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우와-! 대박. 정말 보이는 게 땅하고 도로밖에 없어요.”
조수석에 앉은 이민정이 중얼거린다.
그녀의 말대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일자로 쭉 뻗은 왕복 4차선 도로와 황무지,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이 전부였다.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이제 곧 도착할 거야.”
도로를 벗어나 황무지 안으로 차를 몰아간다. 어느 정도 이동한 후 인호가 차를 세운다.
“여기서 하루 머물 거야.”
“캠핑하는 거예요?”
“거창하게 캠핑은 무슨…….”
인호가 텐트를 설치한다. 그 사이 이민정은 가져온 식자재로 음식을 준비한다.
“거창하게 많이 하려고 하지 마. 그냥 허기만 달래자.”
“왜요? 기왕 먹을 거면 잘 먹어야죠.”
“말 좀 듣지? 이래서야 다음에 어딜 갈 때 널 데리고 가겠어?”
“넵! 소장님.”
이민정이 만든 음식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텐트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인호가 눈을 뜬 시각은 이제 막 해가 뜨려 할 때였다. 희미한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신비한 광경을 눈에 담고 있던 인호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뭐에요? 무슨 소리에요?”
인호가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준 후 손을 흔든다.
“강철의지. 오랜만입니다.”
“하하. 부족의 친구여. 오랜만에 보니 더 반갑습니다.”
이전에 오민호 일로 왔을 때도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왔던 하늘 부족의 인디언이 눈앞의 강철의지였다.
“이쪽은 제 일을 도와주고 있는 이민정이라고 합니다.”
“주술사님께 들었습니다. 가시죠.”
강철의지의 안내를 받아 하늘 부족으로 이동한다.
“우와-. 대박. 다시 찾아오라고 하면 절대 못 찾아오겠어요.”
“박 신부님이 그러더라. 인디언 부족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그럼요?”
“그들이 찾아오는 거지. 지금처럼.”
강철의지를 쫓아 하늘 부족 안으로 들어간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이 인호와 이민정 주위로 몰려든다. 한번 본 적 있는 인호보다 이민정이 더 인기가 많았다. 여자라는 것도 한 몫 차지하는 것 같다.
“하하, 부족의 친구. 어서 와요. 환영합니다.”
하늘 부족을 이끌고 있는 부족장 흐르는칼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족장님. 건강해 보이십니다.”
“부족을 위해서라도 내가 건강해야죠. 주술사님께서 조만간 오실 거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한 것이 언제쯤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일주일 전쯤입니다.”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일주일 전이면 인호가 이철호에게 영화 필름에 대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였다. 놀라운 사실은 그 당시에는 영화를 보기도 전이라는 것이다.
“주술사님을 뵈러 가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제 동료를 부탁드립니다.”
이민정을 흐르는칼에게 맡기고 주술사의 천막으로 다가간다.
“들어오게.”
주술사는 이미 인호가 온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전과 마찬가지로 작은 모닥불을 앞에 둔 주술사를 볼 수 있었다.
검은자가 없는 하얀 눈이 인호를 바라보고 있다.
“잘 지내셨습니까?”
“다 늙은 몸이 잘 지냈을 리가 있나. 신의 부름을 받을 날이 가까워져 오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군.”
“후계자는 찾으셨습니까?”
“다행히도 찾을 수 있었네.”
주술사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리던 인호가 흠칫 몸을 떤다. 작은 남자아이가 천막의 한쪽 구석에 앉아 있다. 인호가 놀란 이유는 아이가 있는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재능이 아주 뛰어난 아이야. 앉게.”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주술사와 마주 앉는다.
“위험할 수도 있다네.”
왜 왔는지를 묻지 않고 대뜸 위험하다는 말을 한다.
“제가 하는 일 중 평범한 일은 없습니다.”
“흐음-. 이미 죽은 영혼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음이야. 잘 선택하도록 하게.”
“선택을 했으니 온 겁니다.”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그렇겠지.”
주술사가 작은 막대로 모닥불을 뒤적인다.
“오늘은 푹 쉬도록 하게.”
인호가 주술사에게 살짝 고개 숙인 후 천막을 벗어난다.
* * *
부족장 흐르는칼은 오랜만에 부족을 찾은 손님을 위해 작은 잔치를 벌여주었다. 인호가 차에 싣고 온 먹거리들이 주를 이룬 잔치지만 부족원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다.
“한잔합시다.”
흐르는칼이 하늘 부족 특유의 비법으로 담근 술을 건넨다. 술을 마신 인호가 ‘허’하며 감탄을 토해낸다.
“술이라기보다 약 같은데요.”
“맞는 말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대대로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습니다. 변변한 병원도 없고 약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최고의 치료는 병에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약초들로 술을 빚었지요.”
“대단하네요.”
지난번에 왔을 때도 전통주를 마시긴 했지만 지금 마시는 술은 아니었다. 하늘 부족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생각에 인호가 희미하게 웃는다.
이민정은 하늘 부족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여자 부족원들은 자신들과는 달리 밝은 피부톤을 가진 이민정이 신기한 것 같다. 그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데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이민정이 몸짓 발짓을 섞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휴대전화라도 터지는 곳이었다면 통역 어플이라도 사용했을 테지만 하늘 부족의 영역은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이었다.
“주술사님과 말씀은 잘 나누셨습니까?”
“네.”
흐르는칼이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제게 그러시더군요. 당신이 위험한 일을 하기 위해 오고 있다고. 제가 말려 보겠다고 했더니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흐르는칼이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돌며 춤을 추는 부족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과학 기술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면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데 어째서 과거를 고집하는 것이냐고 손가락질하죠. 하지만 전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모닥불에 던진다.
“행복하냐고.”
흐르는칼의 짧은 말에 인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돈이 많다고 해서, 가진 권력이 크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걱정, 불만 같은 감정들이 생기는 데는 원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그런 원인이 없지요. 왜? 욕심이 없으니까요. 하늘이 허락한 것만을 영위하니까요. 물론 우리들도 걱정은 있습니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면 걱정이 되죠. 하지만 단지 그 정도일 뿐입니다. 우리 부족원들을 보세요. 행복해 보이죠?”
“네, 그렇네요.”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다. 아무런 근심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행복하십니까?”
“네, 행복합니다.”
인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자신을 위해 살기보단 다른 이들을 위해 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조금의 불만도 없다. 어렸을 때는 불만이 많았다. 지금의 자신처럼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나이를 먹고 보니 그때의 답답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주술사가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흐르는칼은 행복하냐고 물었다.
남을 위해, 남의 부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만 인호는 행복했다.
“저 아이의 이름은 푸른깃털이었습니다.”
흐르는칼이 ‘이었다’라는 과거형을 사용한 이유는 그가 바라보는 아이가 하늘 부족의 다음 대 주술사가 될 아이이기 때문이다.
하늘 부족의 주술사가 되면 이름 대신 ‘주술사’라고 불린다.
“어머니가 얼마 전 신의 품으로 갔지요. 아버지는 어렸을 적 사냥을 나갔다 안타깝게 죽고 말았죠.”
인호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랄 나이에 벌써 혼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평소에도 말이 없던 아이가 어머니가 떠난 후 완전히 말을 잃었습니다. 주술사님 말씀으로는 어머니의 일 때문에 받은 충격으로 그간 내면에 잠재되어 능력이 깨어났다고 하더군요. 부족을 이끄는 입장에서 나이 많은 주술사님의 뒤를 이을 주술사의 탄생은 반기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저 아이와 대화를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죠.”
인호가 모닥불 너머 주술사의 천막에 기대어 앉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 *
흥겨운 잔치가 끝이 난 후 부족원들은 각자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인호는 남은 술을 홀짝이며 밤하늘을 감상하고 있다. 밤하늘에는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수많은 별들이 한가득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서울의 밤하늘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박갑수가 있는 계룡산이나 만신이 있는 지리산만 가도 서울보다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보는 별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별이 참 아름답지?”
“…….”
조금 떨어진 곳.
푸른깃털이라 불렸던 아이는 아무런 말 없이 인호가 바라보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어디선가에는 사람이 죽으면 밤하늘의 별이 된다고 해.”
문득 백혈병을 앓다 하늘나라로 떠난 천사 같던 아이 소유정이 떠오른다.
‘유정아. 넌 하늘의 별이 됐니?’
혼자 남을 엄마를 위해 하늘의 별이 되고 싶다던 소유정.
소유정을 떠올리니 갑자기 울적해진다.
“그러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슬픈 거네요.”
아이가 말한다. 인디언 부족의 전통 언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게. 슬픈 거네. 하지만 무조건 슬픈 것만은 아니야.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인호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별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야. 과거의 사람들은 별을 보고 길을 찾고, 또 별을 보고 씨앗을 뿌릴 시기를 정했지. 그뿐이 아니야. 별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꿈을 선물하기도 해.”
“우리 엄마도 별이 됐을까요?”
“그렇지 않을까?”
아이가 밤하늘을 올려본다. 인호가 다가가 아이의 목을 받쳐 준다. 아이는 인호의 품에 기대 별들을 헤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적 있어요?”
“음-.”
인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주 많이.”
“슬펐나요?”
“그래. 아주 많이 슬펐어.”
인호의 곁을 떠난 사람들은 많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슬펐다. 이유야 뻔하다. 인호가 아는 사람들 중 극락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극히 소수였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락이 아닌 지옥으로 갔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시간 동안 지옥에서 고통받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며 쌓은 업 때문이기에 누굴 원망할 수도 인호가 무언갈 해줄 수도 없다.
“저 하늘에 별들이 사람들의 영혼이라면…….”
아이가 고개를 돌려 인호를 바라본다.
“엄마는 저기 없었으면 좋겠어요.”
“어째서?”
“그냥요. 죽은 후에라도 편하게 쉬었으면 좋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