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54화 (154/190)
  • 제154화

    “저 사람인가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이 인상을 찌푸린다.

    “좋은 사람 같지 않아요.”

    “그런 것 같네. 그리고 말은 정확히 해야지.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야.”

    “아-! 영혼.”

    “가야 할 곳에 가지 않는 영혼이기도 하지.”

    그 순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브라이언이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씨익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인호를 바라보던 브라이언이 다시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우리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네요.”

    “곧 알게 될 거야.”

    브라이언은 이 영화 속 세계에서 살아가는 망령이다. 이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를 리 없다. 지금이야 어리둥절할지 몰라도 곧 인호와 소년이 이 세계가 허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행히 브라이언이 병실 근처에 없네. 이제는 제니를 만나러 갈 차례인가?”

    인호가 소년과 함께 몸을 돌린다. 병원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간다. 중환자실이 모여 있는 병동이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거의 없다.

    “네가 도와줄 일이 있는데.”

    “말씀만 하세요.”

    “저기 가서 말썽을 좀 부려.”

    인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짐작한 소년이 씨익 웃고는 몸을 돌린다. 인호가 가리킨 곳은 중환자 병동에 상주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아악-! 아파요. 너무 아파요.”

    멀쩡히 걸어가던 소년이 갑자기 주저앉으며 고통을 호소하자 간호사들이 일제히 뛰어나온다. 소년이 간호사들의 시선을 잡아두는 사이 인호가 슬쩍 그들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간다.

    “제니.”

    병실 문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인호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침대에는 제니가 눈을 감고 누워있다. 인호가 다가가자 제니가 거짓말처럼 눈을 뜬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를 기다렸다고?”

    “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영화를 본 분이잖아요.”

    “영화 속에서 바깥세상을 볼 수 있다고?”

    인호가 놀라며 재차 묻자 제니가 씨익 웃는다. 병 때문인지 창백한 안색이지만 미소가 아름답다.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신호를 보냈지?”

    제니는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이철호도 메시지를 받았다. 다만 영적인 기운과는 거리가 멀기에 그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제니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아 조급한 마음에 인호는 질문을 계속했다.

    “가야 할 곳에는 어째서 가지 않는 거지?”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하는 거랍니다.”

    “혹시 브라이언 때문인가?”

    “데니 우드. 브라이언은 극중 이름일 뿐이고요.”

    “당신 진짜 이름은?”

    “전 진짜 이름도 제니에요. 본래 극중 여주인공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 캐스팅한 후 감독님이 제니로 바꾸셨죠.”

    “죽어가는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나?”

    제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브라이언, 아니 데니 우드라는 자가 막고 있는 건가?”

    “네. 그 사람은 환자예요.”

    “환자?”

    “네. 의학적 지식이 없어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지만요. 전 스스로 데니를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과대망상증.”

    인호가 걸음을 옮겨 창문 앞에 선다. 창문으로 후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니가 내 존재를 알아차린 모양이네.”

    조금 전까지 그가 앉아 있던 밴치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시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해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데니는 매일 오후 두 시 즈음부터 후원에 나가 있으니까요. 데니는 영화 스토리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요. 아-, 이틀 후 데니가 자리를 비울 거예요.”

    “좋아.”

    인호가 병실 밖으로 나온다. 인호를 본 소년이 간호사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더니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간다.

    “만나 보셨어요?”

    “그래.”

    인호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인호가 그 옆의 비상계단으로 들어간다.

    띵-

    엘리베이터가 8층에 멈추며 데니 우드가 내린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병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저 영혼이 나쁜 영혼이죠?”

    “일단은 그런 것 같네.”

    * * *

    “과대망상증 환자라.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인호의 물음에 제니가 한숨을 푹 내쉰다.

    “함께 촬영할 초창기만 해도 데니는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절 보며 많이 안타까워했어요. 그런데 그 정도가 점점 심각해졌지요. 정말로 자신이 내 아버지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처음에는 캐릭터에 빠져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호는 일전에 들은, 영화를 촬영하다 캐릭터에 동화되는 배우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데니는 카메라가 꺼져 있을 때도 절 가만히 두지 않았어요. 찬 바람이 병을 악화시킨다. 더 많이 자라. 고통스러워도 음식을 먹어야 한다. 데니는 모를 거예요. 자기가 날 걱정하며 하는 말이 날 더 힘들게 한다는 걸요.”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될 것 같다.

    “촬영이 후반부로 갈 때 즈음에는 감독님을 비롯한 스텝들도 상황을 눈치챘어요. 감독님은 데니에게 여러 번 말했어요. 연기와 현실을 혼동하지 말라고. 데니는 그럴 때마다 그러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감독님과 스텝들이 보지 않을 때면 더욱 심하게 행동했죠.”

    인호가 창문 밖을 확인한다. 데니 우드가 후원에서 병원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네. 가세요.”

    “내일은 못 올 거야.”

    “데니를 따라다니시게요?”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어?”

    제니가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데니 우드 때문이다. 그가 영화 속에 머물며 제니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푹 쉬고 있으라고.”

    * * *

    인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데니 우드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오늘은 데니 우드가 집에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제니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위해 집에 오는 날이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저 영혼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요.”

    소년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스스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자기는 좋은 아버지다. 죽어가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헌신하는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어.”

    “집착이 심하네요.”

    “저 정도면 병적인 거지.”

    소년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데니 우드가 집 밖으로 나온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걸음을 옮긴다. 인호와 소년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데니 우드의 뒤를 쫓는다.

    잠시 후 데니 우드가 도착한 곳은 마을 중심가에 있는 펍이었다.

    “오늘은 저곳에서 잘까?”

    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관을 보며 묻자 소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관방을 잡고 소년에게 잘 자라며 인사를 건넨 후 펍으로 향한다.

    펍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데니 우드가 바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손님이 제법 많았는데 데니 우드 주변에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자네가 고생이 많아.”

    “제니는 좀 어때? 제니도 제니지만 네가 더 힘들 것 같아.”

    주위 손님들이 건네는 말을 들으며 데니 우드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봐도 사랑하는 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인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맥주를 주문한다.

    “맥주는 우리나라 것이 더 좋네.”

    맥주를 마시며 데니 우드를 살핀다. 그는 열심히 좋은 아버지 연기에 몰두하는 중이다.

    “제니를 그만 놔 주는 게 어때?”

    탕-

    누군가의 물음에 데니 우드가 마시던 잔을 강하게 내려놓는다.

    “도날드. 줄리가 아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잖아.”

    “우리 제니는 반드시 나을 거야. 반드시 낫는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 데니 우드가 바 테이블에 돈을 올려두고 몸을 돌린다. 밖으로 나가던 데니 우드가 인호를 보고 멈칫한다. 인호가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갸웃한 데니 우드가 마주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간다.

    “저기요.”

    인호가 밖으로 나가 데니 우드를 부른다.

    “네?”

    “힘드시죠?”

    “절 아십니까?”

    “안다고 할 수 있죠?”

    데니 우드가 의아한 듯 말한다.

    “저는 그쪽을 잘 모릅니다. 지난번에 병원에서 한 번 본 것이 전부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인호가 웃으며 데니 우드에게 다가간다.

    “힘드시죠?”

    “왜 그런 걸 묻는 겁니까? 당연히 힘들죠. 죽어가는 딸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아십니까?”

    “아버지의 심정은 잘 모르겠지만, 잘 아는 것은 하나 있죠.”

    데니 우드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인호를 바라본다.

    “연기하기 참 힘들잖아요. 그렇죠?”

    “당신 뭐야?”

    “좋은 아버지인 척 연기하는 거 힘들잖아요. 브라이언. 아니, 데니 우드라고 불러야 할까요?”

    데니 우드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다. 그의 두 눈에 붉은 기운이 아른거린다.

    “벌써 악에 물들었네요. 그 말은 당신이 제니를 이곳에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이 큰 죄라는 뜻입니다.”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들지?”

    조금 전까지 펍 손님들에게 위로를 듣던 처량한 표정의 데니 우드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인호를 박살 낼 듯 두 눈에 분노를 가득 담고 있다.

    “호의라는 것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 악의가 될 수 있다는 거 알아요?”

    인호가 말을 하자 데니 우드가 주먹을 뻗는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떠들어.”

    인호는 얼굴을 노리고 날아드는 데니 우드의 주먹을 움켜쥔다. 자신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나가지 못하자 데니 우드의 눈이 더욱 붉어진다. 인호의 눈에는 푸른 기운이 머문다.

    “넌 누구냐?”

    “내가 누군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너 때문에 한 영혼이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누구 이야기인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겠지?”

    “모두 제니를 위해서야. 제니를 저대로 죽게 둘 수 없어서야.”

    “아니지. 제니는 이미 죽었어. 당신도 알잖아.”

    인호가 데니 우드의 주먹을 옆으로 밀어내며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킨다.

    “그리고 당신도 죽었지. 집착이 얼마나 심했으면 죽은 제니의 영혼을 이곳에 붙잡아 두는 거지?”

    “흥! 내가 붙잡아 뒀다고? 날 이곳에 부른 것이 제니였어. 너무 무섭다고 자길 지켜달라고.”

    어째서 제니가 과대망상증이라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데니 우드는 모든 것을 자기가 편한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그러시겠다?”

    “제니 옆엔 내가 있어야 해.”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러지 마. 제니에게 필요한 것은 연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병자가 아니라 신의 곁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이니까.”

    “닥쳐!”

    데니 우드가 온갖 악의가 담긴 외침을 토해낸다. 다시 인호를 향해 주먹을 뻗는다. 조금 전과는 달리 흉흉한 기운이 가득 담겨있다.

    인호가 몸을 틀어 피하자 데니 우드가 재차 주먹을 뻗는다. 주먹의 빠르기와 실린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내가 지킬 거야. 나만 지킬 수 있어. 그러니 썩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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