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47화 (147/190)
  • 제147화

    “자, 먹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유쾌해지는 사람이 있다.

    인호에게는 이철호 회장이 그런 사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철호를 만나면 마음이 참 편했다.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돈이 많은 재벌 회장이라기보다 평소에 잘 아는 같은 동네 아저씨를 대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다 조리가 되어 있어서 끓이기만 하면 되는 곱창전골을 주문한 후 전문가에게 맡기라며 허세를 부리는 모습에 몇 번이고 웃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곱창전골 맛 좀 볼까요?”

    “말해 뭐해? 끝내줄 거야.”

    우선 국물을 떠 입에 넣는다.

    “좋은데요.”

    본래 이런 맛인지, 아니면 이철호의 주장대로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 그런 것인지 국물 맛이 정말 끝내준다.

    “소주를 부르는 맛이네요.”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자-, 안주도 준비되었으니 한잔할까?”

    이철호와 건배한 후 소주를 털어 넣는다.

    함께 하면 좋은 사람과 마시는 술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팔자에도 없는 중공업 시작한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재계 서열 16위 도영 그룹이 최종 부도처리 되며 매물로 나온 도영 중공업을 정부의 반강요에 못 이겨 대은 그룹이 인수하게 되었다. 대은 그룹뿐 아니라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그룹들은 모두 하나씩 떠맡았다.

    그나마 대은 그룹은 도영 그룹의 계열사들 중 알짜라 할 수 있는 중공업을 차지할 수 있었다. 본래는 더 위 서열의 그룹에게 가야 할 중공업을 대은 그룹이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대은 그룹보다 서열이 높은 네 개의 그룹들 중 중공업이 없는 그룹은 단 하나뿐이다. 그곳에서더 도영 중공업에 눈독 들이고 있었지만, 이철호가 ‘맑은 정기 되찾기 재단’을 설립한 것이 대통령과 다른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바람에 대은 그룹이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자리만 보전하는 뒷방 늙은이 가슴에 오랜만에 불꽃이 타올랐다고 해야 하려나?”

    “중공업 인수하셨으니 저 요트 한 대 만들어주시는 겁니까?”

    “하하, 야 인마. 우리 중공업이 어디 작은 가내 수공업으로 배 만드는 곳이냐? 요트? 하하하하. 필요하면 내가 한 대 선물해 주고.”

    “농담입니다.”

    인호가 이철호의 잔을 채워준다.

    “중공업 인수하신 거 자랑하시려고 부르신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일 있으세요?”

    “별일 없다.”

    “아닌데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데요.”

    “하여튼 속일 수가 없다니까. 그래 내가 얼마전에 좀 이상한 일을 겪긴 했지.”

    “어떤 일인데요?”

    이철호가 잔을 지운다.

    “내 취미 중 하나가 영화 감상이야.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남들처럼 영화관 가서 보고 그러지는 못해. 그래서 집에서 보거든. 집에서 혼자 필름 돌려가며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해.”

    “그것도 좋을 것 같네요.”

    돈 많은 재벌가 사람들이 집에 영화관 못지않은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미국에 출장 갔던 임원 한 명이 영화를 한 편 가져왔어. 저예산 독립영화인데 나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다더군.”

    “어떤 내용의 영화인데요?”

    “불치병에 걸린 딸과 아빠 이야기야. 딸은 죽어가면서도 혼자 남게 될 아빠를 걱정하지.”

    그 영화를 보며 이철호는 죽은 딸 이소미를 떠올렸을 것이다.

    저승사자와 먼 길을 떠나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이철호를 위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던 이소미가 떠오른다.

    - 우리 아빠 혼자서 외로워 어떻게 해?

    이소미는 그렇게 하염없이 울다 떠나갔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소미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네게 더 고마웠고. 아무튼 내가 이상하다고 한 이유는 영화를 보는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이게 영화 같지가 않다는 거지.”

    인호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보이자 이철호가 설명을 덧붙인다.

    “딸이 아빠에게 말을 할 때 말이야. 꼭 영화 속 아빠가 아니라 내게 말을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세 번을 봤는데 세 번 모두 딸의 대사가 조금씩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흐음.”

    이철호의 말만 듣고는 정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필름을 가져온 임원의 말로는 그 영화에 사연이 좀 있다더군. 영화의 여주인공, 그러니까 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실제로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고 해. 자신의 마지막 장면을 찍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

    “마지막 장면이라면 죽는 장면 말입니까?”

    이철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영화를 찍기 전 계약서에 촬영 중 자신이 죽어도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각서도 쓴 모양이야. 다행히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고 정말 영화처럼 죽었다는군. 감독은 죽은 배우의 마지막 연기, 즉 죽는 연기를 편집할 수 없어 그대로 사용했데. 연기를 하던 배우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영화는 극장에도 걸리지 못했다고 하더군.”

    “그런 영화를 어떻게 가져온 겁니까?”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미국 출장 중에 몇몇 영화사를 돌아다닌 모양이야. 그러다 찾아낸 거지.”

    “회장님. 지박령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이철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는 봤지. 내가 아는 것이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죽은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망령을 지박령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망령들이 지박령이라고 하면 이해가 편하실 겁니다. 죽는 순간의 강렬한 기억 때문에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거죠.”

    “영화 속 여자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하지만, 간혹 자신을 죽게 만든 도구에 깃드는 망령들도 있습니다. 그 여자배우에게는 영화 필름이 그런 도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네 말대로라면 불쌍한 망령이로구나.”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아직 모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망령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회장님도 제가 아니었다면 그랬겠죠?”

    “그렇지.”

    “그런데 회장님께서 무언갈 느끼셨습니다. 그 말은 여자주인공이 필름 속에 정말 망령이 되어 살고 있다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의도라니? 그 여자배우는 나와 접점이 하나도 없잖아.”

    “꼭 어떤 인연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귀곡성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이철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호가 설명해준다.

    “망령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 중 하나죠.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을 겁니다. 운전하다가 깜빡 졸았는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듣고 깨어 보니 벼랑으로 추락하기 직전이었다고.”

    “들은 적 있어. 그와 비슷한 이야기도 많지.”

    “네. 바로 망령들이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이죠. 이런 좋은 의도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 이런 것을 소울크라이, 영혼의 울음이라고 부르죠.”

    이철호가 ‘소울크라이’라고 중얼거린다.

    “일단 회장님댁에 한 번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

    이철호와 헤어진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정재훈과 유 형사가 기다리고 있다.

    “언제 오셨어요?”

    “이제 막 왔습니다.”

    정재훈이 말을 하자 이민정이 손가락 하나를 편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는 의미다.

    “전화를 주지 그러셨어요.”

    “오랜만에 느긋하게 민정 씨 커피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민정아. 검사님 커피 한 잔 더 드려라. 아니, 두 잔 더 드려라. 그리고 보니 한동안 자주 보다 조금 뜸했다고 오랫동안 안 본 것 같고 그러네요.”

    “그러게요. 그래서 제가 온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검사님 오시면 무섭습니다. 뭔가 안 좋은 일 터진 것 같아서요.”

    정재훈이 어색하게 웃는다. 인호의 예상이 맞는 것 같다.

    “이번에는 무슨 사건입니까?”

    “납치입니다.”

    수많은 범죄 중 최고의 악질 범죄 중 하나가 납치였다. 납치는 당사자에게도 그의 가족, 혹은 주변인들까지 피를 말린다.

    “납치당한 사람이 누구죠?”

    “송유빈. 나이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유빈 양의 아버지가 총장님이십니다.”

    “네?”

    “송재겸 검찰총장님의 무남독녀입니다. 늦둥이라 애지중지하는 딸이죠.”

    인호가 볼을 긁적인다.

    “검사님이 속해 있는 조직의 수장의 일이라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저한테 오실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직도 절 그렇게 모르세요? 총장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사건 자체가 조금 이상해서 그래요.”

    “말씀해 보세요.”

    정재훈이 눈짓을 하자 유 형사가 휴대폰을 인호에게 보여주며 입을 뗀다.

    “서병재. 나이 53세. 직업은 종교인이에요. 사기죄로 15년 복역하고 지난달에 출소했습니다.”

    “설마 납치범이야?”

    “네.”

    “납치범을 벌써 찾았다고?”

    “납치범이 자기 신분을 밝혀서요.”

    “독특하네.”

    “그러게요. 일단 단순 납치는 아닙니다. 복수죠. 이 사람 교도소 보낸 사람이 현 검찰총장님이세요.”

    “아, 그래서 복수. 종교인인데 사기죄로 들어갔으면 사이비 종교일 거고. 맞아?”

    유 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광명교라고 경상도 구미에서 활동하던 종교인데 당시에 피해액이 상당해요.”

    “광명교. 들어본 것 같네.”

    인호가 들었을 정도로 한때 꽤 유명세를 떨쳤던 종교였다.

    “유빈 양을 납치한 서병재가 이상한 요구를 하고 있다네요.”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네. 그는 자기가 요구하는 딱 한 가지만 들어주면 유빈 양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풀어주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어떤 요구사항인데?”

    “총장님께서 자기가 섬기는 신의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인호의 질문에 정재훈이 대답한다.

    “딸의 목숨을 구하려면 말이 안 되는 일도 해야죠. 아시겠지만 가장 상대하기 힘든 미친놈이 확실한 신념을 가진 미친놈이거든요.”

    다시 유 형사가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영 사기꾼은 아닐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이야?”

    “광명교라는 곳을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교주 서병재가 한 일들 중에 신기한 일들이 많아요. 교인들 병을 고쳐줬다고 하네요. 그중에는 말기 암 환자도 있었다고 해요. 물론 완치되었고요.”

    “그걸 믿어?”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묻자 유 형사가 휴대폰을 조작해서 인호 앞에 내민다.

    “안 믿었죠. 그래서 직접 가서 조사했죠. 이분이 암 투병 중이셨던 광명교 교인이에요. 이분 다니던 병원에 확인했어요. 위암 말기가 맞았고요. 이게 암투병하던 때에 찍은 사진, 그리고 이게 완치된 후의 사진이에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죠? 놀랍게도 한 달 주기로 찍은 사진이었어요.”

    유 형사는 암 환자가 다녔던 병원의 기록도 촬영했다. 꼼꼼히 확인해봤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유 형사가 직접 조사한 것이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둘 중 하나겠네.”

    정재훈과 유 형사가 인호를 바라본다.

    “현직 베테랑 형사를 속일 정도로 대단한 사기꾼이던가, 아니면 진짜던가.”

    “소장님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사기꾼이지. 사람의 병을 고친다고? 그건 불가능해. 외국에서 그런 경우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어. 전해지는 이야기? 그거 다 사기야.”

    “그런가요?”

    “세상에 공짜는 없어.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무언갈 줘야 해. 만약 그 교주라는 사람이 자기가 모시는 신의 힘을 빌려 다른 사람의 병을 낫게 해 줬다면 그는 신에게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해 줘야 해. 신의 무조건적인 사랑?”

    인호가 씨익 웃는다.

    “그런 건 절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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