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50화 (150/190)
  • 제150화

    “크아아악-!”

    인호가 뿌린 액체를 뒤집어쓴 서병재가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친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알고는 있나?”

    인호는 고통에 발악하는 서병재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말을 잇는다.

    “물론 나도 가본 적은 없어. 하지만 지옥에 한없이 가까운 이들이라면 알고 있지. 그들은 내게 항상 말해. 계속 이렇게 살면 결국 너도 지옥에 가게 될 거라고. 그러면서 지옥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나는 말이야. 평소에 고통을 아주 잘 참는 편이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그들이 말한 지옥이 주는 고통의 10%, 아니 1%도 참아낼 자신이 없어.”

    인호가 다시 병 안에 담긴 액체를 서병재에게 뿌린다.

    “지옥이란 그런 곳이다. 중요한 건 그것도 모르는 주제에 지옥문을 열고 다니는 놈이 있다는 거야.”

    인호의 음성에 분노가 깃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축복이라 생각했던 너의 이적. 그 이적에 노출된 이들 역시 지옥으로 끌려가야 한다는 거다. 네가 치료했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불쌍한 아이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인호가 서병재를 향해 걸어갈 때였다.

    “아니야!”

    누군가 서병재 앞을 가로막는다.

    송재겸의 딸인 송유빈이었다.

    “교주님은 악마 같은 게 아니야! 당신은 교주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몰라! 그래서 지금 그럴 수 있는 거야. 교주님은 아픈 이들을 치료해 주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송유빈을 인호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서 너도 치유되었다고?”

    “…….”

    “네 지친 영혼이 위로를 받은 거 같고?”

    “나, 나는…….”

    “악마의 속삭임은 너무나도 달콤하지. 하지만 그건 위로가 아닌 유혹이야. 몸을 돌려, 시선을 돌려 네가 대단하다고 말한 교주를 똑바로 봐라.”

    송유빈이 몸을 부르르 떤다. 이상하게도 인호의 말대로 고개를 돌리게 되면 자신의 신념이 그대로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 인간의 입으로 신을 논하면 안 되겠지만, 아무리 신이라 해도 대가 없이 병자를 낫게 하진 못한다. 의사들도 포기한 불치병이라면 더더욱 말이지.”

    그 덕에 인호는 몸 가득 암세포만큼이나 무서운 문양을 몸에 새기고 있다.

    그건 대가이자 낙인이었다.

    그가 벌인 인과율에서 벗어난 일들에 대한 증거로 몸에 형벌을 새기는 것이었다.

    인호뿐만 아니라 인호의 아버지,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인호와 마친가지로 몸에 형벌을 가득 새긴 채 생을 마감했다.

    “유빈아. 어서 이리로 와.”

    송재겸이 딸에게 버럭 소리친다.

    “싫어!”

    송유빈이 눈을 부릅뜨고 아버지를 향해 빽 소리친다.

    “아빠는 항상 명령하잖아.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이렇게 해.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야. 나도, 엄마도 아빠의 명령에 지쳤어.”

    송재겸이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송유빈은 칼처럼 날카로운 말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이제 그만해. 사람들이 존경하는 아빠, 권력자들도 두려워하는 아빠. 그런 아빠가 나랑 엄마한테는 그저 숨이 막히는 존재일 뿐이니까.”

    “유빈아. 아빠는-.”

    그 순간, 인호가 슬쩍 옆으로 이동해서 송유빈의 시야에서 송재겸을 없앤다.

    “고개를 돌려 뒤를 봐라. 그러면 네가 믿는 것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알게 될 테니.”

    송유빈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안돼! 보지 마!”

    서병재가 크게 외친다. 하지만 이미 송유빈의 시선은 그에게 향해 있었다.

    “꺄아아악-!”

    송유빈이 공포로 가득한 외침을 토해냈다.

    “하아-. 보지 말라고 했잖아.”

    서병재가 가볍게 숨을 토해낸다.

    그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며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주위에 퍼진다.

    “이건 유황 냄새군. 네가 섬기는 악마가 사는 곳은 유황불로 가득한 곳이라지.”

    인호의 말에 서병재가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거린다.

    “키키키. 그래서? 그래서 뭐?”

    서병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가 걸친 옷 여기저기가 녹아내렸다.

    “성수였나?”

    “아마도?”

    이곳에 오기 전 박주완에게 들러 성수를 조금 얻어왔다.

    만약 예상한 것처럼 서병재가 악마를 추종하는 자라면 인호의 힘보다는 성수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 모습이 네 실체인가?”

    녹아내린 옷들 사이로 보이는 끔찍한 모습.

    수많은 눈동자가 서병재의 몸에 박혀 있다. 눈동자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정재훈을 비롯한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선다.

    “네가 기적이라 말하며 사람들을 치료한 대가가 바로 그것인가?”

    “축복이지.”

    찌이익-

    서병재가 귀찮다는 듯 옷을 찢어낸다. 드러난 상체에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끔찍하군. 그리고 추악해.”

    “아니지. 아름답지. 끔찍하고 추악한 것은 바로 너희 같은 인간들이지. 선량한 척 웃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가면 안쪽의 얼굴은 그야말로 추악함 그 자체지.”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지. 하지만 가면 안의 얼굴이 모두 추악한 건 아니야.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하는 어머니가 쓴 가면, 그 가면 안에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이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 숭고한 얼굴이 가려져 있지.”

    잠시 숨을 고른 인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네가 저주하는 총장님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 알려진 가면 그 안에 어떤 얼굴이 있을까? 유빈이가 말한 것처럼 가족들을 숨 막히게 하는 그런 얼굴이 있을까?”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너 같은 최악의 것들에게서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진정한 아버지의 얼굴이 있지. 유빈아.”

    인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한다.

    “아버지가 네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다시 떠올려 봐. 거기에 담긴 진심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거다. 때로는 지나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너를 꾀어내어 복수를 완성하려는 악마의 달콤한 말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인호가 손에 든 병을 서병재에게 던진다.

    “그러니 어리광은 거기까지만 해라.”

    콰직-

    서병재가 병을 받아 움켜쥔다. 깨진 유리 조각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주륵 흘렀지만 고통은 느끼지 않는 듯하다.

    “궤변이다. 추악한 변명이다.”

    “그렇다고 치자.”

    인호가 서병재를 향해 다가선다. 서병재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고작 인간의 몸으로 내게 대적하려는가?”

    “주변에서 교주님 교주님 해주니까. 스스로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넌 악마도 못 되는 하수인일 뿐이야. 하수인이라는 말도 과하네. 따까리?”

    “닥쳐!”

    서병재가 외치자 그의 몸에 박혀 있는 눈동자들이 일제히 인호를 쏘아본다.

    “그분의 권능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지. 하지만 내가 가진 힘은 그것뿐만이 아니야. 이렇게 병도 줄 수 있지.”

    서병재가 손을 내밀자 검은 기운이 뭉클 피어올라 인호에게 흘러간다. 검은 기운이 인호의 몸을 감싼다.

    “살이 썩고 폐와 심장이 고름으로 가득하리라.”

    서병재가 저주를 쏟아부었지만, 인호는 물끄러미 서병재를 바라만 볼 뿐이다. 서병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검은 기운은 인호의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할 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인호가 병마에 피를 토하며 쓰러져야 했다.

    “왜?”

    “네가 악마를 섬긴다면 나는 그보다 대단한 분의 사랑을 아주 듬뿍 받고 있거든.”

    마르바스의 권능이 인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인호의 몸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문양 때문이었다.

    “오, 오지 마.”

    인호가 다가서자 서병재가 뒤로 물러선다. 그의 몸에 박힌 눈동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도망칠 곳을 찾고 있나? 미안하지만 네가 도망칠 곳은 없어.”

    “닥쳐. 이곳만 벗어나면…….”

    인호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온다.

    “내가 어두운 골짜기를 걸음에도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지켜 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여,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

    인호가 빙긋 웃는다.

    “악마라면 치를 떠는 분이 오셨거든.”

    거대한 십자가를 앞세운 박주완이 걸어오고 있다. 그의 몸에 희미한 빛이 흐르고 있다.

    “성 미카엘 대천사여. 싸움에서 우리를 보호하소서. 악마의 악의와 간계에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영혼들을 멸망시키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탄과 다른 악령들을 하느님의 능력으로 지옥에 가두소서.”

    “크아아악-!”

    박주완의 십자가에서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나온다. 그 빛에 노출된 서병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낸다.

    “악마의 주구여. 네가 돌아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다.”

    박주완이 십자가를 머리 위로 치켜든다. 십자가가 서병재의 머리로 떨어져 내린다.

    콰쾅-

    누군가의 몸이 붕 떠올라 멀리 날아간다.

    “신부님!”

    날아간 것은 박주완이었다.

    - 흐아아.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구나.

    듣는 것만으로 머리가 주뼛 설 것 같은 기괴한 음성이었다.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서병재를 바라본다. 그의 상체에 가득 박혀 있던 눈동자들이 하나둘 터진다. 핏물이 서병재의 몸을 감싼다.

    그러는 동안 박주완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박주완은 십자가를 몸 앞에 세운 채로 서병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힘겹게 걸음을 뗀다.

    그의 입에서는 쉼 없이 기도문이 흘러나왔다.

    - 크하하. 이름조차 갖지 못한 신을 섬기는 아이야.

    이제는 더 이상 서병재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듯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박주완이 인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존재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 낄낄. 다시 말해주랴? 아니 물어보마. 네가 섬기는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

    악마, 마르바스가 말을 하자 박주완의 양 귀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박주완은 눈을 부릅뜬 채 성호를 긋고는 십자가를 앞세워 마르바스와의 거리를 좁힌다.

    “악마야. 지옥의 유황불로 돌아가거라.”

    박주완이 성수를 정면으로 뿌린다. 하지만 성수는 마르바스에게 닿지 못하고 증발되어 사라진다.

    - 이제 내가…….

    “말하마. 네가 섬기는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 과연 네 신의 이름이 무엇이기에 유황불의 지배자인 내게 명령을 하는 것이냐? 이름조차 없어 ‘아버지’라고만 불리는 네 신에게 싹싹 빌어보아라.”

    마르바스가 두 손을 모아 비비며 애처롭게 말한다.

    “아버지시여. 이 위험해서 절 구하소서.”

    “닥쳐라. 이 악마야!”

    박주완의 십자가가 허공을 가른다. 마르바스가 히죽 웃으며 손을 뻗는다. 십자가가 허공에 멈춘다. 박주완이 이를 꽉 깨물며 힘을 주지만 십자가는 요지부동이다.

    마르바스가 손을 비틀자 십자가가 옆으로 밀려난다.

    “신을 부르며 내게 대적했던 수많은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나? 너희들이 말하는 지옥의 유황불 속에 있지. 아주 즐거워하며 말이야.”

    마르바스가 혀로 입술을 훑는다.

    “네 피는 아주 달콤한 것 같구나.”

    빠각-

    마르바스의 몸이 날아가 벽에 부딪힌 후 떨어진다. 마르바스를 멀리 날려 버린 인호가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한다.

    “도저히 더 못 들어주겠네. 악마라는 새끼가 뭐 이리 혓바닥이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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