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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37화 (137/190)

제137화

능운정사를 나선 인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낭나무의 보호를 받는 마을이었다.

구렁이가 죽었다는 집에 도착한 인호가 초인종을 눌렀다.

마당 너머 집 현관문이 열리며 중년의 남자가 나온다. 인호를 본 남자가 살짝 고개 숙였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만신께 연락받았습니다. 최정한입니다.”

인호가 최정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는 것인지 초췌한 얼굴이었다. 아니면 벌써 신수의 복수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최정한이 한쪽으로 물러난다. 인호가 정원을 가로지르며 묻는다.

“구렁이가 죽은 위치가 정확히 어딥니까?”

최정한이 거실을 지나 안방쪽으로 인호를 이끈다.

“여깁니다.”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희미하긴 하지만 기운이 남아있었다.

죽은 구렁이는 단순히 오래 산 뱀이 아니라 영성을 띄기 시작한 예비 신수였다.

“최근에 낯선 사람이 방문한 적 있습니까?”

“낯선 사람이요?”

“잘 생각해 보세요.”

이무기가 신수이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지만 함부로 사람을 해할 수 없다. 신수 역시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 앞에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

새끼인 구렁이가 죽긴 했지만 무턱대고 복수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최근에 사람들이 자주 오긴 했습니다.”

“어째서요?”

“집을 내놨거든요.”

“이런…….”

인호가 입을 닫는다.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어낼 뻔했다.

인호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것인지 최정한이 머쓱하게 웃는다.

“저 살아 보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파는 양아치처럼 보이시죠?”

“그렇다기보다는…… 뭐 비슷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복수의 대상은 구렁이가 죽은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아닌 구렁이를 죽인, 혹은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 대한 복수입니다.”

“혹시 구렁이를 죽인 인부들에 대한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다행히 아직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무기의 입장에서 복수의 우선순위가 새끼 구렁이를 죽인 인부들이 아닌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최정한일 가능성이 컸다.

“다른 가족들은요?”

“아내와 딸은 일단 처갓집에 보냈습니다.”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집을 보겠다고 온 사람들 중 여자들이 몇 명입니까?”

최정한이 기억을 더듬는다. 손가락을 하나, 둘 접기 시작하는데 열 손가락이 모두 접힌다.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

“열두 명, 열세 명 정도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그 여자들 중 분위기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사람이 있었습니까?”

미호에게 들은 이무기는 여성체이다. 만약 이무기가 최정한을 찾아왔다면 다른 여자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을 것이다.

“분위기는 잘 모르겠고 이상한 말을 하는 여자는 한 명 있었습니다.”

인호가 어서 말을 하라는 듯 최정한을 바라본다.

“산쪽을 바라보며 ‘여우를 피하려 이곳을 찾았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 연락처 있습니까?”

그 여자가 이무기가 분명하다. 그녀의 말을 해석하자면 새끼 구렁이가 지리산에 터를 잡고 있는 여우, 즉 팔미호를 피하기 위해 산이 아닌 인가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최정한이 말한다.

“다시 온다는 말만 하고 연락처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 * *

“뭣 좀 나온 것 있어?”

유 형사가 관할 경찰서 형사들과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아직요.”

“커피 한잔하자.”

유 형사와 함께 휴게실로 가 자판기 커피를 뽑는다.

“그냥 전화 한 통 넣어 달라니까 굳이 왜 내려 온 거야?”

“전화로 협조 구하는 건 쉽죠. 하지만 정작 협조를 잘 안 하니 문제니까요. 이렇게 직접 내려와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도 휴가까지 쓰면서 내려온 건 좀 오버지 않아?”

유 형사는 4일간 휴가를 내고 이곳까지 왔다. 이유는 당연히 인호를 돕기 위해서였다. 범죄 사건이라면 휴가를 낼 필요도 없었겠지만.

“요즘 큰 사건도 없고 한가합니다.”

“휴가면 집에서 쉬어야지.”

“쉬어서 뭐 합니까? 그래봐야 술만 마시죠. 그리고 소장님하고 같이 있으면 심심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그런데 이번엔 무슨 일입니까?”

인호가 간단하게 설명해 준다.

“와우-! 신수라고요? 막 백호도 있고 그런 겁니까? 호랑이를 산군이라고 부르지요?”

“실제로 백두산의 신수가 백호야. 한반도에서 미호와 함께 최강을 다투는 신수지.”

“그나저나 그 사람 정말 큰일 났네요.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의 새끼를 죽이다니.”

“그러니까 유 형사가 그 여자, 아니 이무기를 빨리 찾아야 해. 절대 명심해야 하는 건 찾더라도 혼자 뭘 해 보려는 생각하지 마.”

“제가 미쳤습니까? 소장님께 바로 연락드릴게요.”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버릴 때였다.

“유 형사님.”

관할 경찰서 형사 한 명이 유 형사를 부른다.

“찾은 것 같습니다.”

* * *

인호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서서 아래쪽을 내려보고 있다.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해 봐야 5층이었고, 인호는 반대편 3층 건물을 보고 있었다.

늦은 시각이기에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인호가 바라보는 창문.

그곳에 누군가 서서 인호를 바라보고 있다. 어둠 속이기에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강렬한 적의가 느껴진다.

- 이대로 떠나라.

“제가 떠나야 하는 겁니까?”

- 내가 왜 온 것인지 알 터인데 방해할 셈인가?

“사람이 사는 집터에 자리를 잡은 것은 엄연히 실수입니다.”

- 그래서 내 아이가 잘못했다는 것이냐?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구렁이를 죽인 이들은 갑자기 집터에서 구렁이가 나왔으니 놀랐던 것뿐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뱀을 얼마나 끔찍이 싫어하는지.”

- 우리들도 인간이 싫다. 인간들이 우리들을 어떤 취급하는지 잘 알지 않는가?

인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든다.

그때 창문에서 느껴지던 적의가 사라진다. 인호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창백한 피부의 여자가 서 있다.

“미호 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다정하게 통성명할 사이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래서 계속 막을 셈인가?”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멀쩡한 생목숨 끊으면 이무기 님께도 좋지 않은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쌓은 도력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상관없다. 자식 잃은 어미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이만 물러나라.”

인호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어리석은 선택이다.”

이무기가 무서운 눈으로 인호를 쏘아본다. 그녀의 동공이 뱀의 그것처럼 세로로 찢어진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이무기가 화사하게 웃는다.

“결정했다.”

“…….”

“생각해 보니 내가 복수의 대상을 잘못 정한 것 같구나. 자식을 잃은 어미의 고통을 깨닫게 해 주어야겠구나.”

인호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복수의 대상이 최정한에게서 그의 딸로 바뀐 것이다.

“인간들은 자기보다 먼저 간 자식을 땅이 아닌 가슴 속에 묻는다지. 평생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지 마십시오.”

“내가 어째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그렇게 할 것이다. 어디 한 번 막아 보거라.”

이무기의 몸이 흐릿해진다.

인호가 상체를 뒤로 눕힌다. 가슴 위로 날카롭고 검은 손톱이 대기를 자르며 지나간다. 상체를 세우며 방어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이었다.

“윽.”

인호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노랗고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를 보는 순간 마비라도 된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빠각-

이무기가 다리를 쓸어오자 인호의 몸이 붕 떠오른다. 이무기는 떠오른 인호의 가슴을 손톱으로 찔러온다. 손톱이 가슴을 파고들려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손가락을 쭉 펴고는 손바닥으로 후려친다.

“쿨럭-.”

한참이나 굴러간 인호가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낸다.

“계속 막아서 보거라. 지금 같은 자비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옥상에서 이무기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 * *

“꼴 좋네.”

약을 먹는 인호를 보며 미호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병문안을 오신 겁니까? 아니면 염장을 지르러 오신 겁니까?”

“둘 다지. 한 번 붙어보니 어때? 해 볼 만해?”

인호가 대답을 하지 못한다.

“네가 아무리 대단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해도 상대는 신수야. 그 뱀이 나한테 졌다고 얕잡아 봤지?”

“그런 적 없습니다.”

“후후, 그랬으니 무턱대고 싸우자고 덤볐겠지.”

“이무기가 먼저 공격한 겁니다.”

“그래도 널 죽일 생각은 없었나 보네. 하긴. 악업을 쌓으면 그간 쌓은 도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릴 테니까.”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던데요.”

미호가 고개를 흔든다.

“신경을 쓰지 않을 리가 있나. 만약 네게 그런 식으로 말했다면 네게 겁을 주기 위해서였을 거야.”

“그렇습니까?”

“내가 만약 뱀이었다면 직접 복수하지 않아. 대신…….”

“사람의 손을 이용하겠군요.”

미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복수를 대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조차도 악업을 쌓는 일이 되겠지만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른 방법도 있지.”

“어떤 방법입니까?”

“힘의 일부를 심어 주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세상에는 아주 많은 악귀들이 있지. 그것들은 계속해서 강해지려 하잖아? 강해져야 자길 잡으러 오는 사자의 손에서 도망칠 수 있고, 계속 나쁜 짓을 하며 이상을 떠돌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악귀들은 강한 힘을 보면 사족을 못 쓰지.”

“이무기가 자신의 힘을 복수의 대상에게 심는단 말입니까?”

“나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야. 우리들이 태어나길 짐승으로 태어났다고 무시하면 안 돼. 살아 온 세월이 있잖아. 사고의 폭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지. 뱀이 자기 힘의 일부를 심고 주변의 악귀들을 그쪽으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해봐.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미호의 말대로 된다면 밀려드는 악령들을 상대로 디펜스 게임을 해야 할 판이었다.

미호가 심각한 인호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환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말한다.

“잘됐네. 네 일이 악귀들 잡는 거잖아. 이참에 악귀들 싹 쓸어 버리면 되겠다. 그치?”

“이 상황이 재미있으십니까?”

“원래 싸움 구경하고 불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거야.”

“하, 하하. 그렇기는 하지요.”

인호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어디 가는데?”

인호가 한숨을 푹 내쉰다.

“미호 님 재미있는 구경 시켜 드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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