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33화 (133/190)
  • 제133화

    “연희는 쭉 제 옆에 있었데요.”

    흘러가는 한강을 보며 황연주가 읊조리듯 말한다.

    “제가 어느 순간부터 이전에 잘하지 못하던 것들을 잘하게 된 이유도 다 연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연희의 눈으로 보니 예전에 못 보던 것까지 보였던 거죠.”

    유람선의 불빛들이 마치 강물에 별들을 쏟아부은 듯 반짝거린다.

    “제가 다시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고 하늘나라에 가려고 했대요. 그런데 민영이가 나타났고. 연희는 절 위해 민영이가 제 곁에 오지 못하게 막아주었던 거죠.”

    두 사람의 우정이 참 부럽다.

    “민영이가 점점 강해져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인호 씨가 오지 않았다면 민영이를 막지 못했을 거라고 그랬어요.”

    손민영은 악령이 강해지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이유 없이 일어나는 사고들에 그녀가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덕분에 연희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연주 씨가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이게 제 일이이니까요.”

    “민영이는 어떻게 됐나요?”

    “본래라면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해야 했지만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죄악을 쌓은 영혼들은 지옥에서 죗값을 치르고 환생한다. 하지만 이승에서 영이 소멸되면 영원히 ‘무’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민영이도 참 가여워요. 민영이가 정말 많이 노력한 것 알고 있거든요.”

    평생 이인자로 살아야 하는 이들이 어떤 기분일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을 앞에 두고 있다면 매 순간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더욱이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 시절에 그런 일을 겪는다면 느끼는 절망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황연주와 이연희처럼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었다면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민영에게는 이 두 사람 모두 넘을 수 없는 벽으로만 느껴졌으리라.

    “이제 모두 정리되었으니 꿈을 이루는 일만 남았네요.”

    “그러게요. 연희와 약속했으니까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연희도 하늘에서 절 응원해 준다고 했어요.”

    황연주가 손끝으로 눈을 찍는다. 애써 울음을 참으려 한다.

    “울고 싶으면 울어요.”

    “후후, 나 참 바보 같아요. 연희가 옆에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네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감사해요. 인호 씨 덕분에 앞으로 더 열심히 살 수 있게 됐어요.”

    황연주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음에 연주회에 초대할게요. 꼭 와주셔야 해요.”

    “당연하죠. 꼭 가겠습니다.”

    * * *

    인호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이게 다 뭡니까?”

    “회장님께서 약속한 선물이라며 보내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다 선물이라고요?”

    인호가 오형민 회장의 비서실장에게 묻는다.

    “네. 연주 양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다 들으셨데요?”

    “네. 연주 양이 미국으로 출국 전 회장님과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때 전부 이야기하더군요. 사실 전 겪어 보지 않아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잘 믿기지 않더군요.”

    “보통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이것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서실장이 빙긋 웃는다.

    “그냥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편해집니다.”

    “아무리 그래도…….”

    세 대의 차가 일렬로 서 있다.

    “차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차는 부가티 베이론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출고가는 38억 원입니다. 회장님께서 이런저런 튜닝을 하셨습니다. 가치를 논하기 힘든 차죠. 구하기는 더더욱 힘들고요.”

    “38억이요?”

    “튜닝 비용이 20억 이상이었습니다.”

    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가격에 놀라시면 다른 차들 가격은 듣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을 것 같습니다.”

    “설마 이 차보다 비싼 겁니까?”

    비서실장이 그저 웃기만 한다.

    “마이바흐 엑셀레로입니다. 전 세계에 딱 열 대만 있는 차죠. 당연히 주문 제작 차량입니다. 마지막 차는 롤스로이스입니다.”

    인호도 롤스로이스는 알고 있다. 생긴 형태가 아주 특이하다.

    “회장님께서 직접 설계를 의뢰하신 차입니다. 이 차를 주문하기 위해 신성 그룹에 속한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 공모전을 했습니다. 그렇게 당선된 디자인으로 제작 의뢰하셨죠. 세상에 단 한 대뿐인 차입니다.”

    “많이 비싸겠죠?”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일 겁니다. 참고로 마이바흐와 롤스로이스는 우리나라에 한 대씩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차들을 회장님 차라고 부르죠.”

    “어그로는 확실히 끌겠네요.”

    “네?”

    “하하, 아닙니다. 죄송한데 그냥 한 대만 받으면 안 될까요? 너무 부담돼서요.”

    “절대 안 됩니다.”

    비서실장이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회장님께서 이 차를 선물로 주시며 차량 관리 기술자 두 명도 함께 보내셨습니다. 그 두 사람은 계속 신성 그룹에 속해 있는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 부담이 늘었는데요?”

    “회장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회장님 연세가 아주 많으시지 않습니까. 애지중지 모아오셨던 차들이 차고에만 있는 걸 보시는 것보다는 누군가 운행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셨을 겁니다. 참고로 회장님께서 정인호 씨를 아주 각별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감사한 말씀이죠.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기술자들은 오늘 오후부터 이쪽으로 출근할 겁니다. 건물에 작은 여유 공간이라도 있다면 그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없어도 만들어야죠.”

    비서실장이 돌아가기 무섭게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이민정을 비롯한 망령들이 우르르 내려온다.

    “이야. 이 차 때깔 봐라. 죽인다, 죽여. 나 이 차 알아. 전에 티비에서 봤어.”

    사기꾼이 롤스로이스에 타면서 말한다.

    “사치의 끝판왕이라고 하던가? 웬만한 건물 한 채 가격보다 비싼 차라고 하던데.”

    “저도 봤어요. 우와, 세 대 중에 부가티 베이론이 가장 싼 차라니. 진짜 미쳤네요.”

    이민정이 혀를 내두른다.

    “소장님. 저 가끔씩 빌려 타도 돼요?”

    “민정아. 이런 차들 운전하면 부담되지 않을까?”

    “사고 날까 봐요?”

    이민정이 씨익 웃는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겠죠.”

    “그러려나?”

    “당연하죠. 감히 옆에 오기나 하겠어요?”

    차들을 주차장으로 옮기는 데만 해도 한참이나 걸렸다. 혹시라도 어디에 긁힐까 살살 운전할 수밖에 없다. 겨우 주차를 마친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차를 몰고 다니는 게 아니라 모시고 다니게 생겼네.”

    * * *

    한 학생이 스탠드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다.

    운동장에는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축구 훈련을 하고 있었다.

    스탠드에 앉아 있던 학생은 훈련 중인 학생들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훈련이 끝난 학생들이 하나둘 운동장을 떠나간다. 그들 중 두 명이 스탠드의 학생에게 다가온다.

    “야, 병신. 왜 또 궁상떨고 있냐?”

    그 말을 들은 학생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왜? 기분 나빠? 아-, 내가 실수했네. 대 문정고 에이스 최진철님한테 병신이라고 했으니 말이야.”

    “크크크. 에이스 맞지.”

    그와 함께 온 학생이 낄낄거린다.

    스탠드에 앉아 있던 학생, 최진철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목발에 의지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였다.

    “야. 병신. 웬만하면 그만하지? 의사가 너 선수 생활 끝났다고 했다며? 그런데 왜 매일 같이 궁상떠는데? 설마 나한테 죄책감 느끼라고 그러는 거야? 미안하지만 실수였어, 실수.”

    “실수 맞지.”

    최진철은 계속해서 도발하는 이들을 뒤로한 채 목발에 의지해 걸음을 뗀다.

    그때 뒤쪽에서 조롱하는 투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정말 실수였을까?”

    * * *

    “형님. 안녕하십니까.”

    차에서 내린 인호에게 꾸벅 인사하는 남자는 땡초의 부하들 중 막내였다.

    “어, 그래. 잘 지내지?”

    “네, 형님 덕분에 잘 지냅니다.”

    막내가 몸을 일으킬 때 누군가와 부딪친다.

    “어떤 시러배 잡놈의 새끼가…….”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자 막내가 어색하게 웃는다.

    “학생 괜찮아요?”

    인호가 막내와 몸이 부딪친 이에게 묻는다. 목발을 짚고 있는 남학생이었다.

    “저-, 죄송합니다.”

    “응? 뭐가 죄송해요?”

    학생이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학생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아-!”

    뒤 범퍼에 긁힌 상처가 보인다.

    “형님. 이 차 엄청 비싼 차 아닙니까? 막 몇십억 하는 차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학생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해간다.

    막내의 말대로 오늘 타고 온 차는 오형민이 선물해 준 차들 중 한 대인 부가티였다.

    “학생.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막내와 몸이 부딪쳐 중심을 잡지 못할 때 목발에 긁힌 것 같다.

    “갑자기 무슨 드라이브를 시켜준다고 그래? 응? 이건 무슨 상황이냐?”

    땡초가 건물 밖으로 나온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아무 일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인데?”

    땡초가 인호에게 말을 하다 난처한 듯 서 있는 학생을 보며 알은체한다.

    “어라? 진철이 아니냐?”

    “아는 학생이에요?”

    “응. 문정 고등학교라고 거기 축구부야. 진철이 오랜만이다.”

    “네, 안녕하세요.”

    최진철이 꾸벅 인사한다.

    “형이 고등학교 축구부 학생을 어떻게 알아요?”

    “이 지역 상가번영회 조기 축구회 있잖아. 노인네들 하도 축구를 못 해서 문정고 축구부 애들한테 많이 배웠거든. 친선 경기도 자주 한 편이고. 진철이 쟤가 문정고 이거야.”

    땡초가 엄지를 세운다.

    “그런데 왜 이러고 있어? 진철이 너는 왜 똥 마려운 강아지 표정이고?”

    인호가 상황을 설명해준다. 땡초가 긁힌 자국을 보고는 볼을 긁적인다.

    “이야. 이걸 어떻게 하냐? 이거 보험처리 하려고 해도 금액 장난 아닐 텐데.”

    “따로 정비해 주시는 분들 있어요. 그분들한테 부탁하면 될 거예요.”

    “하여튼 우리 인호 요즘 잘 나간다니까. 나는 언제 이런 차 타보냐?”

    인호가 최진철에게 말한다.

    “진철 학생이라고 했죠? 괜찮으니까 그냥 가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하. 학생이 무슨 수로 책임져요. 땡초 형 말 들었죠? 이 차 엄청 비싼 차에요. 그러니 그냥 가요. 차 주인이 괜찮다고 하잖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시합 때 표나 구해줘요. 나도 축구 엄청 좋아하거든요.”

    최진철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럼 잘 가요. 다리 조심하고요. 축구선수는 다리가 생명이잖아요.”

    최진철이 꾸벅 인사한 후 멀어져 간다.

    “어쩌다 다친 거야? 곧 시합 있을 건데.”

    땡초가 최진철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린다.

    “축구 잘하나 보네요.”

    “날아다니지. 고등학교 수준이 아니야. 쟤네 학교 감독이 아주 물고 빨고 난리였지. 하아-. 그리고 보면 그 감독도 참 안 됐어.”

    “안 돼요?”

    “응. 시합 마치고 애들 집까지 모두 태워다 준 후에 돌아가다 사고 나서 죽었거든. 그 감독이 애들도 잘 가르쳤어. 사실 진철이 쟤도 그 감독이 발굴한 거고.”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땡초의 뒤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혹시 그쪽이 감독님입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