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네놈이 우리 아버지를 만난 게 내가 네 살 때라고 했지?”
“그게 중요해?”
손말명이 새빨간 혀로 입술을 훑는다.
“이게 뭘 거 같아?”
인호가 소매를 걷은 팔을 손말명에게 보여준다.
“내가 모를 것 같아? 상제의 눈 밖에 난 너희 집안의 낙인이지. 단명할 수밖에 없는 증거이기도 하고.”
“잘 아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갑자기 이상한 기술을 만드시길래 의아해했지. 새로운 기술이 없어도 아버지는 강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새로운 만든 이유가 너 때문이었던 것 같아.”
인호의 양손 검지가 반대편 팔목을, 정확히 검은 문약을 파고든다. 인호의 검지가 검게 물든다. 왼손 검지로 이마에 수평으로, 다음은 코를 가로지르는 수직의 선을 그린다.
오른손 검지는 양 눈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입술 옆으로 길게 선을 그린다.
“우리 집안의 족쇄이자 낙인. 망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 아버지는 그것들을 이용해 새로운 기술을 만드셨지. 이름하여-.”
인호가 씨익 웃는다.
그 모습은 마치 원시 부족의 전사들이 전투를 나가기 전에 얼굴에 그리는 문양과 비슷했다.
“망인亡印. 죽은 이들의 도장이라는 기술이야. 죽은 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지.”
손말명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그 순간 인호의 몸이 회전한다.
쩌정-
공기가 찢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붉은빛이 뒤로 날아간다. 손말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손말명의 눈이 더욱 붉게 변해가더니 눈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입이 좌우로 찢어지고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난다.
“네가 죽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
길게 자란 손톱을 혀로 핥는다.
인호가 움직인다. 손말명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하지만 인호는 손말명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인호의 눈 주변에 검푸른 기운이 흐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뭔지 아냐?”
쾅-
손말명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간다. 인호가 손말명을 따라잡아 목을 움켜쥔다.
“절대 지지 마라. 네가 지면 네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
손말명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손말명이 입을 쩍 벌려 인호의 목을 물어뜯으려 한다. 인호가 그런 손말명의 얼굴을 잡아채 지면에 내리꽂는다.
잠시 후.
“키키키키.”
손말명이 미친 듯 웃기 시작한다.
공원에 있던 운동기구들이 저절로 움직이고 바닥의 쓰레기들이 떠올라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네 아버지만 그랬을 것 같아? 나는 어땠을 것 같아? 네 아버지에게 가장 소중한 널 가장 끔찍하게 죽이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어.”
귀까지 찢어진 입이 기괴하게 뒤틀린다. 손말명의 눈이 붉게 반짝인다.
“윽.”
무언가 인호의 사지를 휘어 감는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검고 긴 무언가가 둘 사이에 깔려있다. 손말명의 머리카락이었다.
인호는 사지를 움직이려 하지만 손말명의 머리카락이 칭칭 감겨오는 바람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손말명이 환하게 웃으며 천천히 걸어온다.
인호 앞에 선 손말명이 검지를 세운다.
길게 자란 손톱은 10센티미터가 넘어 보인다. 손말명은 그 손톱을 아주 천천히 인호의 가슴에 꽂아 넣는다.
인호의 얼굴이 고통으로 뒤틀린다.
손톱이 절반쯤 가슴에 파고들자 손말명이 다시 빼낸다. 다음은 어깨에 손톱을 꽂는다. 손말명은 양쪽 어깨와 허벅지까지 차례로 손톱을 꽂는다.
“아파?”
인호가 이를 꽉 깨문다.
“내가 더 아프게 해줄게. 부모 잘못 만난 죄라고 생각해.”
손말명이 다시 인호의 가슴에 손톱을 꽂으려 할 때였다.
“하아-. 힘드네.”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손말명이 웃으며 혀를 길게 뻗는다. 뱀의 혀처럼 가는 혀가 인호의 얼굴 앞에서 살랑거린다.
“괜찮아. 금방 편해질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손말명이 ‘키키’거리며 크게 웃는다.
“이제 와서 그런다고 내가 용서해 줄 것 같아?”
“너한테 한 말 아니거든. 객기 부려서 죄송합니다. 형님.”
그 순간 거대한 화염이 손말명의 등에 작렬한다.
“꺄아아악-!”
손말명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인호의 사지를 속박하고 있던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끊어진다.
“그러니까 형 말을 들으라고.”
양손에 부적을 한 움큼씩 든 황동호가 공원 안으로 들어온다.
“내가 이렇게 강할 줄 알았나.”
황동호가 허공에 부적을 뿌리며 수결을 짚는다. 부적이 빠른 속도로 둥글게 회전한다. 중지 끝을 깨물어 피를 내고는 양손에 피를 찍어 다시 수결을 짚는다.
피를 뿜어내니 곧게 뻗어나간 피가 회전하는 부적들과 함께 팔괘를 만들어낸다.
“삿된 것아 혼돈 속에 소멸되거라.”
팔괘가 불타는 수레바퀴가 되어 손말명을 덮친다. 손말명의 머리카락이 막아선다. 그로 인해 운신이 자유로워진 인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주먹을 뻗는다.
쩌정- 쩡-
대기가 찢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손말명의 몸을 팔괘가 뒤덮는다. 황동호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다는 듯 다시 부적을 꺼내 뿌린다.
황동호가 주술을 사용하는 사이 인호는 손말명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행동을 제압한다. 손말명이 머리카락으로 인호를 떼어내려 하지만 요지부동일 뿐이다.
황동호의 주술이 완성된다.
빛으로 이뤄진 네모난 틀이 손말명을 감싼다.
“광옥光獄의 술.”
도문에서 사악한 존재를 가두고 소멸시킬 때 사용하는 최고 주술인 광옥의 술이 황동호의 손에서 펼쳐진다. 빛의 감옥에 갇힌 손말명이 날카로운 비명을 연신 토해낸다.
“형님. 저런 것한테는 지옥도 아깝겠습니다.”
“형을 계속 부려 먹어야겠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부적으로 빛의 검을 만든다. 황동호가 빛의 검을 인호에게 던진다.
“이거 저도 쓸 수 있는 겁니까?”
검을 받아들며 묻자 황동호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젖는다.
“아버님의 유산이라며? 니가 해.”
인호가 피식 웃는다.
“복수하겠다고 오랫동안 참았을 텐데 끝이 조금 허무하다. 그렇지?”
빛의 감옥에 갇힌 손말명이 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인호를 쏘아본다.
“그렇게 보니까 조금 무섭네. 그럼 이만 여기서 악연을 끝내자고.”
인호가 빛의 검으로 손말명의 목을 쳐낸다.
빛의 검은 쓸모를 다 했다는 듯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 * *
“아, 정말 아프다고.”
병원 침대에 누운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친다. 물티슈를 든 이민정이 눈을 부라린다.
“나도 소장님 아픈 것 잘 알거든요. 그래도 세수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인호는 가슴과 양 어깨, 그리고 허벅지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다.
“민정아. 나가서 맛있는 것 좀 사다 주면 안 되냐? 병원 밥 너무 맛없어.”
“의사 선생님이 말씀 못 들었어요? 상처 덧날 수도 있으니 음식 가리라고 하셨잖아요.”
“야. 원래 병원 의사들은 다 그래. 담배 피우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 짜게 먹지 마라. 알면서 뭘 그래.”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다쳐서 그래요?”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쳤냐? 이게 다 천사 전화인지 뭔지 때문에 고통받는 고등학생들을 위해서 그런 거 아니야.”
이민정이 도끼눈을 하고 인호를 쏘아본다.
“아니.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왜 몸까지 상해가면서 이러냐고요.”
“정 검사님한테 돈 받잖아.”
“소장님 돈 많잖아요. 이제 몸 좀 사리면서 하시면 안 돼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민정아. 우리 일은 몸 사리기 시작하는 순간 끝이야. 한 번 그러면 다음에는 더 사리게 되거든.”
“아, 몰라요. 그냥 병원에서 주는 밥 드세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면회도 안 올 거예요.”
이민정이 병실 밖으로 나간다. 병실 문이 열리길래 이민정이 다시 돌아왔나 싶어 보니 정재훈과 유 형사가 왔다.
“소장님. 몸은 어떠세요?”
“인호 씨 괜찮아요?”
“뭐 대단하게 다쳤다고 병문안까지 오고 그러세요.”
정재훈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괜히 제가 도와달라 그래서 인호 씨가 다치셨네요.”
“그런 거 아니에요. 알고 봤더니 선대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원한이더라고요.”
정재훈이 무슨 말이냐는 듯 바라보자 인호가 손말명과의 원한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런 일이 다 있네요. 그래도 고생한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 거잖아요. 앞으로 위험한 일 있으면 무모하게 혼자서 달려들고 그러지 마세요. 저희들도 있잖아요.”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도와달라고 하겠습니다.”
* * *
입원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거동이 조금 편해졌다.
“내가 살다 살다 인호 널 휠체어에 태우고 밀어주는 날이 다 있다.”
땡초가 인호의 휠체어를 밀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다. 간호사 몰래 커피라도 마실 생각에 정원으로 갈 생각이다.
정문을 나가는데 땡초가 말한다.
“여태 저러고 있네.”
인호가 정문 맞은편 화단에 걸터앉은 중년 여자를 바라본다. 그녀는 뭔가를 적은 피켓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여기 병원에서 수술받다 남편이 죽었나 봐.”
“의료 사고가 났나 보네요.”
인호가 입원해 있는 신성 종합 병원은 대한민국 땅에서 손꼽히는 병원이다.
“신성 병원에서도 의료 사고가 나네요. 그런데 1인 시위를 하는 걸 보니 뭔가 석연치 않은 게 있나 봐요.”
“자세히는 몰라. 어제인가 보니까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애도 있는 것 같더만.”
인호가 안타깝다는 듯 여자를 바라본다.
땡초가 휠체어를 밀어 정원으로 향한다.
“아, 커피 맛있다. 민정이 그것 때문에 커피도 못 마시고 아주 죽겠어요.”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잖아. 가만 보면 민정이가 참 진국이야. 얘가 하는 짓이 이뻐. 요즘 애들 같지 않잖아.”
“그렇긴 하죠.”
“퇴원 언제야?”
“담당 의사 말로는 적어도 한 달은 더 있어야 한다는데 다음 주에나 퇴원하려고요.”
“칼침을 다섯 곳이나 맞았는데 고작 이주일 입원하고 퇴원하겠다는 거야?”
“누가 칼침을 맞아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하겠네.”
땡초가 피식 웃는다.
“붕대 갈 때 보니까 딱 칼침 맞은 것 같더만.”
땡초가 다 마신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나도 너 빨리 퇴원했으면 좋겠다. 같이 술 마셔 줄 사람이 없어요.”
* * *
입원하고 3주 만에 퇴원해 사무실에 돌아왔다.
“역시 여기가 좋아. 큭.”
아직도 상처 부위가 뻐근하다.
“조금 더 입원하시지 그러셨어요.”
“됐어. 더 있다간 몸살 나서 안 돼. 민정아. 오랜만에 커피 한 잔 타 줘라. 병원에 있을 때 병원 밥 맛없는 건 참겠는데 니가 타주는 커피 못 마시는 건 정말 못 참겠더라.”
이민정이 타 주는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기댈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중년 여자가 들어온다.
“저기-.”
“네, 어떻게 오셨어요?”
이민정의 물음에 여자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여기 흥신소죠? 뭐 조사해 주고 그러는 곳이요.”
이민정이 난처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저-, 흥신소가 맞긴 한데요. 손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흥신소는 아니에요.”
말을 하다 보니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여자였다.
“혹시 어디서 저 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처음 뵙는데요. 여기 들어 온 것도 근처 지나가다가 간판이 보여서 들어 온 거예요.”
“아-! 신성 병원. 맞으시죠?”
“네?”
“병원에서 1인 시위하시던 분 아니세요? 제가 신성 병원에서 오늘 퇴원했거든요.”
“아, 그러세요. 네, 저 맞아요.”
“무슨 일 때문에 오셨어요?”
여자가 어떤 말을 할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남편이 수술받다 죽었어요. 그런데 의사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하고.”
여자가 인호를 향해 두 손을 모으며 말한다.
“제발 도와주세요. 아무도 제 얘기를 들어주지 않아요. 돈이 없어서 변호사 선임도 하지 못해요.”
“네, 일단 무슨 일인지 알아야 도와 드릴 수 있겠죠?”
“남편이 죽었다고 말하던 의사 입에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났어요.”
그 말을 들은 인호와 이민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