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25화 (125/190)
  • 제125화

    “부르셨습니까?”

    문을 열고 흑기사가 들어온다.

    땡초가 어색하게 웃으며 흑기사의 시선을 외면한다.

    “죄송한데 여기 CCTV 좀 확인하고 싶은데요.”

    흑기사가 말을 하는 인호가 아닌 땡초를 바라본다.

    “뭐 하자는 겁니까?”

    “그러게.”

    인호가 흑기사를 보며 다시 말한다.

    “2주 전 CCTV 좀 확인하고 싶은데요.”

    “저기 죄송한데 어떻게 되시는 분입니까?”

    “정인호라고 합니다.”

    “네. 정인호 씨. 혹시 경찰이세요?”

    “아닌데요.”

    “그러면 뭐 검사님? 뭐 그런 거?”

    “그것도 아닌데요.”

    “하아-.”

    흑기사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땡초에게 말한다.

    “형님. 이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마지막에 안 좋게 끝나도 기본적인 매너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오셔서 이러시면 저도 좋게 말 못 하지요.”

    “그건 나도 미안하다.”

    “그리고 그쪽 분. 여기가 동네 슈퍼마켓도 아니고 뭐 주세요 하면 드리고 그러는 곳 아니잖아요. 알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인호가 피식 웃는다.

    “알죠. 그런데 꼭 필요해서요.”

    “정인호 씨라고 했죠. 여기 오시는 분들이 자기 속사정 공개되면 굉장히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곳이 있는 이유가 그런 분들 편하게 쉬고 가시라는 거거든요.”

    “이해합니다. 그런데 정말 꼭 봐야겠는데요.”

    흑기사가 뒤에 있는 웨이터에게 말한다.

    “가서 CCTV 부셔.”

    “네.”

    웨이터가 몸을 돌리려 할 때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친구.”

    밖으로 나가려던 웨이터가 몸을 돌린다.

    “가라고. 개새끼야.”

    흑기사가 싸늘하게 말하자 인호가 그에게 다가간다.

    “정말 미안해요.”

    흑기사가 인호를 향해 주먹을 뻗는다. 인호도 주먹을 쳐 낸다.

    빡-

    둘의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큭.”

    흑기사가 짧은 신음을 토해낸다.

    “정말 필요해서 그래요.”

    “니가 지금 하는 행동이 땡초 형님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지?”

    “술 한잔하실래요?”

    인호가 다시 자리에 앉자 땡초가 새 잔에 술을 채운다.

    “사람이 죽었어요.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었어요. 한 아이의 아빠였고, 착한 여자의 남편이었죠. 아내와 딸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남자가 죽었어요. 아내는 물었어요. 왜 우리 남편이 죽었냐고. 그런데 정작 그 남자를 죽인 놈은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는 말만 하네요.”

    “…….”

    “대충 알아들으셨을 거라고 믿어요. 여기 오시는 분들…… 비밀 유지 중요하죠. 그래도 누군갈 죽이고 뻔뻔하게 술 처먹으러 온 놈은 혼내줘야죠.”

    “그게 누군데.”

    흑기사가 으르렁거리듯 말한다.

    “최명현. 신성 종합 병원 소속 의사요.”

    * * *

    “술은 언제 가져오는 거야?”

    최명현의 친구가 빈 잔을 흔들며 짜증을 낸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다.

    “술을 프랑스까지 가서 가져왔냐?”

    당장이라도 빈 잔을 던지려는 듯 위협한다. 그때 실내조명이 어두워진다.

    “어쭈. 뭐 하는 건데? 그러면 내가 못 맞출 것 같아?”

    쨍그랑

    잔이 벽에 부딪혀 깨진다.

    “형이-.”

    들어 온 남자가 말한다.

    “사람을 막 이유 없이 때리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야.”

    구두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법은 사람을 못 때리게 되어 있더라고.”

    “뭐야 씨발!”

    최명현은 누군가 자신의 멱살을 틀어쥐자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러니까 일단 한 대 맞자.”

    빡-!

    * * *

    “회장님 죄송합니다.”

    오형민은 식사를 같이하자며 연락한 인호가 자신을 보기 무섭게 고개를 숙이자 의아한 듯 묻는다.

    “왜지?”

    “제가 회장님께 실례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오형민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일단 말해봐. 들어봐야 실례인지 실수인지 알 수 있지 않겠나.”

    “신성 종합 병원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인호가 최명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상과는 달리 오형민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굳이 내게 찾아와 이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그러게요. 잘못하면 벌 받는 게 당연한 건데 회장님과 엮여 있다고 하니 여러 사람이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신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서?”

    “네. 그만큼 신성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무겁다는 뜻이죠.”

    오형민이 더덕구이를 집어 입에 넣는다.

    “밥은 먹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인호가 웃으며 밥을 한 숟가락 가득 떠 입에 넣는다.

    “그렇지. 밥은 그렇게 먹어야지. 예전에는 그랬어. 흔히 신성 장학생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통해 하지 말아야 할 짓 했어. 그런데 적어도 선이라는 게 있었다네. 그게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지. 그런데 지금 자네가 해준 이야기는 그 선을 한참이나 넘었어.”

    물로 입을 행군 오형민이 말한다.

    “법대로 하게.”

    * * *

    “어서 오세요.”

    한유란은 손님이 오자 행주로 테이블을 닦으며 인사한다.

    “순두부찌개 하나 주세요.”

    “금방 드릴…….”

    손님을 본 한유란이 말을 잇지 못한다.

    “얼큰하게 해 주세요.”

    인호가 웃으며 말하자 한유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주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찌개를 가져온 한유란이 인호 맞은편에 앉는다.

    “그때는 죄송했어요. 그냥 막막해서 들어간 거예요.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나 봐요.”

    “그래도 돼요. 혼자 가슴에 쌓아두면 병 되거든요. 우와, 정말 맛있네요. 손님 많겠어요.”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순두부찌개는 정말 맛있었다.

    “자리가 안 좋아서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단골은 제법 되는 편이에요. 그런데 왜 오신 거예요?”

    인호가 휴대폰을 한유란 앞에 내려놓는다.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게…….”

    경찰이 신성 종합 병원에서 최명현을 구속하는 모습이다.

    “술 많이 마셨더라고요. 그 의사.”

    한유란이 이를 꽉 깨문다. 입 주변이 파르르 떨린다.

    “자백도 했어요. 술에 취해서 출혈을 잡지 못했데요. 수술실에 들었던 레지던트, 간호사들 입막음도 했더라고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한유란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위로를 해드려야 하는데 어떤 말을 해도 가슴 속 멍울이 지워지지 않으실 것 같아 말을 못 하겠네요.”

    “아니에요.”

    한유란이 울먹이며 말한다.

    “충분히 위로가 됐어요.”

    “남편분이 돌아가셨는데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신성 그룹에서 합의금이 지급될 거예요. 회장님께서 직접 지시를 내렸으니 적은 금액은 아닐 거예요.”

    밥에 순두부를 슥슥 비벼 한입 가득 넣는다.

    “정말 맛있네요. 자주 와야겠어요.”

    한유란이 울며 고개를 끄덕인다.

    “자주 오세요. 정말 자주 오세요. 해드릴 게 이런 것밖에 없네요.”

    * * *

    “나쁜 새끼.”

    이민정이 뉴스를 보며 욕을 내뱉는다. 화면에는 경찰에 끌려가는 최명현의 모습이 보인다.

    “소장님.”

    “왜?”

    “수고하셨어요.”

    “우리 일이 아니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그거야…….”

    사무실 전화가 큰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이민정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 거기가 극락 흥신소 맞나요?

    전화를 받는 이민정이 ‘정말요?’라고 외친다. 인호가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이민정은 흥분한 음성으로 ‘오실 때까지 기다릴게요’라며 전화를 끊는다.

    “뭐야? 경품 추첨이라도 된 거야?”

    “씨보! 씨보가 온대요.”

    “씨? 뭐라고?”

    “시크릿보이요.”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정말 모르세요?”

    이민정이 답답하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두 번이나 한 월드 스타.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 시크릿보이. 정말 모르세요?”

    “트롯트 가수도 잘 모르는데 아이돌을 어떻게 알아? 아-! 아는 가수 한 명 있네.”

    “설마 그 한 명이 유니는 아니겠죠?”

    “알면서 뭘 물어. 그래서 그 씨보인지 씨봉인지는 왜 온다는데?”

    “씨봉?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6백만 씨보 팬들한테 테러당하세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크크, 유명해지면 좋지.”

    “미쳤나 봐. 아무튼 그쪽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그게 좀 이상하대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았데?”

    “유니가 알려줬다던데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뮤직비디오에 망령이라도 찍혔나?”

    사기꾼이 인호의 책상에 있는 도자기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대충 그렇지 않겠냐? 그게 아니면 월드 스타님들이 우리 흥신소에 올 일이 뭐가 있겠어?”

    * * *

    “우선 사진 한 장 찍죠.”

    “네?”

    시크릿보이 멤버들이 의아하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원래 우리 극락 흥신소가 고객이 오면 함께 사진 찍는 전통이 있습니다.”

    “언제부…….”

    인호가 웃으며 이민정의 입을 막는다.

    “항상 그랬잖아. 그치, 민정아?”

    “아-, 그랬죠.”

    “매니저님. 사진 한 번 찍어 주시죠.”

    인호가 휴대폰을 건네자 시크릿보이의 매니저가 사진을 찍어 준다. 사진을 확인한 인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일 이야기를 해 볼까요? 뮤직비디오 때문에 오셨다고요?”

    “네. 이상한 것이 찍혀서요.”

    “당연히 망령이겠죠?”

    “귀신인데요.”

    시크릿보이의 멤버 중 한 명이 말한다.

    “네, 그렇게 부르기도 하죠. 하지만 전 망령이라고 부릅니다. 뮤직비디오 가져오셨죠?”

    매니저가 노트북을 올려놓는다.

    “이번 앨범 컨셉 때문에 화제 사고가 났던 현장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게 찍혔지 뭡니까.”

    매니저가 노트북을 조작해 인호에게 보여준다. 화재로 새까맣게 탄 건물 안에서 춤을 추는 시크릿보이.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아니 보여서는 안 되는 한 존재.

    “망령 맞네요.”

    인호의 말에 매니저가 환하게 웃는다. 이게 웃을 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매니저가 말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녹음실 귀신, 그리고 뮤직비디오 귀신. 그런 일 있으면 음반 대박 난다는 게 이 바닥 정설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런 일이라면 그냥 진행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망령이 사진이나 영상에 찍히는 일은 흔하지는 않지만 아주 없는 일도 아니다. 흔히 심령사진이라 부르는 사진들 중 대부분이 조작된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상당수다.

    심령 스폿이라 부르는 귀신터에서 사진을 찍게 되면 높은 확률로 망령이 사진에 찍힌다.

    시크릿보이 멤버 중 한 명이 노트북을 조작한 후 인호에게 묻는다.

    “그런데 이 귀신, 아니 망령이 소방관 같지 않으세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제가 검색해 봤더니 여기 불났을 때 소방관 한 분이 순직하셨데요. 여기 찍힌 망령이 정말 순직한 소방관이시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연예인은 그 무엇보다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지만, 혹시 누군가가 망령이 찍힌 것을 알아본다면?

    그로 인해 월드 스타인 시크릿보이가 순직한 소방관 망령을 뮤직비디오 흥행에 이용했다는 소문이 나면 대중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인호가 손등으로 턱을 괴며 묻는다.

    “그래서 제가 뭘 해 주길 바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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