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왜 계속 알짱거리는데?”
사기꾼이 인호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는 뭐냐? 혹시 나 지리산 가 있는 동안 사고라도 친 거야?”
“내가 애냐? 사고나 치고 다니게.”
“니가 애가 아니라 더 걱정이야. 애들은 사고를 쳐도 작게 치지.”
“좋아 보이네.”
사기꾼이 인호가 들고 있는 찻잔을 보고 말했다.
“말 돌리기는-.”
찻잔이 좋아 보인다는 사기꾼의 말에 인호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지리산 만신이 선물로 준 다기 세트였다. 지리산 깊은 곳에 도가를 두고 공예 활동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장인이 만든 것이었다.
마시는 차 역시 만신이 준 것으로 향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뭔데? 내가 뭘 알아야 하는데?”
“별건 아니고. 그냥 요즘 생각이 많아.”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냥 그렇다고. 나 나갔다 온다.”
사기꾼이 사무실을 밖으로 나가 버린다. 인호가 소파에 앉아 있는 영감을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꽤 오래됐어.”
“그러니까 뭐가요?”
“계속 이승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이 많은 것 같아.”
“그런 놈이 매번 저승사자 볼 때마다 도망을 쳐요?”
“우리 같은 망령들한테 그건 본능 같은 거야.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이 자주 들긴 해.”
인호가 볼을 긁적인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니가 잘 살고 있으니까.”
영감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한다. 인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영감을 바라본다.
“그게 이유라고요?”
“충분히 되지. 이전에 네가 어려울 때는 우리들이 곁에서 널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게 있었거든. 우리들이 너한테 빌붙어 살긴 하지만 네게 도움이 되고 있기도 했고. 그건 너도 인정하지?”
“당연하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사실 우리들이 너한테 큰 도움이 되지 못하잖아. 너 혼자 알아서 잘하지.”
“그러니까 그게 왜 이유가 되는데요?”
영감이 쓰게 웃는다.
“그냥 그렇다 이거지. 원래 그런 거야. 쓸모가 없어진 물건들은 먼지가 쌓이기 시작하고 외면받다 결국 버려지게 되는 거야. 나나 사기꾼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 말아요. 요즘 좀 풀어줬더니 아주 잡생각이 많아지셨어. 소파에 앉아서 땡땡이칠 시간 있으면 나가서 길 잃은 망령이라도 찾아봐요. 언제부터 우리들이 찾아오는 망령, 걸려오는 전화 받고 일했다고 그래요.”
영감이 피식 웃으며 일어선다.
“그래. 맞지. 어디로 가볼까?”
“갈 곳이야 많죠. 사연 많은 망령 좀 찾아봐요. 예전에는 내 코가 석 자라 공짜 일은 사절이었지만 이젠 공짜 일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놀지 말고 나가서 일해요, 일!”
영감이 밖으로 나가자 삼각 김밥을 먹고 있던 뚱보가 인호의 눈치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밖으로 나가려던 뚱보가 돌아와 삼각 김밥이 담긴 검은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넌 알고 있었냐?”
이민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들이 없어도 소장님이 잘 나가니까 소외감을 느끼더라고요. 최근에 영감님하고 사기꾼 아저씨 두고 소장님 혼자 일하러 다닌 적 많잖아요.”
“생각해보니 그러네.”
예전에는 망령들을 많이 의지했다.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을 많이 탔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은 없고 죄 망령들뿐이었다. 영감은 아버지 때부터 이 사무실에 있던 망령이다.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
“내가 잘못했네.”
“네, 소장님이 잘못하셨어요.”
인호가 도끼눈을 뜨고 이민정을 바라본다.
“그러는 넌 뭘 잘했냐? 이런 일이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 줘야지.”
“이런 문제는 제3자가 중간에 끼어드는 게 아니에요. 당사자들끼리 풀어야지.”
“니가 왜 제3자야? 너도 엄연히 극락 흥신소 가족이거든.”
이민정이 환하게 웃는다.
“그랬구나.”
“뭐?”
“아니에요.”
이민정이 칫솔에 치약을 짜 사무실 밖으로 나가 화장실로 들어가며 ‘가족이었구나’라고 중얼거린다.
“싱거운 녀석.”
인호가 피식 웃으며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차는 뜨거울 때는 뜨거울 때 대로 매력이 있고 차가울 때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좋은 찻잔에 마시니까 차향이 더 그윽하네.”
* * *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내가 이런 차를 다 타보고.”
인호가 조수석에 앉은 사기꾼을 보여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너 죽었거든?”
“나도 알거든. 그런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오형민 회장인 줄 알겠다. 그렇지?”
인호가 지금 타고 있는 차는 오형민 회장이 선물로 준 롤스로이스였다.
오형민 회장이 롤스로이스에 직접 주문 제작한 차로 지구에 딱 한 대뿐인 차다. 이미 국내에서는 ‘오형민 회장 차’로 유명했다.
사무실을 나선 후 30분이 넘도록 도로 위를 달리고 있지만 5미터 이내로 접근하는 차들이 없다.
“여긴 왜 온 거냐?”
“몰라. 습관적으로 오게 되네.”
마포대교가 보이는 한강 공원.
“수십억짜리 롤스로이스 타고 와서 한다는 짓이 컵라면에 소주냐?”
“듣고 보니 그것도 웃기네.”
컵라면 두 개와 소주 한 병, 그리고 잔 두 개.
“예전에 말이야. 정말 힘들 때 많았잖아.”
“그래. 그때 우리 모두 여기 이 벤치에 와서 소주 마셨는데. 마포대교 보면서 소주 마시다가 망령 보면 신이 나서 뛰어가곤 했지. 그런데 그때마다 열에 아홉은 개털이었잖아.”
사기꾼이 웃으며 말했다.
“자살할 정도로 힘든 망령이 뭐가 남았겠냐? 그래도 그때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리장창 오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아.”
“덕분에 억울한 망령들 한 많이 풀어줬지. 네가 많이 힘들긴 했지만.”
억울한 망령들 한을 풀어준다고 그들을 자살로 내몰고 간 이들을 망령을 대신해 인호가 벌을 주었다. 당연히 그때마다 그 업이 쌓여 인호는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한잔해.”
인호와 사기꾼이 잔을 들고 쭉 들이킨다. 인호는 사기꾼 옆에 놓인 잔에 담긴 술을 바닥에 뿌리고 새로 술을 따라준다.
“오랜만에 한강 보면서 소주 마시니 좋네.”
사기꾼이 웃으며 기지개를 쭉 켠다.
“사기꾼.”
“왜 그런 눈으로 부르냐?”
“이제는 물어봐도 되겠다 싶어서.”
사기꾼이 소주를 비우고는 쓰게 웃는다. 인호가 무얼 물을지 짐작한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이미 한 번 물었다. 하지만 그때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죽었냐고?”
인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대답 못 한 건 혹시라도 니가 내 한을 풀어주면 그대로 저승사자에게 끌려갈까 봐 무서워서 그랬어.”
“이해해. 매일 보는 게 그런 거였으니까. 그래서 왜 죽었냐? 사기꾼이 자살을 했을 리도 없고.”
“뻔하잖아. 배신당했지.”
인호가 사기꾼의 술을 버리고 새로 채워준다. 사기꾼이 한숨을 내쉬고는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며 말한다.
“사기꾼이 할 말은 아니지만 돈 참 쉽게 벌었다. 남들 속이고, 어려운 사람 등치고, 눈먼 돈 쓸어 담았지. 그때는 정말 세상이 참 쉬웠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지. 그런데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더라고.”
“어떤 말?”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돈으로 맺은 인연은 돈이 사라지만 악연이 된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만큼 많이 썼어. 별다르게 하는 것도 없는데 돈이 줄줄 샜지. 그래서 계속 사기를 쳤어. 그러다 보니 점점 욕심이 커진 거야. 더 큰 돈을 벌고 싶었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큰 사기를 쳐야지.”
“빙고.”
사기꾼이 소주를 마신다.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사기를 치려면 사전 작업에 들어가는 돈이 상당해. 일종의 투자금이라 할 수 있지. 큰 사기를 치려면 투자금 역시 커져야 해. 그런데 그만큼 돈이 없었어. 어쩔 수 없이 투자를 받았지.”
“깡패들이야?”
“뭐 그렇지. 기록에 남지 않은 돈은 죄다 사채업자나 깡패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튼 그때 투자도 잘 받고, 일도 잘됐어. 마지막으로 수확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지.”
“깡패 새끼들이 돈 욕심이 났구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참 웃긴 게 뭔지 아냐? 빌어먹을. 나는 결국 혼자였더라고. 사기도 팀을 꾸려야 하거든. 그간 내 덕분에 먹고 살던 녀석들이 깡패 새끼들한테 모조리 붙어 버린 거야.”
사기꾼이 자기 배를 손으로 가리킨다.
“여기에 칼을 꽂았어. 깡패가 아니라 내가 가장 아끼던 동생놈이 말이야. 칼이 배에 들어오니까 헉 소리도 안 나오더라. 그 동생 새끼가 칼을 비틀면서 말하더라.”
- 그러니까 평소에 베풀면서 살았어야죠.
“씨발.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새끼가 강남에 아파트가 있고 외제차 끌고 다녔어. 그런데 내가 더 베풀어야 했데.”
“네 욕심이 커진 만큼 그 동생이란 놈도 욕심이 커진 거지. 네 옆에 있어 봐야 결국 팀원일 뿐이잖아. 아마도 팀장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네 옆에서 배운 게 뭐가 있겠냐?”
“그렇지.”
사기꾼이 낄낄거리며 소주를 마신다.
“인호야. 나는 한이나 미련 같은 것 없어. 남들 등쳐 먹고 사는 놈들 결과야 뻔하지. 감옥에서 평생 썩거나 나처럼 객사하는 거지. 그거 하나는 참 궁금하다. 나를 찌른 동생놈은 잘 살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이름 모를 산에 묻혀 있을까?”
“말 나온 김에 한 번 알아보자.”
“굳이 그럴 필요 있어?”
“응. 있어. 내가 널 몰랐다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넌 극락 흥신소 가족이잖아. 가족 배에 칼 꽂은 놈이 어떻게 사는지 내가 직접 봐야지.”
“크크. 가족이라- 좋지. 그러면 부탁 하나만 하자.”
“말해.”
인호가 잔을 비운다.
“만약 그 동생놈 살아있으면…….”
사기꾼이 씨익 웃는다.
“딱밤 한 대만 세게 때려 줘라.”
* * *
- 정광훈. 살아있네요.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있어요. 사기전과 5범인 놈이 서울에 빌딩이 두 채나 있네요. 지금은 따로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건물에서 나오는 세만 받아도 먹고 사는 데 문제없으니까요.
유 형사가 사기꾼 생전에 그의 배에 칼을 꽂은 동생, 정광훈에 대해 조사해 주었다.
“건물 좋네.”
8층 건물이다.
당산역 인근에 있으니 건물 가격이 상당히 비쌀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래서 안 돼. 선량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평생 열심히 일해도 이 건물 사무실 하나 사기 힘들거든.”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요.”
인호가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수염이 덥수룩 자란 삼십 대 중반의 남자가 인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다. 그는 인호처럼 정광훈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니까요.”
“아, 네.”
“혹시 저 건물 가지고 있는 건물주가 누군지 아십니까?”
“네? 잘 모르겠습니다.”
인호가 짐짓 모르는 척하자 남자가 입을 뗀다.
“아주 대단하신 분이에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 무일푼에서 건물주가 되었으니.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 눈에서 눈물을 뺐지만.”
정광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혹시 말씀하시는 분도 눈물 흘리신 분 중 한 분이십니까?”
남자가 피식 웃는다.
“왜요? 그렇다고 하면 밥값이라도 좀 주시려고?”
인호도 씨익 웃는다.
“밥값은 모르겠고 눈물값은 드리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