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36화 (136/190)
  • 제136화

    “일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네요.”

    이민정이 뉴스를 보며 중얼거린다.

    - 수많은 학생들이 한 학생을 집단 구타해 평생 장애를 안고 가야 하는 부상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구타를 당한 학생을 동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입니다. 구타를 당한 문 모 학생은 평소…….

    문호영은 평생 한쪽 다리를 절어야 하는 장애를 얻었다. 그에게 피해를 입었던 학생들이 계획적으로 집단 구타를 한 것이다.

    “나 때문이었을 거야.”

    “네? 무슨 말씀이세요?”

    “항상 당하기만 하던 애들이 무슨 용기가 있어서 그 녀석을 집단 구타했겠어?”

    강아지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호랑이에게 덤빌 순 없었다.

    혹시 그럴 수 있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호랑이가 늙거나 크게 다쳐 힘이 없는 순간일 것이다.

    인호와 유 형사가 문정고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문호영에게 당한 증거를 수집했다.

    게다가 때마침 축구부 감독이었던 정창수가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학생들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 지금이라면 문호영을 단죄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을 뿐이다.

    “자기도 똑같이 당했으니 시원한 마음도 있는데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네요. 이제 고등학생이잖아요.”

    “남의 인생을 망쳤을 때는 자기 인생도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야지. 부모 잘 만나서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도 들어보지 않았고 잘못을 해도 잘못을 지적하는 이가 없었어. 그래서 몰랐던 거야.”

    문호영의 아버지도 구속되었다.

    해 먹어도 참 많이 해 먹었다.

    인호가 흥신소를 운영하는 유정우를 통해 비리를 파악하려 접근하자 제법 많은 직원들이 내부고발자를 자처했다.

    많이 해 먹었으면 밑에 사람들이라도 잘 챙겼어야 하는데 자기 욕심만 채웠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던 이성근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별말씀을요. 진철 학생은 곧 수술을 위해 독일로 가게 될 겁니다. 본래는 수술이 끝나고 재활 훈련이 끝나면 대은 그룹 축구팀 산하 유소년 축구팀에 넣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기회가 생길 것 같습니다.”

    최진철의 과거 축구 플레이 영상을 본 이철호가 친분이 있는 독일 축구팀에 최전철을 소개한 것이다. 독일 명문 클럽 산하 유소년팀 감독은 최진철의 플레이 영상을 본 후 자신이 가르쳐 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물론 최진철이 팀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실력은 갖췄을 때 그렇게 될 것이다.

    “아마 지금쯤 대은 그룹 관계자가 진철 학생을 만나러 갔을 겁니다. 그럴싸한 핑계를 만들어 두었으니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승에 남은 미련 다 떨쳐 버리셨죠?”

    “네.”

    이성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망자 이성근.”

    어느새 나타나 있는 저승사자가 이성근을 부른다.

    “네. 사자님.”

    “당신이 저승에 가지 않고 이승에 남아있던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한 아이의 미래를 바꾸었으니 의미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고 나와 함께 갑시다.”

    * * *

    위로 자란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수십 미터나 된다. 나뭇가지에 오색의 끈들이 묶여 있고 나무 앞에는 네모반듯한 제단이 놓여 있다.

    제단 위의 촛불이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나무 주위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다. 제단 위에는 음식들도 차려져 있는데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음식들이었다.

    흔들리는 촛불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오색 천들의 그림자들이 춤을 추는 듯 너울거린다.

    그 그림자들 사이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

    피처럼 붉은 광채가 어둠 속에서 번뜩인다. 어슬렁거리며 나무로 다가와 히죽 웃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무가 불길에 휩싸인다.

    * * *

    인호는 휴대폰 벨 소리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어야 했다.

    “여보세요.”

    잠이 덜 깬 음성으로 전화를 받으니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음성이 들린다.

    - 인호야.

    “만신께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 자는데 깨워서 미안하구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 한 번 내려와 주련?

    “급한 일입니까?”

    - 그래. 아주 급한 일이야.

    “네. 바로 준비해서 출발하겠습니다.”

    지리산 만신 이혜옥에게 온 전화였다.

    차가운 물로 샤워해 잠을 깬 후 사무실로 내려간다. 이른 시간이라 이민정은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우쭈쭈. 우리 인호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요? 그래서 일찍 내려 온 거예요?”

    사기꾼이 장난을 걸어 온다.

    “급한 일로 지리산 내려가야 해. 민정이 오면 그렇게 전해. 오늘 올 수 있을지 며칠 걸릴지 아직 몰라.”

    “지리산이면 만신?”

    “그래.”

    “요즘 자주 연락하시네. 장거리 운전하는데 같이 가주고 싶지만,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쉬어야겠다. 영감님도 그렇죠?”

    영감이 인호의 시선을 외면한다.

    망령들은 이혜옥을 꺼렸다. 그녀의 기운이 강한 탓도 있지만 망령들 자체를 썩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호가 뚱보를 바라본다.

    “나? 나도…….”

    “됐어. 나 혼자 가지 뭐.”

    인호가 한심하다는 듯 뚱보와 망령들을 바라보고는 사무실을 나선다.

    * * *

    지리산 능운정사.

    “선녀님. 잘 지내셨습니까?”

    월궁선녀 최화란이 인호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전의 일이 잘 해결되고 최화란은 다시 이혜옥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은 이혜옥의 후계자로 훗날 능운정사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만신께서는요?”

    “기다리고 계세요.”

    최화란과 함께 능운정사로 들어가려던 인호가 주위를 살핀다. 알 수 없는 강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만신 이혜옥이 지닌 기운과는 사뭇 다른, 그리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만신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저 왔습니다.”

    “먼 곳까지 물러 미안하다.”

    “아닙니다. 만신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달려와야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고.”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이혜옥이 이렇게 다급히 자신을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려나. 서낭나무는 알고 있지?”

    “잘 알지요. 서낭신이 머무시는 나무 아닙니까?”

    서낭나무.

    서낭신이라 하여 마을을 지키는 신이 깃들어 있는 나무를 뜻한다. 꼭 나무가 아니더라도 바위나 그 밖의 것들에 서낭신이 깃들기도 한다.

    그리고 서낭당이라는 것은 서낭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저 아랫마을을 지키는 서낭나무가 모조리 타 버렸다.”

    인호가 놀란 듯 이혜옥을 바라본다.

    서낭나무는 말 그대로 신이 깃든 신주다. 감히 어떤 존재가 서낭나무에 불을 지를 수 있단 말인가?

    “누구 짓입니까?”

    “그걸 알았으면 내가 진즉에 요절을 냈지 널 불렀겠느냐. 짐작 가는 곳이 있기는 하다.”

    최화란이 차를 우려 이혜옥과 인호의 앞에 내려놓는다.

    “몇 년 전에 그 마을에 가장 큰 기와집을 허물고 현대식 가옥을 올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대청마루 아래에 아주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나왔어. 기와집을 철거하던 인부들이 너무나 큰 구렁이를 보고 놀라 때려죽였지.”

    “신수였던 겁니까?”

    신수란 아주 오랫동안 살며 자연의 기운을 갈무리해 존재의 격이 상승한 짐승들을 뜻했다.

    이곳 지리산에도 인호와 인연이 있는 꼬리가 여덟 개인 팔미호가 있었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집주인이 확인하니 구렁이의 길이가 족히 십수 미터는 되었다고 하더구나.”

    “씁. 신수일 확률이 높네요. 그런데 지리산 인근 마을에 신수가 있었다면 미호 님이 알고 계셨지 않을까요?”

    “이미 여쭤보았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계시기도 하고.”

    “아-! 여기 계세요?”

    능운정사에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강대한 기운이 미호의 기운이었던 것이다.

    “왜? 여기 있으면 안 돼?”

    문이 열리고 미호가 안으로 들어온다.

    “하, 하하. 설마요. 미호 님은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흥! 하여튼 입에 발린 소리만 한다니까.”

    “그나저나 어떻게 된 겁니까?”

    지리산에서 벌어진 일이니 미호가 모를 리 없다. 미호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신수들 중 가장 강한 존재였다.

    “나라고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야. 다만 아주 오래전에 이무기 한 마리가 나와 다투고 지리산을 떠난 일은 있지. 만약 그 구렁이가 도력을 쌓은 신수라면 그 이무기의 새끼일 가능성이 커. 그 이무기가 본래는 구렁이었거든.”

    “하아-. 상황이 조금 복잡해지네요.”

    죽은 신수의 령이 복수를 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미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 가지 경우의 수가 더 생겼다.

    “이무기가 새끼의 복수를 하려고 지리산에 돌아왔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자기 새끼를 죽인 인간들이 사는 마을을 지키는 서낭나무를 불태운 것 아닐까요?”

    “추측일 뿐이긴 하지만 가능성이 높지.”

    “미호 님. 그 이무기는 어떤 존재입니까?”

    “굉장히 강한 존재야. 그때 내 꼬리가 일곱 개였는데 하나만 부족했어도 지리산에서 쫓겨나는 건 나였을 거야.”

    “미호 님의 꼬리가 여덟 개이니 당연히 지금도 이무기보다 강하시겠네요.”

    “당연하지.”

    인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런 인호를 보며 미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설마 지금 내가 너희들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아닙니까?”

    “내가 왜?”

    미호가 의아하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자기 자식 죽인 인간들을 벌하러 온 거야. 내가 무슨 권리로 이무기의 복수를 막아?”

    “하지만…….”

    “잘 들어. 만약 나에게 새끼가 있었다고 치자. 인간들이 내 새끼를 죽였어. 그러면 과연 누가 말린다고 해서 내가 참고 지나갈까? 백두산의 산군이 와도 나를 못 말릴걸.”

    듣고 보니 틀린 얘기가 아니기에 인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미안한 말이지만 인간이 벌인 일이야. 뒷수습 역시 인간이 해야 할 거야. 참고로 조심하는 게 좋을걸? 그 이무기는 나처럼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대화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거든.”

    이혜옥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아-. 그 서낭나무에서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굿을 여러 번 했습니다. 당연히 서낭신 님도 뵈었구요. 어쩌다 그런 참변을 당하신 것인지. 일찍 알아차리지 못한 제 죄가 큽니다.”

    “그게 어째서 만신의 잘못입니까? 그나저나 그 마을 사람들은 지금 자기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기는 합니까?”

    미호가 강하다고 인정한 신수인 이무기가 마을을 노리고 있다면 그곳의 주민들은 정말 위험한 상태였다.

    특히 구렁이를 직접 죽인 인부들은 당장 죽어 나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경고는 했다.”

    “그 사람들 이곳에 오라고 하면 안 되겠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잊은 것이냐? 화가 아이들에게 미칠까 두렵구나.”

    이혜옥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능운정사가 이혜옥이 섬기는 신이 지켜주고 있기는 하지만 노리는 존재가 신수라면 위험하다.

    “그래서 널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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