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안녕하세요. 김은철이라고 합니다.”
“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주 대단하시다고.”
“하하, 별말씀을요.”
김은철이 환하게 웃는다.
- 김은철이라는 친구예요. 사기꾼이긴 한데 전과가 없어요. 몇 번이나 잡아넣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유 형사가 몇 번이나 검거하려다 실패한 사기꾼이 앞에 앉아 생글거리고 있었다.
- 나중에는 진심으로 물어봤어요. 너 사기꾼 맞잖아. 그랬더니 생각도 안 하고 ‘네’라고 하라고요. 제가 증거를 찾지 못해 검거하지 못한 거죠. 그다음부터는 사기 사건이 생기면 김은철에게 자문을 구해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소장님께 자문을 구하는 것과 비슷하게요.
“이 집 커피 맛집이네요. 향이 정말 좋다.”
“그래요? 나는 잘 모르겠던데.”
“전에 제가 커피 사업도 했거든요. 자메이카에서 블루마운틴 원두를 수입하는 일이었죠. 블루마운틴 아시죠?”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잘 모르는데요. 그게 뭔데요?”
“세계 3대 원두를 모르세요? 보통 원두보다 한 열 배 정도 비싸죠. 이걸 조금 싸게 들여와서 팔았죠. 그때 정말 돈 많이 벌었는데.”
“혹시 그 사업도 사기였어요?”
김은철이 빙긋 웃는다.
“당연하죠.”
“그런데 그냥 원두를 수입해서 파는 거면 사기 치기가 쉽지 않잖아요.”
“다 방법이 있죠. 그 방법이 뭐냐고는 묻지 마세요. 영업 비밀이니까요.”
“궁금하지도 않아요.”
“하하하.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한 거냐고 다 물어보거든요.”
“제가 보통 사람이 아닌가 보죠.”
김은철이 커피로 입을 축인 후 묻는다.
“일단 유 형사님께서 도와드리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정확히 뭘 도와드려야 하는지는 아직 듣지 못했네요.”
“제 지인이 사기를 당했습니다.”
“설마 복수? 하아, 그래도 동종업계 종사하는 사람끼리 뒤통수치기가 좀 그런데요.”
“그 지인이 죽었습니다. 참고로 그 지인도 사기꾼 놈의 일당이었습니다.”
김은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3류고만요.”
“네?”
“그 사기꾼 말입니다. 1류는 흔적도 안 남기고 적도 안 만들죠. 그리고 주변에서 그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걸 몰라요. 2류는 증거를 남겨 감옥에도 가고 그러지만 적어도 피해자를 제외한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아요. 3류는 어떨 것 같아요? 그냥 막 가는 거예요. 일단 돈만 벌면 되거든요. 감옥 가는 것도 안 무서워해요. 왜? 감옥 갔다 오면 사기 친 돈으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거든요. 주변 사람, 동료? 그런 것 없어요. 3류 새끼들은 그 사람들 다 돈으로 보거든요.”
인호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식으로 복수하길 원하세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네요.”
“혹시 세상에서 사기에 가장 잘 걸리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틀린 말은 아니죠.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기에 안 걸릴 줄 알죠. 하지만 정답은 아니에요.”
“혹시 사기꾼인가요?”
“빙고.”
김은철이 손가락을 튕긴다.
“사기꾼들은 자기가 절대 사기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 자기가 사기꾼이니까. 자기는 사기 수법에 통달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그게 뭡니까?”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사실이죠.”
“김은철 씨는 나는 놈에 속합니까?”
인호의 물음에 김은철이 빙긋 웃는다.
“거의 제트기 수준이죠. 유 형사님께 못 들으셨어요? 전 전과가 없어요. 유 형사님이 절 잡아넣으려고 몇 번이나 도전했을 것 같으세요?”
“…….”
“유 형사님만 네 번이에요. 다른 형사님들까지 하면 스무 번이 넘고요. 제가 형사님들 피해 숨어다녔을까요? 절대 아니에요. 전 당당하게 지냈어요. 왜? 형사님들이 아무리 고생하셔도 날 잡아넣을 수 없으니까.”
자신감만큼은 정말 제트기 수준이다.
“그런데 어쩌다 사기를 치기 시작했어요?”
시종일관 웃음을 짓던 김은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하지만 이내 다시 웃기 시작한다.
“도박하다 돈 잃은 놈이 도박꾼 되는 거고 사기 당해 개털 된 놈이 사기꾼 되는 겁니다.”
“은철 씨도 사기 당한 적 있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사람들이 사기 잘 당한다고. 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에요. 카이스트 석사 출신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안 믿을 이유가 없죠.”
“처음 당한 사기는 주식 사기였어요.”
김은철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제가 카이스트에서 재료 공학을 전공했어요. 어느 날 누군가 접근하더라고요. 신소재를 개발했는데 제가 확인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신소재라는 말에 열 일 제쳐두고 달려들었죠. 놀랍게도 제가 처음 보는 소재였어요. 그 사람이 그러데요. 자기 회사에서 그 신소재를 특허 낼 거라고.”
“주식이 폭등할 거다?”
“그렇죠. 그런데 완전히 사기였어요. 이미 독일에서 특허 신청이 된 소재였어요. 정말 어이가 없었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이스트에서 재료 공학을 전공한 저한테 신소재로 사기 칠 줄은 몰랐다니까요. 하하. 참 바보 같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인호에게도 가끔 주변에 조상 귀신이 떠돈다고 사기를 치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말만 들어보면 인호조차 혹할 정도였다.
“두 번째 맞은 사기가 대박이에요. 사기를 당하니까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사기를 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되려 또 사기를 당했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에게 당했군요.”
“맞아요. 그때 저한테 사기 친 사람이 바로 제 스승님이세요.”
“사기꾼도 사제지간이 있고 그럽니까?”
김은철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당연하잖아요. 저도 제자 키우고 있는데요. 하하, 제 스승님도 대단하신 분이에요. 8년 전쯤인가? 코인으로 대박 사기 치고 잠적한 사람 기억하세요?”
“뉴스에서 본 것 같네요.”
“그분이 제 스승님이세요. 지금 유럽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계세요. 스승님 소원이 크게 한탕하고 유럽에 성을 사서 사는 거였거든요.”
“소원 성취하신 겁니까?”
김은철이 어깨를 으쓱한다.
“스승님의 프라이버시이니 여기까지만요. 각설하고. 복수는 사기로 하죠. 아시는 분이 죽었다고 했죠? 하지만 전 누군가를 죽이거나 하지 않아요.”
“그자에게 사기를 쳐 쫄딱 망하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발생하는 이익은요?”
“은철 씨 다 가지세요.”
“오우-. 정말요? 쿨하시네.”
“하나만 물어볼게요. 은철 씨는 어째서 한 번도 잡히지 않은 겁니까?”
“말씀드렸잖아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흐음,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할까요? 예를 들면 이래요. 보통 사기꾼들은 아홉 가지 진실에 한 가지 거짓을 섞어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이 한 말들을 조사해보겠죠. 그러면 사기꾼 말 대부분이 진짜거든요. 그래서 사기에 걸리는 거예요. 하지만 경찰들은 하나의 거짓을 파고들어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죠.”
“어떻게 다른데요?”
“보통 사기꾼이 진실과 거짓을 9:1로 섞는다면 전 99:1로 섞어요. 그리고 그 1마저도 완전한 거짓은 아니죠.”
“아-!”
인호가 탄성을 토해낸다.
사기를 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복수의 대상이 누굽니까?”
“혹시 정광훈이라고 아십니까?”
“아-. 정 선배요?”
“그쪽도 선후배 관계가 있습니까?”
“저보다 나이 많고 업계에 일찍 발을 들였으면 선배지요.”
“아는 사이는 아니시죠?”
김은철이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선배라지만 그런 3류와는 교류하지 않습니다. 또 인호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료의 배에 칼을 꽂은 짐승 아닙니까? 상종할 가치도 없는 종자지요.”
“어떤 식으로 작업할지 알 수 있을까요?”
김은철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정 선배도 이 바닥에 오래 굴러먹은 빠꼼이입니다. 어설프게 접근하면 바로 들통나지요. 어떤 분야로 작업을 칠 건지도 중요합니다.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는 안 됩니다.”
김은철이 씨익 웃는다.
“기왕 하는 것 제대로 판을 벌여보죠.”
인호가 바라보니 김은철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린다.
“정 선배 특기가 부동산입니다.”
사기꾼이 정광훈에게 죽었을 때도 부동산 사기를 쳤다고 한다. 작업이 모두 끝난 후 수입금을 분배하기 직전 정광훈이 술자리 도중 사기꾼의 배에 칼을 꽂은 것이다.
“부동산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전문 분야로 상대하겠다고요?”
“정 선배가 그쪽에 특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최고는 아닙니다. 말씀드렸잖아요. 3류일 뿐이에요. 1류가 3류를 어떻게 요리하는지 지켜보시면 됩니다.”
인호가 묻는다.
“제가 도움 드릴 만한 일이라도 있을까요?”
“유 형사님에게 들었습니다. 특수 5부 정재훈 검사님과 각별한 사이시라죠? 제계의 큰 손들과도 가까운 사이시고요. 하지만 그 정도 연줄은 저도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사기꾼으로 살아 온 사람을 속이려면 아주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관공서에 기름칠도 해야 하고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약도 쳐야 합니다.”
김은철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한다.
“정 선배를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죠?”
“심리적 압박이요?”
“네.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습니다. 심리적 압박, 불안은 냉철한 판단을 방해하죠.”
“그런 것이라면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김은철이 의외라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웃으며 말한다.
“언제든 필요할 때 말해주세요.”
* * *
“저놈도 많이 늙었네.”
사기꾼은 도로 맞은편에서 차에 올라타는 남자를 보며 말한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외제차에 타고 있다.
기사가 곧 차를 출발시킨다. 인호 역시 차를 출발시킨다. 정광훈의 목적지를 이미 알고 있기에 천천히 따라붙었다.
“빌딩을 두 채나 가지고 있다고?”
“그렇다고 하네.”
“부럽네. 나도 살아 있을 때 씀씀이를 줄였으면 돈 좀 모았을 텐데.”
“별게 다 부럽다. 죽어서 날 만나 호강하고 있으니 된 것 아니야.”
“호강은 얼어 죽을. 그나저나 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사기꾼 만나러.”
“그 김은철인지 하는 사기꾼?”
인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주일 전 김은철은 정광훈에게 접근했다. 정광훈은 사기 치는 일에서 손을 씻었지만 여전히 부동산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한 해에도 부동산 거래를 몇 건씩 꾸준히 하고 있다.
건물을 매입해 시세 차익을 내서 팔거나 인맥을 통해 얻은 정보로 지방의 임야나 맹지를 사기도 한다.
“은철 씨가 아주 능력자야. 카이스트 석사 출신에 친구들 중에 공무원들이 제법 많아. 정광훈에게 접근할 때도 건설교통부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소개받은 거야.”
“어떤 식으로 작업 칠 거래?”
“정확히는 말을 안 해줬는데, 건교부, 지역 국회의원, 유지 등이 조연으로 출연하는 근사한 영화 한 편 찍는다고 하더라.”
“하, 하하. 사이즈가 다르네. 그러니 지금까지 큰 집에 한 번도 가지 않았겠지.”
정광훈의 차가 신호에 걸리자 인호가 그 옆에 나란히 차를 세운다. 뒷좌석에 앉은 정광훈이 고개를 돌려 인호가 탄 차를 보고는 흠칫 몸을 떤다.
오형민 회장의 차로 알려진 롤스로이스가 바로 옆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저 새끼 또 눈 돌아가는 것 봐라. 손을 씻기는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