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45화 (145/190)
  • 제145화

    극락 흥신소.

    인호와 이민정, 그리고 망령들이 둘러앉아 조촐하게나마 회식을 벌였다.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한식과 중식을 섞은 안주들이 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사기꾼 이제 한 풀었으니 승천하는 일만 남았나?”

    웃으며 얘기를 하던 사기꾼이 영감의 말에 식겁한 표정을 짓는다.

    “하, 하하. 이 영감님 살벌한 말을 웃으면서 하시네. 갑자기 승천이 무슨 말이에요?”

    “원래 그런 거잖아. 이승의 한 풀면 승천하고. 그게 인호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 영감님은 왜 그동안 한 풀고 승천 안 하셨는데요?”

    “나? 나야 한이 없으니까. 잘 먹고 잘살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무슨 한이 있겠어? 아-, 모아 둔 재산 써보지도 못하고 자식놈들 배만 잔뜩 불려준 게 한이라면 한일까?”

    뚱보가 족발을 크게 한 쌈 싸서 입에 넣고 우적거리며 말한다.

    “영감님 말이 맞아. 넌 승천해야 해.”

    “아니. 이 저승사자님이 갑자기 왜 급발진하고 그러실까? 그리고 제발 입에 있는 것 다 삼키고 말할래요?”

    뚱보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사기꾼을 바라본다.

    “망…….”

    “그만!”

    사기꾼이 벌떡 일어서며 뒤로 물러선다.

    저승사자인 뚱보가 망자를 부르면 망자는 그 부름에 응해야 한다.

    “야, 적당히 해라. 기분 좋자고 하는 회식에서 왜 그런 몹쓸 장난을 치고 그러냐?”

    “크크, 재미있잖아.”

    뚱보의 입에서 육즙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아, 정말 더러워서 못 봐주겠네. 뚱보. 깨끗하게 먹어.”

    이민정이 티슈 상자를 뚱보의 얼굴에 집어 던진다.

    “이제 속이 좀 시원해?”

    인호의 물음에 사기꾼이 피식 웃는다.

    “엄청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냥 그렇다. 이미 다 지난 일로 광훈이 알거지 된 것도 마음이 쓰이고.”

    “평소답지 않게 왜 그러실까? 그놈이 쌓은 재산 어차피 네 핏값이잖아.”

    “아이, 몰라. 그냥 기분이 싱숭생숭해. 그나저나 정말 한 푼도 없는 알거지 된 거야?”

    “가지고 있는 건물 담보로 밑바닥까지 끌어당긴 모양이야. 그리고 그 깡패도 마찬가지고. 법적 처벌은 받지 않겠지만 남은 인생 참 고달플 거야. 알잖아. 가졌던 사람이 가진 것을 잃고 나면 어떻게 망가지는지.”

    “알지.”

    정광훈과 조문현은 알거지가 되었다.

    신성 그룹과 대은 그룹을 찾아가 진상을 부렸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두 그룹이 전직 사기꾼과 조폭이 가서 강짜를 부린다고 눈이라도 깜빡할 곳이 아니다.

    되려 두 사람이 험한 꼴 보고 도망쳤다고 한다. 인호에게도 몇 번 전화가 왔지만 그냥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영감님.”

    “응?”

    소주잔을 들어 올리던 영감이 인호를 바라본다.

    “정말 남은 한 없어요? 있으면 말해요. 이 기회에 모두 떨어 버리게.”

    “정말 없어. 니가 더 잘 알잖아.”

    “그건 그렇죠.”

    영감은 부유한 삶을 살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 너무 갑작스런 죽음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제대로 물려주지 못했는데 인호가 영감의 도장을 찾아 주었었다.

    남아 있던 음식이 뚱보의 입으로 모조리 사라지며 회식이 끝났다.

    “인호야.”

    집으로 올라가려던 인호를 사기꾼이 부른다.

    “고맙다.”

    인호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리며 손을 흔든다.

    * * *

    똑- 똑-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온다.

    “극락 흥신소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민정이 여자를 상대한다.

    “소문 듣고 왔는데요.”

    “아-, 그러셨구나. 어떤 소문을 듣고 오셨을까요?”

    “그게…… 귀신을 아주 잘 잡아준다는 소문?”

    이민정이 피식 웃는다.

    “귀신을 잡아요?”

    “아니에요?”

    “비슷해요. 이리 앉으세요.”

    이민정이 여자에게 커피를 내어주고 있을 때 인호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인호는 여자를 보고는 이민정에게 시선을 옮긴다.

    “여기가 귀신을 아주 잘 잡는다는 소문을 듣고 오셨데요.”

    “하하, 정말 잘 오셨습니다. 제가 귀신을 아주 잘 잡죠. 그런데 어떤 귀신일까요?”

    여자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는 작은 음성으로 말한다.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 귀신이 있어요.”

    “놀이터에요?”

    “네. 밤만 되면 그네하고 시소가 막 혼자 움직이고 그래요. 어떤 애는 갑자기 누가 ‘나랑 놀래’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아-. 그러셨구나.”

    여자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아파트 부녀회장이거든요. 그 귀신 때문에 귀신 들린 아파트라고 소문이 나서 아파트값이 떨어지고 난리도 아니에요. 빨리 가서 귀신 좀 때려 잡아줘요.”

    “때려잡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한 번 가보도록 할게요. 어느 아파트죠?”

    여자는 아파트의 위치를 설명한 후 조심스럽게 묻는다.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한데 기본적으로 퇴치는 단가가 조금 센 편이에요.”

    인호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편다.

    “에이, 얼마 안 하네. 오십만 원 정도는 낼 수 있죠.”

    인호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서, 설마 5백만 원 말하는 거예요?”

    장난을 한 번 치려다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회장님. 요즘 흥신소에서 불륜 추적하는 것도 수백만 원이에요. 그런데 귀신 퇴치하는 일이 오십만 원일 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5백만 원은 조금 그런데. 일단 돌아가서 상의 좀 해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러세요.”

    여자가 사무실을 떠난다.

    “어차피 5백 안 준다고 해도 가서 해결하실 거잖아요.”

    “아닌데. 나도 엄연히 사업하는 사람이야. 일을 하면 돈을 받아야지. 그래야 사무실 유지도 되고 너 월급도 줄 것 아니야.”

    “이 건물 소장님 꺼고 제 월급 얼마나 된다고 그러세요? 하여튼 부자들이 더 한다니까.”

    “야! 내가 언제부터 부자였다고 그래? 그리고 통장의 돈은 건드리지도 않고 있거든.”

    “자린고비. 스크루지.”

    “하, 하. 얘 말하는 것 좀 보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커피나 줘.”

    이민정이 구시렁거리며 커피를 타 인호 앞에 내려놓는다. 인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중얼거린다.

    “놀이터에 망령이라. 지박령이려나?”

    * * *

    - 입주민들하고 상의를 해 봤는데 5백은 너무 비싸고 한 3백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결국 ‘귀신 퇴치’ 비용은 3백만 원으로 합의되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주차한 후 차에서 내린 인호에게 나이가 지긋한 경비가 다가온다.

    “어디서 오신 분이신가? 아파트 입주민 아니면 주차가 안 되는데.”

    “부녀회장님이 놀이터 문제 해결해 달라고 해서 온 사람입니다.”

    “아-! 이야기 들었어요. 아주 용하다지.”

    “제가요?”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주 예전에 나도 귀신 자주 보고 그랬어. 한번은 밤길을 걷는데 말이야.”

    “아이쿠, 그러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경비의 말을 들으며 인호가 환하게 웃으며 맞장구쳐 준다.

    거짓말이다.

    경비의 귀문은 조금도 열려 있지 않았다. 귀문이 열리지 않은 사람도 간혹 귀신을 보긴 한다지만 인호가 보았을 때 경비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경비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놀이터는 저쪽이에요.”

    “감사합니다.”

    인호는 경비에게 인사를 건넨 후 걸음을 옮긴다.

    5층의 낮은 아파트 네 동이 전부인 곳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저가의 아파트. 아파트 중앙에 있는 놀이터도 그리 크지 않았다.

    놀이터에는 몇몇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나 어렸을 때는 놀이터가 전부 모래였는데.”

    요즘은 놀이터에 모래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놀이터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그네와 시소, 철봉이 전부인 놀이터지만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닌다.

    “어디 마실이라도 가셨나?”

    놀이터에는 망령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망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부녀회장의 귀신 타령이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아파트 단지 안을 이리저리 기웃거려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밤에만 나타나는 망령인 듯하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인호는 차에 올라타 시트를 뒤로 눕힌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해가 질 때까지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 * *

    “어우, 몇 시야?”

    잠에서 깨어난 인호가 휴대폰을 확인한다. 저녁 8시가 막 지나는 시간이다. 쪽잠을 잔다는 것이 아주 푹 잠들어 버렸다. 시트를 세우고 차에서 나가려던 인호가 한 곳을 응시한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단지 내로 들어오고 있다. 밤이라 어두웠고 고개를 숙인 탓에 여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인호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여자를 바라보는 이유는 여자의 뒤에 따라오는 존재 때문이었다. 작은 체구의 남자아이, 아니 아이 망령이 여자를 따라오고 있다.

    “너로구나.”

    놀이터와 단지 곳곳에 느껴지는 망령의 기운과 같은 기운이다. 여자는 망령이 자기 뒤를 따라다니는지도 모르는 채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었다.

    인호는 물끄러미 여자와 아이 망령을 바라본다. 여자가 놀이터를 지나쳐 안쪽 아파트로 향한다. 무슨 영문인지 아이 망령은 여자를 쫓아가지 않고 놀이터에 멈춘다.

    인호가 차에서 내린다. 놀이터를 지나칠 때 일부러 아이 망령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놀이터를 지나쳐 이제 막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는 여자를 불렀다.

    “저기요.”

    여자가 놀란 듯 흠칫 몸을 떤다.

    “저 위험한 사람 아닙니다. 부녀회장님 부탁으로 온 사람입니다. 놀이터 귀신 아시죠?”

    여자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여자의 얼굴은 앙상하게 말라 있고 피로가 가득 묻어 있다.

    “네. 전달받았어요. 잘 해결해 주세요.”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몸을 돌리려 한다.

    “저-, 혹시 최근이 안 좋은 일 겪으셨습니까?”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

    “안색이 좋지 않아 보여서요.”

    “아-, 그냥…….”

    여자가 쓰게 웃고는 몸을 돌려 입구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

    어느새 가까이 온 것인지 경비가 혀를 차며 말한다.

    “젊은 여자가 안 됐지 뭡니까.”

    “무슨 일 있었던 겁니까?”

    “아들이 죽었어요. 그것도 지 엄마 살리려다가요.”

    인호가 고개를 돌려 놀이터를 바라본다. 그네가 저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는 아니다. 아이 망령이 그 위에 앉아 있으니 말이다.

    “또 시작이네. 이제 선생님 오셨으니 저 귀신 쫓아내 줄 거죠?”

    “아, 그래야죠. 그런데 그 얘기 좀 자세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가 엄마를 살리려다 죽었다고요?”

    “네. 술에 취해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안으로 들어갔나 봐요. 그걸 본 아들이 지 엄마 살리겠다고 뛰어든 거죠. 엄마는 밀쳐냈지만 아들은 결국…….”

    경비는 말을 잇지 못하고 혀를 차며 몸을 돌려 멀어져 간다.

    인호가 놀이터로 걸어간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그네. 인호는 그 옆 그네에 앉는다. 어린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그네에 앉아 본다.

    “왜 집까지 따라가지 않았어?”

    그네에 앉아 천천히 몸을 움직이던 아이 망령이 인호를 바라본다.

    “엄마가 날 밀어내요.”

    그리고 보니 단지 안으로 들어올 때도 아이는 엄마에게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구나.”

    정확히는 자신 때문에 죽은 아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 죄책감. 그 감정이 아이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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