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32화 (132/190)
  • 제132화

    악령이 손짓하자 화병이 인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인호가 손등으로 화병을 쳐 내며 악령과의 거리를 좁힌다.

    악령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뒤쪽에서 날카로운 금속 조각물이 날아든다. 인호가 상체를 비틀어 피하며 금속 조각물을 손으로 잡는다.

    조각물에 푸른 기운이 깃든다. 인호가 악령을 벤다. 몸이 흐릿해져 사라지기 직전, 푸른 기운이 악령의 몸을 베고 지난다.

    “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며 악령이 사라진다. 인호가 주변을 살핀다. 악령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는다. 소멸시키려 했으니 마지막 순간 두려움을 느낀 악령이 도주해 버렸다.

    인호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멀지 않은 곳에 망령이 벌벌 떨고 있다. 인호의 기운 때문이리라. 눈이 있을 자리가 뻥 뚫린 망령이 사라지려 한다.

    “이연희 씨. 잠시만 기다려요.”

    망령이 인호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묻는다.

    “절 아세요?”

    “잘 알죠. 친구를 위해 안구를 기증한 이연희 씨잖아요.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인호가 손에 든 조각물을 내려놓고 소파로 가 앉는다.

    “연주 씨 주변을 맴도는 이유가 조금 전 그 악령 때문이었나요?”

    “네. 나쁜 기집애가 연주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해서요.”

    “나쁜 기집애요? 설마 아는 악령입니까?”

    “네. 손민영이에요.”

    “그게 누굽니까?”

    “우리랑 같은 학교 다니던 애예요. 저랑 연주 때문에 콩클에서 매번 3위를 했던.”

    “아-.”

    인호가 알겠다는 듯 탄성을 흘린다. 손민영이라는 악령은 이연희와 황연주 때문에 매번 3위를 해 원한이 쌓였던 것 같다.

    “잠시만 기다려 봐요.”

    인호가 현관문을 열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황연주에게 손짓한다. 집 안으로 들어 온 황연주가 깜짝 놀란다. 난장판이 된 거실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리 와 앉아요.”

    황연주가 인호의 옆에 앉는다.

    “지금부터 뭘 봐도 놀라지 말아요.”

    말을 하며 황연주의 몸을 가볍게 터치한다.

    “꺄악-!”

    황연주는 맞은편 소파에 앉은 이연희의 망령을 보고 비명을 내지른다.

    “그렇게 놀라지 말아요. 자세히 봐요. 연주 씨가 아는 누군가와 많이 닮았죠?”

    입을 틀어막은 황연주가 인호의 말을 듣고는 이연희를 살핀다.

    “서, 설마 연희?”

    “그래. 연주야. 나 연희야.”

    “연희야 네 눈…….”

    이미 인호에게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미안해. 연희야 미안해. 나 때문에 네 눈이-.”

    “아니야. 내가 선택한 일인 걸.”

    “연희 씨. 살아있을 때 모습을 떠올려봐요. 행복했을 때를 떠올려요.”

    이연희의 몸에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맑게 빛나는 눈을 가진 모습으로 변한다.

    “연주 씨. 연희 씨는 죽은 후에도 연주 씨 곁에 남아 지켜주고 있었어요.”

    “지켜요? 무엇에게서 절 지켰죠?”

    황연주의 물음에 인호가 손민영이라는 악령에 대해 설명해준다.

    “민영이요? 걔가 날 해코지하려고 했다고요? 그걸 연희가 막아줬고요?”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민영이가-. 자살했다는 말은 들었어요. 제 눈 수술이 성공하고 첫 콩클이 끝난 후에 자살했다고 하더라고요.”

    황연주가 병에 걸려 시야를 잃게 되면 자신이 1등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황연주가 수술을 마친 후 본래보다 뛰어난 실력으로 돌아오니 깊은 절망을 느꼈으리라.

    “연희 씨.”

    “네.”

    “죽은 이가 이승에 오래 머물면 좋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가야 할 곳으로 가세요.”

    “하지만 민영이가 연주를 괴롭히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이제부터는 제가 연주 씨를 지켜줄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정말 그래 주실 수 있으세요?”

    “네. 손민영이라는 악령이 절대 연주 씨 괴롭히지 못 하게 할게요.”

    소멸시키면 괴롭히고 싶어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 * *

    인호는 악령이 남긴 흔적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악령은 황연주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긴가?”

    굉장히 좋은 집이다.

    우편물 함에 꽂힌 것들 중 하나를 꺼내 확인한다.

    손동훈

    악령 손민영과 같은 성 씨를 가지고 있다. 손동훈은 아마도 손민영의 아버지일 것이다. 인호는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누른다.

    - 누구세요?

    “혹시 여기가 손민영 씨 집입니까?”

    잠시 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 당신 누구야?

    조금 전과 다른 목소리다.

    - 당신이 누군데 우리 민영이를 찾아?

    “손민영 씨를 조금 아는 사람입니다. 혹시 잠시 뵐 수 있을까요?”

    문의 잠금장치가 풀린다. 인호가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 서니 문이 열린다. 허리에 손을 얹은 차가운 인상의 중년 여자가 보인다.

    “우리 민영이를 어떻게 알아요?”

    여자는 인호를 보기 무섭게 쏘아붙인다.

    인호는 여자의 뒤쪽, 집 안을 슬쩍 살핀다. 손민영의 악령은 분명 이 집 안에 있다.

    “당신 뭔데? 혹시 무당이야?”

    여자의 말에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알고 계셨군요.”

    “뭘 말하는지 모르겠네.”

    “이 집 안에 따님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여자가 놀란 듯 흠칫 몸을 떤다. 여자가 인호의 시선을 피한다.

    “몰라. 몰라요. 그만 돌아가요.”

    쾅-

    요란하게 현관문이 닫힌다. 인호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 그의 시선은 2층으로 향해 있었다. 불이 켜져 있는 방. 그 방 창문 너머로 불길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다시 올 테니까.”

    손민영의 집을 나설 때였다.

    “아저씨.”

    “응? 나 부른 거야?”

    교복을 입은 여자가 서 있다.

    “네. 아저씨 말고 여기 누구 다른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왜 불렀는데?”

    학생이 집을 힐끔 쳐다본다.

    “누군데 우리 집에서 나와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 학생도 이 집에서 살아? 그러면 손민영 씨도 알겠네?”

    “우리 언닌데요.”

    “학생은 이름이 뭐야?”

    “손민지요.”

    “좋은 이름이네.”

    손민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우리 언니 때문에 온 거죠?”

    “응? 왜 그렇게 생각하지?”

    “죽은 언니 방에서 밤마다 누군가 피아노를 치는데 아주 미쳐버릴 것 같거든요.”

    손민지 역시 손민영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우리 언니가 귀신 된 것 맞죠?”

    “아마도?”

    “살아 있을 때도 매일 시끄럽게 쿵쾅대더니 죽어서도 그러네요.”

    “언니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 같네?”

    손민지가 고개를 흔든다.

    “그건 아니고요. 전 언니 좋아했어요. 하지만 언니가 콤플렉스 때문에 짜증이 심해졌어요. 그래서 언니와의 사이가 조금씩 안 좋아졌죠.”

    “3등 콤플렉스?”

    “잘 아시네요. 그런데 아저씨는 뭐 하는 분이세요?”

    “나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영혼들을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만드는 사람이지.”

    “영화 같은 데에 나오는 퇴마사 그런 건가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 학생. 하나만 묻자. 죽은 언니가 이승에 남아 누군가를 괴롭히려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손민지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전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엄마한테도 몇 번이나 언니 피아노 부숴버리자고 말했어요.”

    아무래도 손민영이 피아노에 깃들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를 설득하지 못했어요. 이제는 밤마다 언니가 치는 피아노를 듣지 않으면 잠도 잘 못 주무시거든요. 난 정 반대지만.”

    “어머님이 언니를 놓아주지 못하면 언니에게 더 안 좋은 거야. 지옥에 가서 치러야 할 대가가 점점 커지거든.”

    “그렇다고 해도 엄마는 안 받아들일 걸요.”

    “학생은 어때? 학생이라면 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손민지가 인호에게 묻는다.

    “내가 뭘 하면 되는데요?”

    * * *

    “으아악-!”

    콰쾅-

    운전자가 비명을 내지르며 핸들을 꺾는다. 차는 가로등에 부딪힌다. 주변 사람들의 신고로 곧 119 구급차가 출동한다. 다행히 피해 본 사람은 없었다.

    “귀, 귀신.”

    사고 난 운전자가 구급차에 타며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떠나가는 구급차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조금 전 운전자가 본 악령 손민영이었다.

    손민영이 싸늘하게 웃으며 몸을 돌린다. 악행을 쌓을 때마다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황연주의 집에서 만난 남자는 정말 강했다. 그가 지키고 있는 황연주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으, 으악-!”

    사다리에 올라가 간판을 수리하던 남자가 휘청거리더니 아래로 떨어진다. 손민영은 여전히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남자의 곁을 지나간다.

    악행을 쌓고 집으로 돌아온 손민영.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고 입술을 질겅인다. 그녀의 눈에서 붉은빛이 쏟아져 나온다. 2층으로 올라가 곧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피아노.

    손민영이 흐릿해지며 붉은 기운이 피아노에 스며들려 한다.

    하지만-.

    꺄아아아아악-!

    긴 비명과 함께 손민영이 뒤로 튕겨 나간다. 자세히 보니 피아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금빛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다.

    “누구야! 누가 이런 거야!”

    무엇인가가 자신이 피아노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손민영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린다. 이 집에서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손민지!”

    자신의 동생 손민지가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부수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손민영이 손민지의 방으로 향한다. 손민지의 방문을 뚫고 들어가려던 손민영이 뒤로 튕겨 나간다.

    “손민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당장 나오지 못해?”

    문 너머의 손민지는 두려운 나머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 손민지! 당장 나와!

    밖에서 죽은 언니의 외침이 들린다. 인호로 인해 잠시지만 귀문이 열려 영혼을 볼 수 있고 영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손민지의 방에는 인호가 황동호에게 부탁해 만든 부적이 붙어 있다. 손민영의 피아노에도 황동호의 부적이 붙어 있다.

    - 손민지! 언니한테 혼나고 싶어!

    무언가 문을 쿵, 쿵 두드리고 있다. 손민영이 어떻게든 방으로 들어오려 하는 것이리라. 손민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으로 귀를 꼭 막고 있다.

    “하나도 안 무섭다. 하나도 안 무섭다.”

    그때 손민지의 휴대폰이 몸을 떤다.

    “여보세요.”

    - 어떻게 됐어?

    인호의 전화였다.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했어요. 지금 제 방문 부수겠다고 난리 치고 있어요.”

    - 그래? 잘했네. 마지막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지?

    “네. 그런데 정말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예요? 혹시 엄마나 아빠에게 피해 가는 건 아니죠?”

    - 절대 그런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전화를 끊고 다시 귀를 틀어막는다.

    손민영은 계속해서 악의가 가득 담긴 외침을 토해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밝아온다.

    이불 속에서 나온 손민지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악령들은 첫닭이 울고 잠시 동안 기운을 많이 잃게 돼. 악령이 가장 약해지는 시간이지. 그때 학생이 해야 할 일이 있어.

    손민지가 방을 나선다. 다행히 언니는 보이지 않는다. 언니 방으로 들어간다. 떨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살핀 후 피아노로 다가간다.

    품에서 인호가 준 부적을 꺼내 피아노에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민지야. 뭐 하려고?”

    바로 귀 옆에서 속삭이는 음성.

    손민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눈이 새빨간 언니의 얼굴이 보인다.

    - 언니라고 절대 동정하거나 하면 안 돼. 그저 악령일 뿐이야.

    인호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손민지가 손에 든 부적을 피아노에 붙이며 외친다.

    “언니. 미안!”

    사르륵

    부적이 불타오른다.

    꺄아아아악-!

    손민영이 긴 비명을 토해낸다. 그녀의 몸에 푸른 불길이 솟구친다. 손민지는 푸른 불길에 타고 있는 손민영을 보며 울먹인다.

    “언니. 정말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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