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48화 (148/190)

제148화

“어서 오십시오.”

집사가 현관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

“잘 지내셨죠?”

“덕분에요.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제봐도 멋진 집이다. 정원을 다시 한 번 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응접실에 기다리고 있던 이철호가 인호를 보고는 웃으며 손을 든다.

“어서 와. 차는 안 막혔고?”

“퇴근 시간 피해서 그런지 그렇게 막히지 않았습니다.”

“차 좀 주지.”

“네, 회장님.”

잠시 후 고용인이 차를 내온다.

“못 보던 그림이 늘었네요.”

“소미 떠난 후에 저런 것들 모으는 것에 취미를 붙였어. 마음에 들면 한 점 가져가고.”

“하하, 제 사무실하고 전혀 어울릴 것 같아 사양하겠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사무실도 좀 옮기지 그래. 돈도 많은데 왜 그리 구질구질하게 살아?”

“저희 집안이 대대로 사용하던 곳이라서요.”

“아, 그래? 내가 실수했군.”

“아닙니다.”

“밥은 먹고 왔어?”

“점심을 늦게 먹었습니다.”

이철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지.”

인호가 이철호의 뒤를 따라 지하로 내려간다.

그동안 이 집에 자주 방문했지만, 지하로는 내려가는 건 처음이었다.

상당히 넓은 홈바와 이런저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멀티룸, 그 옆으로 골프 연습실과 사우나 시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소미와 운동도 하고 가끔 술도 한 잔씩 했지.”

이철호가 과거의 아련한 추억을 곱씹으며 쓰게 웃는다.

“저곳이야.”

골프 연습실 옆으로 세 칸의 계단 위에 문 하나가 보인다.

안으로 들어간 인호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그저 소파 몇 개에 스크린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좌석의 수가 적기는 하지만 영화관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구조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이리로 앉지. 나름 VIP석이니까.”

다른 좌석에 비해 고급스러워 보이는 좌석이다. 아마도 이소미와 함께 영화를 보던 곳이리라.

“팝콘 먹겠나?”

“그런 것도 있습니까?”

“돈이 좋은 게 뭔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는 거지. 말만 하면 즉석에서 팝콘도 만들어 준다네. 아참, 츄러스도 있는데 맛이 근사하지.”

“팝콘으로 하겠습니다.”

이철호가 좌석 옆 인터폰으로 주문하니 고용인이 곧 금방 튀겨낸 팝콘을 가져다준다.

“한번 먹어봐. 영화관에서 파는 것 못지않을 거야.”

팝콘을 입에 넣는다.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맛있네요.”

“그렇지? 본격적으로 영화 감상을 시작해 볼까?”

이철호가 버튼을 누르자 스크린에 영화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였지만 한국어 자막은 없었다. 인호나 이철호 모두 자막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철호에게 들은 것과 같았다.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딸과 그녀의 곁을 지키는 아버지.

“독립 영화치고는 배우들의 연기가 좋네요.”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는 주연급은 아니지만 조연급으로 많은 활동을 한 중견 배우야. 여자배우는 무명인데 연기가 일품이지.”

“어쩌면…….”

연기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짜로 죽어가고 있다고 했으니까.

두 배우의 연기가 참 일품이다.

“뭔가 느껴져?”

“전혀요.”

그저 평범한 영화일 뿐이었다.

“나도 오늘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겠네.”

“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인호가 망령들을 보고 그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망령들도 인호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런닝타임이 70분 정도라고 했으니 영화는 이제 곧 끝날 것이다.

- 아빠. 나 죽으면 많이 울어줘야 해.

- …….

딸의 말에 아버지는 입술을 질끈 깨문다. 눈가가 부르르 떠는 것이 톡 건들면 주르륵 눈물이 흐를 것 같다.

- 딱 3일만. 응? 알았지? 딱 3일만 울어줘. 3일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행복하게 살아. 항상 웃으면서.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으니까 아빠는 행복할 자격 있어.

마지막 숨결을 토해내듯 힘겹게 말한다. 딸은 아버지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반대로 돌린다.

- 아빠. 나 피곤해. 잘래.

- 그래. 잘자. 사랑하는 내 딸. 푹 자.

아버지의 음성이 가늘게 떨린다. 딸이 지금 잠이 들면 다시는 깨지 못할 것을 예상한 것이리라.

딸의 고개가 돌아간다. 카메라가 딸의 시선에 맞춰 이동한다. 카메라가 딸의 얼굴 정면을 비추고 있다.

“흐음-.”

인호가 가는 신음을 토해낸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딸의 눈과 마주한다. 그 눈이 정확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아닌, 인호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딸은 곧 눈을 감았다.

- 제니. 제니-!

아버지의 오열이 들려오며 화면이 서서히 검게 물든다.

“끝났어. 가슴에 남는 것이 많은 영화였지?”

“그렇네요. 마지막 장면, 여자배우가 카메라를 응시할 때 잠시지만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저를 응시하고 있었으니까요. 자신의 존재를 보여 준 정도였습니다. 무언갈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말이죠.”

영화가 끝나고 인호는 이철호와 함께 응접실로 돌아왔다.

영화를 보는 사이 고용인들이 간단하게 술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지금 본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

인호가 술잔을 기울이며 이철호를 바라본다.

“아버지로 출연한 배우가 자살했어.”

“자살이요?”

“그래. 정확히는 죽은 여배우의 무덤가에서 죽은 채 발견됐지. 외부에서 받은 충격이나 상처가 전혀 없어. 심장 마비나 그 밖의 질환도 아니라고 하고. 영화 관계자들은 촬영을 마친 후 배우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고 해. 그들의 짐작으로는 배역에 너무 깊게 빠져 그런 것이라고 하더군.”

유명 배우들의 일화를 살펴보면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떤 배우가 연쇄살인마 연기를 한 후 집에 돌아가니 아내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했다는 이야기처럼.

“혹시 말이야. 죽은 여배우가 남배우를 끌고 간 것은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잠시지만 느꼈던 여배우의 망령이 지닌 기운은 아주 깨끗하고 맑았다.

지금까지 인호가 보았던 그 어떤 영혼보다도 더.

인호는 고용인에게 영화 필름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필름에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필름이 영화로 상영될 때만 망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듯하다.

“국내에서는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국내가 아니라면 가능하고?”

“확실히 대답은 드리지 못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이 필름 그냥 불태워 버리면 회장님께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습니다.”

령이 깃든 물건, 혹은 령이 닿은 물건들은 처리할 때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칫 령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해 나쁜 기운으로 물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호라면 아무런 문제가 남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철호가 고개를 흔든다.

“내가 말했잖아. 그 여배우 내게 말을 하는 것 같았어. 영화를 보며 소미 생각도 많이 했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처리하고 싶지 않아. 어떤 사연이 있는지 네가 한 번 알아봐.”

“그걸 원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느 나라로 가야 해?”

“미국입니다.”

“미국에 가는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갈 때도 전용기 내줄 테니까 그걸로 가도록 해.”

“그냥 비행기 타면 됩니다.”

“내가 부탁해서 가는 거잖아.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는 못 갑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정재훈과 함께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급한 일도 아니니 그렇게 해.”

* * *

“위치 파악됐습니다.”

정재훈의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유 형사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한다.

정재훈의 눈빛이 변한다.

“어딥니까?”

“구미입니다.”

유 형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과거 광명교 본단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 하하. 이런 경우를 두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거군요. 거기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요.”

“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바보가 아니라면 거기에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으니까요.”

정재훈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구미 경찰서에 협조 요청해 놨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인호 씨도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밖으로 나가니 형사들이 차를 준비해 두었다. 형사들이 승합차로 먼저 출발하고 일행은 유 형사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고 출발한다.

“제가 조사를 조금 더 해 봤는데요. 전에 이야기했던 그 병 고쳐줬다는 것 말입니다. 그거 사실인 것 같습니다.”

“사실이라고?”

“네. 치료 과정을 찍어둔 동영상이 있더라고요. 안구질환으로 시력을 상실한 신도를 치료하는 영상이었습니다. 동영상 속에서 치료를 받은 신도를 조사해 봤는데. 서울의 유명한 병원에서도 수술로 시력을 되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네요. 물론 제가 직접 의사를 만나 확인한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 아주 멀쩡합니다.”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인호가 룸미러로 정재훈을 보며 말한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제가 아는 상식으로 우리나라에는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없습니다. 잘 아시는 박주완 신부님, 황동호 도사님, 불계 스님. 그리고 박수님과 만신님 중 그런 힘을 지니신 분이 없어요. 제가 모르는 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죠.”

“그렇다면…….”

인호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뱀파이어 사건 때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죠. 아-! 설마 외국에는 그런 힘이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저도 듣기만 해서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악마와 계약한 이들 중 기적이라고 불러도 되는 일을 해내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십수 년 정도 지난 일인데 미국에서 악마 추종자가 죽은 지 삼 일이나 지난 사람을 되살린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에 희대의 사기극이라며 사람들에게 잊히긴 했지만, 그 기록은 바티칸 지하서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사실이었던 모양이네요.”

인호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죽은 이가 악마에 빙의되었던 이라고 합니다. 바티칸 소속 구마사제 한 분이 파견되었습니다. 악마를 몰아내긴 했는데 아쉽게도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구마 사제가 직접 죽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사흘 만에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사람들은 희대의 사기극이라며 손가락질을 했지만 구마 의식을 진행했던 사제와 바티칸은 그 일이 진실임을 알고 있다.

인호 역시 박주완에게 듣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인호 씨 말은…… 우리나라에 악마와 계약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인호가 한숨을 토해낸다.

“아직은 추측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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