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인호가 안타까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아직 죽음이라는 단어조차도 낯설 나이의 아이다. 그런 아이가 어머니를 위해 대신 죽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란 사람은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아이를 밀어내고 있었다.
“엄마가 밉지는 않아?”
“아니요.”
아이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인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티셔츠 밖으로 드러난 아이의 피부에 상처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름이 뭐야?”
“조명진이요.”
“좋은 이름이네. 아저씨 이름은 정인호야.”
“아저씨 이름도 좋아요. 그런데 아저씨는 어떻게 절 볼 수 있는 거예요?”
“타고났지.”
인호가 웃으며 말한다.
잘 모르는 이들은 망령을 볼 수 있는 힘이 축복이라 말을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인호에게 이 힘은 처음부터 저주였다.
남들과 같지 않다는 것.
그건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처참한 현실이었다.
“매일 엄마 따라다니는 거야?”
“네. 엄마 또 술 취하면 안 되니까.”
“요즘도 술 많이 드셔?”
“아니요. 저 사고 난 이후로는 술 안 드세요. 그런데…….”
조명진의 음성이 작아진다.
“밥도 잘 안 드세요.”
조금 전 본 조명진의 어머니 얼굴은 매우 핼쑥했다. 자기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리라.
“저 때문에 오신 거예요?”
“맞아. 명진이가 매일 놀이터에서 있어서 사람들이 무서운가 봐. 혹시 밤에 여기서 노는 아이들한테 말 걸고 그랬어?”
“아니요. 제가 말해도 모르던데요. 친구 정우한테 말 걸어 봤는데 제 목소리 못 들었어요.”
가끔 영성이 강한 망령들이 사물을 움직이거나 자신의 존재를 산 자에게 알릴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았고, 대부분은 악업을 쌓은 악령들이 저지르는 짓이었다.
놀이터에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아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인 듯하다.
“많이 외롭지?”
“괜찮아요. 엄마도 매일 보니까.”
“그런데 죽었을 때 까만 옷 입은 아저씨 오지 않았어?”
“왔어요. 그런데 몰래 숨었어요.”
“왜? 엄마 더 보고 싶어서?”
조명진이 머리를 긁적인다.
“나 없으면 매일 술 마시는 엄마 챙겨줄 사람이 없거든요.”
아빠가 없는 듯하다.
“이렇게 오래 있으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주위에 계신 분들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여기 오래 머물면 자기들처럼 된다고.”
어떤 망령인지 몰라도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정작 말을 한 본인도 이승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하자. 내일 아저씨가 엄마를 만나 볼게. 그러면 엄마가 더 이상 명진이를 밀어내지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엄마하고 인사하고 가야 할 곳으로 가자.”
조명진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 *
조명진의 어머니는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골목 안쪽에 있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어서 오세요.”
기운 없는 음성으로 들어서는 인호를 맞이하는 여자가 조명진의 어머니인 이진주였다.
마른 얼굴에 눈이 쏙 들어갔고, 창백한 안색에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어젯밤에 아파트에서 스치듯 만나서 대화를 나눴음에도 이진주는 인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간단한 안주하고 소주 한 병 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이진주가 계란말이와 소주, 밑반찬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죄송한데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술은 못 마셔요.”
“괜찮습니다.”
그녀의 반응을 보니 이전에도 식당에서 손님들과 술을 마신 적이 종종 있었던 것 같았다. 영업전략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진주 본인이 술을 좋아해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전 이런 사람입니다.”
인호가 명함을 건넨다.
“극락 흥신소? 뭐 하는 곳이죠?”
“이런저런 일을 합니다. 최근에는 사시는 아파트의 부녀회장님께서 의뢰를 하셨죠.”
“네?”
“놀이터에 귀신이 있다고 물리쳐 달라는 의뢰를 하셨어요. 들어 보셨죠?”
“아……. 네. 들었던 것 같아요.”
인호가 소주를 따라 마신 후 말을 잇는다.
“혹시 놀이터에 있는 귀신이 어떤 귀신인지 아세요?”
“정말 귀신이 있는 건가요?”
“네. 있어요. 이미 알고 계셨잖아요.”
인호의 말에 이진주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인호가 답답한 듯 한숨을 토해낸다.
“부적 지니고 계시네요.”
어제는 처음 만나는 것이고 장소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선 순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부적이요?”
“네. 정확히는 제령부制靈符죠.”
제령부는 같은 발음에 다른 용도를 가진 두 가지로 나뉜다. 제사를 지내다 할 때 사용하는 제祭를 사용하면 이름 그대로 망령의 위로하는 부적이 된다.
하지만 이진주가 지니고 있는 제령부는 제制를 사용한다. 망령을 누르고 억제하는 힘을 지닌 부적인 것이다.
어제 인호가 헷갈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제령부는 상점이나 일반 가정에도 많이 붙여 둔다. 악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령부의 기운은 이진주의 몸에서 느껴지고 있다.
“왜 그러셨습니까?”
“뭐가요? 뭘 왜 그래요?”
이진주는 인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본다.
“명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묻는 겁니다. 당신 명진이 학대했잖아!”
인호가 버럭 소리친다.
어제 저녁 놀이터에서 보았던 조명진은 티셔츠 바깥 팔과 목, 그리고 안쪽 가슴에 상처가 있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로 죽을 당시에 입은 상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 이진주에게서 제령부의 기운을 느낀 후 깨달았다.
조명진의 몸에 남아 있는 상처는 교통사고로 생긴 것이 아니다.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상처가 그렇게 작을 리가 없었다.
아들이 죽었는데 망령이 다가오지 못하게 억누르는 제령부를 지니고 있는 어머니.
- 엄마가 절 밀어내요.
아들이 자기 대신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밀어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 때문이 아니라 제령부 때문에 조명진이 이진주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제, 제가 왜 우리 명진이를 학대해요?”
이진주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인호는 그녀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더 확신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 작은 아이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한 겁니까!”
그 순간이었다.
-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며 인호의 몸이 붕 떠서 반대편 벽으로 날아가 부딪친다.
고통을 삼키며 몸을 일으킨 인호는 조금 전 자신이 앉아 있던 것에 씩씩거리며 서 있는 조명진을 볼 수 있었다.
파직- 파직-
이진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기운이 조명진의 몸을 감싸고 있다. 마치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듯 푸른 기운이 조명진을 감싼다.
“명진아. 밖으로 나가. 위험해!”
인호가 다급히 외쳤지만, 조명진은 물러나지 않는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
“괴롭히는 것 아니야.”
“우리 엄마 괴롭혔잖아.”
조명진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우, 우리 명진이 여기 있어요?”
이진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인호가 이진주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 친다. 이진주의 눈에 푸른 기운이 스며든다.
“며, 명진아.”
“엄마? 나 보여?”
“우, 우리 명진이. 명진이. 으악!”
이진주가 놀란 듯 엉덩방아를 찧는다.
“빨리 그 부적 주세요.”
인호의 말에 이진주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린다. 그녀는 테이블에 기댄 채 떨리는 눈으로 조명진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명진이에요?”
“당신 그 부적 때문에 명진이가 힘들어하는 거 안 보입니까? 당신이 학대했든 뭘 했든 저 어린 녀석이 당신을 지키려고 하는 게 안 보이냐고요?”
인호가 이진주 앞에 손을 내민다.
“그러니 부적 주세요. 그리고 아들을 당당히 마주 보세요.”
이진주는 자신의 가슴을 가린 손을 풀지 않는다. 조명진을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조명진은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명진이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죽은 후에도 어머니가 걱정돼 먼 길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것이 가련하지도 않으세요.”
이진주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결국 이진주는 품속에서 노란 부적 한 장을 꺼내 인호에게 건넨다.
괴황지에 그린 부적은 제법 실력 있는 도사가 그린 부적이었다. 그러니 조명진이 어머니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이리라.
찌익-
인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부적을 찢는다.
“며, 명진아.”
조명진이 고갤 들어 어머니를 바라본다. 이진주는 떨리는 손을 좌우로 벌린다. 하지만 조명진은 선뜻 이진주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진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결국 그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내가 죽일 년이에요.”
그녀의 고해성사가 시작되었다.
한때 강남에서 잘 나가는 호스티스였던 이진주.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로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갖고 싶은 모든 것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났다. 자신이 다니는 업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쑥맥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다니고 대기업으로 취업이 보장된 남자였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다. 이진주는 그보다 잘생기고 돈도 많은 남자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 남자들도 이진주의 직업을 알면서도 결혼해달라 매달리곤 했다.
이진주가 그 쑥맥 같은 남자에게 빠질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사람의 아이를 가졌어요. 참 행복했죠. 이전의 생활을 청산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이도 낳고, 출근하는 남편 아침을 준비하는 평범한 삶이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제가 임신을 하자 그 남자는 떠났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어요. 참 바보같이 저를 버린 그 남자를 계속 사랑했어요. 그가 다시 돌아오길 바랐죠. 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꿈일 뿐이었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이진주가 조명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미안해’라고 중얼거린다.
“그 사람이 떠난 이유가 명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인생이 망가진 것도 명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 명진이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어요. 매일 힘들다는 핑계로 손님들 상대로 술을 마셨고, 술이 주는 과거의 추억에 빠져 명진이를 괴롭혔어요.”
이진주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조명진이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진주가 서럽게 울며 조명진을 안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조명진의 몸을 허무하게 통과할 뿐이다.
“흑흑, 명진이가 살았을 때도 제대로 안아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정말 안아줄 수 없게 되었어요. 엄마가 미안해. 너무 미안해.”
“괜찮아.”
조명진이 환하게 웃는다.
“아니야. 엄마가 그러면 안 됐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날 사랑하는 거 다 아니까 괜찮아.”
이진주는 조명진의 말을 듣고 더 서럽게 운다.
“명진이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없어?”
조명진이 인호를 힐끔 보고는 환하게 웃는다.
“엄마. 싱크대 왼쪽 가장 아래 서랍 빼면 돈 있어.”
“돈?”
“엄마는 술 마시고 들어와서 나 때리면 항상 미안하다며 혼자 울었잖아. 그리고 자는 내 머리 위에 용돈 줬잖아.”
이진주가 입을 틀어막는다.
“돈 모아서 나중에 엄마 선물 사주려고 했거든. 매일 버스 타고 다니니까 자전거 사주려고 했지.”
인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돈으로 또 술 마시지 말고.”
이진주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꺽, 꺽 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도장은 안방 제일 위 서랍 옷 밑에 있어. 매번 찾으려고 고생하잖아.”
조명진은 계속해서 이진주에게 말한다.
보통은 엄마가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말들이다. 이진주는 그 말을 들으며 서럽게 울고 있다.
인호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중얼거린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지 말입니다.”
인호의 뒤에 서 있는 저승사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