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30화 (130/190)
  • 제130화

    “갑자기 그건 왜 묻나?”

    “그냥 궁금해서요.”

    “흐음. 내가 듣기는 했는데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점점 시력이 나빠지다 결국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병이라고 했네.”

    “그렇습니까?”

    인호의 시선은 무대 중앙에 고정돼 있다.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라고 했어. 유일한 방법은 안구를 이식하는 방법뿐이었지.”

    “황연주 씨는 안구 이식을 받으신 겁니까?”

    “그렇네. 내가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어. 그런데 이름을 알지 못하는 기증자에게 안구를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하게 되었어.”

    인호는 여전히 무대 중앙을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는 피아노 연주를 하는 황연주의 뒤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다.

    망령이었다.

    인호가 뚫어져라 바라보니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망령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인호가 이를 꽉 깨문다.

    망령의 얼굴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눈이 없었다. 두 눈이 휑하니 뚫려 있는 것이다.

    망령은 인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곧 푸른빛이 되어 사라진다.

    “황연주 씨에게 무언가 붙어 있네요.”

    “그게 무슨…… 그것인가?”

    오형민은 인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지난번에 손자인 오민호가 깨어나는 데 인호의 능력을 빌리기도 했고, 그로 인해 이런저런 보고를 따로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위험한가?”

    “아직 잘 모릅니다. 망령들에게는 제각각의 사연이 있죠. 다행이라면 황연주 씨에게 붙은 망령이 악한 망령이 아니라는 겁니다.”

    “휴우, 정말 다행이군.”

    인호가 고개를 젓는다.

    “그렇지 않습니다. 악령이 아니라 해도 망령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본래는 연주회가 끝나면 곧바로 돌아가려 했는데-.”

    인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황연주를 바라본다.

    “황연주 씨를 만나봐야 할 이유가 생겼군요.”

    * * *

    “회장님. 감사합니다.”

    세종문화회관 인근의 음식점에 황연주가 들어온다.

    “우리 사이에 그런 말 하는 것 아니다. 나도 덕분에 귀 호강했구나.”

    황연주의 모든 연주회는 신성 그룹이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다. 황연주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혼자서 전 세계의 유명한 공연장을 섭외할 수는 없었다.

    “이쪽은 정인호라는 친구야.”

    “안녕하세요. 정인호라고 합니다.”

    “황연주에요.”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회장님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듣다 황연주 씨를 만나게 해달라고 회장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잠시지만 황연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곧바로 본래의 표정으로 되돌아 왔지만 인호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연주야. 나도 네게 해가 될 사람 같았으면 소개해 주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니 그렇게 정색할 필요 없다.”

    “죄송해요, 회장님.”

    “아니야. 연주회 하느라 피곤한 널 불러낸 내가 더 미안하지. 하지만 네게 꼭 필요한 일이라 부른 거니 이해하거라.”

    “네, 회장님.”

    인호는 오형민과 대화를 나누는 황연주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황연주에게서 망령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말은 망령이 지금까지 황연주에게 해코지를 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연주 씨.”

    “네, 말씀하세요.”

    “가끔 이유 없이 서늘함을 느끼거나 누군가 곁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황연주가 인호를 바라본다. 그런 질문을 왜 하냐고 묻는 듯하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전 죽은 이의 영혼을 보고, 그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습니다. 회장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 능력 때문이지요. 제 말이 진실인 것은 회장님께서…….”

    “믿어요.”

    황연주의 대답에 인호가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본다. 보통 사람들은 영혼이나 귀신 같은 존재를 좀처럼 믿지 않는다.

    “제 주위에도 분명 있을 거예요.”

    “설마 알고 있었던 겁니까?”

    “생각하시는 그런 이유가 아니에요. 제 곁에는 친구 연희가 있을 거예요. 언제나 절 응원해 주는 친구죠. 아직 제 가슴속에는 연희가 살아있어요.”

    황연주의 말에 오형민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망령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군요. 그렇죠?”

    “제 주변에 영혼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혹시 연희의 영혼인가요?”

    아주 잠깐 본 것이었고 얼굴 생김새를 살피기에는 뻥 뚫린 눈에 먼저 시선이 갔다.

    “연주 씨가 피아노 연주할 때 뒤에 한 망령이 서 있었습니다. 그 망령은…….”

    “분명히 연희였을 거예요. 전 분명히 알 수 있어요. 연희가 하늘나라에 간 후 제 피아노 실력이 거짓말처럼 늘었어요.”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잘하는 것과 연희가 잘하는 것이 달랐어요. 언젠가부터 저는 잘 못 하고 연희가 잘하던 것이 잘되기 시작했어요. 맞아요. 연희가 절 지켜주고 있었던 거예요.”

    인호가 고개를 갸웃한 후 말한다.

    “그 망령은 눈이 없었습니다.”

    “연희…….”

    말을 하던 황연주가 눈을 부릅뜬다.

    “네?”

    “두 눈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회장님께 들으니 눈의 병 때문에 안구 이식을 받으셨다죠?”

    “네. 맞아요.”

    “아무래도 그 망령은 연주 씨에게 안구를 기증해 준 망령인 것 같습니다.”

    “아-!”

    “혹시 누구에게 기증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황연주가 고개를 흔든다.

    “저도 잘 몰라요. 이식 수술이 끝난 후 기증자의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기증 센터에 간 적 있어요. 하지만 기증자 쪽에서 절대 비밀을 지켜주길 원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에요.”

    “설마 제게 안구를 기증해 준 분이 제 주변에 있는 건가요?”

    “연주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두 사람의 질문에 인호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한다.

    “그 기증자가 맞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넓고 망령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 망령들 중 눈이 없는 망령도 많습니다. 그리고 망령이 연주씨한테 해코지를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연주 씨에게서 망령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해코지를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하지만 그 망령이 최근에 붙은 것이라면 이후에 어떤 짓을 할지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이 주위에 있나?”

    “없습니다. 있었다면 제가 바로 봤겠죠. 어쩌면 세종문화회관에 붙은 지박령일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

    잠시 생각하던 오형민이 인호에게 말한다.

    “자네에게 정식으로 의뢰하지. 그 망령이 연주를 노리는 나쁜 망령인지, 아니면 연주에게 안구를 기증해 준 고마운 망령인지 알아내 주게. 만약 전자라면 자네 선에서 처리해 주고. 그럴 수 있겠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시간이 늦어 예술의 전당은 폐관하였지만, 인호는 별 어려움 없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오형민의 전화 한 통으로 닫혀 있던 예술의 전당 문이 쉽게 열렸다.

    인호는 캄캄한 무대 중앙에 홀로 서 있다.

    황연주가 피아노 연주하던 그 무대다. 인호는 눈이 없는 망령이 서 있던 자리에 서서 피아노를 바라본다.

    “지박령은 아닌 것 같네.”

    이곳에 머무는 지박령이라면 인호의 눈을 피할 수 없다. 황연주를 알거나 우연한 기회에 그녀에게 들러붙은 망령이라는 뜻이다.

    “이 넓은 곳을 혼자 채워야 하는구나. 피아니스트도 아주 외로운 직업이군.”

    인호가 무대를 둘러보며 중얼거린다.

    밖으로 나가려 몸을 돌리려던 인호가 고개를 위로 든다. 조명을 설치하는 철재 빔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거기 있는 것 아니까 나오지?”

    천정에서 푸른 빛에 감싸인 망령이 쑥 튀어나온다. 인호가 찾는 망령이 아닌 남자 망령이다.

    “하하, 원래 이 시간에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있길래 그냥 한 번 본 거야. 하던 일 마저 해.”

    망령이 다시 사라지려 할 때 인호가 그를 부른다.

    “잠시 내려와 봐.”

    망령이 천천히 내려와 인호 앞에 선다. 본능적으로 인호의 말에 거역하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사는 망령인가?”

    “산다기보다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살아 있을 때 뭘 했지?”

    망령이 위를 힐끔 쳐다본다.

    “예술의 전당 천정에 조명을 설치하던 기사야. 실수로 떨어져 죽었어.”

    “언제 죽었지?”

    “12년 정도 되었을걸?”

    “오늘 여기서 공연한 여자에 대해 알고 있어?”

    “황연주? 잘 알지. 이곳에서 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야. 실력도 최고인데 얼굴도 예쁘잖아.”

    망령이 신이나 떠든다.

    “황연주 씨가 이전에도 여기서 공연했어?”

    “거의 매년 하지.”

    “오늘 황연주 씨가 연주할 때 뒤에 서 있던 망령 봤어?”

    “눈 없는 망령?”

    “그래. 그 망령. 혹시 이전에도 황연주 씨가 연주할 때 그 망령이 나타났어?”

    “황연주가 연주회 열 때마다 나타났지.”

    “그래? 그 망령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나?”

    망령이 고개를 흔든다.

    “무서워서 말도 못 걸었어. 으으으. 눈이 뻥 뚫려서 보기만 해도 무섭잖아. 그런데 황연주에게 해코지하지 않는 걸 보면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오늘 이야기 들려줘서 고마워. 하지만 생자들에게 해코지해서 악령이 되면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저 여기서 음악 감상하고 오페라 구경하는 재미로 지내니까.”

    * * *

    인호와 한 여자가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바쁜 일이 없고 위쪽에서 만나보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해서요.”

    이번에도 오형민이 힘을 썼을 것이다.

    마주 앉은 여자는 안구 기증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이다.

    “황연주 씨 아시죠?”

    “당연히 알죠. 우리 센터를 통해 안구 기증받으셨잖아요.”

    “혹시 기증자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여자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황연주 씨에게도 똑같이 대답했지만 절대 알려드릴 수 없어요. 기증자가 그걸 바라지 않았거든요.”

    “황연주 씨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 일이 안구 기증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요?”

    “믿으실지 모르지만 전 죽은 이들의 영혼을 볼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여자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황연주 씨 주변에 안구가 없는 망령이 있어요.”

    여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인호를 바라보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피식 웃는다.

    “그런 말을 해도 절대 기증자를 알려드릴 수 없어요.”

    “제 말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아니, 사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기에 인호는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박을 하지 못할 뿐 자신의 말을 믿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

    인호의 눈에 푸른 기운이 어리자 여자가 놀라 손으로 가리킨다. 인호가 그녀의 뻗은 손을 가볍게 터치한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인호가 여자의 뒤쪽을 가리킨다. 여자가 무의식적으로 뒤로 고개를 돌린다.

    “꺄아악-!”

    여자가 뾰족한 비명을 토해낸다. 자신의 뒤, 카페의 입구 옆자리에 푸른 기운에 휩싸인 존재가 앉아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녀가 본 망령은 고개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고 혀를 턱 밑까지 쭉 빼고 있다.

    “눈 마주치지 마세요. 자신을 봤다는 걸 알게 되면 들러붙으려 할 수도 있거든요.”

    “귀, 귀…….”

    “네. 귀신 맞아요. 이제 제 말 믿으시겠어요?”

    여자가 미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안 보이게 해 주세요.”

    인호가 여자의 정수리를 가볍게 터치한다. 임시로 열린 귀문을 닫은 것이다.

    “휴우-. 귀신이 정말 있는 거였네요. 깜짝 놀랐어요.”

    여자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후 인호에게 말한다.

    “그래도 기증자에 대해서는 말씀해 드릴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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