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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18화 (118/190)
  • 제118화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유설아가 발을 잘못 디뎠는지 균형을 잃는다.

    “악-!”

    그러다 넘어지는 바람에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신성 종합 병원.

    “으아아앙! 아파-!”

    팔에 깁스를 한 유설아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빠가 계단에서 뛰지 말라고 했지. 아빠 말 안 들으니까 이렇게 다치잖아.”

    아픈데 아버지 유재성이 혼을 내니 더 서러운지 유설아가 더 크게 운다. 동생이 안쓰러운지 유민성이 유설아를 살살 달래준다.

    “깁스했으니까 이제 안 아플 거야.”

    “정말?”

    유설아가 코를 훌쩍인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인호가 피식 웃는다. 동생을 챙기는 유민성이 대견해 보인다. 유설아는 간호사가 건네는 사탕을 보고 울음을 그쳤다.

    “안녕하세요. 정인호 씨 되시죠?”

    “네.”

    “소아 병동에 입원실 마련되어 있습니다. 1인실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하하, 병실이 모자란다면 모를까 어차피 남는 병실입니다.”

    이래서 인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치가 끝나자 유설아와 함께 소아 병동으로 이동한다. 유설아는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낯선지 불안한 눈으로 병실을 살폈다.

    “설아. 당분간 학교도 못 가겠네.”

    그 말에 유설아의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친구들하고 놀기로 했는데.”

    “다 낫고 놀면 되지. 설아 다 나으면 삼촌이 맛있는 거 사줄게.”

    “정말요?”

    인호가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도장도 찍고, 복사까지 하니 유설아가 배시시 웃는다.

    “매번 이렇게 신세만 져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유재성의 말에 인호가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든다.

    “신세랄 것 있나요. 그래, 맞네. 직원 복지입니다. 재성 씨 덕분에 제가 건물에 신경 안 써도 되잖아요.”

    “그래도 여긴 굉장히 비싼 병원이지 않습니까? 병실 구하기도 힘들다고 하던데.”

    “아까 의사 선생님 말 들으셨죠? 어차피 남아있던 병실이래요. 병원비 걱정하지 마시고 설아 치료만 신경 쓰세요.”

    “병원비는 제가 내야죠.”

    “모르셨구나. 저 신성 그룹 회장님하고 친합니다.”

    “하하, 농담도…… 아, 아닙니다.”

    유재성이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는다.

    “진짜예요. 나중에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세요. 저 신성 회장님하고 정말 친해요. 하하.”

    농담처럼 들리는지 유재성이 어색하게 웃는다. 보아하니 인호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재계 서열 1위인 신성 그룹의 회장과 보통 사람이 친분을 맺을 기회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회장님.”

    신성 그룹의 오형민 회장이 서 있었다.

    “병원에 자네가 왔다는 말을 들어서 얼굴이나 볼까 하고 왔네.”

    “회장님은 병원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디 불편하신 곳 있으세요?”

    “내 나이쯤 되면 병원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어야 하네.”

    “하하.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인호가 오형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유재성은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신성 그룹 회장님과 친하잖아.’

    자신에게 병원비 부담을 주지 않으려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다친 아이와는 어떤 관계지?”

    “조카 같은 아이입니다. 이 아이 아버지가 제 건물을 관리해 주고 있거든요.”

    “그래? 저 꼬마 아가씨인가 보군. 안녕.”

    오형민이 웃으며 유설아에게 인사를 건넨다. 유설아가 아빠 뒤로 몸을 숨긴다. 낯가림이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아이쿠, 이 할아버지가 무서웠던 게군. 허허. 꼬마 아가씨, 치료 잘 받고 건강해져서 퇴원해요.”

    유설아가 아빠 뒤에서 빼꼼 고개만 내미는 것을 보고 오형민이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다.

    “난 이만 가 보겠네. 다음에 식사나 하지.”

    “네, 회장님. 연락만 주십시오.”

    오형민이 밖으로 나간다.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우르르 그 뒤를 쫓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유재성이 멍한 표정으로 말한다.

    “정말이었네요.”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오 회장님하고 친하다고 뭐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충분히 대단하신 분 같은데요.”

    인호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저 평범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 눈치 안 봐도 되니까 설아하고 함께 있으셔도 됩니다.”

    유민성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는 유설아를 돌봐 줄 사람이 유재성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고민하던 유재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배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내일은 꼭 나가봐야 합니다. 1층 점포에 전등도 갈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조금 있어서요.”

    * * *

    유설아가 입원한 다음 날.

    유재성이 일 때문에 자를 비운 시간 동안 인호가 병원에 와 있었다. 학교를 빠지고 유설아를 돌본다고 말을 하던 유민성은 인호에게 잔소리를 듣고 학교에 갔다.

    “설아. 답답하지?”

    병실에만 있어 답답할까 싶어 물으니 유설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삼촌하고 산책 갈까?”

    “어디로요?”

    “1층에 예쁜 꽃이 엄청 많더라. 가 볼까?”

    “네. 갈래요.”

    팔이 부러진 것이기에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인호는 유설아의 멀쩡한 쪽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갔다.

    병원 정문 반대편에는 인호의 말대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 둔 곳이었다.

    “꽃이 너무 예뻐요.”

    “그러게.”

    유설아가 정원 사이를 쪼르르 뛰어다니며 꽃을 구경한다. 저러다 또 넘어지는 것 아닌가 싶어 불안한 마음에 인호가 그 뒤로 따라붙는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예쁜지 유설아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경한다. 인호가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유설아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유정아. 저 꽃 마음에 들어?”

    간호사 한 명이 작은 여자아이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그 아이는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작은 얼굴의 절반을 마스크가 가리고 있었다.

    마스크와 모자 사이로 보이는 눈 주변이 퀭했다.

    간호사가 아이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꽃이 보기 좋은 곳까지 밀어준다. 어깨를 주무르며 몸을 돌리다 인호와 눈이 마주치고 살짝 고개를 숙인다.

    아이가 꽃에 푹 빠져 있자 간호사가 인호의 옆에 앉는다.

    “아이가 많이 아픈가 보네요.”

    “유정이요.”

    “네?”

    “쟤 이름이 유정이에요. 소유정. 많이 아픈 거 맞아요.”

    “어떤 병인지 알 수 있을까요?”

    “혈액암이에요. 백혈병이라고 들어보셨죠?”

    “아-.”

    간호사가 한숨을 내쉰다.

    “참 예쁘고 착한 아이인데……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에요.”

    그 말을 들은 인호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호사의 반응을 보니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유정이 어머님이 일이 바쁘세요. 그래서 낮에는 저희들이 돌아가며 돌봐 주고 있어요.”

    보라색 꽃을 구경하던 유설아가 옆에 있는 소유정을 힐끔 쳐다본다. 둘의 나이가 비슷해 보인다. 잠시 소유정을 살피던 유설아가 조금씩 이동해 그 옆으로 간다.

    “꽃 좋아해?”

    낯을 가려서 좀처럼 다른 이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유설아가 소유정에게 말을 걸었다.

    “응.”

    속삭이는 듯 작은 목소리였다.

    “나는 설아야. 유설아. 아홉 살.”

    “소유정. 나도 아홉 살.”

    인호가 대화를 나누는 두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들이라 그런지 금방 친해지네요. 동갑내기 만나니까 좋은가 보네요.”

    “그러게요. 유정이가 병원에만 있어서 동갑 친구는 없거든요.”

    소유정이 아홉 살이라는 말에 유설아가 웃으며 말한다.

    “우와-. 친구네. 꽃 좋아해?”

    뚝-

    유설아가 소유정이 보고 있던 꽃을 따 건넨다. 하지만 소유정은 그 꽃을 받지 않았다.

    소유정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잠시 동안 말을 하지 않던 소유정이 말한다.

    “꽃을 꺾으면- 꽃이 죽는 거야.”

    어린아이이 답지 않은 싸늘한 말투였다.

    유설아는 뜻박의 반응에 당황한 것인지 꽃을 든 손을 앞으로 내민 상태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 유설아를 대신해 인호가 두 아이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유정이는 죽는 게 뭔지 알아?”

    조금 전 말투 때문에 묻는 것이다. 소유정이 잠시 인호를 바라보다 말한다.

    “하늘의 별이 되는 거예요.”

    “응, 그렇구나.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되는 거구나. 그러면 이 꽃은 하늘의 별이 되겠네.”

    소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누가 가르쳐 줬어?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되는 거?”

    “엄마가요. 유정이는 밤에 무서운데 아빠가 별이 돼서 밤에 유정이 지켜준다고 했어요.”

    “아-, 아빠가…… 별이 되셨구나.”

    그때 소유정의 표정이 변한다. 고통을 느끼는지 눈을 감으며 몸을 움츠린다.

    “유정아. 괜찮아?”

    간호사가 소유정의 휠체어를 밀어 빠른 속도로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인호가 유설아 쪽으로 몸을 돌린다. 유설아는 여전히 꽃을 손에 든 채였다.

    “삼촌.”

    “응?”

    “정말 죽으면 별이 돼요?”

    “그렇지 않을까?”

    * * *

    - 정말 죄송합니다. 민성이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한다고 해서요.

    오늘도 인호는 유재성을 대신해 유설아의 병실에 와 있었다.

    유설아는 점심을 먹은 후 낮잠을 자고 있다. 간호사에게 유설아가 깨면 연락을 달라고 한 후 1층 정원으로 내려갔다.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 소유정이 휠체어에 앉아 꽃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뒤에 있는 벤치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간호사로 보이진 않았다.

    인호가 다가가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며칠 전에 여기서 꽃 구경하는 유정이를 봐서요. 유정이하고 동갑내기 아이가 입원해 있거든요.”

    “따님이요?”

    “아니요. 조카예요. 계단에서 굴러서 팔이 부러졌어요. 유정이 어머님 되시죠?”

    “네.”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요.”

    그 말에 정미선이 어색하게 웃는다.

    “하루 쉬기로 했어요.”

    “바쁘신 이유가 유정이 병원비 때문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치료비도 많이 나오고요.”

    인호가 꽃을 보고 있는 소유정을 보며 말한다.

    “유정이가 그러더라고요. 꽃을 꺾으면 죽는다고. 그래서 죽는 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하늘의 별이 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그렇게 알려줬다고.”

    “유정이 아빠가 사고로 죽었어요. 유정이가 아빠를 많이 찾았어요. 둘러댈 말을 찾지 못해서. 그래서 그렇게 말했어요. 죽으면 별이 되는 거라고. 그랬는데…….”

    정미선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어느 날인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 엄마 내가 별이 돼서 밤에 안 무섭게 지켜줄게.

    “하아-.”

    이제 아홉 살인 소유정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치료 방법은 없나요?”

    “조혈모세포라는 것을 이식받아야 하는데 맞는 걸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예요. 그리고 우리 유정이는 급성이라 조혈모세포를 이식해도 완치확률이 높지 않다네요.”

    소유정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정미선이 황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유정아 왜? 꽃구경 이제 그만할까?”

    소유정이 정미선에게서 인호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설아는 왜 안 왔어요?”

    “응? 설아 지금 낮잠 자. 설아 보고 싶어?”

    소유정이 고개를 젓고는 정미선에게 말한다.

    “엄마. 나 힘들어.”

    정미선이 인호에게 인사한 후 휠체어를 밀며 멀어져 간다. 모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인호가 걸음을 옮긴다.

    그가 향하는 곳은 소아암 병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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