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26화 (126/190)

126화

“위령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어요. 아-, 전 시크릿보이 리더인 쿤이에요.”

“쿤이요? 그게 이름이에요?”

“당연히 예명이죠. 본명은 윤성환이고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위령이라고요?”

위령慰靈.

말 그대로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뜻이다.

“네. 만약 뮤직비디오에 찍힌 망령이 정말로 순직한 소방관분이시면 위령을 해 주셨으면 해요.”

인호가 묘한 눈빛으로 윤성환을 바라본다. 설마 이런 미담을 통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쿤 형 아버지가 형사셨어요. 범인 잡다가 칼에 맞고 돌아가셨고요.”

인호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것인지 다른 멤버가 대신 대답했다.

“아-!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네요. 그런데 위령은 저보다는 무속인 분들을 찾아가는 게 좋을 텐데요. 제가 잘 아는 분도 있고요.”

“하, 하하. 제가 기독교라서요.”

윤성환이 어색하게 웃는다.

“아, 그럴 수 있어요.”

대부분의 종교는 배타적인 성향으로 자신들이 섬기는 신 이외의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종교인들은 무속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마련이었다.

“해주실 수 있나요?”

“가능은 합니다.”

위령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별거 없었다.

망령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고, 바라는 것을 이뤄 주는 것이 위령이다. 인호가 지금까지 한 일들 역시 포괄적인 의미에서 위령이라 할 수 있다.

“한번 해 보죠.”

“감사합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망령이 찍힌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뮤직비디오는 재촬영하게 될 거예요. 대표님은 그대로 쓰자고 하시는데 멤버들이 전부 반대했어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시크릿보이 멤버들이 돌아가자 이민정이 꽥꽥 소리를 질러댄다.

“대박! 대에- 박! 시크릿보이 멤버 전원 사인 들어간 최신 앨범.”

이민정은 손에 든 앨범이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꼭 끌어안는다.

시크릿보이 멤버들은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이민정에게 팬서비스를 확실히 해주고 갔다. 사진도 여러 장 찍어주었다.

“이거 시크릿가든 회원들한테 판다고 하면 서로 사겠다고 할걸요.”

“아까 그 친구들 팬클럽?”

“네. 열성적인 걸로 유명한 팬덤이거든요.”

“생각해서 해줬는데 그걸 팔고 싶냐?”

“안 팔 거거든요. 그냥 해 본 말이거든요.”

이민정이 앨범을 가방에 잘 보관한 후 인호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순직하셨다는 소방관에 관한 기사예요. 보통 소방관분들이 순직하시게 되면 기사가 크게 나고 뉴스에서도 여러 번 다루는데 이분은 짧은 기사 몇 개 나고 끝났어요.”

“뭔가 있다는 뜻이야?”

“그렇다기보다 급하게 수습했다는 느낌이에요.”

“그러면 그쪽으로 조금 더 알아봐 줘. 난 가족들 만나 보고 올 테니까.”

* * *

가게 안은 온갖 꽃들로 가득하다.

“향기가 좋네요.”

“찾으시는 꽃 있으세요?”

주인의 물음에 인호가 말한다.

“사무실에 꽂아두려는데 제가 꽃에 대해 잘 몰라서요. 사장님께서 골라 주시겠어요?”

“어떤 사무실인데요?”

“그게…… 그냥 사무실입니다. 흰 꽃이 좋을 것 같네요.”

여사장이 하얀색 꽃 위주로 꽃다발을 만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인호가 묻는다.

“윤성환 소방관님 아내분 되시죠?”

꽃다발을 만들던 여사장의 손이 멈칫한다.

“남편을 아세요?”

“솔직히 잘 모릅니다. 저도 부탁을 받고 왔거든요. 이것 좀 보시겠어요.”

인호는 시크릿보이 멤버들이 보내 준 뮤직비디오 영상을 틀어 여사장에게 보여준다.

“여기 보시면 이상한 거 보이시죠?”

“네. 마치 사람 같아 보이네요.”

“그러면 혹시 이곳이 어디인지 아시겠어요?”

동영상을 지켜보던 여사장의 눈이 심하게 떨린다.

“설마…….”

“맞아요. 남편분 순직하신 화재 현장이에요. 이 뮤직비디오를 거기서 촬영했는데 조금 전 보셨듯이 이상한 것이 찍혔다고 하더라고요. 심령사진 아시죠?”

“네. 들어보긴 했어요.”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그곳에서 순직하신 남편분의 망령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만약 그렇다면 영혼을 위로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여사장이 이를 꽉 깨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참는 눈치다.

“남편이 아직도 저곳에 있다는 말은 좋은 곳으로 가지 못했다는 의미겠죠?”

“남편분이 맞다면 그렇죠.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보통 죽은 망자들이 곧바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유가 존재하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한’이라고 부릅니다. 남편분 순직하신 후 토막 기사 몇 개 난 것이 전부더군요. 뉴스에서는 아예 언급도 안 됐고요.”

여사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뭔가 있는 거죠? 아내분은 그게 뭔지 알고 계시고요. 그렇지요?”

여사장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다.

“커피 한잔하실래요?”

꽃집 여사장, 구민서가 커피를 타 인호의 앞에 내려놓는다.

“남편은 내부고발자였어요.”

“내부고발자요?”

어느 조직에서든 내부고발자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소방 장비가 상당히 고가예요.”

“아무래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니 그렇겠지요.”

“남편이 생전에 말하기로는 속해 있던 소방서의 소장하고 몇몇 높은 사람들이 소방 장비를 구입할 돈을 횡령했다고 했어요.”

“요즘도 그런 게 되나요?”

인호의 물음에 구민서가 고개를 흔든다.

“저도 남편이 그렇게 말을 하니 그런가 보다 한 거죠. 남편은 몇 번이나 그들의 비리를 고발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때마다 남편을 말렸죠. 부끄럽게도 말이에요. 남편이 높은 사람들 눈 밖에 나 직장을 잃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누구라도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엄지를 세울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본인이 그 상황이 된다면 불의에 맞서 싸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남편이 고발을 하기 전에 윗사람들이 알게 됐나 봐요. 그때부터 남편은 직장 생활을 많이 힘들어 했어요.”

집단 따돌림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편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한통속일 수도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 *

화재 현장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음을 알려주려는 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곳을 덮친 화마가 모든 것을 파괴하여 온전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곳에 건물 가지고 있을 정도면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닐 텐데 왜 이대로 방치하고 있지?”

사기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사정이 있겠지.”

인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시크릿보이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보았기에 건물 내부는 낯설지 않았다.

1층을 지나 2층으로 향한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선 인호가 위를 올려본다.

“3층에서 죽었다고?”

“그래. 뮤직비디오도 3층에서 촬영한 곳에 망령이 보였어.”

인호가 계단을 천천히 밟아 오른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부터 영적인 기운을 느끼고 있었는데 계단을 오르니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영감과 사기꾼이 주위를 둘러볼 때 인호는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한 망령이 서 있다. 본래는 소방복이었을, 하지만 다 타 버린 옷을 입고 전신에 화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많이 아프셨겠습니다.”

인호가 작게 중얼거린다.

“윤성환 씨.”

망령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눈동자 역시 화마가 삼켜 버렸는지 눈구멍만 휑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셨습니까? 그래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 모습을 보이신 겁니까?”

불길에 얼굴 가죽이 눌어붙어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윤성환 씨.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아내분, 구민서 씨와 사랑하는 은하와 함께했던 때를 떠올려 보세요.”

사라락-

환한 빛이 윤성환을 감싼다. 그의 몸을 덮고 있던 까만 재들이 빛에 소멸된다. 화상으로 가득했던 얼굴이 차츰 본래의 모습을 찾는다.

“우리 집사람을 아십니까?”

“네. 좋은 분이시던데요. 꽃집을 하셔서 그런지 꽃처럼 좋은 향기를 품고 계셨습니다.”

“제가 그 향기에 반했습니다.”

윤성환이 환하게 웃는다.

“여기서 뮤직비디오 촬영한 친구들 아시죠?”

“네.”

“그 친구들이 윤성환 씨의 영혼을 위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고마운 친구들이네요.”

“그 친구들 중 한 명의 아버님이 형사분이신데 범인을 잡다 사고로 순직하셨답니다. 그래서 뮤직비디오에 찍힌 윤성환 씨가 이곳에서 순직하신 소방관이면 영혼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인호가 묻는다.

“어떤 말이 하고 싶으셔서 이승에 남아 계십니까? 아내분, 따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겁니까?”

“아내와 딸에게는 사랑한다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죠.”

가족이 아닌 다른 문제로 떠나지 못한다는 의미다.

“혹시 내부고발에 관련된 이야깁니까?”

“아내에게 들으셨군요.”

“네. 많이 힘들어하셨다죠.”

“네. 그때는 참 힘들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유로 절 나쁜 사람으로 만들더군요. 심지어 자기들의 비리를 내가 저지른 것처럼 소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고가 나기 1년 전에도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후배 소방대원이 화재 현장에서 죽었죠. 산소호흡기 불량 때문이었습니다. 전에도 그것에 문제가 많다고 보고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죠. 후배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산소호흡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윤성환이 당시를 떠올리는 듯 쓰게 웃는다.

“그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으세요?”

“복수…….”

윤성환이 고개를 흔든다.

“이미 제가 죽었는데 복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이 바뀌지 않으면 저나 그 후배 같은 희생자들이 계속 생길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인호가 쓰게 웃는다.

“참 바보 같은 분이시네요.”

복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절 도와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윤성환 씨는 복수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그리고 그런 놈들은 좋게 말로 하면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인호가 윤성환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제가 꼭 바뀌게 만들겠습니다.”

* * *

인호가 인터넷 페이지를 보고 있다.

“자랑스러운 소방인.”

표창장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 남자의 사진 아래로 기사가 적혀 있다.

인호가 보고 있는 것은 소방신문이었다.

환화게 웃는 남자의 이름은 조한길이다.

바로 윤성환이 속해 있던 소방서의 소방서장이다. 환하게 웃는 조한길을 보고 있자니 윤성환과 그의 아내 구민서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정말 자랑스럽게, 아니 유명하게 만들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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