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27화 (127/190)
  • 제127화

    - 일부 소방서에서 소방관님들이 노후화된 소방장비로 화재진압 활동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방관님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주시는 소중한 분들이잖아요. 세금이 모자라서 노후화된 장비를 사용하시는 거라면 제가 세금을 더 많이 내겠습니다.

    “저거 미친 새끼들 아니야.”

    티비를 보던 조한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저 새끼들 뭐 하는 새끼야?”

    “시크릿보이라고 아주 유명한 아이돌 그룹입니다.”

    “딴따라?”

    “그게…… 딴따라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부하직원인 과장의 말에 조한길이 눈살을 찌푸린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위도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룹입니다. 대통령님께서 공식석상에서 언급하실 정도로 파급력이 센 그룹입니다.”

    “아니. 그렇게 유명한 새끼들이 뭘 안다고 소방장비가 노후 됐니 마니 그런 개소리를 해대는 거야? 아줌마. 티비 채널 돌립시다.”

    술집 주인이 냉큼 채널을 다른 곳으로 바꾼다.

    “이게 문제야. 자기들이 조금 유명하다고 그냥 오지랖이란 오지랖은 다 떨고 다니거든. 지들이 소방 일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느냔 말이야. 안 그래?”

    “하, 하하. 그렇죠.”

    “딴따라면 노래나 잘하면 되지…… 아씨. 술맛 다 떨어졌네. 저 새끼들 방송한 것 때문에 감사 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최근에 감사 받지 않았습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렇지? 아무튼 저런 것들이 문제야.”

    조한길이 짜증이 난다는 듯 욕지거리를 뱉어낸다.

    * * *

    조한길은 몸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 본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 깜깜한 어둠뿐이다.

    ‘이건…… 가위에 눌린 건가?’

    가위에 눌렸을 때 손가락이나 발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어도 깨어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다. 어떻게든 신체 일부를 움직여 보려 하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 …… 님.

    누군가의 음성이 들린 것 같았다. 눈을 돌려 보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

    심지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그때 조금 더 선명한 음성이 들려온다.

    - …… 장님.

    ‘귀신?’

    가위에 눌린 이유가 귀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할 때였다.

    “서장님.”

    울림이 없는 온전한 음성이 들려온다.

    조한길은 자신의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워 있던 몸이 수직으로 세워진다. 하지만 여전히 시야가 닿는 곳은 모두 어둠뿐이다.

    ‘분명히 누가 날 불렀는데.’

    “서장님.”

    어둠 속에서 누군가 조한길을 부른다.

    ‘누구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아주 작은 불빛이 밝힐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좁았다. 조한길이 눈을 가늘게 뜬다.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누구야!”

    마침내 입에서 말이 나온다.

    “서장님. 저 모르시겠어요?”

    “그러니까 니가 누구냐고.”

    조한길은 지금까지 느꼈던 답답함을 담아 외친다.

    “저예요.”

    아주 작았던 불빛이 조금씩 커진다. 주변이 밝아지고 조한길은 상대의 얼굴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너, 너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한 조한길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다.

    “윤성환?”

    “서장님. 왜 그러셨어요?”

    “뭐, 뭘?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소방장비가 우리들한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르세요?”

    윤성환을 밝히는 불이 점점 커진다. 그 불은 조명 따위가 아니었다.

    “으아아악-! 너무 고통스러워요!”

    윤성환을 몸을 태우는 불길이었다.

    윤성환의 얼굴이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촛농처럼 흘러내린다.

    “왜…… 그랬…… 어!”

    윤성환이 손을 뻗는다. 조한길은 불붙은 윤성환의 손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움켜쥘 것 같아 큰소리로 외친다.

    “사, 살려줘. 내가 미안해. 그러니까 살려줘.”

    “왜 그랬냐고!”

    완전히 불길에 휩싸인 윤성환이 조한길을 덮친다.

    * * *

    “으아아악-! 살려줘. 제발 살려줘!”

    조한길이 비명을 내지르자 옆에 누워 있던 그의 아내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여보 왜 그래요?”

    아내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조한길의 몸을 흔든다.

    “미안해. 제발 한 번만 용서해줘.”

    조한길은 눈물까지 줄줄 흘리고 있다.

    “여보. 일어나 봐요.”

    조한길은 아내가 몸을 계속 흔들자 잠에서 깨어난다.

    “제발…… 으아아악-!”

    아내를 본 조한길을 비명을 내지른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인 것을 확인하고는 거칠게 숨을 토해낸다.

    “다, 당신이야?”

    “네. 저예요. 악몽이라도 꾼 거예요?”

    “하아, 하아-. 악몽? 맞아. 악몽이야. 그놈이 꿈에 나왔어.”

    “그놈이요? 누구요? 저도 아는 사람이에요?”

    조한길이 고개를 흔든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가서 차가운 물이나 한잔 가져다줘.”

    아내가 밖으로 나가자 조한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목을 쓰다듬는다. 활활 불이 붙은 윤성환의 손이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뜨거워?”

    조한길이 눈을 부릅뜬다. 목이 뜨겁다.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조한길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린다.

    “으아악-!”

    “여보. 왜 그래요!”

    조한길이 아내가 들고 온 물을 자신의 목에 뿌린다.

    “뜨거워! 뜨겁다고!”

    * * *

    여덟 방향에 촛불이 밝혀져 있고, 그 안에는 팔괘와 음양이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노란 도복을 차려입은 황동호가 앉아 있었다.

    황동호는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우는 듯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인호가 서 있었다.

    “후우-.”

    황동호가 수결을 풀며 거칠게 숨을 토해낸다.

    “고생하셨어요.”

    인호가 차가운 생수를 황동호에게 건넨다.

    물을 마신 황동호가 주변을 살피다가 한쪽을 보고는 살짝 고개 숙인다.

    “고생하셨습니다.”

    황동호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윤성환이 서 있었다.

    윤성환의 몸은 굉장히 흐릿했다. 기운을 너무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제가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죽일 놈이 반성이나 할까요? 이건 복수가 아니에요. 기운 많이 사용하셔서 힘드실 건데. 일단 오늘은 푹 쉬세요. 내일 다시 올게요.”

    윤성환에게 인사한 후 황동호를 부축한다.

    “매번 어려운 부탁해서 미안해요, 형님.”

    “미안하면 부탁을 하질 말던가.”

    황동호를 조수석에 태운 후 곧 차를 출발시킨다. 황동호의 몸이 축 늘어진다. 몸에 무리가 오는 술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현몽의 술.

    다른 이의 꿈에 개입하는 술법으로 황동호가 사용할 수 있는 술법 중 상위에 속하는 술법이었다.

    황동호는 현몽의 술로 윤성환을 조한길의 꿈에 집어넣었다. 인호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조한길은 잠을 자는 내내 악몽에 시달렸을 것이다.

    본래라면 황동호에게 현몽의 술을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호가 망자들에게 개입할 때마다 그 반동으로 고통을 받는 것처럼 황동호 역시 고위 술법을 사용하면 반동이 상당히 크게 왔다.

    윤성환의 일은 정재훈과 상의하여 해결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맡은 특수부에서 처리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자칫 표적 수사 의혹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형민과 이철우에게 도움을 받으려던 중 황동호가 사무실에 방문했다.

    지나던 길에 함께 식사나 하자며 온 것인데 그때 윤성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황동호는 자신이 당한 것처럼 분노했고 인호에게 먼저 환몽의 술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대신 아파주기라도 하려고?”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네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고생한 거 알면 맛난 거 사줘라. 힘쓰고 나면 속 쓰린 법이거든.”

    “뭐 드시고 싶은데요?”

    황동호가 잠시 생각하다 씨익 웃으며 말한다.

    “선지해장국?”

    “하하. 고작 생각한 게 선지해장국이에요? 정말 좋은 것 사드릴 수 있어요. 아시잖아요. 요즘 저 돈 아주 많아요.”

    “돈 많아서 좋겠다. 돈 많으면 선지해장국에 수육 추가. 오케이?”

    “콜!”

    차가 신호에 걸린다. 창밖을 보던 황동호가 인호에게 묻는다.

    “그분 괜찮은 것 맞지?”

    “네. 괜찮아요.”

    황동호는 윤성환에게 나쁜 영향이 갈까 걱정하고 있다. 망령이 타락해 악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지만 현몽하는 정도로 악령이 되지는 않는다. 지속적으로 현몽하게 된다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내일 한 번만 더 현몽하고 끝낼 것이다.

    황동호가 한숨을 내쉰다.

    “세상에 왜 이런지 모르겠다. 그렇게 훌륭한 분들이 잘살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곳은 딱 한 곳밖에 없어요.”

    “그게 어딘데?”

    인호가 차를 출발시키며 말한다.

    “극락이요.”

    * * *

    조한길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AM 2 : 47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지만 조한길은 잠이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잠을 자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다. 이틀 동안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꿈이 아니야.”

    조한길이 목을 쓰다듬는다.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나한테 왜 그래? 나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잖아.”

    눈이 스르르 감긴다.

    “으악-!”

    조한길이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뜬다. 깜빡 잠이 든 것이다. 다행히 악몽은 꾸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신의 목을 쓰다듬는다.

    온몸이 불길에 휘감긴 윤성환이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다.

    “나만 해 먹었냐고, 나만. 다른 놈들도 다 해 먹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다시 눈이 감기려 한다. 조한길이 손으로 눈을 벅벅 비빈다. 각성 효과가 있는 타우린 음료를 세 개나 마셨다. 이틀 전 잠에서 깬 후 지금까지 40시간 가까이 잠을 자지 않고 있다.

    “여보. 정말 안 잘 거예요?”

    자다 깬 것인지 부스스한 얼굴의 아내가 서재 문을 열며 묻는다.

    “안 자. 당신이나 빨리 자.”

    “그러다 정말 쓰러져요.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 나하고 같이 병원 가 봐요.”

    “병원? 무슨 병원? 설마 지금 나더러 정신과 진료라도 받으라는 거야, 뭐야?”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아내가 문을 닫는다.

    “조금만 견디면 괜찮아질 거야. 그럴 거야.”

    조한길이 눈을 벅벅 문지른다.

    * * *

    이틀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조한길은 운전을 할 자신이 없어 택시를 이용해 출근했다. 막 택시에서 내려 소방서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성환아!”

    “으아악-!”

    조한길이 뒤로 넘어지며 비명을 내지른다.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손을 들고 있던 고등학생 두 명이 이상한 사람을 보았다는 듯 조한길을 바라본다.

    고등학생들이 멀어지자 조한길이 땅에 손을 짚고 일어났다. 출근 시간이기에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소방서 안으로 들어간다.

    하이파이브를 하려던 고등학생들이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다.

    “수고했어.”

    인호가 웃으며 학생들에게 문화상품권 두 장을 내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