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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39화 (139/190)

제139화

미호의 불덩어리가 이무기의 독 안개를 태운다. 독 안개는 불길에 닿기 무섭게 소멸되어 사라졌다.

그 사이 이무기는 거대한 몸으로 미호의 몸을 감싸고 으스러트리려 힘을 준다.

하지만 미호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너도 안 된다는 거 잘 알잖아.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날 넘어설 수 없어. 그나저나 오래된 뱀이 그렇게 몸에 좋다며?”

미호가 긴 주둥이를 쩍 벌려 이무기의 몸통을 깨문다. 이무기가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토해내며 몸을 비틀었다.

미호는 이무기의 몸통에 이빨을 박아 넣은 채 피를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이무기가 미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몸을 푼다. 하지만 미호의 이빨은 여전히 이무기의 몸에 박혀 있다. 이무기의 머리가 미호를 향해 다가선다. 쫙 벌린 거대한 주둥이가 단숨에 미호를 삼킬 기세였다.

펑-

미호가 이무기의 몸을 밟고 뛰어오르며 공중제비를 돌자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다.

“하아아아아-.”

파충류 특유의 날카로운 소리를 흘려내는 이무기의 콧잔등 위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미호가 서 있다. 미호는 입가에 묻은 붉은 피를 혀로 핥는다.

미호의 눈에 붉은빛이 어른거리자 주위를 맴돌던 불덩어리들이 일제히 이무기를 향해 날아든다. 이무기가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외침을 토해내자 불덩어리들이 주춤한다.

그 사이 독 안개가 이무기의 몸을 감싸자 미호가 뛰어올라 멀리 내려섰다.

독 안개가 옅어지며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이무기가 서 있다.

그녀는 죽일 듯이 미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약속이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지?”

“네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잘 들어.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이대로 돌아가. 그러면 네가 한라산에서 사슴을 죽인 일을 묻지 않을게. 하지만 계속 고집을 부리면 나도 더 이상 참지 않아. 오래전 일이라 네가 잘 기억 못 하는 것 같은데. 내 성격이 그렇게 좋지를 못해.”

“내 새끼가 죽었다.”

“하아-. 그건 안타깝게 생각해. 하지만 인간의 집터에 자리 잡은 것은 네 새끼의 실수야. 그리고 네 실수는 하필이면 저 아이와 엮였다는 거야.”

이무기가 정신을 잃고 있는 인호를 쏘아보고는 몸을 돌린다.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미호가 어깨를 으쓱하자 이무기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미호는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이무기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생각이야? 정신 차린 거 알고 있으니 벌떡 일어나지 그래.”

“끄응-, 알고 계셨습니까?”

인호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용케도 제법 버티던데? 많이 늘었어.”

“하하,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데요.”

이무기가 내뿜는 기운에 당하고, 독 안개에 또 당해 정신을 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수인 이무기에게 맞서겠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다.

도저히 상대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존재였다.

인호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미호를 바라본다. 이전부터 인연이 있었기에 격의 없이 편하게 대해왔다.

하지만 이무기를 상대해 보니 그녀보다 강한 미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호가 궁금하다는 듯 미호에게 묻는다.

“누구와 어떤 약속을 한 겁니까?”

“들었어?”

“네. 딱 거기까지 듣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대충 누구와 약속한 것인지 짐작은 됩니다.”

미호와 약속한 사람은 인호의 아버지일 것이다.

“아버지를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인호는 자신과 미호의 인연이 닿은 것을 8년 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박갑수의 부탁으로 지리산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농사를 망치는 멧돼지 수령을 찾으러 왔을 때였다.

그러나 기억에 없을 뿐이지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인연인 것 같다.

“맞아. 정씨 성을 쓰는 은호라는 아이와 인연이 있지.”

정은호.

인호의 아버지 이름이다.

“너는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네가 아주 어렸을 때 은호가 널 데리고 찾아온 적이 있었어. 그때 은호와 한 가지 약속을 했지.”

“절 지켜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까?”

“정확히는 네가 위험한 순간 목숨을 구해주겠다는 거였어. 단 한 번이긴 하지만.”

“도대체 아버지와 어떤 일이 있었기에 미호님께서 그런 약속을 하신 겁니까?”

이건 이무기의 말이 옳았다.

아무리 인호나 아버지와 인연이 있다고 해도 신수씩이나 되는 존재가 인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신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은호가 내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 목숨의 대가는 당연히 목숨인 것이지.”

“아버지가 목숨을 구해 드렸다고요? 도대체 미호 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미호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린다.

- 탐스러워 보인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고 그러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오래 전 인호의 아버지인 정은호가 미호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망혼주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당연히 알지요.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망혼주는 이름 그대로 망령들의 혼의 기운들이 모여 만들어진 구슬이다.

망혼주가 어떻게 생성되는지 아직 그 원리는 모르지만, 망혼주를 보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인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망혼주는 보는 족족 없애 버려야 한다. 자칫 그것이 악령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큰 사단이 벌어진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몇 번이나 신신당부한 말이었다. 인호는 두 개의 망혼주를 찾았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당부대로 파괴했다.

“설마 망혼주를 드신 겁니까?”

“…….”

대답을 하지 못하고 딴청을 피우는 걸 보니 인호의 예상이 맞는 것 같다.

“하, 하하. 망혼주를 드셨다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망혼주는 일견하기로 굉장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굉장한 기운을 품고 있기는 하다. 다만 그 기운이 이미 죽은 망령들의 기운이기에 정상적인 기운을 지닌 존재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뿐이다.

“웃지 마라.”

“하-, 헙. 네, 알겠습니다.”

“그때는 내가 많이 조급할 때였다. 꼬리 하나만 더 만들면 승천하여 신선이 될 수 있는데 수백 년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때 그 망혼주인지 하는 빌어먹을 것을 발견했지. 그것이 품은 기운이라면 꼬리 하나 더 만드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미호는 신수다.

자연에서 얻는 도력을 쌓는 그녀에게 망혼주의 기운은 치명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가 미호를 도와주었던 것이 분명했다.

미호에 비해 가진 힘은 미력할지 몰라도 망령들과 관련된 일만큼은 대한민국에서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사람이 인호의 아버지 정은호였다.

“네가 어렸을 때 은호가 널 데리고 날 찾아와서 약속을 받아냈지. 나는 약속의 증표로 네게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 때문에 네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위협이 있다면 내가 저절로 알게 된다. 네가 어디 있든 바로 갈 수 있지. 너는 몰랐겠지만, 최근에도 한 번 널 찾은 적이 있었다.”

“그게 언젭니까?”

“땡중과 신부, 도사 나부랭이까지 다 모였을 때다.”

“아-!”

사람의 몸에 빙의하여 연쇄살인을 일삼으며 악업을 쌓았던 악령을 처치할 때였다.

악령의 기운이 어찌나 강하던지 인호와 박주완, 불계, 황동호까지 함께 했음에도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때 오셨었군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다행히 그때는 너희들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했지. 그 덕분에 약속이 유지되었고 오늘 내가 나설 수 있었던 거야.”

만약 당시 악령을 상대할 때 미호가 나섰다면 오늘 인호는 이무기에게 꼼짝없이 죽고 말았을 것이다.

“하늘의 이치라는 것이 이렇게 오묘한 것이다. 그리고 이거 받거라.”

미호가 붉은 구슬 하나를 인호에게 건넨다.

“이게 뭡니까?”

“몸에 좋은 것이니 그냥 받거라.”

생긴 것만 보면 딱 망혼주와 비슷하다. 하지만 품고 있는 기운은 전혀 다르다.

“설마 이거 여우…….”

“여우구슬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여우구슬은 미호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미호의 모든 도력이 담겨 있는 구슬이다.

“그럼 뭡니까? 품고 있는 기운이 심상치 않은데요. 냄새도 조금 그렇고.”

비릿한 향기를 품고 있다. 인호는 문득 미호의 입가에 묻는 피를 보며 묻는다.

“다치셨습니까?”

“내 피 아니거든.”

“이무기의 피로 만든 겁니까?”

짐작되는 것이 있어 물으니 미호가 부정하지 않는다.

“원래 뱀이 몸에 좋은 거야. 그거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거거든.”

이무기의 피라면 강력한 힘을 품고 있을 것이다.

“네 기운과 다르기에 힘을 얻지 못하겠지만 그걸 먹으면 평생 독에 중독돼서 죽는 일은 없을 거야.”

“좋네요.”

인호가 망설이지 않고 붉은 구슬을 삼킨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며 뱃속이 뜨겁다.

“어때? 힘이 불끈 솟아? 뱀이 남자 정력에 그렇게 좋다며.”

“솟긴 뭐가 솟습니까? 일단 맛은 없네요.”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거야.”

미호가 몸을 돌려 거실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최정한을 힐끔 보고는 중얼거린다.

“평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거라.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분명할 터이니. 아니면 네 부모의 공덕이 컸던가.”

미호가 인호를 바라본다.

“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야. 너와 인연이 닿은 덕분에 이무기의 한에서 비켜설 수 있었으니.”

“결국 그렇게 됐네요.”

“나는 이만 갈게.”

미호가 열린 문으로 걸어간다.

정원에 혼자 남아 있는 인호의 모습을 보고 최정한이 손을 흔들었다.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평범한 사람인 최정한의 눈에는 인호가 혼자서 칼춤을 추고 있던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최정한이 제대로 본 것은 미호와 인호가 대화를 나누던 모습뿐이었다.

“정원이…….”

여기저기 움푹움푹 패여 있고 정원수들이 부러져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괜찮은 겁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단은.”

* * *

“네 덕분에 큰 근심을 덜었다.”

만신이 차를 내어주며 말한다.

“정말 아끼는 차인데 인호 너니까 주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안 아끼셨나 봅니다.”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할까? 내가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일은 잘 해결된 것이냐?”

“많은 힘을 잃었을 겁니다. 당분간은 쉽게 몸을 움직이지 못할 테지요.”

당분간이라 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미호에게 피가 빨려 도력을 상당히 잃었기 때문이다.

힘을 잃기도 했지만 미호가 무서워서 감히 한라산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 고생 많았다.”

미호는 다른 이에게 자신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인호를 도운 것은 아버지 정은호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자신이 인간을 도운 것을 다른 이들이 알게 되면 이런저런 일로 귀찮게 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도 이만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조만간 한 번 들러 근사한 밥 한 끼 사마.”

“서울까지 오셔서 밥을 사신다고요?”

“한 번 가야 할 일이 있거든. 좋은 일로 가는 것이니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그때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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