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의원님. 그러니까 새로 뚫리는 도로가 그쪽이 확실하다는 겁니까?”
“몇 번을 말해요? 나도 구청장실 들어갔다 우연히 들은 거예요. 시장님이 구청에 방문하셔서 구청장님과 티 타임 가지시면서 하신 말씀이에요.”
정광훈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린다.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지나는 투로 해준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건교부에 있는 친구가 정보를 흘렸군.’
그 남자에게 들은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방에 내려 온 것이다. 다행히 이곳에는 자신의 인맥이 제법 탄탄한 편이다.
지금 함께 식사하고 있는 구의원도 나름대로 파워가 있는 인물이다.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 가능성이 아주 높은 인사였다.
“며칠 전에 서울에서 비싼 외제 승용차 몇 대가 그 땅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이 사진 봐요.”
구의원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다. 정광훈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구의원이 이번에는 인터넷으로 누군가를 검색한다.
“유정태? 서울남부지검 검사장 아닙니까?”
“여기 보세요. 지난주에 유정태 검사장이 사랑 나눔 봉사 활동할 때 사진이에요. 이 옆에 있는 여자 어디서 본 것 같죠?”
“아-!”
조금 전 사진으로 본 여자가 분명하다.
“유정태 검사장 와이픕니다. 함께 온 여자는 동생이고. 왜 왔는지 뻔하죠? 자기 명의로 땅을 못 사니까 친인척의 차명으로 구매하려는 거죠. 그런데 남편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그날 구경만 하고 갔다고 하대요.”
정광훈이 혀로 입술을 핥는다. 그가 돈 냄새를 제대로 맡았을 때 저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이었다.
“정 사장. 이거 아직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정보에요. 무슨 말인지 알죠?”
“하하. 당연하지요. 그런데 최 의원님도 아십니까?”
최 의원은 지금 있는 곳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이다. 여당 소속으로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구 의원이 주위를 살핀 후 작은 음성으로 말한다.
“이거 보세요.”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온 문자를 보여준다. 문자를 보낸 이의 이름을 확인한 정광훈이 눈을 부릅뜬다.
- 최호관 의원님
액정에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정광훈 역시 최호관과 인연이 있기에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최호관의 전화번호가 분명했다.
- 이야기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주의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입단속도 잘하고.
문자가 온 날짜는 이틀 전이다.
“제 추측이긴 하지만 시장님께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최 의원님인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시장님이 학자 출신이라 인맥이 영 꽝이세요. 그런데 최 의원님과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죠.”
정광훈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더 늦으면 부스러기나 주워 먹어야 할 거예요. 그러니 서두르세요. 일 잘 풀리면 나 잊지 말고요.”
“하하,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누굽니까?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정광훈이 아닙니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곳은 한식집의 가장 안쪽 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벽을 뚫고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고? 완전 미친 새끼네.”
사기꾼이 정광훈을 보며 인상을 와락 구긴다.
* * *
- 시작해 주시죠.
김은철에게 짧은 메시지가 왔다.
“시작하자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
“뭐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뭐.”
“나쁜 짓이 아니라고?”
인호가 씨익 웃는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어떻게 하면 되는데?”
“뭘 어떻게 해? 그냥 가끔 가서 얼굴만 비춰 주는 거지. 자-, 그러면 골프 연습장부터 시작할까?”
정광훈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꼭 골프 연습을 한다. 그가 자주 가는 연습장의 위치를 알아낸 후 짧은 기간 동안 등록도 해 둔 상태다.
차를 몰아 골프 연습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정광훈의 차가 보이다. 인호가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긴다.
그때였다.
“이봐요.”
인호가 몸을 돌린다. 차에서 내린 정광훈이 인호를 바라보고 있다.
“저 부르신 겁니까?”
“네. 맞아요. 혹시 지금 타고 온 차가 신성 그룹 오 회장님 차 아닙니까?”
“아-, 저 차요? 네, 맞습니다. 회장님께서 선물해 주셨어요.”
“선물이요?”
정광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오형민의 자동차 사랑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탈리아 명차 전시장에 가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줘’라고 한 말은 뉴스에서도 보도했을 정도로 유명했다.
“네. 친분이 있어서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됐습니까?”
인호가 몸을 돌리려 하자 정광훈이 곁으로 다가온다.
“전 이런 사람입니다.”
- 대광 투자 대표 정광훈
명함을 확인한 인호가 품속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내 명함 한 장을 건넨다.
“아이고, 좋은 직장 다니시네요.”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명함을 주니 정광훈이 환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보물이라도 되는 듯 인호의 명함을 잘 챙긴 정광훈이 묻는다.
“공 치러 오셨나 보네요.”
“네, 그렇죠.”
“함께 들어가면 되겠네요. 가시죠.”
연습장 안으로 들어가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정광훈이 먼저 락커룸을 나선다.
인호는 옷을 갈아입고 연습장으로 가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며 정광훈을 살핀다. 정광훈 역시 인호를 힐끔거렸기에 가끔 시선이 마주치곤 했다. 그때마다 정광훈은 인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정광훈이 연습을 마치고 돌아갈 때쯤 인호도 안으로 들어갔다. 락커룸에서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가려는 정광훈과 스쳐 지나가며 그의 어깨를 손으로 툭 친다.
인호의 눈에 푸른 기운이 어른거리다 사라진다.
“먼저 씻으세요. 전 전화 한 통 하고 씻으려고요.”
“아, 네. 천천히 들어오세요. 가실 때 함께 차나 한잔하시죠? 실례인가요?”
“아닙니다. 그러죠. 저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습니다.”
“하하. 금방 나오죠.”
정광훈이 환하게 웃으며 샤워실로 들어간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인호가 씨익 웃는다.
“즐거운 시간 되라고.”
* * *
샤워실 안으로 들어간 정광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인생 말년에 대복이 온다고 하더니 그 점쟁이가 참 용하구나.”
작년에 지인을 통해 아주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운수를 본 적 있다. 그 점쟁이는 정광훈이 말년에 운수대통할 것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점쟁이들이 의례 하는 말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지역을 미리 알게 되었고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신성 그룹의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장 인호를 통해 할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인맥이라는 것은 만들어 두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호의 명함 한 장이 가진 의미가 얼마나 대단할까 생각하니 웃음이 더욱 짙어진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과장에 신성 그룹 오 회장과 가까운 사이. 완전히 다이아몬드 인맥이고만.”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며 정광훈이 머리에 샴푸 칠을 한다.
“그나저나 괜찮겠지?”
정보를 얻었지만, 아직 땅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금액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모은 모든 재산을 털어 넣어야 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소문이 난 것인지 주변 땅 시세가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 정보의 출처는 확실하다. 건설교통부, 지역구 국회의원, 그리고 시장과 구청장까지.
정광훈이 혀로 볼 안쪽을 문지른다.
“그런데 너무 아귀가 딱딱 맞아.”
건설교통부 사무관의 소개로 만난 남자가 흘리듯 말해 준 정보. 엄청난 정보를 별 노력 없이 얻은 것도 이상한데 확인해 보니 그의 주변 인맥들이 모두 그 정보가 사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나한테 땅에 투자하라고 부채질하는 것 같잖아.”
모든 일이 딱딱 맞아떨어지면 좋다. 하지만 사기꾼 출신인 정광훈에게는 오히려 찝찝함을 줄 뿐이다. 자신이 사기 칠 때 거기에 걸려드는 이들 역시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느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덩어리가 너무 크다. 주변 정황도 너무나도 완벽하다. 완벽하게 차려진 밥상이다.
“떠먹지 못하면 병신이지. 나이가 들어서 조심성이 많아진 거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물을 뿌려 수증기로 뿌예진 거울을 닦아 낸다. 눈가의 물을 손으로 닦아 낸 후 거울을 본다. 60대 중반이지만 5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로 관리를 잘한 얼굴이 보인다.
정광훈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뭐, 뭐야?”
정광훈이 뚫어져라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에는 자신밖에 없었다.
“분명 뭐가 있었는데.”
누군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워낙 짧은 순간이기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정광훈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눈이었다.
“내가 잘못 봤나? 그런데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거울에 시선을 줄 때였다.
“으아아악-!”
정광훈이 비명을 내지르며 샤워실 바닥에 주저앉는다. 이번에는 확실히 보았다. 파란빛에 감싸인 남자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으으-.”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이다. 죽을 때까지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기도 하다.
“스, 승원 형님.”
아주 오래전 죽은 사람이다. 자신과 함께 팀을 이뤄 사기를 치던 한승원이 분명했다.
“그 눈빛…….”
자신에게 칼을 맞아 죽어가며 바라볼 때 그 눈빛이었다.
“왜 그러세요?”
샤워실 안으로 여전히 옷을 입고 있는 인호가 들어온다.
“네? 그게…….”
“비명 소리가 들려서 들어왔습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미끄러져서 넘어진 겁니다.”
“아-, 그러세요. 몸은 괜찮으시고요?”
정광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습니다.”
“나이도 있으신데 조심하셔야 합니다. 차는 다음에 함께 하고 오늘은 병원에 가보세요. 지금은 괜찮은 것 같지만 나중에 고생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호가 밖으로 나가자 정광훈이 몸을 일으킨다. 그의 시선은 인호가 서 있던 곳에 고정되어 있다. 정확히는 거울이 없는 방향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샤워실을 벗어나 수건으로 물길을 닦고 머리도 말리지 않고 락커룸을 빠져나온다. 드라이어를 사용하려면 그 앞의 거울을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씨발.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골프 연습장을 나서는 정광훈이 입술을 질겅이며 중얼거린다.
“몇십 년이나 지난 후에 생각나고 지랄이야.”
“네, 사장님? 잘 못 들었습니다.”
운전기사의 말에 정광훈이 인상을 찌푸린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
“알겠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잠시 생각하던 정광훈이 짧게 말한다.
“여의도로.”
투자를 하기 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건너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