 이상한 살인 사건이 있었나 봐요. 소장님 휴대폰으로 기사 링크 걸어드릴게요.”

    인호가 이민정이 링크를 걸어 준 기사를 클릭한다.

    - 엽기적인 살인, 미쳐가는 세상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였다.

    내용은 더욱더 자극적이었다. 경기도 양주에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폐가가 된 집에 끔찍하게 죽은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피로 짐작되는 붉은 액체로 붉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별을 그린 후 죽인 사람을 반듯하게 눕혀 놓았다. 그런데 그냥 눕혀 둔 것이 아니라 발목과 팔목, 목을 잘랐다고 한다. 두 팔과 다리, 머리를 별의 꼭짓점에 놓았다.

    기사 전문에는 그 모습이 마치 중세 유럽의 악마 추종자들이 제물을 바치는 것과 흡사하다는 부분이 있었다.

    “친구라는 사람이 쓴 글을 캡쳐해서 올려 줬어요.”

    “그 글을 본 사람은 있고?”

    “개인 블로그에 연재했나 봐요. 조회수는 편당 6회가 전부고요. 구독한 사람 중 한 명은 괴담 카페에 글을 올린 사람이고요.”

    “그 글을 읽은 사람 중 한 명이 글에 나오는 것과 똑같이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 생각은 다른가 봐요. 제가 원문 읽어 드릴게요.”

    - 친구는 단편 형식으로 여섯 편을 썼어요. 블로그에 올린 것은 두 편이고요. 각 편마다 하나의 사건을 다루었죠. 친구 소설은 절 포함해 여섯 명이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구독자가 다섯 명으로 줄었어요. 그리고 며칠 전 끔찍한 살인 사건이 났어요. 그 끔찍한 사건은 바로 양주 사건이에요. 제 친구가 쓴 소설에 나오는 내용하고 똑같이 사람이 죽었어요. 그리고 어제 세 번째 에피소드가 업로드됐어요. 그 에피소드를 읽은 구독자의 수는 네 명이었어요.

    이민정은 거기까지 읽고 인호를 바라보았다.

    “양주 사건이 있은 후에 구독자가 한 명 줄었다고? 그 전에 한 명이 줄었고?”

    이민정이 어떤 상상을 하는지 짐작되었다. 소설을 쓴다는 사람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읽은 사람은 모두 여섯 명. 하지만 두 번째 에피소드를 읽은 사람은 다섯 명뿐이다. 그리고 며칠 전 올라왔다는 세 번째 에피소드를 읽은 사람은 네 명.

    한 명 줄어든 구독자가 양주에서 살해당한 사람일 것 같다는 말이었다.

    “블로그에 와서 글 읽는 사람을 찾을 수 있어? 우리나라 인터넷 보안이 그렇게 허술한가?”

    “해킹 실력이 좋을 수도 있잖아.”

    사기꾼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글의 말미에 보니까. 글을 쓴다는 친구가 블로그 채팅으로 오프 모임을 갖자고 했었나 봐요. 그래서 그 사람 글을 읽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대요. 양주에서 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자기가 봤던 사람 중 하나인 것 같다고 하네요.”

    “모자이크 처리를 꼼꼼하게 했던데?”

    너무 끔찍한 사건이기에 사진 대부분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

    “그 말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있다는 말이네?”

    “그렇겠죠.”

    인호가 볼을 긁적이며 말한다.

    “이거 우리끼리만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 * *

    정재훈의 검사실.

    “흐음-. 그 소설 내용을 볼 수 있을까요?”

    인호가 휴대폰을 조작한다. 이민정이 괴담 카페에 글을 올린 사람을 설득해 소설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민정에게 받은 소설을 정재훈에게 전달해 주었다.

    잠시 소설을 읽은 정재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확실히 살해 수법이 똑같네요. 국과수의 검시 결과 변사자는 팔, 다리, 목이 잘려 죽은 게 아니라고 합니다. 목과 사지가 잘린 것은 죽은 후라고 해요.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서처럼 말이죠. 상대의 피를 모두 빼낸 후 그 피로 바닥에 악마를 부르는 그림을 그린 후 목과 사지를 잘라 제물로 바치는 겁니다. 소설 내용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인호가 답답한 신음을 토해낸다.

    “그 카페에 글 올린 사람 연락 가능하답니까?”

    “연락을 시도해 봤는데 카페 쪽지로 두 번 연락한 게 끝이라고 하네요.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도 싫다고 했대요.”

    “저희 쪽에서 알아봐야 할 것 같네요. 글을 올린 사람이나 민정 씨의 주장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첫 번째 살인 사건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 사건의 조사도 병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끔찍한 살해 수법 때문에 위쪽에 신경도 매우 날카롭습니다.”

    “그분들 신경이 날카로운 건 제가 상관할 바 아닙니다. 하지만…….”

    인호가 정재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미 일어난 두 개의 사건. 아니, 하나의 사건과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사건.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네 개의 사건. 그것들에는 관심이 가네요.”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언제나처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전 제 일을 하고, 인호 씨는 인호 씨 일을 하고요?”

    “빙고.”

    정재훈이 씨익 웃는다.

    “제가 뭘 할지는 인호 씨도 아실 테고. 인호 씨는 뭘 하실 겁니까? 그 소설 썼다는 놈은 흔적도 없이 잠수타버렸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요.”

    “아-,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정재훈이 손가락을 튕긴다.

    “양주 사건 현장 가 보시려는 거죠?”

    “이제 검사님도 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시네요. 그러면 제가 거기 가서 뭘 할까요?”

    “이번 일이 정말 귀신이 관련된 것인지 알아보시려는 것 아닙니까?”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서 몸을 돌리며 말한다.

    “이번에도 정답입니다.”

    * * *

    다 허물어져 가는 폐가 주위에 노란 폴리스 라인이 빙 둘러있다. 최근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다. 이미 사체는 국과수로 옮겨졌고 사건 현장의 조사도 끝났다.

    인호가 폴리스 라인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바깥까지 지독한 악령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는 아직 피로 그린 동그라미와 별, 그리고 이상한 문자가 남아있다.

    “어설프네. 이걸 악마어라고 쓴 건가?”

    삐뚤빼뚤 알아보기 힘든 문자, 아니 그림은 서양의 악마 추종자들이 사용한 악마어와 비슷했다. 말처럼 비슷할 뿐이다. 흉내만 낸 정도라 할 수 있다.

    인호가 피로 그린 동그라미 위에 눕는다. 팔과 다리를 벌려 별의 꼭짓점에 맞춘다.

    눈을 감고는 중얼거린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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