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49화 (149/190)
  • 제149화

    “온통 어둠뿐인 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소서.”

    천주교 사제복과 비슷한 검고 긴 옷을 입은 남자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가련한 영혼들을 거두소서.”

    남자의 표정은 경건했다. 그의 음성은 크지 않았으나 넓은 예배당 곳곳에 전달되고 있다.

    “한 걸음 다가오라. 내가 세 걸음 다가갈 것이니. 그 말씀대로 한 걸음 나아갑니다.”

    예배당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있는데 한 손은 수직으로 다른 한 손은 수평으로 한 채 수직으로 편 손바닥 중앙에 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시고 가련한 영혼들의 고통을 거둬 주실 분이시여. 내 영혼이 당신께 가길 간절히 원하나이다.”

    남자, 서병재가 눈을 뜬다.

    눈을 감은 채 여전히 기도를 하고 있는 신도들을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며 신도들이 하나둘 눈을 뜬다.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그분께서 들으셨을 겁니다.”

    신도들의 눈에 기이한 열망이 깃든다.

    “우리들의 믿음이 그분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힘을 주십니다.”

    서병재가 양손을 좌우로 벌린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분의 자식은 앞으로 나오세요.”

    몇몇 신도들이 앞으로 나온다. 그들 중 몇몇은 혼자 힘으로 걷기 힘든 듯 주위 신도들의 도움을 받는다.

    “형제여. 어떤 고통을 겪고 있나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우리들의 아버지시자 세상의 유일한 광명하신 그분이 형제의 고통을 치료하실 겁니다.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세요.”

    암에 걸렸다는 신도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분의 기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형제는 어떤 사람이 될 건가요?”

    “그분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불신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그분의 이름을 전할 용기가 있습니까?”

    “제 마음은 오직 그분만이 아십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세요. 그러면 그분께서 형제의 고통을 치료해 주실 겁니다.”

    신도가 두 손을 천천히 위로 올리며 한 이름을 부른다.

    “마르바스시여.”

    서병재가 신도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형제의 모든 것을 그분께 드릴 준비가 되었습니까?”

    “네. 저를 들어 온전히 쓰소서.”

    “이 순간부터 형제는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서병재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신도의 몸으로 스며든다.

    “그분의 은총으로 형제의 몸은 깨끗해졌습니다. 내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아 보세요.”

    “오오오-! 마르바스시여.”

    신도가 눈물을 흘리며 무릎걸음으로 뒤로 물러난다. 다음 신도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는다. 서병재는 차례대로 신도들을 치료해 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 아직은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은 감동으로 가득한 눈으로 서병재가 신도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마르바스시여.’

    치료가 모두 끝나자 서병재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설교의 대부분이 마르바스라는 신의 위대함에 대한 것이었다. 신도들은 서병재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까 두려운 듯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여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배가 끝난 후 신도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오늘 예배는 어땠니?”

    서병재가 여학생에게 다가온다.

    “너무 좋은 말씀이었어요. 제 가슴이 하얗게 정화되는 느낌이었어요.”

    “다행이구나.”

    서병재가 여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여학생이 문득 몸을 부르르 떨며 주위를 살핀다.

    “왜 그러니?”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아서요.”

    “이곳엔 우리 둘밖에 없는걸. 네가 잘못 느낀 것이 아니라면…… 혹시 마르바스께서 널 지켜보고 계시는지도 모르겠구나.”

    긴장으로 물들었던 여학생의 눈이 몽롱하게 변한다.

    “마르바스시여.”

    서병재는 그런 여학생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 * *

    끼이익- 텅

    승합차가 멈추며 형사들이 빠르게 내린다. 그 뒤에 선 차에서 인호와 일행들이 내린다. 정재훈이 손짓을 하자 형사들이 건물 안으로 빠르게 진입한다.

    인호가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차 한 대가 급정거하며 멈춘다. 차에서 내린 남자를 본 정재훈이 허리를 꺾는다.

    “총장님.”

    50대 후반의 다부진 체격의 남자는 검찰총장 송재겸이었다.

    “여기 있다고?”

    “네, 총장님.”

    송재겸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정재훈이 그 앞을 막아선다.

    “왜 그러나?”

    “너무 감정이 앞서십니다. 자칫…….”

    “걱정하지 말게. 법을 집행하는 검찰의 머리가 나야. 나의 모든 행동은 법에 의거할 걸세.”

    정재훈이 비켜서자 송재겸이 걸음을 뗀다. 인호 일행과 송재겸이 데리고 온 수사관들이 그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누군가를 포위하고 있는 형사들 곁으로 다가선다.

    “오랜만입니다. 검사님.”

    형사들 포위 안에 있는 서병재가 송재겸을 보고는 환하게 웃는다. 송재겸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는 서병재의 뒤에 서 있는 여학생을 보고는 화급히 외친다.

    “유빈아.”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은 송재겸의 무남독녀 송유빈이다. 송유빈이 멀쩡해 보였기 때문인지 송재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유빈아.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오신 거예요?”

    “당연히 널 구하려고 한 거지.”

    “교주님께서 분명히 말씀 하셨잖아요. 저 멀쩡하다고, 무사하다고.”

    “그건…….”

    범인의 말을 믿는 경찰이나 검사는 없다.

    “전 잘 지내고 있었어요. 교주님도 제게 굉장히 잘해주셨고요. 전 이곳에서 교주님과 함께 신께 한 걸음 다가섰어요.”

    “유빈아. 사이비 종교야.”

    “사이비요? 아닌데요? 제가 직접 보고, 겪었는데요.”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사이비 종교야.”

    “사이비 종교가 암 환자를 완치하고,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나요?”

    “그거 다 연기야, 연기! 말이 안 되잖아.”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교주님이 아빠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뿐이었어요. 아빠의 잘못을 신께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것. 그런데 이게 뭐예요?”

    인호가 앞으로 나선다.

    “유빈 양. 반가워요.”

    “형사세요?”

    “아쉽게도 머리가 나빠 경찰 공무원 시험을 통과할 자신은 없군요. 경찰은 아니지만 남들에게 제법 인정받고 있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인호가 송유빈이 아닌 그의 앞에 서 있는 서병재에게 시선을 준다.

    “서병재 씨. 전 정인호라고 합니다.”

    “특이하신 분이군요.”

    “서병재 씨만 하려고요.”

    “제게서 뭘 보신 겁니까?”

    서병재가 웃으며 묻는다.

    “서병재 씨는 제게서 뭘 보셨습니까?”

    인호가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한다. 서병재는 인호에게 시선을 거두고 송재겸에게 묻는다.

    “검사님. 아니, 이제 총장님이시죠? 제 조건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내가 그럴 것 같나? 내가 왜 선량한 사람들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너 같은 사기꾼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지?”

    “하아, 결국 이렇게 되네요. 유빈아.”

    “네, 교주님.”

    “이제 유빈이가 선택할 차례야. 네 아버지는 우리들의 신을 부정했어. 유빈이도 그래?”

    송유빈이 무릎을 꿇는다.

    “아니요. 그분을 향한 제 마음은 강철보다 단단해요.”

    “그분이 어떤 분이죠? 유빈 양은 그분을 뭐라고 부르죠?”

    순간, 자연스러운 말투로 인호가 물었다.

    “그분의 이름은 마르…….”

    서병재가 송유빈을 툭 치며 앞으로 나선다.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닙니다.”

    “이미 들어 버렸는걸요. 마르-. 내가 아는 악마들이 제법 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이름을 쓰는 악마는 하나뿐이죠.”

    “감히!”

    서병재가 버럭 소리 지른다.

    “악마라고? 신성모독이다! 하찮은 입으로 그분을 논하지 말라!”

    그의 눈에서 흉흉한 기운이 줄줄이 뻗어 나온다.

    “마르바스. 마르바스. 마르바스!”

    인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마르바스’라는 이름을 연거푸 부른다. 서병재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듯 새빨갛게 변한다.

    “감히 버러지만도 못한 하찮은 인간이 존귀한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는가!”

    “못할 것도 없죠. 아시잖아요. 신이든, 악마든. 그 이름이 많이 불릴수록 존재의 의미가 강해집니다.”

    “한 번 더 악마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 결코 편히 죽지 못하리라.”

    “악마. 솔로몬의 72악마 중 하나. 질병을 퍼트리기도, 병을 고치기도 하는 대악마 마르바스.”

    인호는 송유빈이 ‘마르’라는 했을 때 서병재가 섬기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심각한 병을 지닌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마르바스에 관한 지식은 박주완에게 들은 것이다.

    서병재가 행한 일을 설명했더니 그가 섬기는 악마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마르바스일 것이라 말해주었다.

    송재겸이 고개를 까딱거린다.

    수사관과 형사들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후후,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서병재가 가볍게 웃으며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후우-. 어째서 사람들은 신의 뜻을 거부하려고만 할까요? 신께서 바라시는 것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신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뿐이죠.”

    서병재가 송재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기회를 드렸잖아요. 항상 법이라는 검을 들고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기에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 같습니까?”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검사님. 제가 재판을 받을 때 단 한 번이라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적 있으십니까?”

    말을 하려던 송재겸이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서병재의 말대로 그의 진술은 제대로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서병재 씨.”

    인호의 부름에 서병재가 인상을 찌푸린다.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존재여. 그 입을 다물라.”

    “신의 존재를 거부한다? 나만큼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하나만 묻죠. 사람들을 치료하셨다고 들었어요.”

    “신의 권능으로 기적을 펼친 것이다.”

    “그래서 그 대가는요? 아-,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사용하는데 아무런 대가가 없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당신만큼은 아니더라도 악마에 대해서 알만큼은 알고 있으니.”

    인호가 한 걸음 다가선다.

    서병재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의 눈에서 인호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박 신부님이 대단한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요.”

    구마사제인 박주완이 상대하는 건 악마들이었다.

    악마 그 자체이거나 악마의 사주를 받은 인간.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간들의 최후가 어떤지 아세요?”

    인호가 다시 한 걸음 다가선다.

    “사람들이 하는 흔한 착각이 뭔지 아세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아니에요.”

    인호가 정장 상의 속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죽음 끝이 아닌 시작이에요. 선하게 산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평온과 안식의 시작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인호가 손에 든 작은 병의 마개를 열고 내용물을 서병재에게 뿌렸다.

    “지옥이 시작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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