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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43화 (143/190)
  • 제143화

    “으악-!”

    사무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던 정광훈이 화들짝 놀라 짧은 비명을 토해낸다.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 정 사장님. 일은 잘되고 있습니까?

    구 의원의 전화다.

    - 벌써 땅값이 들썩들썩합니다. 목이 좋은 곳은 벌써 기존보다 반 배는 올랐지 뭡니까? 정 사장님은 미리 땅을 사 두셨을 테니 벌써 돈 많이 버셨겠습니다. 하하하.

    “하, 하하.”

    정광훈은 대답 대신 웃기만 할 뿐이다.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끊은 정광훈이 소파에 등을 기댄다.

    “땅을 샀냐고?”

    일주일 동안 체중이 12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이제는 거울, 아니 유리가 있는 곳에는 가지 못할 정도다. 거울이나 유리가 있는 곳에 가면 어김없이 한승원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보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 후 땅을 확보하려 했던 계획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휴대폰이 다시 울음을 토해낸다.

    최근에 저장한 번호였다.

    “여보세요.”

    - 정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그렇고 말고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지 않습니까.”

    정광훈에게 처음으로 정보를 준 남자였다.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 아주 중요한 이야긴데 식사 전이시면 함께 하시죠. 제가 생선구이를 기가 막히게 하는 곳을 알고 있거든요.

    “그럴까요?”

    정광훈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고 싶었다.”

    다른 부분은 확인이 끝났다. 제일 먼저 정보를 알려준 남자를 만나 의심의 찌꺼기를 털어버리면 될 것이다.

    * * *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남자, 김은철이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네. 덕분에요. 앉으시죠.”

    두 사람이 앉자 곧 음식이 나온다.

    “옥돔구이가 제법 맛깔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김은철이 생선을 한 점 떼서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기회를 드리려고요.”

    “기회요?”

    “네. 기회요. 아주 대단한 기회죠.”

    “들어보죠.”

    김은철이 물로 입을 행군 후 말한다.

    “전 아주 대단하신 분들을 대신해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신성, 그리고 대은.”

    정광훈의 눈이 동그래진다.

    “오형민 회장님과 이철호 회장님을 대신해 땅을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땅이라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 말고도 여러 곳에서 땅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쪽 지역 땅값이 많이 올랐죠.”

    이곳에 오기 전 구 의원에게 받은 전화가 떠오른다.

    “아-, 거기요. 그런데 어떻게 두 분 회장님의 대리인이 되셨습니까?”

    “제 인맥이 좋은 편이죠. 대리인 수수료로 5%를 받기로 했습니다.”

    “두 분이 많이 믿으시는 모양입니다.”

    대기업 회장들이 직접 나섰다면 투자금이 한두 푼이 아닐 것이다. 천억 원만 잡아도 5%면 50억 원이다. 수수료는 투자금이 아닌 수입금에서 정산이 될 테니 금액은 더 늘어날 것이다.

    “제가 예쁨을 받고 있긴 하죠. 하지만 제 말만 들으면 믿지 못하시겠지요?”

    정광훈은 하마터면 ‘당연하죠’라고 대답할 뻔했다.

    김은철은 서류 가방을 꺼내 두꺼운 서류 뭉치를 정광훈 앞에 내려놓는다.

    “지금까지 구매한 땅의 토지대장입니다. 토지대장은 잘 보시겠죠?”

    정광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평생 부동산 사기를 친 사람이다 보니 웬만한 공인중개사보다 더 낫다 자부한다.

    “일단 신성부터 보시죠. 거기 구매자 이름이 임도훈이죠? 자-, 여기 있는 것들을 보세요.”

    김은철이 보여주는 것은 몇 장의 가족관계 증명서였다. 신성 그룹 오형민 회장의 가족관계 증명서, 그리고 그의 형제와 그 자식들의 가족관계 증명서였다.

    “임도훈은 오형민 회장님의 여동생의 손자 되는 사람입니다.”

    정광훈이 가족관계 증명서와 토지대장을 비교하며 확인한다.

    “땅이 상당하군요.”

    “신성 아닙니까.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손을 대면 본격적이죠. 다음은 대은 이철호 회장님입니다.”

    김은철은 또 다른 토지대장과 가족관계 증명서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분들이 이 땅을 왜 팔려고 하시는 겁니까?”

    “저 같은 놈이 그런 자세한 내용까지 알겠습니까? 그저 급하게 현금이 필요하신가보다 라고 생각할 뿐이죠.”

    정광훈이 토지대장을 꼼꼼히 살피며 묻는다.

    “전체 금액이 얼마나 됩니까?”

    “2천 4백억 원이 조금 넘습니다.”

    “엄청나군요.”

    “두 분께는 푼돈에 불과하죠.”

    제계의 큰 별이라 할 수 있는 오형민과 이철호에게는 말 그대로 푼돈에 불과하다. 최근 이철호가 수천억 규모의 재단을 세운 것을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

    정광훈이 생선을 우물거리며 김은철을 힐끔 바라본다.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은 ‘왜 하필 나지?’였다.

    사실 김은철과 큰 접점이 없었다.

    “왜 정 사장님인지 궁금하시죠?”

    김은철이 정광훈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묻는다. 정광훈이 어색하게 웃는다.

    “사실 그렇습니다.”

    “별다른 이유 없습니다. 정 사장님께서 그 정도 재력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일이 복잡해지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명에게 나눠서 팔 생각이 없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정광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 정면에 거울이 있어 화들짝 놀란다. 다행히 한승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후우-. 이제 갔나?”

    한숨을 토해내고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낸다.

    - 대은그룹 기획조정실 과장 정인호

    잠시 망설이다 인호에게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하하, 안녕하세요.”

    - 누구십니까?

    “며칠 전 골프 연습장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 아, 그분이시군요. 병원은 다녀오셨습니까?

    “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하네요.”

    -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제가 오늘은 좀 바빠서 차 마실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당연히 바쁘시겠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네? 갑자기 말씀하시니 사실 조금 당황스럽네요.

    정광훈이 어색하게 웃는다.

    자기가 이런 전화를 받아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한 번 만난 사이일 뿐이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자신이 김은철을 의심하는 이유 역시 비슷하다.

    - 어디 들어나 보겠습니다. 대답해 드린다고 장담은 드릴 수 없습니다.

    “네. 그러셔야죠.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신성과 대은의 회장님들께서 현금이 필요한 일이 있으실까요?”

    잠시 동안 인호가 말을 하지 않는다. 혹시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닌가 확인해 본다.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 그 이야기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인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얼음장처럼 서늘한 음성이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광훈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하, 그냥 들려오는 풍문이 있어 여쭌 겁니다.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아무 말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차나 한잔하시죠.”

    황급히 전화를 끊은 정광훈이 세면대에서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다.

    “푸우-. 그렇단 말이지?”

    오형민과 이철호가 현금을 써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자리로 돌아오니 김은철이 밥을 입에 넣다 묻는다.

    “거사를 치르고 오셨나 봅니다.”

    “하, 하하. 갑자기 배가 아파서요.”

    정광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생각할 시간을 그렇게 오래 드릴 순 없습니다. 내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다른 분을 찾아봐야 하거든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돈 많이 가진 사람이 저 뿐은 아니지 않습니까. 왜 접니까?”

    김은철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요.”

    “네?”

    “제 주변, 그분들 주변에 돈 많은 사람들 많죠. 조 단위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땅을 파게 되면 나중에 말이 나올 확률이 높죠. 그래서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팔려는 겁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 사장님에 대해 간단하게 조사했습니다. 가지신 재산으로 이 땅들을 모두 사실 수는 없겠죠. 물론 조금 무리를 하신다면 가능하겠지만요. 그래서 연락드린 겁니다. 대답이 됐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 권력을 쥔 사람들, 명예가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뭘까?

    바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김은철이 말해 준 이유가 확신을 준다. 두 회장이 차명으로 땅을 구입했기에 나중에 문제가 될 이유도 없다. 땅을 구입하고 2년만 지나면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 말은 공사 계획이 발표되는 순간 구매한 땅은 더 이상 땅이 아닌 금싸라기가 된다는 뜻이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가진 돈으로 조금 부족하군요. 하지만 대출이라는 아주 좋은 제도가 있죠. 그래도 조금 부족하네요. 어떻게 융통이 안 될까요?”

    김은철이 묘한 눈빛으로 정광훈을 바라본다.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걸까요?”

    “네?”

    “이 정도 문제도 해결 못 하시는 분인 줄 알았다면 연락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김은철이 꺼내 놓은 토지대장 등을 주섬주섬 챙겨서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사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어, 어디 가십니까?”

    “하아-. 그래봐야 고작 4천억입니다.”

    정광훈이 침을 꿀꺽 삼킨다. 투자금액이 2천 4백억이라고 했으니 벌써 수익이 50%가 넘는다는 뜻이다. 제대로 호재가 터지면 어디까지 올라갈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정도 돈도 해결하지 못해서 뭐라고요? 융통 좀 해 달라고요? 하하하.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앞으로 볼 일 없을 테니 작별 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김은철 앞을 황급히 일어선 정광훈이 막아선다.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습니다.”

    정광훈이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린다.

    “제가 맨주먹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 온 사람입니다.”

    “그래요?”

    “네. 4천억?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김은철이 정광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땅값이 오른다는 사실은 잘 아시죠? 물론 정확히 시세대로 받을 겁니다. 두 분께서 고작 몇 푼 때문에 프리미엄 달라고 하실 분들은 아니시니까요.”

    “그렇죠. 당연히 그러시겠죠. 최대한 빨리 돈 마련해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셔야 할 겁니다. 저도 두 분 눈치를 봐야 해서요. 아, 그리고 저는 여기서 차나 한잔하고 가렵니다. 먼저 가시죠.”

    정광훈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떠나간다.

    잠시 후, 인호가 안으로 들어온다. 조금 전 정광훈의 전화를 받을 때 식당 주차장에 있었다.

    “일은 잘됐습니까?”

    “제가 누굽니까? 미끼를 덥썩 물어 버렸죠. 당연히 그 미끼가 달린 낚시를 드리운 것이 카론이라는 사실은 모르겠지만.”

    카론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으로 가는 나루터를 지키는 뱃사공이다.

    “비유가 아주 적합하네요. 부족한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 같습니까?”

    “정광훈 주변을 살피다 보니 조문현이라는 사람이 나오더군요. 전직 건달 출신 사채업잡니다. 굴리는 돈이 많지는 않고 한 2천억 정도 됩니다.”

    인호가 김은철 옆쪽을 힐끔 바라본다.

    사기꾼이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조문현이라는 사채업자가 정광훈과 짜고 사기꾼을 죽인 건달이 맞다는 뜻이다.

    인호가 씨익 웃는다.

    “일타쌍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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