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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19화 (119/190)
  • 제119화

    - 유정이의 경우는 AMIL(급성 골수성 백혈병)입니다.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6개월 안에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병이죠. 유정이는 발병한 후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잘 버텨주고 있긴 하지만 언제 악화돼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긴 한데. 그것마저도 완치 확률이 높지 않습니다. 이식할 조혈모세포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소유정의 담당 의사에게 들은 말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인호는 지금 소아암 병동 탕비실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정말인가요?”

    “네, 어머님. 정말 잘 됐어요. 회장님께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 중 몇 분을 선발해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 주시기로 하셨어요. 유정이가 거기 뽑혔고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한테 왜 감사하세요. 유정 어머님의 사랑이 하늘에 닿은 거죠.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이제 유정이에게 맞는 조혈모세포만 찾으면 돼요.”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정미선은 서럽게도 울었다. 혹시나 자신의 울음소리가 병실 안으로 새어 들어갈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열했다.

    - 그런데 갑자기 회장님께서 왜 그런 지원 프로그램을 만드셨지?

    - 이유야 뭐가 됐던 유정이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잘 됐다.

    소유정은 간호사들에게도 사랑받는 아이인 것 같았다.

    인호가 탕비실을 벗어나 복도를 따라 걸을 때였다.

    맞은편 복도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로 이제 열 살을 겨우 넘겼을 것 같은 남자아이가 따라 걷고 있었다.

    “아-.”

    인생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죽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저승사자가 인호를 발견하고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사자님.”

    “바쁘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저승사자가 뒤에 서 있는 아이를 힐끔 보고는 말한다.

    “뭔데?”

    “혹시 소유정이라는 이름…… 알고 계십니까?”

    저승사자가 물끄러미 인호를 보다가 그를 지나치며 말한다.

    “어떤 의미로 묻는 건지 알겠지만 대답해 줄 수 없다.”

    인호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한다.

    “최선을 다해 보렵니다.”

    그 말을 하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저승사자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미련한 놈. 너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라.”

    * * *

    인호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오형민 회장에게 부탁해 신성 종합 병원에 근무하는 병원장을 시작으로 의사들을 소개받았다. 그들의 인맥을 동원해 소유정에게 맞는 조혈모세포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서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권 국가들에까지 수배의 영역을 넓혀갔다.

    “안녕하세요. 유정이도 안녕.”

    “유정아. 안녕!”

    유설아가 소유정의 옆으로 다가가 인사한다. 몇 번 만나더니 이제 완전히 베프가 되어 버렸다. 두 아이는 곧 꽃을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인호는 정미선과 벤치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좋은 소식 들리던데요.”

    “네. 고마우신 분이 도움을 주셨어요.”

    정미선은 그 고마우신 분이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인호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인호가 오형민 회장에게 부탁한 것이다. 원래는 모든 치료비를 대신 내주려 했지만, 오형민 회장이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 버렸다.

    “이제 일은 그만 다니시는 거예요?”

    “유정이 하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고요.”

    “설아하고 친하게 지내서 다행이에요.”

    “네. 2년 동안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처음에는 친구도 사귀고 했는데 그 아이들이…….”

    정미선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늘의 별이 되었나 보네요.”

    “네.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는 걸 보고 다른 아이들하고 어울리지 않기 시작했어요. 설아 같은 경우는 조금 특이한 경우에요. 유정이가 마음을 열 줄 몰랐어요.”

    “아이들의 진심이 통한 거죠.”

    인호가 유설아의 손에 들린 꽃 두 송이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삼촌. 저절로 떨어진 꽃이에요. 꺾은 거 아니에요.”

    “아, 그렇구나. 이리 줘 봐.”

    인호가 꽃을 받아 꽃반지를 만들어 유설아와 소유정의 손가락에 끼워준다.

    “우와-, 엄청 예뻐. 그치, 유정아.”

    “응. 너무 예쁘다.”

    두 아이가 손가락의 꽃반지가 신기한지 이리저리 돌려 보며 웃음을 지었다.

    “우리 유정이 웃는 거 오랜만에 보네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유정이가 웃는 걸 보니 저도 좋네요.”

    인호는 꽃반지를 낀 손을 마주 잡은 두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오늘도 병원 가세요?”

    “아니. 오늘은 재성 씨가 병원에 있을 거야.”

    “그 아이들 정말 예뻐하시는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유민성, 유설아 남매의 인생이 바뀐 것이 인호 때문이지 않은가.

    “설아가 병원에서 친구 사귀었다며?”

    영감이 묻는다.

    “그건 또 어떻게 아세요?”

    “민성이가 지 아빠한테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 많이 아픈 아이 같던데. 또 오지랖 떨고 있는 거냐?”

    “왜 말을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오지랖 좀 떨면 어때요?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제발 남 생각하는 거 반만큼만이라도 널 생각해라.”

    인호가 피식 웃는다.

    영감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감은 아버지 때부터 사무실을 지킨 망령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모두 알고 있어서 그런지 걱정이 많았다.

    “사기꾼하고 뚱보는요?”

    “뚱보가 이 근처에 생긴 맛집 투어 간다니까 사기꾼이 따라갔어.”

    “맛집 투어요? 지금까지 망령으로 어떻게 살았나 몰라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영감님은 왜 안 가셨어요?”

    “그냥. 영 입맛도 없고. 어디 나가는 게 귀찮기도 하고.”

    “소장님.”

    이민정이 인호를 부른다.

    “왜?”

    “지금 출근하신 거죠?”

    “그렇지?”

    “제발 좀 씻고 오시면 안 될까요?”

    “아-!”

    집이 직장과 가까우니 참 좋은데 그 경계가 희미해져서 문제였다. 계단 하나 오르면 집이고 그 아래 사무실이니 씻지 않은 채로 사무실에 내려올 때가 가끔 있었다.

    “미안. 금방 샤워하고 올게.”

    위층으로 올라가 욕실로 들어간다.

    “아니. 그래도 내가 월급 주는 사람인데 너무하는 것 아니야?”

    인호가 피식 웃는다.

    물을 틀고 샤워를 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왼쪽 가슴, 이제 제법 넓은 부위에 검은 문양이 사라졌다.

    문득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검은 문양이 얼굴의 절반을 뒤덮은 그 모습이.

    인호가 수증기로 뿌옇게 변한 거울을 손으로 슥슥 문질러 닦는다.

    “아부지.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욕심이 조금씩 생기네요. 아부지 그렇게 가시는 거 보고 난 절대 다른 욕심 안 부리기로 맹세했거든요.”

    거울 속 인호가 씨익 웃는다.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 * *

    “아아아아악-!”

    평소 힘이 없어 속삭이듯 말하는 소유정이 내지르는 비명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정미선은 병실 밖 벽에 기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호가 그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골수 검사가 엄청 고통스러워요. 어른들도 참기 힘들어해요.”

    간호사가 소유정이 왜 비명을 내지르는지 설명해 준다.

    인호가 몸을 돌린다. 여기서 계속 소유정의 비명을 듣고 있으면 마음만 더 아플 것 같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삼촌. 어디 갔다 왔어요?”

    “잠깐 밖에서 전화 받고 왔어.”

    “우리 산책 가요.”

    “오늘은 유정이 치료받아야 해서 산책 못 나올 텐데.”

    - 골수 검사받으면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끙끙 앓아요.

    “히잉. 유정이 보고 싶은데.”

    “유정이 기분 좋아지면 그때 보자. 대신 오늘은 삼촌하고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

    “맛있는 거 뭐요?”

    “으음-,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갈까?”

    “정말요?”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호사들에게 허락을 구하고는 곧 유설아의 외출 준비를 한다. 병원 바로 옆에 햄버거 가게가 있기에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병원 문을 나서려는데 유민성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

    오빠를 본 유설아가 쪼르르 달려간다. 유민성이 유설아를 안아주고는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 둘은 남매간에 사이가 너무 좋았다.

    “민성이가 먹을 복이 있네. 가자, 삼촌이 햄버거 쏜다.”

    * * *

    인호는 본의 아니게 유설아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소유정은 골수 검사를 한 이후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무균실로 옮긴 상태였다.

    답답한 마음에 정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였다.

    “인호 씨. 여기 계셨군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소유정의 담당의가 다가온다.

    “혹시 원장님께 연락받으셨어요?”

    “네? 무슨 연락이요?”

    “영국에서 유정이에게 이식이 가능한 조혈모세포를 찾았다고 합니다.”

    “정말요?”

    인호가 벌떡 일어선다.

    “네. 저도 방금 연락받았어요. 혹시 모르니 원장님께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호가 병원 안으로 달려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장실로 올라갔다.

    한달음에 원장실 앞까지 뛰어온 인호는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죄송합니다.”

    병원장은 인호를 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왜 왔는지 아니까요. 소식 들었나 봐요.”

    “네. 찾았다고요?”

    “네. 영국에서 찾았어요. 회장님께서 힘을 많이 써 주셨어요. 국내의 이식 센터였다면 순번이 밀려서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인호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한 시간 전쯤 비행기 떴다고 하니 내일 아침에나 인천 공항에 도착하겠네요. 점심 즈음 병원에 올 거고요.”

    “바로 수술이 가능할까요?”

    원장이 웃으며 말한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에요. 바로 시술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감사를 하려거든 회장님께 하세요.”

    * * *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소유정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한다.

    하지만 병실 앞에 서 있는 존재를 본 인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여기 왜 계신 겁니까?”

    인호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한다.

    “바보 같은 질문 하지 마라.”

    저승사자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한다. 저승사자의 시선은 유리 너머의 무균실 안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인호가 달려와 저승사자를 밀쳐낸다. 인호의 기운과 저승사자의 기운이 부딪쳐 주위의 대기가 파르르 떨린다. 저승사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는 것이냐?”

    “네, 잘 압니다. 제대로 꽃도 피워보지 못한 불쌍한 아이 지키고 있는 겁니다.”

    “정인호. 모든 사람에게는 정해진…….”

    “잘 안다고요! 정해진 수명이 있는 것 잘 압니다. 그래도-.”

    인호가 병실 안쪽을 바라본다. 눈을 감은 채 거칠게 숨을 토해내고 있는 소유정이 보인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멍청한 소리. 얼마 전에 네가 봤던 그 아이는 과연 죽고 싶었을까? 그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지 않았을까? 그저 너와 인연이 닿았다 하여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사자님도 실수하시잖아요. 얼마 전에도 실수하셨잖아요. 그리니까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더 실수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저승사자가 한 걸음 다가선다.

    “절대 못 들어갑니다.”

    “인호야. 그러지 마라.”

    “아니요. 그럴 겁니다. 제가 말했잖아요. 최선을 다할 거라고. 그러니까-.”

    인호가 두 팔을 좌우로 벌린다.

    “절대 못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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